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23년 오월 중순.
보름 약조의 해 질 녘이었다.
서재의 수결에서 열흘 남짓이 지나 있었다.
첫 내원(內院) 지도는 보름 기한 안에 한 번 치러졌다.
부관주 담기원(譚沂源)이 직접 보았고 합은 셋을 넘지 않았다.
물 당번은 닭 울기 전마다 채워졌다.
멜대 자리의 굳은살은 이제 결리지 않았다.
닷새 전에는 내원 후보 검증 비무의 지명 방문(榜文)이 붙었다.
후보 명부에 오른 이름을 내원이 검증 대련으로 청하는 관례였다.
지명은 물릴 수 없다.
당일에 서지 않은 이름은 기권으로 적힌다.
판은 내일 진시(辰時), 내원 연무장이었다.
서문백(西門柏)은 저잣거리의 저녁 길을 골랐다.
약당(藥堂) 문 앞에도 눈이 늘었다는 당부가 걸음의 박자를 반 박자 늦추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발이 멎었다.
저녁의 약당에는 있어야 할 소리가 있다.
작두로 약재 써는 소리.
달이는 김이 창호에 앉는 기척.
보름마다 와 온 몸이 아는 기준선이었다.
오늘은 끊겨 있었다.
문살의 그림자는 하나 많았다.
쑥과 당귀 냄새 위에 낯선 기름 냄새가 얹혀 있었다.
병장기를 손질하는 기름이었다.
문 앞에 낯선 셋이 서 있었다.
둘이 문짝을 밀고 있었다.
하나는 어귀 쪽을 등지고 망을 보았다.
저자 왈패의 발이 아니었다.
디딤이 고르고 병장기의 격이 달랐다.
삯을 받고 움직이는 발이었다.
소리를 지르면 순라가 오고 약당이 구설과 조사에 오른다.
물러나면 증인이 오늘 밤을 혼자 견딘다.
길목을 먼저 잡는 것이 호송의 문법이었다.
백은 소리 없이 다가가 문과 손들 사이에 몸을 세웠다.
물지게로 다져 온 등이 문지방을 지웠다.
망보던 자의 고개가 먼저 돌았다.
문짝을 밀던 손들이 멎었다.
앞선 자가 반 걸음 물러났다.
목소리는 낮고 사무적이었다.
"비키게. 자네하고는 셈이 없네. 관의 생도가 낄 저울이 아니야."
"이 문 안의 셈이면 저와 하십시오."
앞선 자가 웃음기 없이 웃었다.
"노파가 팔면 서로 편한 값이었네. 안 팔면 값이 오르지. 오른 값은 다른 손이 받으러 오네."
"값이면 문이 아니라 저한테 물으십시오."
백은 자리를 물리지 않았다.
등 뒤의 문짝이 미동도 없도록 어깨를 붙였다.
침묵이 저울이었다.
먼저 접은 쪽은 손들이었다.
망보던 자가 낮게 휘파람을 물었다.
셋의 걸음이 어둠 쪽으로 물러났다.
마지막 하나가 말을 남겼다.
"기한은 짧네. 그때도 저 문이 저리 닫혀 있으면 셈이 달라질 걸세. 자네 몫도 같이 적히고."
발소리가 골목 밖으로 흩어졌다.
흥정을 하러 온 손이었다.
늘어난 눈이 손이 된 저녁이었다.
문이 안에서 열렸다.
매향(梅香)이 백의 얼굴보다 소매를 먼저 보았다.
약당 안은 어질러지다 만 살림이었다.
칼이 도마가 아니라 궤짝 곁에 놓여 있었다.
궤짝의 자물쇠는 상해 있었다.
매향의 손이 약재 대신 빈 봉지를 접고 있었다.
접는 박자가 여느 날보다 빨랐다.
"팔부터. 앉아라."
백은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밀었다.
손끝이 맥 위에 앉았다가 떨어졌다.
"맥은 곧다. 그래서, 문 앞의 것들은 보고 온 게냐."
