철장부(鐵帳簿)
17

왼손의 진술서

대력(大曆) 23년 팔월 상순, 새벽이었다.

약당(藥堂) 뒷칸의 침상에서 백은 목으로 먼저 깼다.

아픈 것이 아니었다.

숨은 들어오고 나가는데 그 위에 아무것도 얹히지 않았다.

침을 삼키자 쇠 냄새가 목 뒤로 넘어갔다.

어젯밤 골목에서 소매로 막았던 그 맛이 아직 거기 있었다.

어제 골목에서 마지막으로 낸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문빗장을 고쳐 쥐면서 숨을 뱉었고 그 뒤로는 없었다.

그는 소리를 내 보았다.

바람이 나왔다.

바람만 나왔다.

"됐어. 그만해."

매향(梅香)이 시렁 앞에서 돌아섰다.

손에 마른 약재가 한 줌 들려 있었다.

"어젯밤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세 번 하면 피가 또 올라와."

백이 그녀를 보았다.

물음이 눈에 있었다.

"목이 상한 게 아니야. 상한 건 그 아래고, 나는 상한 건 고쳐. 없어진 건 못 고쳐."

그녀가 혀를 찼다.

약재를 사발에 털어 넣는 손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약으로 되돌리는 게 있고 아닌 게 있어. 이건 아닌 쪽이야. 나한테 기대하지 마라."

백이 상 쪽으로 손을 뻗었다.

"뭐 쓰게? 지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않았다.

어제 골목에서 목이 함께 갔을 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몸에서 하나가 빠져나가는 감각은 이번이 두 번째였고 처음에는 오른손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시렁 아래 상 앞에 앉았다.

뒷칸의 상은 그가 지난달부터 약방문을 필사하던 자리였다.

외상은 그렇게 갚아 왔다.

붓은 아직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놈이."

말리는 소리였지만 손은 상 위의 먹을 밀어 주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늘 말보다 먼저 갔다.

백이 왼손으로 붓을 들었다.

'입이 없으면 손으로 말한다.'

사각.

어제보다 획이 느렸다.

끝이 한 번씩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눌러서 다시 그었다.

사적 방어는 즉각성을 사후에 진술해야 성립한다고 나졸(邏卒)이 말했다.

늦어지면 다투기 어려워집니다, 라고도 말했다.

어젯밤 골목에서 그 말을 들을 때 그는 이미 대답할 수 없었다.

잃은 것은 목이 아니었다.

즉각성이었다.

관은 늦은 진술을 늦은 만큼 깎는다.

하루가 지나면 그것은 기억이 되고 이틀이 지나면 다투는 사람의 말이 된다.

어제 골목에서 그는 넷을 상대로 문 하나를 지켰지만 오늘 지켜야 할 것은 그 사실이 기재되는 방식이었다.

"오늘 가겠다는 거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 마르지도 않았는데."

매향이 사발을 상 옆에 놓았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붓끝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보다가 입을 열었을 때 말투가 조금 낮아져 있었다.

"하나 들은 거 있어. 약당 앞에 섰던 그 어깨들 말이야. 그런 것들은 제 발로 오지 않아."

붓이 멈췄다.

"저자에 삯 놓는 중개가 있어. 구(具)가라고들 해. 삯을 놓을 때 선불로 적어 두고, 적어 둔 걸 나중에 팔기도 하고. 파는 걸로 먹고사는 자들이니까."

"왜 그런 걸 나한테 말하는지는 묻지 마라. 이 골목에서 오래 앉아 있으면 저절로 들어오는 게 있어."

그녀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는지도, 언제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묻는 것은 그가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백은 붓을 다시 잡았다.

종이 한 장이 오늘의 그의 입이었고 지금 그 입에는 저 이야기를 넣을 자리가 없었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적으면 증명한 것까지 흔들린다.

중개라는 말은 안쪽 장부로 갔다.

문장은 짧게 갔다.

시각, 자리, 사람 수, 손에 든 것, 먼저 친 쪽.

그가 쓴 것 가운데 판단은 하나도 없었다.

표국의 노선지를 쓸 때 형이 가르친 방식이었다 — 길에서 본 것은 본 대로, 짐작한 것은 뒤에 따로.

