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23년 칠월 하순이었다.
제적에서 열흘 남짓이 지나 있었다.
대질(對質) 고지는 사저와 청람관에 함께 갔고 약당 뒷칸의 외상은 그대로였으며 나졸(邏卒)은 그 문 앞에 그대로 있었다.
은가락(殷家洛)에게서는 그동안 전갈이 없었다.
대질 심리청은 예심청보다 넓었다.
두 단이 마주 보고 있었다.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빈 바닥이 있었다.
기재 서리가 둘, 양쪽 끝에 앉아 붓을 같은 속도로 놀렸다.
방청은 없었다.
한쪽 단에 백이 섰다.
다른 쪽 단에 담기원(譚沂源)이 앉았다.
그 뒤로 내원 사범 둘.
벽 쪽 낮은 자리에 은가락이 있었다.
유족 당사자의 자리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빈 바닥의 폭은 세 걸음쯤이었다.
문서가 놓이면 그 위에 놓일 자리였고 아직은 아무것도 없었다.
표사의 눈은 빈자리를 먼저 잰다.
세 걸음이면 목검으로도 닿지 않는 거리였다.
관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닿지 못할 만큼만 방을 벌려 놓았다.
"어사 신경윤(申敬允)입니다. 오늘은 대질이에요."
어사의 목소리는 지난번과 같은 높이였다.
낮추지도 올리지도 않는 높이였다.
"자리를 기재할게요. 피의자이자 증인 서문백. 피해자 칸 담기원. 유족 당사자 은가락. 기재 서리 둘."
붓 소리가 났다.
사각.
백은 제 이름이 두 칸에 함께 적히는 것을 보았다.
피의자와 증인.
순서는 그가 서명으로 골랐다.
"부관주께 먼저 묻지요. 청람관 시험 기록의 정정에 대해 진술하시겠어요."
담기원이 무릎 위의 손을 폈다.
종이를 쓸어 보는 손끝이었다.
결승 무대에서 만인이 본 그 손이었다.
"진술하지요."
목소리가 낮았다.
낮아지는 것이 그의 신호라는 것을 백은 배워서 알았다.
"기록을 손질한 것은 저입니다. 시험 기록의 몇 줄을 관을 위해 고쳤어요. 관의 재목을 남기는 일이라고 여겼고요. 그것이 제 죄면 제 죄로 적으십시오."
방이 조용했다.
부인이 오지 않았다.
백이 기다린 것은 부인이었다.
부인이 오지 않으면 반박할 자리가 없다.
"그리고 청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칼을 쥔 손을 데려오게. 그 손이 나를 가리키면 그때 내 이름을 적게."
호칭이 어사에게서 방 전체로 옮겨 갔다.
백에게는 자네였고 어사에게는 격식이었으며 이 문장만은 아무에게도 아니었다.
백은 그 수를 셈했다.
절반을 내어놓은 것이다.
붓의 죄를 제 손으로 적게 하고 칼의 죄와의 다리를 끊는 것이다.
'고백도 증거를 대신하지 못한다.'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갈라 놓은 것이었다.
"분리 심리를 청하시는 거지요."
"청합니다. 붓과 칼을 한 상에 올리면 둘 다 흐려지지요. 붓은 오늘 판정하시고, 칼은 그 손이 설 때 판정하시지요."
어사의 물음은 짧았다.
설명은 길고 물음은 짧은 것이 그의 문형이었다.
"정정의 범위를 말씀하세요. 몇 해의 몇 줄인가요."
"해와 줄은 원부가 알지요. 제가 세어 드릴 수는 없고요. 다만 제 붓이 지나간 자리는 제 붓이라 적으십시오."
"기재합니다. 부관주는 기록 정정을 자인했고, 학살의 명령에 대해서는 분리 심리를 청했습니다."
어사가 붓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규칙을 하나 놓습니다. 자인한 죄는 먼저 판정해요. 자인의 순서가 판정의 순서입니다."