"보고 막았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저런 어깨들은 값 못 받으면 제풀에 꺾이는 법이다. 네 일이나 해라."
백은 물러서지 않았다.
"꺾일 때까지 혼자 버티시는 셈은 셈이 아닙니다. 몸은 상하신 데 없습니까."
"늙은 몸이 상할 짬도 안 주더라. 궤짝만 축났다."
"칼이 도마 위에 없습니다. 자물쇠가 상했습니다. 봉지 접는 손이 빠릅니다. 언제부터입니까."
매향의 손이 멎었다.
혀 차는 소리가 났다.
"며칠 됐다. 문 앞을 막는 어깨들이 생겼지. 약재 길을 끊겠다는 말도 왔고. 궤짝은 오늘 낮의 일이다."
"몇이나 됩니까."
"둘씩 셋씩 바꿔 가며 왔다. 낯은 번번이 달랐지. 삯 받은 손이 낯을 아끼겠느냐."
빈 봉지가 또 하나 접혔다.
"약재 길을 끊겠다는 말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건재상에 다녀온 길에서 들었다. 앞으로 물건이 늦겠다더라. 늦는 게 아니라 끊긴다는 소리였지."
백은 마지막 물음을 정면에 놓았다.
"무엇을 묻던가요."
침묵이 반 박자 길었다.
빈 봉지가 도로 접혔다.
"너를 묻더라. 어디 사람인지. 무슨 병으로 보름마다 다니는지. 입관 전에는 어디 있었는지."
"무어라 답하셨습니까."
"아픈 놈들 이야기는 밖에서 안 한다 했다. 그 뒤로 궤짝이 저 꼴이 났지."
백은 물음의 방향을 마저 좁혔다.
"뒤가 누군지 말은 없었습니까."
"삯꾼이 제 삯 준 손을 말하겠느냐. 값 이야기뿐이었다."
물음 셋이 정체의 문턱을 두드리고 있었다.
커진 이름의 값이 증인에게 먼저 청구되고 있었다.
백은 품 안 지명 방문의 접힌 모서리를 생각했다.
판의 시각은 공개로 붙는다.
손들은 그 시각을 골랐다.
판에 서면 이 문이 빈다.
문을 지키면 기권이 적힌다.
"성안에 며칠 몸을 옮기실 수는 없습니까."
"약당이 내 몸이다. 살림을 두고 어딜 가라는 게냐. 궤짝이 저 꼴인데 빈집을 만들어 주라는 소리냐."
백은 종이의 문면을 그대로 폈다.
"내일 진시에 판이 있습니다. 검증 비무의 지명입니다. 물릴 수 없는 지명입니다."
"아는 소리다. 판에는 서라. 문은 잠그면 된다. 늙은이 겁 좀 준다고 어찌 되는 것도 아니야."
"잠긴 문은 궤짝의 자물쇠만큼 버팁니다. 내일 하루 문을 열지 마십시오. 빗장은 안에서만 지르십시오. 저는 문 앞에 있겠습니다."
"기권이 적히는 판이라며. 알고도 버린다는 게냐."
백은 값의 크기를 문밖에 두었다.
"기재는 기재대로 받겠습니다. 값의 크기는 제 몫입니다."
"몫 좋아하는 놈. 그 값이 얼마인지는 왜 말을 못 해."
대답은 반 박자 늦지 않았다.
"셈은 마쳤습니다. 갚는 순서는 산 사람이 먼저입니다."
'서열은 다시 사면 된다.'
"그리 말할 줄 알았다. 못 말릴 줄도 알았고."
매향의 눈이 손에서 얼굴로 올라왔다.
오래 머물렀다.
말리는 말은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백이 한마디를 얹었다.
"제 몸은 세 합 안에서 쓰겠습니다. 어기지 않습니다."
"세 합이다. 넷째는 없다. 넘기면 그날로 약은 끊는다."
"예. 목검은 담장 안의 조건이니 내일 멜대는 어김이 아닙니다. 셋 안에서 닫겠습니다."