다 쓰고 나서 소매로 이마를 눌렀을 때 종이 한 장이 낱장 묶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그가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을 때 매향이 문 앞에서 신을 신고 있었다.

"나도 가."

저자는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파장 뒤의 골목이 그랬듯 파장 전의 골목도 비어 있었고 그 빈 자리마다 어제의 발소리가 얹혔다.

매향은 반 걸음 뒤에서 걸었고 말을 걸지 않았다.

그가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셈에 넣은 걸음이었다.

관부 문 앞에서 나졸이 다섯 걸음 뒤에 붙었다.

오늘은 앞장서지 않았다.

접수방의 종이 냄새는 묵은 나무 냄새와 비슷했다.

기재 서리가 접수철을 꺼내 지난 유월의 장을 폈다.

소환장의 빈 칸에 그가 왼손으로 처음 적었던 이름이 거기 있었다.

두 달 전의 획이었다.

그때는 소리로도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서리는 두 장의 종이를 결이 같은 쪽으로 돌려놓았다.

관은 사람을 보지 않고 기재를 본다.

그것이 이 방의 규칙이었다.

어제까지 백을 옥죄던 규칙이 오늘은 유일한 통로였다.

두 종이가 나란히 놓였다.

"필적을 대조합니다."

서리가 획의 기울기를 짚어 갔다.

어사(御史) 신경윤(申敬允)은 서서 보았고 다 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손입니다. 기울기와 눌린 자리가 같고요."

"이 종이를 진술로 받아요."

어사가 자리에 앉았다.

"다만 형식을 하나 정해요. 피의자가 소리를 내지 못하므로 진술의 낭독은 기재 서리가 해요. 낭독된 것이 진술입니다. 종이는 접수철에 남고요."

백이 고개를 숙였다.

남이 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아직 몰랐다.

서리가 종이를 들었다.

"문은 안에서 열렸습니다. 저는 문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친 것은 저들입니다. 제가 든 것은 그 집 문빗장."

서리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다음 줄로 넘어갔다.

"저들은 제 몸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요구한 것은 품 안의 종이와 왼손."

제 문장이었다.

그런데 소리는 남의 것이었고 끊는 자리가 반 박자 달랐다.

백은 제 말을 처음으로 밖에서 들었다.

문장이 손을 떠나 방의 물건이 되는 데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

어사가 물었다.

물음은 짧았다.

"몇 합이었나요?"

붓이 갔다.

서리가 받아 읽었다.

"넷입니다. 셋은 막았고 넷째는 열었습니다."

"셋은 어떻게 막았나요?"

붓이 다시 갔고 서리가 그것을 받았다.

"문을 등지고 빗장으로 받아 흘렸습니다. 셋까지."

어사가 기재를 한 줄 기다렸다가 물었다.

"넷째를 연 까닭은 무엇입니까?"

"문틈에 손이 들어왔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사는 그것을 두 번 묻지 않았다.

"누구의 삯이라 보십니까?"

방이 조용해졌다.

서리의 붓이 멎었다.

매향이 문가에서 그를 보고 있었고 백은 그 시선을 등으로 알았다.

적을 수 있었다.

저자의 걸음이 그 밤의 걸음과 다르다는 것, 그러므로 삯을 놓은 손이 따로 있다는 것, 그리고 새벽에 들은 중개의 이름 한 자.

셋 다 그의 안에서는 이미 줄이 서 있었다.

적으면 기재에 오르고 기재에 오른 것은 다투어진다.

다투어서 지면 나머지도 함께 흔들린다.

백이 종이를 당겨 넉 자를 적었다.

서리가 받아 읽었다.

"모릅니다."

"본 것은 무엇인가요?"

붓이 다시 갔다.

이번에는 조금 길었다.

"저자의 걸음이었습니다. 그 이상은 셈입니다."

"셈은 기재하지 않아요."

어사가 서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재는 다투어질 것을 미리 셈해서 씁니다. 다툴 수 없는 줄이 많을수록 그 문서가 오래 가고요."

어사가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본 것만 넣으세요. 그리고 표국 곁마잡이 노(盧) 노인의 소환을 잡습니다. 관아 거리까지 스스로 오지 못한다 하니 서리가 데리러 가고요. 현장 검증은 이틀 뒤예요."