"예."
어사의 눈이 이쪽 단으로 왔다.
"서문백 씨. 그대는 예심에서 셋을 자인했지요. 무단 노정 변경, 침입, 절취. 그 셋도 같은 심판대에 오릅니다."
"제 판정도 오늘 나오나요."
"오늘은 아니에요. 순서만 정하지요. 자인이 먼저 선 자리가 판정도 먼저 섭니다."
백은 그 말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그가 소환장에 제 이름을 적던 아침에 이미 골라 놓은 순서였다.
항의할 자리가 없었다.
"압니다."
"이의 있나요."
"없어요."
서리 하나가 접수철 쪽으로 손을 뻗었다.
어사가 그 손을 멈추지 않았다.
"기재된 자인을 읽으세요. 유족 당사자가 이 방에 있어요."
서리가 접수철을 폈다.
백은 그 종이가 어느 장인지 알았다.
왼손으로 이름을 적던 날의 종이였다.
"피의자 진술. 허가 없이 노정을 고쳤다. 제 몸의 약 때문이었다. 표행에 병자는 저 하나였다. 고친 길이 더 좁고 외진 길이었다. 팔지 않았음은 증명할 수 없다."
낭독이 끝났다.
벽 쪽 낮은 자리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백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제 몸의 약이라는 다섯 자가 방을 건너가 그녀가 앉은 자리에 닿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았다.
"진술에 정정할 것이 있나요."
"없습니다."
내원 사범 하나가 일어섰다.
맞고발의 차례였다.
"침입과 절취는 피의자가 자인했어요. 남은 것은 관인에 대한 무력 행사고요. 증인을 세우겠습니다."
"세우세요."
문이 열리고 둘이 들어왔다.
백의 눈은 발부터 보았다.
무게가 발바닥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어사부 문전에서 본 디딤이었고 사저 문전에서 본 디딤이었다.
앞선 자가 증인석에 섰다.
소매는 늘 그렇듯 한 겹 접혀 있었다.
사저의 옷차림이었다.
백은 그것을 적어 두지 않았다.
"부관주 사저의 호위시지요. 그 밤 마당에 있었나요."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방에 섰다.
백의 등이 굳었다.
축제의 밤, 담을 넘어 마당으로 내려선 발밑에서 올라오던 소리가 그 높이였다.
어사는 서리 쪽을 보지 않고 다음을 놓았다.
"무엇을 보았어요."
"그림자를 봤어요. 누구냐고 소리쳤고요."
"얼굴은."
증인의 답이 반 박자 빨랐다.
"못 봤습니다."
증인석의 손이 무릎 위에 있었다.
왼팔은 몸 옆에 붙어 있었고 소매는 접힌 채였다.
백의 눈은 손이 아니라 발에 머물렀다.
"몇 합이었어요."
"다섯이요."
서리의 붓이 다섯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상한 사람이 있었나요."
"없습니다. 날은 뽑지 않았어요."
같은 문면이었다.
백이 예심에서 놓은 다섯 합과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았다.
"검을 잃었나요."
"칼집째 빼앗겼어요. 뒤에 되찾았고요."
짧았다.
물음이 길어질수록 답이 더 짧아졌다.
백은 그 문답을 제 진술과 나란히 놓았다.
어긋난 줄이 없었다.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의 소득이었다.
그런데 발이 하나 남았다.
증인석으로 걸어 나오던 디딤.
축제 밤 마당의 디딤과 같았고 그것은 사저 호위이니 당연했다.
당연한데도 한 겹이 더 있었다.
어디서 본 것인지 짚이지 않았다.
표사의 눈이 발을 읽고 자리를 찾다가 놓쳤다.
백은 그것을 안쪽 장부에 적었다.
자리 없는 줄로.
말할 수는 없었다.
조각이 아니면 지목할 수 없다.
그리고 쌍절(雙截)은 내원 전수 한정이니, 사저의 호위는 명부 밖이고 명부 밖은 그의 목록 밖이었다.