"말은 미리도 반듯하다. 가라. 저녁은 안 준다."
문을 나설 때 등 뒤로 빗장 소리가 두 번 걸렸다.
이튿날 진시.
담 너머 내원 연무장 쪽에서 북이 한 번 울렸다.
판이 열리는 소리였다.
백은 약당 문 앞 골목에 서 있었다.
손에는 물지게의 멜대가 들려 있었다.
나무 결이 목검처럼 손에 익어 있었다.
문 안쪽에 대고 낮게 말해 둔 뒤였다.
"문 안에 계십시오. 소리가 끊기기 전에는 열지 마십시오. 셋을 세시면 됩니다."
빗장 소리가 답이었다.
골목 어귀에 발소리 넷이 섰다.
어제의 발이 섞여 있었다.
이번에는 흥정의 걸음이 아니었다.
병장기가 칼집째가 아니었다.
궤짝과 사람을 들어낼 작정으로 온 손들이었다.
앞선 자가 어제와 같은 낮은 목소리로 값을 마지막으로 불렀다.
"값 받으러 왔네. 비키면 자네 몫의 셈은 지운 걸로 하지."
"이 문지방이 제 자리입니다."
백은 멜대를 낮게 들었다.
지키는 것과 상대 사이에 몸을 세우는 보법.
호표검(護鏢劍)의 자리였다.
학살의 밤 이후 처음 여는 전면이었다.
열리는 순간 돌아온 것은 그 밤이 아니라 표행의 아침이었다.
앞선 칼이 어깨선으로 들어왔다.
백은 멜대로 받아 밖으로 흘렸다.
흘린 힘이 되돌아갔다.
앞선 몸이 담벼락에 밀려 주저앉았다.
한 합이었다.
왼쪽에서 두 칼이 겹쳐 들어왔다.
반 보 안으로 딛고 사이에 섰다.
멜대 끝이 손목 둘을 차례로 쳤다.
병장기 둘이 바닥에 떨어졌다.
챙, 챙!
두 합이었다.
남은 하나가 문 쪽으로 파고들었다.
"물러서라. 길은 끊겼다."
반말이 먼저 나갔다.
호송의 구령 문법이었다.
멜대가 무릎 뒤를 걷어 길을 끊었다.
마지막 몸이 골목 바닥에 앉았다.
세 합이었다.
급소는 끝까지 비켜 갔다.
부수되 쫓지 않았다.
발소리들이 절뚝이며 어귀 밖으로 흩어졌다.
흩어지는 소리 위에 제 반말의 잔향이 남았다.
손들의 귀에 실려 나간 반 토막의 내력이었다.
어느 자리로 흘러갈지 모르는 값이었다.
백은 그 값을 안쪽 장부에 적었다.
담 너머에서 북이 다시 울렸다.
판이 닫히는 소리였다.
기권이 먹으로 적히는 소리이기도 했다.
멜대를 내리자 오른손 손끝에 저림이 하나 남아 있었다.
떨림은 아니었다.
삼합 안에서도 몸이 처음으로 값을 속삭인 소리였다.
빗장이 열렸다.
매향이 문턱보다 먼저 백의 몸을 훑었다.
합을 귀로 센 얼굴이었다.
"셋이었다. 몸은."
"성합니다."
골목 어귀에 다른 걸음이 서 있었다.
진소하(陳素河)였다.
빈 판에서 내려와 소동의 소문을 따라온 걸음으로 읽혔다.
그 눈에 담긴 것은 멜대를 쥔 손과 등 뒤의 노파, 절뚝이며 흩어진 발들의 잔상까지였다.
진소하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소동은 이미 저자를 넘고 있었다.
모르쇠로 두면 조사가 열린다.
조사는 장소를 먼저 묻고 약당을 먼저 불러 세운다.
제 발로 먼저 적히면 조사의 발이 문턱에 닿기 전에 닫힌다.
백은 멜대를 문 곁에 세워 두고 사무로 걸음을 세웠다.
