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23년 오월 상순.
물지게의 아침이었다.
버들골에서 돌아온 뒤 열흘 남짓은 잔잔하게 지나갔다.
물 당번은 버들골에 다녀온 뒤로도 닭 울기 전마다 채워졌다.
내원 지도 없는 외원의 일과가 그대로 이어졌다.
어깨의 멜대 자리는 굳은살로 내려앉아 있었다.
서문백(西門柏)은 낮춘 몸의 하루를 지켰다.
조사를 결백으로 지나온 별난 신입이라는 말만이 아직 담 안을 돌고 있었다.
잔열은 기다리면 식는다.
백의 셈은 그랬다.
여숭(呂嵩)이라는 물음표는 머릿속 장부의 차변에 오른 그대로였다.
캐되 단정하지 않는다.
다음 캘 창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걸음이었다.
우물가의 줄이 갈라진 것은 물지게를 두 번째로 채울 때였다.
내원(內院)의 서리 하나가 인파를 가르고 곧장 백에게로 왔다.
사무의 심부름 걸음이 아니었다.
등이 곧고 걸음에 격이 실려 있었다.
서리가 종이 한 장을 펴 들고 소리를 세웠다.
"부관주(副館主)의 부름이다. 외원 한백(韓柏), 내일 진시(辰時), 집무 서재로 들라."
서리는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종이를 내밀고 한마디만 얹었다.
"전갈은 답을 받지 않는다. 기한에 못 선 이름만 기재로 남는다."
종이가 백의 손에 넘어왔다.
지질부터 달랐다.
지명 대련의 초청장보다 결이 곱고 인주가 깊이 눌려 있었다.
한백 두 자가 먹 깊게 앉아 있었다.
물릴 수 있는 종이가 아니었다.
우물가의 수군거림이 낮게 번졌다.
앞줄의 생도가 목소리를 눌렀다.
"부관주의 부름이라. 별난 신입이 이제 위에까지 별났구먼."
곁의 동기가 받았다.
"물린 지명도 내원이 오래 기억한다는데, 부름을 물린 이름이 어찌 되는지는 들어 본 적도 없네."
뒷줄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낮췄다.
"부관주가 외원 사람을 서재로 부르는 건 재목을 고를 때뿐이라더라."
앞줄의 생도가 되물었다.
"고르면 어찌 되는데."
뒷줄의 목소리가 받았다.
"후원이지. 내원 사범 지도는 후원자 지명이 있어야 열리는 문이라던가."
곁의 동기가 혀를 찼다.
"말석 물지게가 서재 손님이라. 고발한 쪽만 두 번 우스워졌구먼."
백은 전갈을 두 번 접어 품에 넣었다.
셈은 짧았다.
부름은 물릴 수 없다.
남는 물음은 하나였다.
함정인가, 창인가.
부관주의 서재는 관 상층의 기록에 가장 가까운 방이었다.
여숭이라는 물음표를 쥔 셈에게는 값을 치르고도 살 자리였다.
백은 셈을 열어 둔 채 들어가기로 했다.
품 안 낱장 묶음의 무게를 손끝으로 한 번 확인했다.
이튿날 진시, 내원 담 안의 길은 지명 대련의 아침과 초입까지만 겹쳤다.
연무장을 지나 더 깊은 안쪽이었다.
집무 서재의 문 앞에서 백은 호흡을 한 번 골랐다.
문은 안에서 열렸다.
담기원(譚沂源)이 문설주 앞에 서 있었다.
접수의 새벽에 지원서 종이를 손끝으로 쓸어 보던 사람이었다.
"한백 군이군. 어서 들게. 차가 식기 전에 왔네."
서재는 넓지 않았다.
서가 두 벽에 관 기록의 등이 높이순으로 꽂혀 있었다.
문은 하나였다.
창은 앞뜰 쪽으로 하나였다.
문 안쪽에 문단속의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하인의 손을 타지 않는 방이라는 뜻이었다.
출입구부터 읽는 눈을 백은 반 호흡 만에 접었다.
차는 먼저 우려져 있었다.
김이 낮게 올랐다.
손님이 앉기 전에 박자가 정해진 방이었다.
책상 위에는 종이 석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접수의 기재가 맨 위였다.
두 판정의 기재와 조사 종결의 방문이 아래로 이어졌다.
사람보다 종이가 먼저 와 앉은 자리였다.
담기원이 찻잔을 백 앞으로 밀었다.
"조사는 고생했네. 기재대로 닫힌 일을 두 번 말할 것은 없지. 남는 것은 사람일세. 나는 종이 뒤의 사람이 궁금해서 불렀네. 차부터 들게. 이야기는 차보다 늦어도 되네."
백은 찻잔을 받되 늦게 들었다.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부관주님."
담기원이 근황부터 물었다.
