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소이 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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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웹툰 · 15컷

독 든 솥

이틀 뒤 늦봄 점심, 귀래객잔의 큰 국솥이 다시 끓었다.

소담이 파기름 한 국자를 두르자 맑은 국물 위로 초록빛 원이 퍼졌다.

닷새 동안 비거나 뒤집혔던 탁자 열둘 중 아홉 자리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네 차례 소란을 겪고도 돌아온 얼굴들이었다.

만복은 갈라진 젓가락통을 새 대나무 띠로 두른 뒤 계산대 위에 올렸다.

"보기 좋군요."

"갈라진 자리를 가렸으니 좋아 보이는 거다. 고친 건 아니야."

"그럼 왜 올려 두셨습니까?"

"네가 잊을까 봐. 넷째 패는 그 옆이다."

무연은 손님 앞에 빈 그릇을 놓았다.

오른손으로 잡은 사기그릇은 무거운지 가벼운지만 알 수 있었다.

햇볕에 데워진 온기는 손바닥까지 오지 않았다.

'온기가 없다.'

백도현이 그 손을 보며 말했다.

"오늘도 세 그릇만 나르고 쉬게."

"손님이 아홉 상입니다."

"그래서 숫자를 셌네. 세 그릇씩 세 번 나르면 중간에 맥을 짚을 수 있지."

"그건 쉬는 게 아닙니다."

"자네가 말을 알아들었으니 치료의 절반은 됐군."

소담이 국자를 큰 솥에 넣었다.

첫 그릇을 뜨려던 손이 멈췄다.

"오라버니."

목소리가 낮았다.

무연은 국물보다 소담의 코끝을 보았다.

그녀가 냄새를 찾을 때는 콧방울보다 왼쪽 눈썹이 먼저 움직였다.

'소담이 먼저 찾았다.'

"지난번 그 냄새가 나요. 아주 조금."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식부터 멈추게."

한 손님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또 무슨 일인가? 배가 고파 죽겠는데."

무연은 큰 솥과 작은 솥 사이에 섰다.

"확인할 냄새가 있습니다. 아직 독이라고 말씀드릴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확인 전에는 한 숟갈도 권하지 않겠습니다."

"독인지도 모르는데 장사를 세워?"

"모른다는 말을 숨긴 채 드시는 것보다 낫습니다. 기다리지 않으실 분께는 값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모르는 채 먹일 수는 없다.'

만복이 주판을 끌어당겼다.

"오늘 국값은 내가 물겠소. 기다리는 분은 차를 드리되 주전자에도 손대지 마시오."

창가의 남녀가 동시에 웃는다.

얼굴선만 닮은 게 아니다.

눈웃음이 닫히는 때까지 같다.

여자는 연녹색 소매를 걷는다.

남자의 등에는 가는 황동관 둘.

'이번엔 손이 아니다.'

여자가 말한다.

"냄새 하나로 사람을 굶기면 너무하잖아요. 저희가 약재를 파니 봐 드릴까요?"

"어떤 약재를 파십니까?"

"쓰러진 사람을 깨우는 것과 깨어 있는 사람을 재우는 것. 손님이 원하는 쪽으로요."

도현이 기록첩을 닫는다.

"이름은?"

"독비. 이쪽은 제 동생 독오예요. 흑사회에서는 쌍동이라 부르지요."

홀의 의자 다리가 한꺼번에 끌린다.

일어난 손님들이 서로의 길을 막는다.

'뛰면 막힌다.'

무연이 손을 든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서쪽 문으로 두 분씩 나가시면 됩니다. 코와 입은 소매로 가리십시오."

독오가 황동관 끝을 탁자 아래로 내린다.

"냄새를 맡고도 차분하군. 네 번이나 손을 내줬다기에, 이번에는 잡을 손도 밟을 발도 드리지 않았답니다."

독비가 큰 솥으로 다가온다.

무연이 한 걸음 막자 그녀는 빈 두 손을 펼친다.

"칼도 없고 독도 없어요. 점소이 도련님이 손님을 밀칠 건가요?"

"그 자리에 계십시오."

"국이 상했는지 냄새만 맡겠다는데요?"

소담이 국자를 뽑는다.

나무 손잡이와 쇠가 맞닿은 홈 아래.

녹색 가루가 눌어붙어 있다.

국물이 닿을 때마다 한 겹씩 녹아 솥으로 흐른다.

'솥과 공기, 두 길.'

도현이 은제 약숟가락으로 가루를 긁는다.

은빛에 잿빛 얼룩이 번진다.

"청린산(靑燐散)이다. 배에 들어가면 반 각 뒤 혀부터 굳는다."

독비가 손뼉을 한 번 친다.

