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장부(鐵帳簿)
12

되돌아온 두 냥 여섯 전

대력(大曆) 23년 유월 하순의 새벽이었다.

버들골 어귀 국숫집 담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풀이 마르지 않아 가장자리가 들떠 있었다.

붙은 지 이틀이 안 된 종이였다.

종이의 속도를 재는 눈이 먼저 그것을 셌다.

문간에 예닐곱 살 아이가 앉아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고 있었다.

"피, 의, 자."

한 자씩이었다.

"서. 문. 백."

아이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유, 족, 등, 재."

"거기까지만 읽어라."

노모의 목소리가 안에서 왔다.

아이는 손가락을 뗐다.

다섯 걸음 뒤에서 발소리가 멎어 섰다.

나졸(邏卒)이었다.

성문 밖까지 같은 간격으로 따라온 관의 눈이었다.

어사부(御史府)에서 이레 남짓이 지나 있었다.

방(榜)은 백이 문을 나선 이튿날 관아 거리에 붙었고 유족 등재 고지라는 한 줄을 달고 성밖 골 어귀에도 붙었다.

관의 종이는 소문보다 빨랐다.

소문은 사람의 발로 오고 방은 나졸의 발로 온다.

나졸의 발이 더 일찍 나선다.

사흘마다의 약당(藥堂) 걸음은 그림자를 달고 지켜졌다.

오른손의 떨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젓가락은 오른손 그대로였고 붓은 아니었다.

관은 아무 기재도 붙이지 않은 채 한백(韓柏) 명의의 말석 숙사를 두었다.

담기원(譚沂源) 쪽에서도 은가락(殷家洛) 쪽에서도 전갈은 없었다.

오늘은 이름을 붙이러 온 길이었다.

두 달 전 심부름꾼으로 놓고 간 삯 위에 제 이름을 놓으러.

갚음의 절반은 돈이고 절반은 이름이었다.

돈은 두 달 전에 갔다.

이름이 오늘 가는 길이었다.

이름이 먼저 와 있었다.

국숫집 안에서 노모가 다리를 끌며 나왔다.

성안 걸음을 못 하는 다리였다.

소문이 닿지 않는 골이었고 그래서 방이 소문보다 먼저 닿은 골이었다.

"그제 나졸이 붙이고 갔소. 글 아는 사람이 없어 저 아이가 읽소."

"성안 소문은 아직인가요."

"이 다리로 성안을 못 가오. 여기까지 오는 말은 장날이나 되어야 오오. 종이가 먼저 왔소."

백은 고개를 숙였다.

"오르막 끝 집 가시오?"

"예."

"그 집은 그제부터 뭘 무명에 싸 두더만."

노모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백도 묻지 않았다.

어귀에 발이 둘 더 있었다.

국숫집 맞은편 평상 끝에 사내 둘이 앉아 있었다.

발끝이 오르막 쪽을 향해 있었다.

발이 저자의 발이었다.

손은 빈손이었다.

얼굴은 보지 않았다.

표사의 눈은 얼굴을 마지막에 본다.

발끝과 발과 손까지로 족했다.

방이 먼저 닿았으니 갚음은 이미 판정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 셈이 먼저 왔다.

그다음 셈이 그것을 뒤집었다.

관의 종이가 놓은 이름은 피의자 칸의 이름이다.

갚는 자의 이름이 아니다.

저울은 제 입으로 놓은 이름 앞에서 다시 기울어야 한다.

백은 오르막에 올랐다.

다섯 걸음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어귀의 발 둘은 따라오지 않았다.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르막 중턱에서 셈이 하나 섰다.

이 걸음이 저들에게 유족의 문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래도 올랐다.

기운 사립문이 열려 있었다.

토방에 무명 꾸러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장부의 눈은 무게를 먼저 잰다.

두 냥 여섯 전이었다.

과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백의 낯을 오래 보았다.

"서문백(西門柏)입니다. 두 달 전 삯을 가져온 심부름꾼이 접니다."

과부는 놀라지 않았다.

"알고 있소."

백이 물었다.

"방을 보셨어요."

"방은 못 읽소. 아이가 읽어 줬소."

"예."

과부가 문설주에서 손을 뗐다.

"아이가 물었소. 피의자가 뭐냐고. 나도 몰라 관아 사람이라 했소. 관아에 간 사람이라고."

"유족 등재라는 말도 있었나요."

