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장부(鐵帳簿)
11

피의자(被疑者) 서문백

대력(大曆) 23년 유월 중순.

소환의 기한이 닫히기 이틀 전 아침이었다.

결승에서 열흘 남짓이 지나 있었다.

무릎은 나흘 만에 섰고 젓가락은 돌아왔다.

오른손의 떨림은 가라앉지 않아 붓을 쥐지 못했다.

사흘마다의 약당(藥堂) 걸음은 지켜졌다.

관은 결승 뒤 아무 기재도 붙이지 않았다.

숙사는 아직 한백(韓柏) 명의의 외원(外院) 말석이었다.

담기원(譚沂源) 쪽에서도 은가락(殷家洛) 쪽에서도 전갈은 없었다.

이름은 몸이 선 뒤에 정하라 했다.

몸은 섰다.

열흘 동안 셈은 뒤집을 때마다 같은 자리에 앉았다.

남은 것은 붓을 쥘 손이 없다는 사실 하나였다.

청람관(靑嵐館)에서 반나절 길이었다.

성문 안쪽 관아 거리 끝에 어사부(御史府)가 회벽과 검은 기와로 앉아 있었다.

담벼락에는 방(榜)들이 겹쳐 붙어 두꺼웠다.

오래된 것은 비에 씻겨 글자가 흐렸고 새것은 풀이 덜 말라 가장자리가 들떠 있었다.

백은 그 두께를 눈으로 재며 걸었다.

다섯 달 전의 여덟 자는 그 아래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었다.

아침에 물 뿌린 흙냄새가 났다.

대문의 나졸(邏卒)이 소매 안의 종이를 한 번 보고 길을 비켰다.

묻는 말은 없었다.

종이가 사람 대신 대답하는 문이었다.

접수방(接受房)은 대문을 지나 첫 방이었다.

낮은 상 하나.

서리 둘.

벽을 따라 선 접수철.

마른 종이와 인주 냄새.

백은 문가부터 보았다.

나졸 하나가 문가에 서 있었다.

발끝이 문이 아니라 상 쪽을 향해 있었다.

지켜지는 방이었다.

백은 접힌 소환장을 상 위에 펴 놓았다.

이름 칸만 희었다.

서리가 그 칸을 한 번 보고 백을 한 번 보았다.

"이름 자리가 비어 있어요. 적어야 접수가 되고요. 이름 없는 진술은 기재되지 않아요."

"압니다."

"기한은 이틀 남았어요. 기한 안이고요. 오늘 날짜로 접수철에 편철하고요. 적힌 이름이 오늘부터 이 관부의 이름이에요."

"예."

붓이 상 위로 밀려왔다.

붓대의 결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나무를 쥐는 것은 목검 이후 처음이었다.

"본인 서명만 받아요. 대필은 접수하지 않고요. 필적은 접수철에 그대로 남고요."

오른손이 소매 안에서 한 번 떨렸다.

붓을 향해 갔다가 붓대에 닿기 전에 멎었다.

붓이 쥐어지지 않았다.

붓은 왼손으로 옮겨 갔다.

오른 손목을 감싸 쥐러 가던 버릇이 갈 곳을 잃었다.

그 왼손이 붓을 쥐고 있었다.

손목은 소매 안에서 혼자 떨렸다.

서리가 붓을 옮겨 쥐는 손을 보았다.

"붓이 왼손이신가요."

"오른손이 붓을 못 써요."

"까닭은 묻지 않아요. 왼손 필적으로 남고요. 그래도 되겠어요."

"됩니다. 이름은 이름이지요."

까닭은 말하지 않았다.

서(西) 자의 첫 획이 흉하게 앉았다.

문(門) 자는 문짝이 기울었다.

백(柏) 자는 나무가 흔들렸다.

서문백(西門柏), 석 자가 종이 위에 있었다.

사각.

서리가 이름을 읽었다.