"역시 의원 눈은 빌릴 만하네요. 솥을 그대로 두고 손님만 내보내면 증거도 얻고 사람도 살겠지요. 아주 바른 선택이에요."

그녀의 시선이 솥이 아닌 독오의 오른손으로 간다.

독오 엄지 아래서 부싯돌이 반짝인다.

무연은 큰 솥을 본다.

독국을 봉하면 관아에 낼 시료가 된다.

검은 물과 인신 채무를 증명할 첫 물건일지도 모른다.

'증거인가, 목숨인가.'

소담은 그 시선을 읽는다.

"몇 그릇이에요?"

"무엇이 말입니까?"

"저 솥에서 나오는 국."

"열여덟 그릇입니다."

"그러면 죽을 목숨도 열여덟이에요. 증거 한 솥하고 바꾸지 않아요."

"소담 씨, 잠깐만—"

"내 솥이고 내가 끓였어요. 사람보다 비싼 솥이면 주인어른이 오늘 당장 날 자르세요."

만복이 계산대에서 소리쳤다.

"그 솥은 내 거다!"

소담의 두 손이 손잡이에 걸린다.

"그러면 같이 엎어요!"

만복이 달려와 반대쪽 손잡이를 잡는다.

두 사람은 솥을 배수구에서 먼 동쪽 벽으로 기울인다.

뜨거운 국물이 바닥을 덮는다.

솥 테두리가 돌바닥에 닿으며 길게 갈라진다.

섭취 독의 길이 끊긴다.

'내가 늦었다.'

독오의 부싯돌이 황동관 심지에 닿는다.

칙.

청색 연무가 탁자 아래서 피어난다.

독오는 발꿈치로 서쪽 문빗장을 걷어차 닫는다.

독비가 동쪽 창호의 걸쇠를 내린다.

연무는 따뜻한 공기를 타고 천장으로 오른다.

곧 기둥을 따라 사람 머리 높이로 내려온다.

"청린산은 버리셨네요."

독비가 녹색 약병을 손끝에서 돌렸다.

"하지만 폐월미혼연(閉月迷魂煙)은 벌써 드셨어요. 이 해독약은 한 병뿐인데 누구부터 살릴까요? 주인? 의원? 아니면 저 용감한 동료?"

소담이 기침하며 묻는다.

"손님은요?"

"손님까지 세면 선택이 어려워지잖아요."

"그러니까 네 계산은 늘 틀려."

소담은 가까운 송진등 둘을 젖은 행주로 덮는다.

불꽃이 꺼지자 뜨거운 상승류가 약해진다.

청색 띠가 사람 어깨 높이에 걸린다.

'불을 끄면 높이가 바뀐다.'

도현이 손님들을 바닥 가까이 앉힌다.

"젖은 천으로 입을 막으시오.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시오.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말고 동쪽 벽을 보시오."

만복의 입술 가장자리가 푸르게 변한다.

도현도 명령 끝마다 목이 잠긴다.

무연은 자기 코보다 도현의 입술을 본다.

'내 코는 믿지 않는다.'

독오는 황동관 하나를 들고 원을 그린다.

관 끝의 연무가 푸른 채찍처럼 휜다.

오독추혼무(五毒追魂霧).

내쉬는 숨을 쫓아 코와 입으로 파고드는 독공.

독비는 양손에 녹색 약가루를 묻힌다.

독사쇄후조(毒蛇鎖喉爪)가 무연의 목과 쇄골을 번갈아 노린다.

닿지 않아도 손끝 가루가 숨길에 흩어진다.

무연은 물러나지 못한다.

뒤에는 숨을 길게 내쉬는 손님들.

'뒤로 갈 수 없다.'

독비의 첫 조가 턱밑을 스친다.

무연은 고개만 반 치 기울인다.

녹색 손톱이 앞치마 끈을 끊는다.

독오의 연무 채찍이 허리를 감싼다.

청색 띠가 왼쪽 갈비를 지나자 묵은 냉기가 뼈 사이를 누른다.

들이쉬면 독이 들어온다.

참으면 회류를 만들 수 없다.

"점소이 도련님."

독비가 약병을 흔든다.

"장부가 있는 곳만 말해요. 한 사람은 확실히 살려 드릴게요."

"한 사람뿐입니까?"

"욕심이 많으시네."

"아닙니다. 약이 부족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무연은 바닥에 손바닥을 대지 않는다.

오른손은 뜨거운 국물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돌 틈의 끓음 소리를 듣는다.

맨발 아래로 오르는 김을 읽는다.

'바람은 이미 있다.'

"소담 씨, 등은 모두 껐습니까?"

"셋 남았어요. 서쪽 둘, 계산대 하나."