"닭 울기 전 물 당번이라지. 일과가 고되지는 않은가."
"일과대로 지냅니다."
담기원이 낮게 웃었다.
"대답이 기재 같군. 종이는 말이 많은데 사람이 과묵하니 균형은 맞는 셈이지."
담기원의 손끝이 책상 위 종이를 한 번 쓸었다.
"필사 일손으로 밤 서고를 열었다지. 눈이 있는 손이라는 말일세. 마침 눈 셈이 필요한 종이가 하나 있네."
서안 곁의 두툼한 장부가 상 위로 옮겨 왔다.
"부속 대장간의 물목 장부일세. 해마다 결산이 맞아떨어지는데 올해만 이월이 어긋난다더군. 어디가 어긋났는지 짚어 보겠나. 급할 것 없네. 차 한 잔의 셈일세."
셈은 이미 서 있었다.
모르쇠는 조사 기재와 어긋나는 거짓이 된다.
전부 보이면 손이 내력을 말한다.
어긋난 셈 하나까지가 관에 적힌 눈의 범위였다.
반만 보이는 것이 오늘의 값이었다.
백은 장부를 당겨 첫 장을 넘겼다.
"두꺼운 장부입니다."
"두꺼울 수밖에. 대장간이 관 안에서 제일 바쁜 자리라서 말일세. 해마다 개방비무(開放比武)가 끝나면 저자 상단이 물량을 걷어 가네. 각인 그대로 수십 자루씩 나가는 관례가 스무 해를 넘었지. 연습검 반, 시전검 반일세. 장부가 이 두께인 것도 그 탓이야."
"물목이 많으면 어긋남도 함께 늡니다. 끝 어림의 합계부터 거슬러 보겠습니다."
장부는 스무 해치 결산의 묶음이었다.
숯과 철의 들임, 벼림과 손질, 낙인과 물림이 세로줄로 내려갔다.
표국의 물목 장부와 같은 문법이었다.
백의 눈이 줄을 따라 내려갔다.
일괄 판매의 줄은 말 그대로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었다.
사양 줄에는 등급과 치수와 낙인 자리가 물목마다 잇달아 적혔다.
저자 판매분은 낙인을 코등이 바깥에 친다는 줄도 그 사이에 있었다.
눈은 어긋난 이월을 찾아 다음 장으로 내려갔다.
각인은 흔했다.
흔한 정도가 아니라 흔함의 바다였다.
각인 그대로의 검이 수십 자루씩 스무 해면 저자에 깔린 셈이었다.
부러진 검자루의 각인이 홀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었다.
조각의 값을 부풀리지 않는 것이 장부의 규율이었다.
백은 머릿속 장부에서 줄 하나를 내렸다.
얻으러 온 자리에서 먼저 잃은 줄이었다.
찾는 어긋남은 끝 어림에 있었다.
백은 장부를 돌려놓고 한 줄을 짚었다.
"올해 첫 장의 이월 숫자가 지난해 끝 장의 합계와 다릅니다. 철 들임 두 줄이 지난해 끝에 겹쳐 적혔습니다. 어긋남은 올해가 아니라 지난해에 있습니다."
담기원의 시선이 종이에서 백의 손끝으로 옮겨 왔다.
"서리 둘이 이틀을 못 찾은 줄일세. 눈이 밝군. 어찌 찾았나."
백은 손끝을 장부에서 거뒀다.
"끝 어림의 합계부터 거슬러 짚었습니다. 필사는 눈으로 하는 일이라 어긋난 먹은 눈에 남습니다."
"필사는 눈으로 하는 일이라. 서고지기가 들으면 서운해할 소리를 참 담담하게 하는군."
찻잔이 백 쪽으로 반 치 더 밀렸다.
덕담의 온도는 그대로였다.
"지난 지명 대련의 판정 기재도 읽었네. 패 한 자 뒤에 여덟 줄이 내려간 판이었지. 그 판 이야기는 오늘 입으로 하지 않겠네. 눈으로 볼 참이라서 말일세."
"판정대로 적힌 판입니다."
"기재 같은 대답도 여전하고."
장부가 덮였다.
물음 하나가 덕담의 온도로 얹혔다.
"필사만으로 트이는 눈은 아닐 텐데. 사문이 어딘가."
백은 반 박자 늦게 답했다.
"떠돌이 검객 밑에서 삼 년 배웠습니다. 함자는 모릅니다."
"접수 기재 그대로군. 함자도 모르는 스승이 눈 하나는 제대로 길렀어. 세상에는 그런 스승도 있는 법이지."
담기원은 더 파지 않았다.
종이를 쓸어 보는 손끝이 접수 기재 위를 한 번 지나갔다.
반쯤만 보인 눈에도 값은 적혔다.
눈을 보인 만큼 정체의 담이 얇아진 셈이었다.