"왼손 서명으로 기재해요. 뒤에 서면이 오면 이 필적과 대조하고요."

"예."

접수철을 넘기던 손이 멎었다.

서리가 곁의 서리에게 짧게 말했다.

"종결철에서 이월 건을 내 주세요."

묵직한 철 하나가 벽에서 내려왔다.

두꺼운 누런 종이 두 장이 그 안에서 나왔다.

종이는 상 위에 놓이기 전에 먼저 읽혔다.

"대력 22년 섣달 열이레, 재 너머 약당 길. 서문표국(西門鏢局) 호송대 피해. 노정 매도, 녹림(綠林) 소행. 피의자(被疑者) 서문백, 서문표국 막내, 행방 미상."

서리가 종이 두 장을 소환장 곁에 놓았다.

"관아 종결 문서(官衙終結文書)예요. 대력 23년 이월의 기재고요. 종결은 관아가 했고 재개는 어사부가 하고요. 재개 파일은 종결 문서 위에 열려요."

손끝이 두 종이의 이름을 차례로 짚었다.

"소환장의 이름과 피의자 칸의 이름이 같아요. 두 기재는 결합되고요."

"…결합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들어가는 문이 달라져요. 나머지는 어사가 놓지요."

다른 서리가 벽 끝의 얇은 철을 폈다.

"이름이 적히면 무적(武籍)을 조회해요. 한백이라는 이름으로는 조회할 무적이 없었고요. 어느 기재의 사람이신가요."

"서문표국 소속 등재였어요. 청람관에는 한백으로 기재되어 있고요."

붓끝이 줄을 따라 내려가다 멎었다.

"서문백의 무적은 서문표국 소속 등재예요. 표국 소멸 뒤 다섯 달, 흐려진 채고요. 청람관 기재는 한백. 한 몸에 두 기재예요. 정정은 청람관의 몫이에요."

"예."

다섯 달 전 관아의 장부는 이 이름을 먼저 적어 두었다.

백이 제 안쪽 장부에 적어 온 자리는 채무자 칸이었다.

관아가 적은 자리는 피의자 칸이었다.

이름을 되찾은 값이 유족의 문 앞이 아니라 제 등 뒤에서 먼저 도착했다.

문가의 발끝이 이미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항의할 문장은 없었다.

장부의 대차처럼 맞아 들어갔다.

서리가 두 장을 들고 일어섰다.

"예심청(豫審廳)으로 가세요. 어사께서 기다리세요."

"예."

증인의 문이 아니었다.

피의자의 문이었다.

'도망칠 이름은 이제 없다.'

예심청은 마당 건너였다.

방청이 없는 방이었다.

발소리가 벽에서 돌아왔다.

어사 하나와 기재 서리 하나.

어사는 등을 벽에 대지 않고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작은 수첩.

병장기는 없었다.

서리가 종이 두 장을 어사 앞에 놓고 물러서며 한마디를 놓았다.

"어사 신경윤(申敬允)입니다."

관복 소맷부리의 색이 닳아 옅었다.

눈이 백을 보았다.

깜빡이지 않는 구간이 길었다.

그 구간이 끝나자 말이 왔다.

"청람관 기재로는 한백 씨고요. 접수철에는 서문백이라 적혔어요. 이 방에서는 적힌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서문백 씨."

"예."

다섯 달 만에 관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백은 왼손을 무릎에 놓고 오른손을 소매 안에 두었다.

"관아 종결 문서가 피의자 칸에 그대의 이름을 적어 두었고 접수철에 같은 이름이 앉았으니 두 기재는 결합되었습니다. 결합된 기재의 당사자는 먼저 피의자로 신문하고, 그 진술이 기재된 뒤에야 증인으로 기재해요."

무게는 이름에 있지 않았다.

부르는 순서에 있었다.

수첩 위의 손이 한 장을 넘겼다.

"오늘 이 방의 첫 물음은 그대가 고발한 죄가 아니라 그대의 노정입니다."

