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뒤 초여름 나흘째 비 밤, 귀래객잔 처마는 쉼 없이 낮은 북소리를 냈다.
낮 동안 장포두는 검대 열둘을 관아 세 방에 나누고 소각 명령패를 베껴 봉했다.
객잔에는 손님 대신 비 냄새가 들었다.
북쪽 철띠의 물은 높게, 그을린 현판의 물은 속 빈 장구처럼 울렸다.
서쪽 홈통은 일곱 숨마다 넘쳤다.
도현이 붉은 실을 무연의 손목에 묶었다.
오른손 맥은 늦고 왼손 맥은 거꾸로 튀었다.
소담은 외상 장부를 덮고 맞은편에 앉았다.
만복은 폐수로 열쇠를 탁자에 놓았다.
"오늘은 찬 손이라는 말로 끝내지 않겠네."
"진찰부터 하시지요."
"설명부터 하게. 무엇이 들어왔고, 어느 길로 오르며, 힘을 얼마나 쓰면 죽는지. 하나라도 숨기면 나는 치료하지 않겠네."
만복이 열쇠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백 의원, 겁을 줘서 말시킬 셈인가?"
"겁낼 내용을 감춘 채 곁에 세워 두는 것보다 낫습니다. 소 주인도, 소담 낭자도 다음 싸움의 값을 모르지 않습니까."
무연은 대답 대신 주문패를 가나다순으로 밀다가 세 번째에서 멈췄다.
"십이 년 전, 청류문이 무너진 밤이었습니다."
소담은 닫은 장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사부님은 제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불길이 내원까지 들어오자 제 여덟 경맥에 한독을 밀어 넣으셨습니다. 숨과 맥이 하룻밤 끊긴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독이었습니다. 흑사회가 시신을 확인하고 지나갔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살기 위해 받은 독.'
도현의 손가락이 붉은 실을 따라 무연의 왼쪽 갈비 아래로 갔다.
옷깃을 벌리자 손바닥만 한 푸른 반점이 갈비 사이에서 심장 쪽으로 가는 가는 가지를 뻗고 있었다.
"내공을 돌리면?"
"청류의 호흡을 따라 거꾸로 오릅니다. 여섯 성을 넘으면 갈비가 멎고, 칠결부터는 피가 섞입니다. 아홉째 결은 심맥 가까운 길을 씁니다."
'아홉째가 마지막일 수 있다.'
"열째는?"
"아홉 흐름을 한꺼번에 돌립니다. 쓰고 살아남으면 백 일 동안 내공을 봉해야 합니다."
만복이 열쇠를 탁자에 내려쳤다.
"그걸 알고도 여덟 번이나 했단 말이냐?"
"여덟 번 모두 다른 사람이 다칠 자리였습니다."
"네가 죽을 자리인 건 왜 빼?"
무연은 이번에는 주문패를 만지지 않았다.
"제가 떠나면 객잔이 표적에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부만 넘겨 드리고 오늘 밤 나갈 생각도 했습니다."
'또 혼자 정했다.'
"또 우리 몫까지 정했네요."
소담의 목소리는 낮았다.
처마가 한 차례 크게 울린 뒤에도 말끝이 묻히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이름을 숨긴 값은 이미 냈어요. 우리가 위치도 모르는 장부 때문에 표적이 된 값도 냈고요. 설명 없이 떠나는 건 보호가 아니에요. 마지막까지 우리가 고를 일을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면 알고 고르십시오. 장부는 이 객잔 아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자리는 주인어른만 압니다. 꺼내면 흑사회는 원본뿐 아니라 본 사람을 모두 태우려 할 겁니다."
'이번엔 모두 안다.'
만복이 열쇠를 소담 쪽으로 밀었다.
"연화가 말했지. 검은 물은 셋으로 나누라고. 오늘은 셋 다 앉아 있다."
도현은 붉은 실을 풀지 않았다.
"내 판정도 듣게. 지금부터 내공을 봉하면 살 가능성이 높네. 다시 고성으로 쓰면 장담 못 해. 아홉째는 마지막일 수 있고, 열째를 쓰면 살아도 백 일은 빈몸이야."
"기록해 주십시오."
"자네가 따르겠다고 먼저 말하게."
"싸움이 끝나면 백 일 동안 봉하겠습니다."
"또 싸움부터군."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탁자 한가운데 물사발의 수면이 오목하게 꺼진다.
