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23년 칠월 중순의 아침이었다.
어사부(御史府)의 기재 서리가 약당(藥堂) 문 앞에서 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접수방에서 종결철을 꺼내던 그 서리였다.
종이 묶음을 한 팔에 안고 있었고 묶음의 맨 위 종이에는 부관주 직인이 앉을 자리가 비어 있었다.
회당 대여에서 열흘 남짓이 지나 있었다.
약방문 석 장은 왼손으로 다 베꼈다.
은가락에게서는 전갈이 없었다.
다음은 약속되지 않은 것이었다.
"어사께서 명부와 함께 그 달 대장간 물목을 거두라 하셨어요. 명부는 사람의 목록이고 물목은 검의 목록이라고, 둘을 함께 보시겠다고요. 정정은 청람관의 몫이고 정정에는 당사자 수결이 붙고요. 그래서 모시러 왔지요."
"예."
서리가 걸음을 옮기며 덧붙였다.
"한 말씀 더 하셨어요. 제적은 관의 일이고 말소는 관부의 일이니 오늘 것은 제적까지라고."
"예."
다섯 걸음 뒤에서 나졸(邏卒)의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청람관(靑嵐館) 정문까지 반 각이었다.
정문 앞에 넷이 서 있었다.
내원 무복 셋과 그 앞의 사범 하나.
표사의 눈은 발부터 보았다.
관의 디딤이었다.
저자의 발도 사저의 발도 아니었다.
문 안쪽 마당 가장자리에 백토로 금이 그어져 있었다.
입관 비무의 구석과는 다른 자리였다.
손님의 판을 서는 금이었다.
백은 그 금을 먼저 보았고 그다음에 사범의 발이 문지방 안쪽에 있고 제 발이 밖에 있는 것을 보았다.
"어사부 서리는 들어가게."
사범이 하게체로 말했다.
서리가 반 걸음 들어섰다가 멈추었다.
"동행이 있는데요."
"관 밖 사람은 생도의 손님으로 판을 서네. 주인 생도가 데려오고, 삼합을 목검으로 저 금 안에서 서네. 셋을 받아 넘기면 들고 못 넘기면 못 드네. 그것이 관례네."
"정정에 수결하러 왔습니다."
백이 놓은 첫 문장이었다.
사범의 눈이 백의 소매로 갔다가 돌아왔다.
오른손이 소매 안에 있는 것을 그도 알았다.
"오늘 정정될 이름은 제적이네. 제적될 이름은 관에 들 수 없고 판에도 설 수 없네. 그러니 관 밖 사람이고, 관 밖 사람은 판을 서야 드네."
두 규칙이 한 문장에 놓였다.
문턱이 스스로를 물고 있었다.
백은 그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먼저 알았다.
서리가 종이 묶음을 고쳐 안았다.
"관 안의 관례를 어사부가 깨지는 않지요. 명부와 물목은 제가 거두고요. 정정 절차만 안에서 확인하고 나오지요."
"그러시게."
서리가 들어갔다.
백은 문 밖에 섰다.
"밖에서 기다리지요."
다투지 않았다.
판에 서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서겠다고 하면 제적될 이름이 설 자격 없는 판에 선 것이 되고 다투면 맞고발 셋째 죄목에 재료를 보탠다.
문 앞이 판이 되는 것은 파벌이 바라는 일이었다.
나졸이 다섯 걸음 뒤에서 멎어 섰다.
파벌 생도 셋은 금 곁에 서 있었다.
사범은 문지방 안쪽에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저잣거리 쪽에서 아침 장의 소리가 올라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서리가 나왔다.
품에 종이가 하나 늘어 있었다.
"명부는 수령했어요. 부관주 직인의 봉인이고요. 정정 수결은 외원 사무에서 붙어요. 문 밖에서는 안 붙고요. 사무는 저 문 안이고요."
교착이었다.
다툼이 아니라 벽이었다.
벽은 다투어서 넘는 것이 아니다.
사범이 뒷면을 내놓았다.
"손님이 판에 설 수 없으면 주인이 대신 서네. 그것도 관례지. 다만 제적자의 주인이 될 생도는 없네. 이름이 적히니까. 적힌 이름은 처분에 오르네."
내원 쪽에서 걸음이 내려왔다.
발소리로 먼저 알았다.
표사의 순서였다.
발, 손, 얼굴.
발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손에는 목검이 이미 들려 있었다.
진소하(陳素河)였다.
내려오기 전에 정해진 결정이 손에 있었다.
사범이 먼저 말했다.