사무의 서리가 붓을 들었다.
"이름과 소속."
"외원 한백입니다."
"건은."
"어제 진시, 저자 골목의 소동입니다. 낯선 자들의 시비를 몸으로 막았습니다. 제 이름으로 적어 주십시오."
붓끝이 종이 위에서 잠시 기다렸다.
"장소는. 골목이면 어느 어귀인가."
"저자 어귀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한 가게는 없습니다."
"다친 자는."
"쫓지 않았습니다. 제 발로 흩어졌습니다."
붓이 반 줄을 적고 멎었다.
"병장기는."
"물지게의 멜대 하나였습니다."
서리가 붓을 세운 채 문면을 낭독했다.
"생도의 저자 소동은 벌점이다. 자진 출두는 자진으로 기재한다. 재산정은 다음 방문에 붙는다. 그대로 받겠나."
"받겠습니다."
붓이 내려갔다.
서리의 붓이 약당 두 글자를 적지 않고 지나갔다.
진술이 산 값이었다.
백은 기재를 확인하고 예를 남겼다.
사흘째 아침, 재산정의 방문이 붙었다.
한백(韓柏) 두 자 곁에 작은 주가 나란히 달렸다.
검증 비무의 기권 하나.
저자 소동의 벌점 하나.
마흔둘째 줄에 있던 이름이 쉰여덟째 줄로 내려앉았다.
열여섯 줄이었다.
장서각(藏書閣)의 기준선은 마흔다섯째 줄 안이었다.
열렸던 문이 도로 닫혔다.
방문 곁의 생도 하나가 목소리를 눌렀다.
"내원 후보가 지명 판을 비웠다는군. 후보 명부에서도 빠지는 건가."
곁의 동기가 받았다.
"이름은 남는다더라. 논란까지만이라던가. 별난 신입이 별나게 내려가는구먼."
뒷줄에서 낮은 소리가 하나 더 얹혔다.
"후원자가 가만있겠나. 파기가 오네 마네 하던데."
곁의 동기가 혀를 찼다.
"파기는 후원자만 하는 거라며. 조용한 쪽이 더 무섭구먼."
서열비(序列碑) 앞에서 진소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선이 발끝이 아니라 눈에서 왔다.
대련 밖의 저울이라는 뜻이었다.
"한백 씨. 판이 비었습니다. 기권으로 적혔습니다."
"예. 적힌 대로입니다."
"접수 기재 같은 대답은 여전하시군요."
진소하의 다음 물음은 골목에서 왔다.
"어제 진시, 저자 골목에서 한백 씨를 보았습니다. 멜대를 쥔 손과 등 뒤의 노인까지입니다. 노인의 신원은 묻지 않겠습니다. 해석은 얹지 않겠습니다. 물음은 하나입니다. 지명을 받고 물러난 까닭이 무엇입니까."
"가야 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가 열여섯 줄의 값이었습니까."
"셈은 제가 했습니다. 값은 치렀습니다."
진소하의 시선이 서열비의 쉰여덟째 줄에 잠시 닿았다가 돌아왔다.
"까닭을 팔면 이해를 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지 않으시는군요."
"변명은 값이 더 나갑니다."
진소하가 반 호흡 멎었다.
남긴 것은 단정이 아니라 진술 하나였다.
"서열을 제 손으로 내려놓는 손을 두 번 보았습니다. 숨기는 손과 값을 무는 손이 같은 손입니다. 저울에는 올려 두겠습니다. 약정은 그대로입니다, 한백 씨."
"예. 지키겠습니다."
진소하가 예를 남기고 돌아섰다.
해 질 녘, 백은 다시 약당 골목에 섰다.
소리가 돌아와 있었다.
작두 소리가 문밖까지 났다.
달이는 김이 창호에 앉아 있었다.
문을 밀자 칼은 도마 위에 있었다.
백은 소매를 걷어 손목부터 내밀었다.
"저림이 있습니다. 떨림은 없습니다."