소리는 빗방울 하나와 같다.
하지만 물이 솟자 가는 은침 하나가 바닥에 박혀 있다.
침 꼬리는 처마와 같은 박자로 떤다.
'빗방울이 아니다.'
"맥을 다 말해 주니 진찰하기 편하구려."
마당 너머에서 늙은 목소리가 온다.
웃음은 없다.
대나무 우산 아래 굽은 노인이 다가온다.
은회색 머리는 마른 채.
양손에는 푸른 장갑.
'한백교.'
나설이 동쪽 방문을 열고 나온다.
붕대 감은 오른어깨가 먼저 보인다.
"한 장로. 회수 명령은 나 하나였소?"
"명령패, 검대주, 열두 검수, 장부, 청류 생존자. 본 사람까지 합치면 수가 좀 늘었소."
"장로 자신은?"
한백교가 우산대를 반 바퀴 돌린다.
"치료를 끝내면 돌아오라 했소. 회주의 오른손 괴사는 내가 십 년을 눌렀지만 낫지 않았지. 실패한 의원을 회주가 오래 두겠소? 그러니 귀원결까지 가져가야 내가 사오."
무연이 물사발에서 반 걸음 비킨다.
그 전에 푸른 장갑의 검지가 접힌다.
이번 침은 보이지 않는다.
서쪽 홈통이 일곱 번째 물을 토한다.
무연의 왼쪽 갈비가 차갑게 뚫린다.
침끝이 기문혈에 두 푼 들어가 독선을 누른다.
'기문혈.'
다리의 힘이 빠진 게 아니다.
힘이 아래로 가기 전에 갈비에서 돌아온다.
무연의 왼쪽 무릎이 마루를 친다.
심장이 한 번 늦게 뛴다.
'힘이 돌아온다.'
"열두 번 숨 쉬기 전에 장부를 내놓으시오. 침을 빼고 독길을 닫아 드리리다."
"빈말이오."
도현이 무연 앞에 몸을 낮춘다.
침을 뽑지 않고 냄새만 맡는다.
"오두와 빙편이네. 뽑으면 퍼진다. 진 형, 왼손 감각은?"
"새끼손가락이 없습니다."
"있어. 느끼지 못하는 거야. 여섯 호흡 넘기지 말게."
한백교의 우산 가장자리가 들린다.
대나무 살마다 구멍이 촘촘하다.
"의원 하나, 장부 주인 하나, 물길 아는 계집 하나. 어느 쪽을 먼저 막겠소?"
나설이 설망 검집을 왼손으로 세운다.
은침 둘이 위아래를 친다.
오른어깨 붕대에 붉은 점이 번진다.
"우산살 셋마다 시차가 있소. 눈으로 좇으면 늦습니다."
"그러니 보지 않을 겁니다."
무연은 눈을 감는다.
'보면 늦다.'
비가 처마, 현판, 철띠, 돌계단을 친다.
홈통과 검집, 물사발도 운다.
그 아래 대나무 마찰음.
하지만 서쪽 홈통이 쏟아질 때마다 마찰음이 지워진다.
한백교는 그 일곱 숨을 발사 박자로 삼는다.
'일곱째 물.'
"소담 씨. 서쪽 홈통 셋째 매듭을 끊어 주십시오."
"그러면 폐수로 입구까지 물이 차요."
"압니다. 장부 벽도 드러날 겁니다."
"한 호흡이면 돼요?"
"제가 듣는 데 한 호흡. 움직이는 건 소담 씨가 정하십시오."
'환경을 바꾼다.'
소담은 대답 대신 종줄을 당긴다.
줄 끝은 서쪽 대나무 홈통에 닿아 있다.
셋째 매듭이 풀린다.
긴 물줄기 하나가 일곱 갈래로 깨진다.
쏴아.
한 음이 깨진다.
기둥, 항아리, 돌계단, 빈 술독.
현판, 마루 틈, 폐수로에도 다른 높이의 물이 떨어진다.
'소리가 일곱 갈래.'
한백교가 우산대를 비튼다.
우산살의 세 침통에는 표식이 다르다.
푸른 점은 독침 아흔넷, 붉은 선은 불침 셋, 빈 홈은 은침 셋.
'아흔넷, 셋, 셋.'
바깥 스물넷은 낮게 깔린다.
안쪽 마흔여덟은 꼬리를 덮는다.