"제적자라 하셨습니까. 정정은 아직 안 붙었는데요. 지금은 관 밖 사람이고, 관 밖 사람은 손님이 될 수 있지요."
"그래서 손님이지. 이름이 적히네, 진 사제."
"적으십시오."
그녀가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한 걸음 나왔다.
안에서 밖으로.
손님을 맞는 쪽의 걸음이었다.
백을 보았다.
"서문백 씨."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기재가 바뀌는 날이었다.
"진 사형."
"말리지 마세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백은 말리지 않았다.
말려야 한다는 셈이 먼저 왔었다.
첫 낙인의 값은 진소하의 것이 된다.
그러나 말리는 것은 남의 결정을 제 셈 안으로 당기는 일이었다.
문전에서 은가락에게 배운 문형이었다.
그리고 이 문은 읽는 자리였다.
기재를 읽고 수결하는 자리.
빌린 손은 읽는 자리에만 쓴다.
그는 받았다.
말리지도 청하지도 않았다.
"제 손님입니다. 판은 제가 서겠습니다."
사범이 붓을 꺼냈다.
낙인은 말이 아니라 기재였다.
진소하가 금 안으로 들어갔다.
파벌 생도 하나가 목검을 들고 마주 섰다.
셋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쪽이었다.
"진 사형. 손님의 주인은 판이 끝나도 주인이지요."
"압니다. 시작하지요."
백은 금 밖, 문 밖에 섰다.
판 밖의 눈이었다.
금은 그의 발에서 두 걸음 앞에 있었다.
두 걸음이 제도의 두께였다.
"청람검결(靑嵐劍訣) 일형(一形)으로 섭니다."
초식명을 밝히고 쓰는 명예율이었다.
결승의 그 문형이었다.
첫째 합은 넓게 보였다.
검로 전체가 보이는 거리였다.
상대가 먼저 들어왔다.
어깨부터 오는 정직한 검이었다.
진소하의 목검이 상대의 목검을 바깥으로 받아 넘기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급소를 겨누지 않았다.
비무의 검이었다.
상대는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나지 않는 것이 이 판의 목적이라는 것을 백은 발에서 읽었다.
둘째 합에서 백의 눈이 좁아졌다.
파벌 생도의 뒤꿈치가 반 발 물러났다.
넷째를 벌리는 발이었다.
판이 길어지면 낙인의 문면이 두꺼워진다.
제적자의 손님 판을 네 합 섰다고 적히는 것이다.
진소하는 허초를 꺼리는 사람이었다.
정면으로 받을 것이었다.
판은 진소하의 것이었다.
침묵해야 한다는 셈이 있었다.
읽은 것을 한 마디로 넘기는 것은 개입이 아니었다.
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그는 읽고 그녀는 휘두른다.
"셋째에서 닫으십시오."
한 마디였다.
진소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들었다는 표시는 발에 있었다.
반 발 물러난 상대의 뒤꿈치를 그녀의 앞발이 먼저 밟듯 들어갔다.
넷째를 벌릴 틈이 없어졌다.
셋째 합에서 목검이 상대의 손목 안쪽을 스치고 멎었다.
상대의 목검이 금 밖으로 떨어졌다.
흙 위에 나무가 닿는 소리 하나였다.
합은 셋에서 닫혔다.
그가 평생 지킨 숫자였다.
남의 검에서 그 숫자를 들었다.
"삼합이에요. 적으십시오."
사범의 붓이 움직였다.
제적자의 손님 판을 선 이름, 삼합.
문이 열렸다.
백은 문지방을 넘었다.
남의 손으로 연 문이었다.
진소하가 목검을 내리고 곁으로 왔다.
그는 묻지 않았다.
왜 서셨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놓았다.
목소리가 느려져 있었다.
"왜 섰는지 물으실 줄 알았는데요."
"묻지 않겠습니다."
"사부님은 관에 딸린 아이들에게도 보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적된 이름 하나 들이는 것이 사문에 어긋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답이었다.
관에 딸린 이름 없는 사람에게도 문을 열어 준 사부의 제자라는 뜻으로 백은 들었다.
온기였다.
그 온기가 누구의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한마디를 더 놓았다.
"판 밖의 한 마디는 정확했어요. 저도 읽고 있었고요."
"압니다. 눈을 빌려 드린 것뿐이에요."
"빌리는 쪽은 서문백 씨인 줄 알았는데요."
건조한 되받음이었다.
그녀는 내원 쪽으로 돌아갔다.
처분 미결의 몸이었다.
사범의 붓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기재소는 내원 담 안쪽, 진품각 쪽으로 꺾이는 골목 끝에 있었다.
서리가 앞장섰다.