백은 그 값을 안쪽 장부에 계상했다.
담기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은 보았네. 이제 손을 보고 싶군. 마침 소하가 와 있을 시각일세. 앞뜰로 나가세."
앞뜰은 서재보다 넓었다.
다져진 바닥에 흰 금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시렁에 목검 두 자루가 걸려 있었다.
진소하(陳素河)가 금 곁에 서 있다가 예를 갖췄다.
"사부님."
"소하야. 손님하고 세 합만 맞춰 주게."
담기원이 백에게로 몸을 돌렸다.
명은 이번에도 부탁의 문형으로 왔다.
"시연일세. 이기고 지는 판이 아니야. 받아넘기기면 족하네. 셋째 합에서는 멈추게. 오늘은 눈이 아니라 손을 보는 자리일세."
진소하가 고개를 숙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맹세의 상한은 세 합이었다.
요청의 상한도 셋이었다.
두 상한이 한 자리에 겹쳤다.
어기는 것 없이 닫을 수 있는 판이었다.
백은 시렁의 목검을 받아 들었다.
나무 결이 손에 익은 무게로 앉았다.
진소하가 검파를 두 번 고쳐 쥐었다.
시선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한백 씨. 시연이어도 저는 실전으로 놓겠습니다."
"예. 받겠습니다."
첫 합이 어깨선으로 들어왔다.
백은 검면으로 받아 밖으로 흘렸다.
둘째 합이 손목을 노렸다.
반 보 물러나 각을 죽였다.
셋째 합이 정면으로 떨어졌다.
백은 받아 세웠다.
목검이 흰 금 위에서 멎었다.
발끝도 함께 멎었다.
정적이 반 호흡 이어졌다.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손끝은 조용했다.
합수는 셋에서 닫혔다.
진소하가 목검을 내렸다.
시선이 백의 손에 오래 머물렀다가 사부에게로 돌아갔다.
담기원이 먼저 물었다.
"어찌 보았느냐."
"사부님. 관찰 하나만 올리겠습니다."
담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게."
"멈추라 하셔서 멈춘 손이 아니었습니다. 멈추기로 되어 있던 손이었습니다."
말은 거기서 끝났다.
물음도 단정도 얹히지 않았다.
저울에 추 하나가 더 앉는 소리를 백은 들은 듯했다.
담기원이 낮게 웃었다.
"지지 않을 판을 질 줄 아는 손일세. 어긋난 셈을 짚는 눈이고. 오래 잴 것 없네. 후원장을 쓰겠네. 재목이 담 밖에서 크게 두는 것은 관의 손해라서 말일세."
진소하가 백에게로 몸을 돌렸다.
"다음 비무의 약정은 그대로입니다, 한백 씨."
"예. 그대로입니다."
진소하가 예를 남기고 물러났다.
물러나는 발끝이 반 박자 늦었다.
서재로 돌아온 상 위에 새 종이가 펼쳐졌다.
후원장(後援狀)이었다.
먹이 갈리고 붓이 놓였다.
담기원이 조항을 소리 내어 읽었다.
"하나, 후원자는 지도와 물자를 댄다. 하나, 생도는 때와 까닭을 묻지 않는 부름에 세 번 응한다. 하나, 파기는 후원자만 할 수 있다."
낭독이 끝난 종이 위를 손끝이 다시 쓸었다.
접수의 새벽과 같은 버릇이었다.
"내원 후보 명부에 이름을 올리겠네. 사범 지도의 문도 열릴 걸세. 지명은 승급이 아닐세. 자격일세. 서열비의 줄은 그대로일세. 줄은 자네가 비무로 올리게. 문은 내가 열어 주는 것이고."
백은 조항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다시 읽었다.
장부를 읽는 순서였다.
셋째 조항 앞에서 한 호흡이 멎었다.
"셋째 조항 말씀입니다. 생도 쪽에는 파기가 없습니까."
"없네. 후원은 무르는 쪽이 값을 무는 법이라 그리 적네. 무겁게 읽었다면 바로 읽은 걸세."
백은 종이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한 호흡만 셈하겠습니다."
"셈하고 앉는 수결이 오래가는 법이지. 천천히 하게. 나는 셈 없이 수결하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네."
파기의 손잡이는 저쪽에만 있었다.
액수 없는 차용증이었다.
'값을 모르는 빚이 가장 비싸다.'
값을 모르는 채무를 장부 규율은 금했다.
다만 진실이 내원 담 안에 있었다.
알고 무는 청구서였다.
백은 붓을 들었다.
"셈을 마쳤습니다. 수결하겠습니다."
수결은 한 번에 내려갔다.
사각.
한백 두 자가 조항 아래 앉았다.
먹이 마르기도 전에 셈은 값의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담기원이 종이를 거두었다.
닫는 말도 부탁의 문형이었다.