마지막 스물여덟은 앞줄의 빈 소리를 따른다.
피하면 뒤 침에 혈도가 열린다.
막으면 불침이 돌벽으로 빠진다.
청우백침진(聽雨百針陣).
"붉은 셋은 송진 냄새요!"
도현이 외친다.
"낮은 군집은 푸른 장갑 냄새가 납니다."
나설은 검집을 바닥에 눕혀 울림을 막는다.
만복이 소담 앞에 현판 조각을 세운다.
소담은 숨지 않는다.
종줄을 양손에 감고 물줄기 둘을 더 벌린다.
"오라버니, 불침은 서쪽 돌벽으로 가요."
무연의 여섯 번째 숨이 들어온다.
'여섯 번째.'
그는 오른발을 엎어진 물사발 자리에 누른다.
젖은 짚신이 마루에 붙는다.
왼발꿈치는 북쪽 철띠를 향한다.
발판, 물, 날아오는 침이 한 선에 놓인다.
'힘은 침이 준다.'
양손이 가슴 앞에서 교차한다.
오른손 검지에는 감각이 없다.
손목에는 빗방울의 떨림이 남아 있다.
왼손은 반 치밖에 들리지 않는다.
무연은 팔꿈치와 손등을 그물코로 삼는다.
청류십결 구결.
천라청우수(天羅聽雨手).
첫 수 청우개현(聽雨開絃).
'독침.'
빗소리에서 쇠 떨림만 걷어 낸다.
무연의 오른손등이 첫 독침의 꼬리를 스친다.
침끝은 꺾지 않는다.
반 푼 옆으로 간 꼬리가 다음 침의 허리를 친다.
둘째가 셋째를, 셋째가 넷째를 건드린다.
푸른 군집에 물결이 번진다.
무연은 없는 힘을 만들지 않는다.
한백교가 준 발사력을 앞줄 꼬리에서 뒷줄 허리로 옮긴다.
아흔넷 독침이 속도를 잃지 않고 원을 그린다.
첫 물줄기가 침 몸을 적신다.
둘째 물줄기가 침 꼬리를 누른다.
은빛 원이 우산을 거꾸로 감는다.
촤자작.
독침들이 우산살에 차례로 박힌다.
푸른 독이 대나무를 타고 번진다.
한백교의 손에는 닿지 않는다.
그가 우산을 버리려 하자 무연의 왼팔꿈치가 내려간다.
둘째 수 천라분성(天羅分星).
'불침.'
불침 셋은 독침보다 무거워 소리가 낮다.
무연이 소매 끝으로 앞 침을 든다.
세 불침이 삼각을 이루며 서쪽으로 튼다.
소담이 종줄을 놓는다.
굵은 낙수가 돌벽 앞에 물막을 만든다.
불침 셋이 물막 속에서 붉게 핀다.
젖은 돌에 박힌다.
장부 벽 한 자 앞에는 흰 김과 송진 냄새만 남는다.
한백교는 우산대를 놓고 침통을 찾는다.
엄지가 손바닥으로 들어간다.
가장 가벼운 세 소리가 빗물 위를 건너온다.
빈 침.
독도 불도 없어 가장 높고 맑다.
'빈 침.'
무연이 오른발을 튼다.
고인 물이 발목 밖으로 밀린다.
세 침이 얇은 물결을 차례로 스친다.
첫 침은 왼쪽 견정.
둘째는 오른팔 곡지.
셋째는 돌계단을 튕겨 왼다리 양릉천.
셋째 수 삼성쇄혈(三星鎖穴).
침끝 셋의 소리는 비보다 작다.
결과는 작지 않다.
한백교의 왼쪽 무릎과 오른손이 젖은 바닥에 닿는다.
대나무 우산은 독침을 품은 채 뒤집힌다.
견정·곡지·양릉천에는 빈 은침 셋.
한백교는 왼팔도 오른팔도 왼다리도 못 쓴다.
침통과 독환에도 손대지 못한다.
"죽이지는 않는구려."
"장로께서 말할 번호가 남았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비가 그칠 때까지 그대로 계실 겁니다."
무연이 일어서려 한다.
갈비의 침이 심장 쪽으로 한 번 떤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넘친다.
무연의 이마가 젖은 마루에 닿는다.
왼손 새끼손가락부터 손목까지 하얗게 질린다.
'아직 끝이 아니다.'
"진 형! 침 건드리지 마시오!"