"예."

"노정을 고친 것이 맞아요."

"고쳤습니다."

기재 서리의 붓이 첫 획을 놓았다.

"왜, 어떻게 고쳤어요."

"제 몸의 약 때문이었습니다. 출발 전에, 노선지(路線紙) 위에서. 약당 경유로 고쳤어요."

"허가는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노선지는 제 손에 있었고요. 고쳐 적은 것은 저 하나예요."

어사의 눈은 깜빡이지 않았다.

"약당 경유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어요."

"저를 위한 것이었어요. 표행에 병자는 저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표행 전체의 길을 그대 하나의 약을 위해 허가 없이 고쳤다고 진술하는 것입니다."

"예."

다음 물음은 바로 오지 않았다.

백은 그 사이에 한 줄을 더 놓았다.

"제가 고친 길이 더 좁고 외진 길이었습니다."

기재 서리의 붓이 종이를 긁었다.

어사의 손은 무릎 위에 겹쳐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입니다."

"예. 그러나 사실입니다."

"어떻게 더 좁고 외진 길이지요."

"정례 노정은 큰길이에요. 약당 길은 재를 넘고요. 짐수레가 나란히 서지 못하는 좁목이 있어요."

표국의 어휘였다.

감출 이름이 없으니 감출 말도 없었다.

"고친 길을 아는 사람은 누구였어요."

"제가 아는 한 표행 안의 사람들뿐이에요."

"매복은 어느 길을 쳤나요."

"고친 길을 쳤습니다."

"팔지 않았음은 어떻게 증명하지요."

반 박자 늦던 대답이 한 박자로 길어졌다.

이 방은 설득하는 방이 아니었다.

기재되는 방이었다.

붓은 감정에 반응하지 않았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이 이 방에서 값이 깎이지 않는 진술이었다.

"증명할 수 없습니다. 매복이 바뀐 길을 어떻게 알았는지 저도 모릅니다."

"증명하지 못한다는 진술도 기재돼요."

"예."

"그러니까 그대는 고친 길이 더 좁고 외진 길이었고, 팔지 않았음은 증명하지 못한다고 진술하는 것입니다."

"예."

붓이 한 줄을 적었다.

피의자 진술의 첫 줄이었다.

다섯 달의 자책이 관인의 붓으로 옮겨 적혔다.

담기원의 이름은 아직 이 방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어사가 사장부(私帳簿)를 두 손으로 들었다.

읽기 전에 손끝으로 결부터 짚었다.

표지 곁에 붉은 수령 인영이 있었다.

방을 한 번 옮긴 종이였다.

"이 종이는 어디서 났어요."

대답이 오기 전에 어사가 사장부를 상 위 낱장 곁에 내려놓았다.

두 종이의 모서리가 겹쳤다.

"침입이나 절취로 얻은 물건은 제출자가 그 경위를 제 죄로 진술한 뒤에만 채택됩니다. 출처의 진술이 없으면 이 종이는 증거가 아니라 물건이고, 오늘 이 상 위에서 물건으로 돌아갑니다."

결승 무대에서 끝내 말하지 않았던 항목이었다.

말하면 사저의 밤 전부가 제 죄가 된다.

말하지 않으면 종이는 영영 물건이다.

대차는 이미 맞아 있었다.

입이 반 박자 늦었을 뿐이었다.

"축제의 밤이었어요. 부관주 사저의 담을 넘었고요. 서재의 창으로 들었고요. 문갑 깊은 칸에서 장부 한 권을 가져왔어요."

붓이 따라왔다.

어사는 기다렸다.

"나오는 길에 마당에서 호위 둘과 마주쳤어요. 다섯 합이었고요. 상한 사람은 없습니다. 날은 뽑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벽에서 돌아왔다.

자백이 소리로 되돌아오는 방이었다.

묻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았다.

"상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대의 진술이에요. 호위의 진술은 따로 받습니다."