이틀 뒤, 라고 백의 안쪽에서 한 줄이 앉았다.

제가 바꾼 길을 제 발로 걷는 날이었다.

오늘 이 방에서 다투어진 것은 문 하나와 종이 두 장이었다.

검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어사가 접수철을 덮었다.

"피의자가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기재해야 합니다. 왜 못 하는지를 관이 스스로 판별할 수 없으므로 몸을 본 사람을 부를게요. 밖에 계신 분을 들이세요."

매향이 들어왔다.

다섯 해 동안 약당 문턱을 넘어 관아 쪽으로 걸어간 일은 없었다.

관의 단 위에서 손등에 밴 약재 물이 유난히 짙어 보였다.

옷을 여미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약당 사람이라 들었어요. 이름과 하는 일을 말씀하세요."

"매향이에요. 약당에서 약 팔고 침 놓고 그래요."

어사가 다음을 물었다.

"관에 증인으로 서 보신 적은 있으세요?"

"없어요. 나는 사람 몸만 봐요."

직함이 없었다.

아무도 고치지 않았다.

"이 사람 몸을 언제부터 보셨어요?"

"다섯 해쯤 됐어요. 처음 왔을 때는 업혀 왔고요."

서리의 붓이 그 대답을 받아 적는 동안 어사는 기다렸다.

그는 답을 재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제의 목은 어떤가요?"

"목만 상한 게 아니에요. 목은 밖이고 안이 상했어요. 소리는 안에서 밀어 올려야 나오는데 밀어 올릴 게 없어요."

그녀가 백 쪽을 한 번 보았다.

"이 사람 다시 말 못 해요. 오늘 안 되면 내일도 안 되고, 내년도 안 돼요."

서리의 붓이 갔다.

어사는 다음 물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물으려던 것은 진술 능력의 회복 가능성까지였을 것이다.

매향이 먼저 말했다.

"안 물으시니 제가 넣을게요."

백이 붓을 잡았다.

종이가 무릎 위에서 올라오는 데 반 박자가 걸렸다.

"여섯 해예요. 이 사람 남은 게."

붓끝이 종이에 닿았다가 그대로 멎었다.

"몸에 쓸 게 정해져 있는데 그걸 앞당겨 써 왔어요. 두 번 크게 썼고 어제가 두 번째예요. 지금 셈으로 여섯 해. 더 쓰면 더 줄고요."

"그 셈은 어떻게 나와요?"

"맥이에요. 다섯 해 전에 짚었을 때하고 어제 짚었을 때가 달라요. 나는 숫자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 손으로 배운 사람이고, 손으로 배운 게 더 안 틀려요."

그녀는 어사를 보고 말했다.

"나는 이 방에서 이걸 말하러 왔어요. 안 그러면 아무도 이 사람 값을 안 세니까요. 이 사람은 안 세요. 자기 값은 안 세는 사람이에요."

방에 붓 소리만 남았다.

어사가 서리 쪽으로 짧게 고개를 움직였다.

"기재합니다."

어사의 목소리에는 무게가 얹히지 않았다.

그는 판단하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잔여 수명 여섯 해, 증인 진술로 기재. 지불된 항목이 아니라 고지된 항목입니다. 관은 사람의 수명 안에서 판정해요."

백은 종이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적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늦어서였다.

접수방 문턱에 은가락(殷家洛)이 서 있었다.

손에 접힌 통지가 들려 있었다.

은가락은 백을 보았고 그다음에 종이와 붓을 보았다.

방 안에서 무엇이 기재되었는지 이미 아는 얼굴이었다.

"오늘부터 열람이래요."

말은 짧았고 눈은 그의 목에 가 있었다.

백이 고개를 숙였다.

"어제 서시 어귀 일도 들었어요. 혼자셨다고요."

접수방의 서리가 통지의 접수 번호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대신 채웠다.

그가 붓을 들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제 거절은 제 것입니다. 그 값을 그쪽 장부에 얹지 마세요."

붓이 멈췄다.

"제가 손을 빌려 드리지 않기로 한 건 제가 정한 거예요. 그래서 생긴 것도 제 셈이고요. 그쪽이 대신 적으면 제 몫이 없어져요."