"있었소. 그것도 모르오. 유족이면 나고, 등재가 뭔지는 관아가 알겠지."

과부가 백의 손을 다시 보았다.

"관아에는 간 것이오?"

"갔습니다. 제 이름을 적었습니다."

과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면 관아가 알겠구려."

과부의 눈이 백의 손으로 내려왔다.

두 달 전에는 행색까지였다.

"그때 낯이 설지 않다고 했소. 설지 않았소. 표국 마당에서 본 막내 얼굴이었소."

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알아보고 모르는 쪽을 골랐소. 삯이 왔으니 삯으로 받았소. 그게 그이 몫이었소."

과부가 토방의 꾸러미를 들어 상 위에 올렸다.

무게가 가벼운 소리를 냈다.

무명의 매듭은 두 달 전 백의 오른손이 묶은 그대로였다.

"심부름꾼의 삯이라 받았소."

말을 끊고 잠깐 두었다.

조건이 먼저 오고 결론이 뒤에 오는 사람이었다.

"서문가 막내의 돈이면 핏값이오."

백이 물었다.

"두 달 동안 쓰지 않으셨어요."

"한 번도 안 풀었소. 그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이 이 안에 있었소. 풀면 그것도 같이 없어지오."

과부의 시선이 꾸러미에서 백의 손으로 내려왔다.

"쓸 데는 있었소. 지붕이 한 번 샜소. 그래도 안 풀었소. 이건 돈이 아니라 그이 몫이었소. 몫은 셈이 맞아야 몫이오."

저주가 올 자리였다.

두 달 전 이 방에서 서문가 막내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입이었다.

저주는 오지 않았다.

과부의 손이 치마폭에 닦이지 않았다.

과부가 물었다.

"팔았소?"

"팔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쳤습니다. 증명은 못 합니다."

세 문장이었다.

어사부의 기재에 적힌 그대로였다.

그 밖의 문장은 전부 변명이었고 변명은 값이 더 나갔다.

"왜 고쳤소."

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 안에 문장이 하나 있었다.

사실이고 짧은 문장이었다.

그 문장이 나가면 이 방의 저울에 그이의 목숨과 남의 병이 나란히 올라간다.

세 문장을 넘지 않기로 한 것은 어사부의 상 앞에서였고 규율의 값을 자리마다 다르게 매길 수는 없었다.

과부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증명은 관아가 하오."

"예."

과부가 꾸러미에 손을 얹었다.

"그러면 이 돈은 관아가 정할 때까지 삯이 아니오. 받으시오."

꾸러미가 밀려왔다.

오른 손목을 감싸 쥐러 가던 왼손이 갈 곳을 바꾸었다.

그 왼손이 꾸러미를 받았다.

오른손으로 세어 준 돈이었다.

왼손으로 돌아왔다.

짤랑.

무게는 같았다.

'돌아온 돈은 갚음이 아니다.'

과부가 일어섰다.

사립문까지 따라 나와 문을 닫았다.

닫히는 문 너머에서 한마디가 왔다.

"이름 붙은 삯은 관아를 거쳐 오시오."

문이 닫혔다.

갚은 항목이 다시 열렸다.

백의 장부에는 열린 항목을 적을 칸은 있었다.

되돌아온 항목을 적을 칸은 없었다.

오르막 아래 어귀에 발 둘이 그대로 있었다.

나졸은 다섯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관의 눈은 저 문도 보나요."

나졸은 오르막 끝의 사립문을 한 번 보고 백을 보았다.

"피의자만 봅니다."

그것이 답이었다.

백은 내려갔다.

어귀를 지날 때 발 둘은 일어서지 않았다.

성문 안으로 드는 걸음에 그림자 하나만 붙었다.

해가 기울어 청람관(靑嵐館) 대문에 닿았다.

대문 앞에 사무의 서리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매듭이 제 손의 매듭이 아니었다.

관 안 누군가의 손이 싼 짐이었다.

"관이 고발한 몸은 담 안에 재우지 않습니다. 숙사의 물건이에요."

백이 되물었다.

"고발이라 하셨어요."

"내원 사범 연명으로 어제 어사부에 올렸습니다. 침입, 절취, 관인에 대한 무력 행사. 피해자 칸은 부관주십니다."

소문의 형식으로 먼저 왔다.

기재의 형식은 내일 관아 거리에 있을 것이었다.

서리의 발은 문지방 안쪽에 있었고 백의 발은 밖에 있었다.