도현이 무연의 몸을 옆으로 돌리고 갈비 주변 세 혈에 굵은 치료침을 놓았다.
소담은 종줄을 버리고 달려왔지만 무연의 몸을 먼저 들지 않았다.
"어디를 잡아야 해요?"
"오른어깨와 허리. 왼쪽 갈비는 비워 두시오. 소 주인, 불을 낮추고 따뜻한 물을!"
"장부부터."
무연의 말끝에서 숨이 끊겼다.
"이번에는 환자 말 안 듣네."
"한백교가 벽을 봤습니다. 지금 꺼내지 않으면 구문악이 불을 보냅니다. 세 사람이 함께 열어야 합니다."
만복이 무연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빠져도 셋은 남는다는 말을 이렇게 증명하냐?"
"남아 주십시오."
"떠난다는 말부터 거둬."
무연은 젖은 마루에서 숨을 두 번 나눠 쉬었다.
"안 떠나겠습니다."
'안 떠난다.'
그제야 만복이 열쇠를 들었다.
종을 들은 장포두와 포졸들이 돌다리를 건너왔다.
장포두는 물사발의 은침, 무연의 기문혈, 뒤집힌 우산, 움직이지 못하는 한백교를 차례로 보았다.
"누가 먼저 암기를 쐈소?"
"내가 쐈소. 저 점소이가 돌렸고."
장포두는 한백교의 푸른 장갑을 벗기고 두 손을 포승으로 묶었다.
아흔넷 독침이 거꾸로 선 우산은 젖은 삼베 두 겹에 싸서 현행 증거로 봉했다.
만복과 소담, 도현은 폐수로로 내려갔다.
나설은 설망 검집을 들고 따랐고 장포두는 철함을 들었다.
무연은 들것에 누워 천장의 물방울을 세었다.
셋째 배수 홈에서 만복이 무릎을 꿇었다.
열쇠는 돌 틈의 쇠고리에 맞았다.
반 바퀴 돌리자 벽돌 하나가 앞으로 밀려 나왔다.
삼베 꾸러미에서 젖은 흙과 명반 먹 냄새가 났다.
"연화가 마지막으로 묶은 매듭이다."
만복은 혼자 풀지 않았다.
첫 매듭은 소담이, 둘째는 도현이, 마지막은 만복이 풀었다.
'세 사람이 연다.'
검은 물처럼 얼룩진 장부가 나왔다.
장부에는 날짜, 창고 표식, 채무 번호, 서리 인장이 맞물려 있었다.
"원본만 내면 위조라고 할 겁니다."
소담이 말했다.
"그래서 각자 베낀다. 소금전 영수증과 사공 품삯표도 날 밝으면 가져오라 하마."
"봉함 전에는 한 사람 손에 두지 맙시다."
도현이 자기 약상자를 비워 종이를 폈다.
그들은 부엌에 탁자 셋을 붙였다.
만복, 소담, 도현은 같은 장을 각자 베꼈다.
한 사람이 읽고 두 사람이 획과 숫자를 맞췄다.
틀린 획에는 붉은 점을 찍고 다시 썼다.
장포두는 매 장의 모서리에 관인을 반씩 찍었다.
만복과 소담, 도현이 봉함띠 세 곳에 각자 이름을 썼다.
사본은 상인계와 도현, 소담이 하나씩 맡는다.
"원본 하나를 태워도 셋이 남소."
'하나를 태워도 셋.'
장포두가 말했다.
"사본 하나를 빼앗아도 원본과 두 장의 획이 맞습니다."
소담이 붓을 놓았다.
나설은 장부 첫 줄을 손톱으로 짚었다.
`청류 표행 해산 비용, 서진 삼백 냥, 지급주 구문악.`
밖에서는 빗속 수레가 멎었다.
무거운 발 하나가 객잔 돌계단에 올랐다.
"해산 비용이 아니오. 그날 청류문 사람들의 퇴로를 닫은 창고 삯과 횃불값이오. 이 번호는 내가 회주 내고에서 보았소."
아홉 번째 나무패가 앞면으로 돌아갔다.
소담은 홈통 하나, 우산 독침 아흔넷, 돌벽 불침 자국 셋이라고 적다가 붓을 멈췄다.
문밖의 남자가 우산도 없이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사본이 셋이면 불도 셋이면 되겠군."
구문악의 목소리였다.
'구문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