공리가 그 발을 덮었다.
"검험을 청할 수 있나요."
내원 사범이 아니라 백이 물었다.
어사가 처음으로 그를 정면으로 보았다.
"누구의 몸에 대해서인가요."
"증인의 몸이에요."
"신체 검증은 관의 기재에 오른 자에게만 명해요. 사저의 호위는 관의 명부에 없고요. 어떤 기재에도 없는 손은 검증의 명을 받지 않아요."
백은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기재에 없는 손.
관이 보지 못하는 손.
"그러면 관의 기재에 올릴 방법은 있나요."
"관이 그 사람을 기재에 올리면 있어요. 그 기재는 청람관이 내고요. 어사부가 만들지 않아요."
담기원은 그 대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백은 그것도 셈에 넣었다.
기재에 오르지 않는 손이 방 안에 서 있어도 관은 그 손을 볼 수 없다 — 그 규칙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저 단 위에 앉아 있었다.
"기재합니다. 맞고발 셋 가운데 침입과 절취는 피의자의 자인으로, 관인에 대한 무력 행사는 증인의 진술로 갈립니다. 상한 사람은 없고 날은 뽑히지 않았어요."
붓이 그것을 적었다.
사범이 앉았다.
호위 둘은 벽 쪽으로 물러섰고 앞선 자의 왼팔은 내내 몸 옆에 붙어 있었다.
"청람관이 제출한 명부를 열어요."
서리가 봉인을 뜯었다.
부관주 직인의 붉은 자국이 반으로 갈라졌다.
백은 그 소리를 들었다.
열흘 동안 봉인 안에 있던 이름들이었다.
명부는 두 장이었다.
내원 전수의 기재.
이름 아래마다 직명이 붙어 있었다.
종이의 결은 관의 것이었고 붓은 한 사람의 것이었다.
한 번에 옮겨 적은 명부였다.
"이 명부는 언제 적혔어요."
"어사부의 명을 받고 옮겨 적었어요. 원부는 관에 있고요."
백의 눈이 종이의 아래쪽으로 갔다.
대조 기재의 자리였다.
"원부와 대조하셨나요."
"대조는 제출자의 몫이 아니라 관의 몫이에요. 청람관이 대조 기재를 붙여 왔고요."
"대력 22년 섣달 이전에 쌍절 전수가 기재된 이름을 읽으세요."
서리가 읽었다.
이름이 여럿이었다.
백은 세지 않았다.
그가 기다린 것은 다음 줄이었다.
"그 달 관 대장간 물목과 대조해요. 쌍절용 검 수령 기재."
백이 품에서 왼손 사본을 꺼내 상 위에 폈다.
네 줄이었다.
관 서리의 사본이 그 옆에 놓였고 두 사본이 원부와 맞았다.
"섣달 초이레, 쌍절용 검 셋. 수령은 오상진(吳尙進), 최연(崔淵), 반호(潘浩)."
두 목록이 겹쳤다.
명부 안에 있고 그 달 그 검을 받은 이름은 셋이었다.
백의 장부 눈에는 그것이 너무 쉽게 맞아떨어졌다.
다섯 달을 불탄 종이로 세운 셈이 오늘은 두 줄로 끝났다.
장부를 오래 읽은 손은 안다.
맞아떨어지는 셈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맞는 셈과, 맞도록 적힌 셈이다.
백은 그 생각을 오래 두지 않았다.
오늘은 목록이 있었고 목록은 이름을 주었다.
"셋으로 좁혀지네요. 기재하십시오."
넷째 줄은 목록의 일부로 지나갔다.
사저 호위 병장기 하나.
아무도 짚지 않았고 백도 짚지 않았다.
목록이었다.
어사가 사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명부 밖에 전수가 있나요."
"없습니다. 청람관의 전수는 명부가 전부예요."
"기재합니다."
부인이 기재되었다.