"예."

기재 서리의 붓이 다섯 합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마당의 밤이 숫자로 남았다.

"사저에 든 것은 그 밤 한 번인가요."

"한 번입니다."

붓이 그것도 적었다.

"가져온 장부는 결승까지 어디 있었어요."

"제 품에 있었어요. 읽었고요. 결승 무대에서 읽은 대로 진술했어요."

"낱장은 무엇의 종이예요."

"표국의 철장부(鐵帳簿)에서 남은 낱장이에요. 그 밤부터 제가 지녔고요."

"어떻게 얻었어요."

백은 상 위의 낱장을 손끝으로 갈랐다.

남의 집 장부와 표국의 종이 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갔다.

"낱장은 표국의 것입니다. 사장부는 침입해서 가져왔어요."

어사가 낱장을 사장부 위에 얹지 않고 곁에 따로 놓았다.

"그러니까 그대는 사장부 한 권을 침입과 절취로 얻었고, 낱장은 제출자의 것이라 절취가 아니라고 진술하는 것입니다."

"예."

붓이 두 줄을 마저 적고 멎었다.

"피의자 진술이 기재되었으니 사장부와 낱장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서문백 씨를 증인으로도 기재합니다. 순서는 피의자가 먼저입니다."

기재 서리의 붓이 그 순서대로 적었다.

"증인 기재는 대질을 예약해요. 날은 문서가 모인 뒤에 정하고요. 채택된 종이는 어사부가 보관하고요. 제출자에게 돌아가지 않아요."

"예."

어사의 손이 무릎 위에 다시 겹쳐졌다.

"판정 미결 동안 피의자는 나졸의 출입 감시를 받습니다. 재개는 관아 거리에 방으로 알립니다. 유족은 당사자로 등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감시는 어디까지 따라오나요."

"출입입니다. 관부 문을 나서는 걸음부터 돌아오는 걸음까지고요.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따라갈 뿐입니다."

"예."

묻지 않고 따라간다는 말이 놓일 때 안쪽에서 두 좌표가 먼저 떠올랐다.

약당의 뒷문.

서시(西市) 어귀.

그림자를 달고 설 수 있는 문인가의 셈이었다.

방이라는 낱말에는 담벼락의 겹쳐 붙은 두께가 떠올랐다.

내일이면 한 장 더 붙는다.

살린 종이와 붙은 그림자가 같은 문장에서 왔다.

얻은 것과 청구된 것의 무게가 같았다.

장부는 정직했다.

어사가 종결 문서 두 장을 상 위에서 백 쪽으로 돌려놓았다.

"피의자는 저를 고발한 문서를 열람할 수 있어요."

첫 장.

사건명 아래 굵은 붓의 여덟 자.

그 아래 피의자 칸.

서문백, 서문표국 막내, 행방 미상.

행방 미상 넉 자를 백은 오래 보았다.

다섯 달 동안 있던 자리는 청람관 말석이었다.

관아는 그것을 몰랐다.

종결 직인의 붉은 사각 곁에 수령 인영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둘째 장은 먹이 옅었다.

현장에서 급히 적은 붓이었다.

은진서(殷振瑞) — 검 중동에서 꺾임, 날 뿌리에 남의 피.

서문송(西門松) — 등에 두 줄.

시선이 위의 줄에서 반 호흡 멎었다가 넘어갔다.

그 아래로 표사들의 이름과 상처 자리가 이어졌다.

갚아야 할 항목의 이름들이 검시 줄로 다시 왔다.

해석은 한 줄도 없었다.

형의 이름 곁의 두 줄은 회상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과 자국뿐이었다.

그 밤을 다시 짤 재료는 손에 없었다.

백은 두 줄을 물음표째로 안쪽 장부에 옮겨 적었다.

"열람을 마쳤나요."

"마쳤습니다."

종이가 접혔다.

다음 물음이 왔다.