"보름 안에 내원 연무장으로 오게. 첫 지도는 내가 보겠네. 재목이 크는 것을 보는 일이 이 자리의 몇 안 되는 낙일세."
"가르침 받겠습니다, 부관주님."
담기원이 찻잔을 새로 채웠다.
배웅의 말도 온기의 문형이었다.
"가서 쉬게. 내원의 아침은 외원보다 이르니."
해가 기울기 전에 백은 약당(藥堂) 문턱을 넘었다.
보름의 기한은 사흘이 남아 있었다.
기한 전의 걸음이었다.
쑥과 당귀 달이는 냄새가 문 앞까지 깔려 있었다.
매향(梅香)이 썰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턱짓했다.
"기한도 안 됐는데 웬 걸음이냐. 앉아. 팔부터."
백은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밀었다.
손끝이 맥 위에 앉았다가 떨어졌다.
"맥은 곧다. 떨림도 없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
"알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부관주의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수결했습니다. 소문보다 제 입이 먼저여야 해서 왔습니다."
써는 소리가 멎었다.
"후원이라니. 뉘 밑에 드는 게냐."
"부관주 담기원입니다. 내원 후보 명부에 오르고 사범 지도를 받게 됩니다."
칼이 도마 위에 놓였다.
"관 높은 사람의 밑이라. 공으로 오는 후원이더냐. 세상에 공짜 온기가 어디 있어."
"부름 세 번에 응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때와 까닭은 묻지 않는 조항입니다."
매향의 눈이 손에서 얼굴로 올라왔다.
"맹세 위에 맹세를 얹었구나. 몸은 하나인데."
"압니다."
"아는 놈이 거기다 수결을 해."
"사범 지도가 열리는 문이 그 종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내원 지도가 뭔지는 아느냐. 내원 검이 어떤 검인지도 모르고 드는 게야. 세 합 담장이 날마다 시험대에 오른다는 소리다."
"지도는 받되 세 합 안에서 받습니다. 담장 안 목검도 그대로입니다."
칼끝이 도마를 한 번 두드렸다.
"말은 늘 반듯하지. 그 반듯한 말을 몸이 못 따라가는 날이 온다. 목검, 세 합, 보름. 하나라도 어기면 그날로 약은 끊는다."
"목검과 세 합과 보름은 그대로입니다. 어기지 않습니다."
혀 차는 소리가 났다.
손은 약재 위로 돌아갔다.
"어기지 않는다는 놈이 어째 자꾸 어길 자리로만 올라가느냐."
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낮췄다.
문을 나설 때 등 뒤로 한마디가 따라왔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녀라. 요즘은 약당 문 앞에도 눈이 늘었다. 후원받는 생도 낯을 알아보는 눈도 곧 생길 게야."
숙사의 밤, 백은 어둠 속에서 머릿속 장부를 폈다.
얻은 것 세 줄.
후원장의 성립, 내원 후보 명부의 이름, 사범 지도의 자격.
적힌 값 세 줄.
때와 까닭을 묻지 않는 부름 세 번, 파기의 비대칭 하나, 커진 이름 하나.
두 목록은 길이가 같았다.
부러진 검자루의 줄을 한 번 더 짚었다.
값이 다한 조각으로 적었다.
지운 것이 아니었다.
실물은 담 밖 그 손에 그대로 있었다.
수사의 장부는 한 줄 가난해졌다.
셈은 한 줄만큼 맑아졌다.
여숭이라는 물음표는 기울음인 채 그대로였다.
확정이 아니었다.
부관주의 서재가 관 상층의 기록에 가장 가까운 방이라는 사실만 오늘 눈으로 확인되었다.
다음 캘 창은 그 어림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캐되 단정하지 않는다.
갚는 걸음의 다음 좌표도 골랐다.
표국 곁마잡이 노(盧) 노인, 밀린 삯 여덟 전, 성안 서시(西市) 어귀.
오랜 줄부터였다.
갚는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금박은 오늘 세 겹 앉았다.
금박마다 밑에는 청구서가 깔려 있었다.
후원의 온기가 두터울수록 셈은 낮게 술렁였다.
언제, 무엇으로, 세 번.
적히지 않은 세 칸이 장부 맨 앞 줄을 차지했다.
시연의 세 합은 맹세의 상한 안에서 닫혔다.
내일부터는 내원 연무장이 같은 상한을 날마다 저울에 올릴 참이었다.
두 맹세를 한 몸에 얹은 밤이었다.
잠은 늦게 왔다.
내원 지도의 첫 아침이 담 안에서 밝아 올 참이었다.
같은 새벽빛이 담 밖 약당 지붕에도 앉을 참이었다.
두 자리가 함께 밝아 온다는 셈이 오늘 장부의 마지막 줄이었다.
백은 그 줄을 적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