다섯 걸음 뒤의 나졸은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관 담 안에 들지 못하는 그림자였다.

다툴 수 있었다.

다투면 관 문 앞이 판이 된다.

판이 되면 셋째 죄목에 재료가 보태진다.

"명부의 이름은 남나요."

"명부의 이름은 남습니다. 몸만 담 밖이고요."

백이 보따리를 보았다.

"숙사의 물건이 전부인가요."

"목검 한 자루, 옷 두 벌, 낱장 몇이에요. 물목대로고요. 낱장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물목대로면 됐어요."

백은 보따리를 받았다.

왼손이었다.

대문이 닫혔다.

해가 진 뒤 약당 뒷문의 돌쩌귀가 울었다.

기름을 먹이지 않은 소리였다.

약속된 소리였다.

매향(梅香)은 보따리를 한 번 보고 다섯 걸음 뒤의 그림자를 한 번 보았다.

"이 밤에 그림자를 달고 왔네."

"관이 고발한 몸은 안 재운답니다."

매향의 눈이 보따리로 내려갔다.

"쫓겨났냐."

"예."

매향이 문을 반만 열어 둔 채 물었다.

"다른 데 잘 데는."

"없어요. 있어도 여기는 안 오려 했고요. 문 앞에 눈이 붙어요."

매향은 그 셈을 받지 않았다.

"늦었다. 어깨들이 그제 문 앞에 왔더라. 이름을 대더라. 서문가 막내 여기 있느냐고."

"…예."

"없다고 했다. 그때는 없었으니까. 네가 안 와도 저들은 온다. 그러면 관의 눈이 이 문 앞에 붙는 쪽이 낫다."

매향이 턱으로 다섯 걸음 뒤를 가리켰다.

그림자는 문 밖에 서 있었다.

"뒷칸에 침상이 둘이다. 하나는 비었다."

말 대신 손이었다.

매향은 뒷칸 문을 열어 두고 시렁에서 약봉지를 내렸다.

"외상 한 줄 더 얹는다."

"예."

매향이 백의 오른 손목을 두 손가락으로 눌렀다.

사흘마다의 손이었다.

떨림은 그대로였다.

"이 손으로는 그 돈도 못 셌겠네."

"왼손으로 받았어요."

매향이 그 왼손을 한 번 보았다.

"왼손이 바빠지겠어."

백은 꾸러미를 침상 머리에 놓았다.

결산 목록은 세우지 않았다.

창호지 너머로 발소리 둘이 들렸다.

하나는 나졸의 디딤이었다.

하나는 저자의 디딤이었다.

같은 문 앞에 두 종류의 발이 있었다.

내일의 좌표는 과부가 가리킨 관아였다.

관아 거리의 담벼락은 방들이 겹쳐 붙어 두꺼웠다.

맨 위층에 새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관의 붓이었다.

서(西) 자가 반듯했다.

문(門) 자의 문짝이 기울지 않았다.

백(柏) 자의 나무가 흔들리지 않았다.

제 왼손의 획과 다른 획으로 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어딘가에 다섯 달 전의 여덟 자가 묻혀 있었다.

같은 담에 두 번 적힌 이름이었다.

접수방의 서리가 접수철을 폈다.

"피의자 서문백 씨. 청람관 내원 명의의 고발장이 어제 접수됐어요. 열람은 되고요. 소지는 안 됩니다."

"열람하겠습니다."

"열람 뒤에 수결을 남기세요."

백은 붓을 보았다.

"왼손이에요."

"접수철의 필적과 대조해요. 왼손이면 왼손이고요."

종이가 상 위에 놓였다.

죄목이 셋이었다.

침입, 절취, 관인에 대한 무력 행사.

연명은 내원 사범들의 이름이었다.

피해자 칸에 세 글자가 앉아 있었다.

담기원.

문 안으로 사라진 말이 기재의 형식으로 돌아왔다.

내용은 여전히 셈 밖이었다.

"대질은 따로 잡혀요. 통지하지요."

백이 물었다.

"피해자 칸의 말은 기재에 있습니까."

"문 안의 말은 기재가 아니에요. 대질에서 기재되고요."

"예."

백은 소매 안의 꾸러미를 상 위에 올렸다.

"여쭐 것이 둘입니다. 유족이 관아를 거쳐 오라 했습니다. 관을 거쳐 갚을 수 있습니까."