매향의 손끝이 맥 위에 오래 앉았다.
저림의 자리를 짚어 내는 박자였다.
"거짓 기재는 아니구나. 삼합 안이라고 공짜가 아니야. 몸이 먼저 말해 준 게다. 저림은 언제부터냐."
"합이 닫힌 뒤부터입니다. 반나절이면 가라앉는 층위입니다."
"가라앉는 것과 없던 일이 되는 것은 다르다. 몸은 잊지 않는다."
"목검과 세 합과 보름은 그대로입니다."
매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대로라는 놈이 골목에서 멜대를 휘둘렀지."
"담장 밖이었습니다. 합은 셋에서 닫았습니다."
매향의 손끝이 손목에서 떨어졌다.
"들었다. 문 안에서 셋을 셌다. 넷째가 왔으면 어쩔 셈이었느냐."
"넷째가 오기 전에 길을 끊는 설계였습니다."
"설계라는 말로 몸을 속이는 놈들을 마흔 해 봤다."
혀 차는 소리가 났다.
시렁에서 미리 달여 둔 약 한 그릇이 내려왔다.
"식기 전에 마셔라. 그리고 새겨 둬라. 다음은 삼합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같은 손들은 셋을 세 주지 않아. 다음 손들은 값부터 다를 게야."
"새기겠습니다."
매향의 손은 벌써 다음 일로 가 있었다.
말은 대비책의 문형으로 왔다.
"문단속은 이제 세 번 한다. 뒷문 돌쩌귀에는 기름을 안 먹인다. 삐걱 소리가 내 눈이야. 눈이 늘어도 귀는 아직 내 귀가 밝다."
"약재 길은 어찌하실 참입니까."
"건재상 말고 성안 두 집을 더 튼다. 길 하나가 끊기면 두 길로 받는 게 장사다."
"그 두 집의 삯은 제 장부에 얹어 주십시오."
칼이 다시 도마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값 외상이나 마저 갚아라."
"외상은 이달에도 못 갚습니다. 먼저 갈 자리가 있는 돈입니다."
"묻지 않았다. 가서 자라."
백은 문가에서 반걸음을 멈췄다.
"보름 뒤에 오겠습니다."
"그 전에 오게 되면 그건 네 몸이 진 게다."
고맙다는 말은 어느 쪽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약 그릇의 온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숙사의 밤, 백은 어둠 속에서 머릿속 장부를 폈다.
낱장 묶음은 소동의 사흘에도 품 안 그대로였다.
잃은 줄부터 적었다.
열여섯 줄.
닫힌 장서각 문.
벌점 하나.
반말 한 줄.
지킨 줄을 곁에 적었다.
증인 하나.
약당 하나.
기록 밖의 이름 하나.
두 목록은 길이가 달랐다.
셈은 지킨 쪽으로 기울었다.
변제(辨濟)가 처음으로 서열보다 앞선 날이었다.
갚는 걸음의 다음 좌표는 그대로였다.
표국 곁마잡이 노(盧) 노인.
밀린 삯 여덟 전.
성안 서시(西市) 어귀.
후원자의 부름은 이 사흘에도 오지 않았다.
파기의 통지도 없었다.
침묵이 액수 없는 차용증 위에 무게로 앉았다.
여숭(呂嵩)이라는 물음표는 오늘도 기울음인 채였다.
캐는 걸음은 이 사흘을 쉬었다.
저자에는 축제의 소문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월 하순의 등불 준비가 어귀마다 오르내렸다.
쉰여덟째 줄이 자격을 다시 사는 무대는 개방비무(開放比武)의 예선뿐이라는 어림도 함께 돌았다.
오른손 손끝의 저림은 밤까지 낮게 남아 있었다.
백은 그 저림을 장부의 마지막 줄로 적었다.
서열비의 숫자가 열여섯 줄 내려간 밤이었다.
잠은 뜻밖에 낮게 내려앉았다.
돌아온 작두 소리가 귓가에 오래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