내원 담 안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명 대련의 아침에 한 번, 부관주 서재의 아침에 한 번.
그때는 명부의 이름으로 들었다.
오늘은 남의 손으로 든 이름으로 걸었다.
마주치는 생도들이 길을 비켰다.
비키는 것은 예가 아니라 거리였다.
이십 년치 결산 묶음이 등을 보이고 꽂혀 있었다.
등마다 해와 달이 적혀 있었다.
날짜로 꿰는 사람의 기재소였다.
오상진(吳尙進)이 일어섰다.
마흔을 넘긴 얼굴이었고 검객의 손이 아니라 붓의 손이었다.
"어사부에서 오셨군요. 서문백 씨도 오셨고."
처음부터 서문백 씨였다.
서리가 어사의 명을 놓았다.
"명부와 함께 그 달 대장간 물목을 거두라는 명입니다. 대력 22년 섣달이에요."
"대력 22년 섣달이지요. 쌍절(雙截)용 검은 셋 나갔어요."
그가 묶음 하나를 뽑았다.
찾지 않았다.
손이 먼저 갔다.
"초이레예요. 수령은 저와 최연(崔淵) 사범, 반호(潘浩) 사범. 셋이지요. 사양은 내원 지급분이고, 낙인이 코등이 안쪽에 있어요."
그는 제 이름을 먼저 말했다.
숨기지 않는 사람의 문형이었다.
날짜와 숫자가 앞에 오고 판단은 뒤에 붙지 않았다.
그가 목록을 읽는 박자 그대로 이어 갔다.
"그 아래 한 줄은 사저 호위 병장기 하나예요. 사저의 호위도 관 대장간 검을 쓰거든요."
목록이었다.
백의 눈은 셋을 세고 있었다.
쌍절용 검 셋.
손에 쥐여진 검의 목록이었다.
명부가 사람의 목록이라면 이것은 검의 목록이었다.
공리의 다음 칸이었다.
오상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송구합니다만, 수령 기재는 받았다는 것까지예요. 썼다는 것은 적지 않고요. 기재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쌍절용 검은 다른 검과 어디가 달라요."
백이 물었다.
오상진은 곁가지를 제 손으로 잘랐다.
"사양이 다르지요. 내원 지급분은 낙인을 코등이 안쪽에 치거든요. 결승에서 들으셨을 거예요. 그 이상은 물목의 일이 아니라 검의 일이라 제가 말할 것이 못 되고요. 아무튼 기재에는 셋이에요."
"원부는 거두지요."
"원부는 기재소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사본을 만들어 드리지요. 관 서리가 옮기고 제가 대조하고요. 사본에는 오늘 날짜를 적고요. 원부는 제 것이고 사본은 어사부 것이에요."
서리가 예로 받았다.
관 서리가 붓을 들었다.
백은 물목을 보았다.
네 줄이었다.
같은 붓으로 적혀 있었다.
그의 왼손이 소매 안에서 움직였다.
약방문 석 장 뒤의 손이었다.
"옮겨도 될까요. 왼손이라 느린데요."
오상진이 백의 소매를 보았다.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보았다.
"왼손이시군요. 느려도 돼요. 기재는 빠른 손보다 틀리지 않는 손이 낫거든요. 송구합니다만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옮기세요. 제출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제 것입니다."
"그러면 옮기세요."
붓이 왼손으로 건너왔다.
첫 획이 앉았다.
약방문보다 빨랐다.
한 글자에 숨이 하나 반이었다.
고쳐진 것이 아니었다.
익숙해진 것이었다.
그는 네 줄을 옮겼다.
섣달 초이레, 쌍절용 검 셋, 오상진, 최연, 반호.
그 아래 사저 호위 병장기 하나.
목록은 목록대로였다.
왼손이 처음으로 남의 기록을 옮겼다.
관 서리의 사본에는 수령 기재가 붙었고 오상진이 두 사본을 원부와 대조했다.
서리가 제 품의 종이를 한 번 만졌다.
부관주 직인이 찍힌 봉인이었다.
명부였다.
백은 안을 보지 않았다.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물목은 이것이 전부인가요."
"그 달 쌍절용 검은 이것이 전부예요. 다른 달도 내어 드릴 수 있고요. 이십 년치가 있어요. 어사께서 보자 하시면 언제든 내어 드리지요. 숨길 것이 없는 장부고,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장부의 유일한 자랑이거든요."
"섣달이면 돼요."
서리가 제 품을 한 번 더 짚었다.
"명부는 부관주께서 직인으로 봉하셨고요. 오 교관 이름도 안에 있겠지요."