백의 안쪽에서 셈이 하나 돌았다.
목록이 전부라면, 그 검을 쥘 수 있는 손은 목록 안에 있다.
목록 밖에서 그 검을 쥘 수 있는 사람은 목록을 만든 사람뿐이다.
그 생각은 문장이 되지 못하고 안쪽에 남았다.
담기원은 무릎 위의 손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상흔 없는 손이었다.
벽 쪽 낮은 자리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났다.
"등재된 유족은 열람의 날을 따로 정한다고 들었어요. 오늘 읽은 것도 그 열람에 드나요."
"오늘 읽힌 것은 대질의 기재예요. 유족의 열람은 문서가 다 모인 뒤에 따로 잡습니다. 그날은 통지해 드려요."
그녀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백은 그 각도를 알았다.
물목을 받아 적을 때의 각도였다.
"알겠어요."
"검로의 재현을 명해요."
어사가 일어섰다.
"나는 검로를 판별하지 못해요. 판별이 필요한 자리에는 다른 눈을 부른다고 했지요. 오늘 그 자리예요. 이 재현은 무력 행사가 아니라 증거 제출로 기재합니다. 응낙 없이는 서지 않아요."
방이 마당으로 옮겨 갔다.
백토를 깔지 않은 흙바닥이었다.
판이 아니라 검증이라는 표시였다.
관 목검 두 자루가 물목대로 기재되어 나왔다 — 길이와 무게가 적히고 판이 닫히면 그대로 반납된다.
담 그늘에 나졸이 섰고 서리 하나가 붓을 든 채 흙바닥 가장자리에 앉았다.
방청은 여기서도 없었다.
"유족 당사자에게 묻지요. 부친의 검로를 재현하실 수 있나요."
은가락이 일어섰다.
왼 손목의 무명 팔찌가 소매 아래에서 보였다.
"할 수 있어요."
"응낙으로 기재해요."
그녀가 목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멈추고 한 줄을 더 놓았다.
"오늘 한 번이에요. 그 조건이면 하겠어요."
"조건도 기재하지요."
진소하(陳素河)가 마당 반대편에 섰다.
근신은 아직 그녀의 이름에 붙지 않았고 첫 낙인만 붙어 있었다.
그녀가 목검을 들고 초식명을 밝혔다.
"청람검결(靑嵐劍訣) 삼형(三形), 쌍절이에요."
백은 흙바닥 밖에 섰다.
어느 이름의 무적(武籍)도 없는 몸이었다.
관부 안에서 병장기를 지닐 수 없고 재현의 통로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손짓으로 자리를 놓았다.
"진 사형. 두 박자로 서 주세요. 그 밤의 검은 첫 박자를 위에서, 둘째를 반 박자 뒤에 아래로 놓았어요."
"압니다. 결승에서 그렇게 썼어요."
그녀가 목검의 무게를 손목으로 한 번 재었다.
"오늘은 이기려 쓰지 마세요. 그때 그 검이 어디에 닿았는지만 보이면 돼요."
"예."
백이 은가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받는 자리는 중동이에요. 그다음은 뒤뜰에서 보여 주신 그대로면 됩니다."
"압니다."
두 사람이 섰다.
진소하의 목검이 두 박자로 왔다.
위에서 한 번, 반 박자 뒤에 아래로 한 번.
그 간격은 백이 열여섯 달 전 형의 등에서 읽었고 결승의 셋째 합에서 눈에 새긴 간격이었다.
은가락의 목검이 중동에서 그것을 받았다.
받은 자리에서 그녀의 손목이 돌았다.
아버지가 뒷마당에서 가장 늦게 가르쳤다는 그 각도였다.
"거기서 멈추지 마세요. 그다음이 마지막 합이에요."
날 뿌리가 두 박자 사이로 들어갔다.
위의 박자가 지나가고 아래의 박자가 오기 전, 그 사이였다.
목검의 뿌리가 상대의 손을 지나갔다.