서리의 손이 꾸러미로 가지 않았다.

"판정 전에는 피의자의 지급을 받지 않습니다. 적지도 않아요."

백이 한 번 더 물었다.

"맡길 수는 있습니까."

"기재 없는 물건은 물건입니다. 맡기셔도 갚음이 아닙니다. 배상은 판정 문면으로만 섭니다. 등재된 유족이 수령인 칸에 오르고, 그 칸으로만 갑니다."

한 박자 공백이 왔다.

칸이 없었다.

관아를 거쳐 오라는 말을 관에 맡기라는 뜻으로 읽었다.

관은 판정의 문면으로만 받는다.

관아를 거친다는 것은 판정을 거친다는 뜻이었다.

갚음이 판정 뒤의 것이 되었다.

유족의 문과 관의 상이 같은 날 닫혔다.

백은 꾸러미를 도로 소매에 넣었다.

물음을 더 놓지 않았다.

"거처가 바뀌었습니까."

"약당이에요."

붓 소리가 났다.

거처 기재였다.

나졸의 좌표가 바뀌는 소리였다.

서리가 거처 기재를 이르러 대문 쪽으로 나갔고 백도 문전으로 나섰다.

관아 거리 쪽에서 사람 하나가 대문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왼 손목에 무명 팔찌가 감겨 있었다.

오른손에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발이 먼저 읽혔고 손이 그다음이었다.

얼굴은 마지막이었다.

은가락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백의 왼손 소매에 한 번 머물렀다 떠났다.

소매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 채였다.

서리가 절차대로 물었다.

"피의자가 신청한 증인이신가요."

백이 답했다.

"제가 청한 것이 아닙니다."

은가락이 접힌 종이를 폈다.

반쪽이었다.

표국의 결이 남은 종이였다.

짐표(鏢票)의 반쪽이었다.

"은진서(殷振瑞)의 딸입니다. 유족 당사자로 등재를 신청합니다. 증빙은 아버지의 마지막 표행 짐표 반쪽입니다."

서리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짐표는 접수철에 붙여요."

"수령증을 주세요."

"드리지요."

서리가 접수철의 칸을 짚었다.

"고발인 칸인가요, 당사자 칸인가요."

"당사자 칸이에요."

서리가 붓을 들었다.

"본인 서명이에요. 열람의 날은 따로 정하고요. 판정 뒤 수령인 칸에 오릅니다."

"예."

은가락이 접수철에서 눈을 들었다.

"열람은 언제예요."

"통지해 드려요."

물목의 어휘였다.

신청, 등재, 당사자.

상가의 딸이 계약서를 읽는 어순이었다.

"방에는 매도라 적혔고, 결승에서 제가 들은 것은 변경이었습니다. 두 문면이 어긋납니다. 어느 쪽이 기재입니까."

"기재는 여덟 자입니다. 다른 문장은 판정이 적어요."

은가락은 그 답을 그대로 받았다.

"그러면 등재된 유족은 읽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읽을 수 있어요. 날은 따로고요."

"예."

서리가 접수철을 펴 들었다.

그녀가 백을 보았다.

기재된 이름으로 한 번 불렀다.

"서문백 씨."

"예."

그 이름으로 불린 것은 처음이었다.

"청하지 않으신 것은 압니다. 제가 적는 것입니다."

"…예."

그녀의 시선이 접수철로 돌아갔다.

"안에서 읽겠습니다."

"예."

세 문장이었다.

용서도 고발도 그 안에 없었다.

대조의 형식이었다.

검시 기재 두 줄을 말해 줄 수 있었다.

말하면 그녀가 제 눈으로 읽겠다는 형식을 그의 입이 앞질러 밟는다.

말리는 것도 청하는 것이고 미리 말하는 것도 청하는 것이었다.

응낙 없는 도움은 갚음이 아니다.

백은 물러섰다.

그녀는 문 안으로 들었다.

그는 문 밖으로 났다.

접수철에 이름이 셋이었다.

피의자 서문백.

피해자 담기원.

유족 은가락.

같은 종이 안에 이름 하나가 제 발로 들어왔다.

관아 거리의 담벼락 맨 위층에 관의 붓으로 적힌 제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왼손 소매 안에는 관을 거쳐 갈 돈이 있었다.

갚을 길은 둘 다 닫혔다.

다섯 걸음 뒤에는 그림자 하나뿐이었다.

나졸은 피의자만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