백은 한 줄만 적어 보였다.

"빌리지 않은 것은 빚이 아닙니다."

그녀가 그것을 읽었다.

읽고 나서 잠깐 숨을 골랐다.

통지를 쥔 손가락이 접힌 자국을 한 번 눌렀다.

"그렇게 적어 두세요."

열람방의 문은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그 문 너머에서 그녀가 읽을 것 가운데는 그가 예심에서 자인한 셋도 있었다.

팔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증명되지 않았고 오늘 기재된 여섯 해는 그 아래 줄에 앉을 것이었다.

진소하의 이름은 오늘 어느 종이에도 없었다.

근신은 사문 안의 일이라 관의 기재에 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열람방 쪽으로 걸어갔다.

뒷모습이 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백은 제 손이 아직 붓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저자를 한 번 더 지났다.

문을 연 가게들이 있었고 삯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고 어제의 골목으로 꺾어 드는 길목이 있었다.

그는 꺾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약당 뒷칸으로 돌아왔을 때 등잔이 켜져 있었고 손님이 서 있었다.

담기원(譚沂源)은 앉지 않았다.

"오래 있지 않겠네."

그는 손을 뒤로 모은 채 말했다.

"오늘 예심에 기재된 것을 들었네. 여섯 해라고."

백이 상 앞에 앉았다.

"배상은 대납이 되네. 관은 누가 냈는지를 적고 남은 액수만 보지. 대납이 들어가면 배상 의무가 닫히고, 무적(武籍) 회복 신청이 그날부터 접수됩니다. 절차는 서리 하나면 되고, 오늘 신청하면 이달 안에 닫히고요."

백은 그 절차를 알고 있었다.

대납이 들어가면 배상 칸에 다른 이름이 적히고 그 아래 줄에 완제라는 두 자가 앉는다.

장부는 그것으로 닫힌다.

등잔의 그을음이 종이 위로 얇게 앉았다.

"자네에게 돈은 돈이 아니라 시간일세. 갚는 데 몇 해, 회복에 몇 해. 여섯 해 가운데 몇 해를 문서에 묶어 두겠는가. 나는 그 셈을 물으러 왔네."

백은 붓을 들지 않았다.

담기원이 그것을 기다렸다가 한 줄을 더 놓았다.

"나를 위해서라고 여겨도 좋네. 배상이 닫히면 내 판정도 가벼워지지. 자네가 그렇게 셈해야 받겠다면 그렇게 셈하게."

백이 붓을 들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양합니다."

담기원이 종이를 보려고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등잔 밑이었다.

소매가 반 뼘 올라가고 손등이 빛 아래로 들어왔다.

살결은 붓을 오래 쥔 사람의 것이었다.

흉은 없었다.

오래된 것도, 최근의 것도 없었다.

백의 눈이 거기서 한 박자 멎었다.

백은 안쪽 장부에 자리 없는 줄을 하나 더 적었다.

자리가 없다는 것은 아직 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명부에 오른 셋이 있고 답은 그 안에 있다.

유월부터 세워 온 셈이었다.

오늘 그 셈을 흔들 근거는 손등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 두 자를 남이 적으면, 다섯 달 동안 좌표만 세어 온 목록도 남의 것이 된다.

어제 서시 어귀에서 여덟 전이 받아졌을 때 성립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 갚은 손이었다.

담기원이 종이를 접어 상 위에 도로 놓았다.

"두 번 청하지는 않겠네. 다만 하나는 적어 두게. 갚는 방식을 고르는 것도 값일세. 자네는 오늘 그 값을 치렀네."

문이 닫혔다.

약재 냄새 위로 밖의 저녁 공기가 한 번 들어왔다가 가라앉았다.

앞칸에서 매향이 약재를 써는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는 뒷칸에 누가 왔었는지 묻지 않았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 물어서 답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은 등잔을 당겨 다음 종이를 폈다.

현장 검증, 이틀 뒤, 재 너머 길.

붓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방에서 가장 큰 소리였다.

오늘 그의 말은 전부 그 소리에서 나왔고 그것을 사람의 목소리로 바꾸는 일은 남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