검을 쥔 손은 오른손이었다.
그러므로 뿌리가 지나간 자리는 반대쪽이었다.
"멎으세요."
어사가 말했다.
두 목검이 멎었다.
진소하의 왼손 등이 은가락의 목검 뿌리 아래에 있었다.
닿아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재하세요. 재현된 마지막 합에서 반격은 쌍절을 쥔 손의 왼손 등에 닿습니다."
담기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당으로 나오지 않고 문가에 선 채였다.
"자네가 부른 눈이 오늘 잘 보았네. 다음에는 그 눈이 무엇을 보는지 나도 보겠네."
백은 답하지 않았다.
담기원은 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언성은 오늘도 오르지 않았다.
붓이 그것을 적었다.
백은 그 문장이 종이에 앉는 것을 들었다.
다섯 달 동안 물음표였던 두 줄이 자리를 얻었다.
이름은 얻지 못했다.
자리만 얻었다.
"이름은 기재 셋이 서기 전에는 받지 않습니다. 서면, 검험, 진술. 오늘은 하나예요."
진소하가 목검을 내렸다.
마당의 흙이 발밑에서 조금 일었다.
말은 없었다.
백이 본 것은 오른손이 왼손 등을 한 번 덮었다가 내려간 동작 하나였다.
사문의 검이 어디에 닿는지를 몸이 먼저 안 자리였다.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값은 방으로 돌아오기 전에 왔다.
내원 사범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진 사제. 사문의 검을 어사 앞에서 살인의 형태로 세웠네. 사문 근신이네. 오늘부터 기재로 붙네."
"예."
백이 한 걸음 나섰다.
근신의 종이는 이미 그녀의 이름 아래 붙은 뒤였다.
"진 사형."
"말리지 마세요. 지난번에도 그랬잖아요."
"말리지 않을게요. 값은 제 쪽에 적어 두겠습니다."
그녀의 눈이 잠깐 목검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은가락에게 배운 문형이 그녀의 입에서도 나왔다.
"제 장부는 제 것이에요."
항의는 없었다.
그녀는 관 목검을 서리에게 반납하고 물러섰다.
낙인 하나에 근신 하나가 얹혔다.
백이 오늘 얻은 것은 조각 둘이었고 그 값은 그의 장부에 적히지 않았다.
은가락이 흙을 털지 않은 채 다가왔다.
팔찌에 먼지가 앉아 있었다.
목검을 쥐었던 손이 아직 반쯤 펴진 채였다.
그녀의 말은 짧아져 있었다.
아버지 화제 뒤의 짧아짐이었다.
"오늘 것은 끝났어요."
"예."
"이번 손은 빌려 드리지 않겠습니다."
대여의 어휘였다.
까닭은 붙지 않았고 백도 묻지 않았다.
유족의 자리에서 무엇을 들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예심의 진술이 오늘 대질에서 한 번 더 읽혔고 제 몸의 약이라는 다섯 자가 그 낮은 자리까지 갔다.
"예."
은가락이 먼저 문 쪽으로 갔다.
백은 뒤에 남았다.
마당에는 관 목검 두 자루가 그대로 있었고 서리가 물목대로 다시 적고 있었다.
담기원은 이미 방을 나간 뒤였다.
호위 둘도 함께 나갔고 앞선 자의 왼팔은 나갈 때도 몸 옆에 붙어 있었다.
문을 나서자 나졸이 다섯 걸음 뒤로 붙었다.
오늘 얻은 것을 안쪽 장부에 적었다.
자리 하나, 이름 셋, 그리고 자리 없는 발 하나.
값도 적었다.
근신 하나와 중단 하나 — 둘 다 남의 칸이었다.
빌린 손이 둘 다 멎었으니 다음에 갚을 자리에 설 손은 하나였고 그 손은 검을 쥐지 못했다.
순휴가 이틀 뒤였다.
서시(西市) 어귀에는 여덟 전이 다섯 달째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