"쌍절(雙截)이라는 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말해 보세요."

"쌍절은 내원(內院) 전수 한정입니다. 명부(名簿)가 곧 용의자 목록입니다."

방청 없는 방이 두 문장을 되돌려 주었다.

"그 범위는 무엇으로 아나요."

"청람관 담 안에서 들은 금(禁)이에요. 결승 무대에서도 같은 말을 놓았고요."

"명부에는 무엇이 적혀요."

"관의 명부는 제가 본 적이 없어요. 내원 전수의 기재라고만 알아요."

수첩 위의 손이 한 번 움직였다가 멎었다.

"그대는 쌍절을 쓸 수 있나요."

"없습니다. 저는 내원의 전수를 받지 않았어요."

붓 소리가 그 줄을 적었다.

"이름을 댈 수 있어요."

"명부를 보기 전에는 아무 이름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대는 쌍절을 쓸 수 있는 손이 내원 전수 명부 안에 있다고 진술하는 것입니다."

"예."

짐작을 얹으면 조각도 되기 전에 이름을 부르는 것이 된다.

결승에서 지킨 규율이 이 방에서도 입을 막았다.

어사가 기재 서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람관에 쌍절 전수 명부의 제출을 명한다. 그리 기재하십시오."

붓이 움직였다.

어사의 눈이 백에게 돌아왔다.

"제출은 청람관의 몫이고요. 열람의 자리는 문서가 온 뒤에 정하지요."

"예."

"나는 검로를 판별하지 못합니다. 범위의 진술은 기재하고요. 검로의 판별은 피의자의 눈에서 받지 않아요. 판별이 필요한 자리에는 다른 눈을 부릅니다."

수첩이 덮였다.

종이 닫히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한 번 돌아왔다.

그것으로 그날의 심리가 끝났다.

판별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빈자리 하나를 남겼다.

누구의 눈인가.

예심청 문이 열렸다.

마당 건너 대문 쪽에서 나졸 하나가 백의 걸음에 맞춰 일어섰다.

마당을 건넜다.

뒤에서 발소리가 붙었다.

다섯 걸음.

같은 간격.

합을 세던 귀가 걸음을 셌다.

대문 밖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표사의 눈은 발부터 보았다.

뒤의 둘.

무게가 발바닥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저자 삯꾼의 발이 아니었다.

훈련된 디딤이었다.

사저의 사람.

백은 그렇게만 적어 두었다.

그 이상은 조각이 아니었다.

앞의 하나가 담기원이었다.

눈이 백의 손을 먼저 보았다.

얼굴은 그다음이었다.

"붓은 왼손인가."

"예. 왼손입니다, 부관주님."

시선이 백의 어깨 너머로 갔다.

다섯 걸음 뒤의 나졸을 읽는 각도였다.

"적었군, 자네 이름을."

"적었습니다."

"나는 부름 없이 왔네.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는 묻지 않는군."

언성은 없었다.

어느 이름도 입에 오르지 않았다.

자네, 뿐이었다.

"그 이름으로 다시 보세."

"예."

세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붙는 발소리는 없었다.

문 안에서 오갈 말은 백의 셈 밖이었다.

부름 없이 온 사람과 부름을 받고 나온 사람이 같은 문에서 갈렸다.

이름을 적은 쪽에만 걸음이 붙었다.

백은 관아 거리로 나섰다.

담벼락의 방들이 아침보다 조금 더 말라 있었다.

내일이면 저 위에 하나 더 붙는다.

왼손 손가락 사이에 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늘 쥔 것의 흔적이었다.

되찾은 이름은 먼저 청구서로 왔다.

갚는 도구가 되려면 종이가 몇 장 더 필요했다.

먹 자국이 마른 왼손을 소매 안에 넣었다.

오른손은 소매 안에서 혼자 떨리고 있었다.

다섯 걸음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같은 간격이었다.

백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발소리도 늦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