"있을 거예요. 스물아홉에 받았고요. 기재에는 그렇게 되어 있을 거예요."
서리가 수령 기재를 닫았다.
오상진이 묶음을 제자리에 꽂았다.
손이 먼저 갔다.
외원 사무는 정문 쪽으로 돌아 나와 있었다.
상 위에 명부가 펼쳐져 있었다.
한백(韓柏) 두 자가 명부 끝줄 가까이에 있었다.
외원 사무 서리가 붓을 들고 말했다.
"명부에 오른 이름은 지우지 않는다. 곁에 적는다. 제적이라 적는다."
한백 곁에 제적(除籍) 두 자가 앉았다.
지움이 아니었다.
덧붙임이었다.
명부에 오른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입관의 날에 배운 규칙이었다.
그 규칙이 오늘 이렇게 지켜졌다.
이름의 상실이 아니라 이름의 기재 하나가 닫히는 것이었다.
"줄에는 금을 새긴다. 판정 칸은 비운 채 둔다. 붙일 줄이 없으니 붙이지 않는다."
마당에서 정 소리가 났다.
쨍.
서열비의 쉰여덟째 줄이었다.
한백 두 자 위를 가로지르는 금이었다.
새긴 것을 새김으로 닫았다.
판정 칸은 비어 있었다.
결승의 판정은 관원 셋의 붓이 멎어 붙지 않았었다.
이제 붙을 줄이 없었다.
판정은 끝내 내려지지 않는다.
정지가 아니라 삭제였다.
"한 몸에 두 기재를 오늘 하나로 정리한다. 어사부 접수철의 이름이 남고 관 명부의 이름은 닫힌다. 이의 있는가."
"없습니다."
"당사자 수결."
백은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서문백(西門柏).
서(西) 자의 첫 획이 소환장의 그것보다 덜 흉했다.
회복이 아니었다.
익숙함이었다.
한백이라 적었던 손은 오른손이었다.
입관의 날, 보퉁이 검사 앞에서.
그 손은 이제 소매 안에 있었고 그 이름은 이제 곁에 두 자를 달고 있었다.
두 손과 두 이름이 한 상 위에서 정리되었다.
어사부 서리가 고지를 놓았다.
"한백 명의의 무적(武籍)은 오늘로 소멸합니다. 서문백 명의는 흐려진 채 조회됩니다. 어느 이름의 무적도 없습니다. 판에 설 수 없고, 관부 안에서 병장기를 지닐 수 없습니다. 회복은 관부의 판정으로만 되고, 배상 의무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지니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닫혀도 빚은 남는다.'
"압니다. 정정 기재의 사본은 어사부 접수철에 붙고요. 오늘 수결은 소환장의 필적과 같은 손으로 기재되지요. 대질은 따로 고지합니다. 부관주께 전할 종이가 하나 더 있고요. 사저예요. 서문백 씨는 돌아가셔도 돼요."
서리가 품의 종이를 한 번 더 만졌다.
봉인된 명부와 대질의 종이가 같은 품 안에 있었다.
백은 정문으로 나왔다.
사범은 없었다.
파벌 생도 셋도 없었다.
금만 남아 있었다.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남의 손으로 연 문이었다.
약당으로 가는 길은 둘이었다.
저잣거리 쪽과 관 뒷길 쪽.
뒷길이 약당 뒷문의 오솔길로 바로 닿았다.
백은 뒷길로 갔다.
나졸이 다섯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뒷길 너머에 담이 하나 있었다.
축제의 밤에 손을 걸었던 담이었다.
사저였다.
문전을 지났다.
문설주 곁 반 걸음에 호위 하나가 서 있었다.
표사의 눈은 발부터 보았다.
무게가 발바닥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훈련된 디딤이었다.
어사부 문전에서 본 그 디딤이었다.
왼 소매가 한 겹 접혀 손등을 반쯤 덮고 있었다.
사저의 사람.
백은 거기까지만 적었다.
호위는 백을 보지 않았다.
백은 얼굴을 보지 않았다.
문전이 뒤로 갔다.
오솔길이 시작되었다.
여름풀이 바짓단에 닿았다.
관 뒷산의 안개는 아침에 내려왔다가 걷힌 뒤였다.
약당 뒷문이 보였다.
안쪽 장부에는 오늘 적힌 것이 둘이었다.
한백 곁의 제적 두 자.
그리고 왼손으로 옮긴 목록 한 장 — 쌍절용 검 셋.
어느 이름의 무적도 없는 사람이 그것을 품에 넣고 뒷문을 두드렸다.
기름을 먹이지 않은 돌쩌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