"주인어른, 서쪽 걸쇠를 한 치만 여실 수 있습니까?"

"문 앞에 독오가 있다."

"문이 아니라 위쪽 창살입니다."

만복이 계산대 뒤의 긴 장대를 민다.

창살 하나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들린다.

바깥의 찬 공기가 가는 실처럼 들어온다.

"백 의원님, 모두에게 같은 벽을 보고 숨을 내쉬게 하십시오."

도현이 기침 사이로 외친다.

"내 말 들리면 동쪽을 보시오! 셋을 세고 길게 내쉬시오. 하나, 둘, 셋!"

열한 사람의 날숨이 한쪽으로 모인다.

청류십결의 오결, 회류청심결(回流淸心訣).

해독약을 만드는 심법은 아니다.

몸과 물 사이의 독을 짧은 출구로 돌리는 호흡결.

숨 하나면 한 사람만 살린다.

여러 숨을 이으려면 모두 같은 박자를 골라야 한다.

무연은 없는 바람을 만들지 않는다.

바닥의 김과 문틈의 가는 바람.

사람들이 내뱉는 날숨까지 한 고리로 잇는다.

첫 호흡.

'내 몸부터 길을 낸다.'

그는 짧게 들이마신다.

청색 연무 한 줄이 폐 어귀까지 들어온다.

단전의 온기가 독 뒤를 민다.

독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의 몸을 돌아 젖은 앞치마로 빠져나온다.

앞치마 끝이 푸르게 물든다.

둘째 호흡.

'열한 숨이 하나.'

손님들의 날숨이 동쪽 벽을 치고 오른다.

꺼진 등 아래의 찬 공기가 그 숨을 서쪽으로 민다.

바닥의 수증기가 낮은 고리를 닫는다.

독오가 황동관을 휘둘러 회류를 끊으려 한다.

관이 공기를 가르자 고리가 빨라진다.

그 원심력이 청색 연무를 관 입구에 감는다.

"누나, 바람이 돌아와!"

"반면포를 바꿔!"

독비가 무연의 목을 다시 찌른다.

무연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는다.

국물 위로 한 발 물러선다.

팔꿈치로 젖은 앞치마를 튕긴다.

푸른 천 끝이 독비 손등을 덮는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켠다.

셋째 호흡.

'관으로 돌린다.'

무연은 참았던 숨을 황동관 쪽으로 길게 내보낸다.

손님들의 날숨, 바닥의 김, 창살의 찬 바람이 좁은 관 입구로 모인다.

회류가 닫힌다.

청색 연무가 독오의 관으로 거꾸로 빨려 든다.

불붙은 심지가 관 속에서 밝아진다.

독오가 관을 놓으려 한다.

하지만 끈은 팔뚝에 감긴 채다.

역류한 연무가 그의 반면포 안으로 솟는다.

독비가 녹색 약병 마개를 연다.

회류가 약병의 쓴 향까지 낚아챈다.

가루가 그녀의 코앞에서 소용돌이친다.

"이건 내 독이야!"

"그래서 돌아갈 길을 잘 알 겁니다."

독비와 독오의 무릎이 함께 꺾인다.

황동관 둘이 안쪽을 향한 채 떨어진다.

청색 연무는 더는 손님 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독오가 일어나려 손을 짚는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오므라든다.

독비는 약병을 찾으려 한다.

팔꿈치가 굽은 채 펴지지 않는다.

공격도 도주도 불가능.

'끝. 이제 숨을 돌린다.'

도현이 가장 먼저 창살을 전부 열었다.

"숨을 멈추지 마시오. 이제 서쪽을 보고 천천히 내쉬시오. 독기가 빠질 때까지 일어나지 마시오."

무연이 쌍둥이에게 다가가자 도현이 앞을 막았다.

"자네는 거기 앉게. 저 둘은 자기 독의 양을 알 테니 지금은 자네보다 덜 급해."

"그래도 해독을—"

"죽게 두지 않네. 순서는 내가 정해."

도현은 쌍둥이의 반면포를 벗기고 손목을 서로 다른 식탁 다리에 묶게 했다.

만복은 손님 한 사람씩 이름과 먹은 것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

소담은 깨진 솥 가장자리에서 녹지 않은 가루를 작은 사기잔에 덜어 뚜껑을 덮었다.

"이번에는 버리지 않았어요."

"사람이 다 나온 다음이니까요."

"오라버니가 막을 줄 알았어요. 솥 엎는 것 말이에요."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늦었습니다. 다행히도."

소담은 기침하다 웃었다.

"그 말은 기억해 둘게요."

독비가 식탁 다리에 기대 헐떡였다.

푸른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국 냄새만 나는 집인 줄 알았는데…… 아래에서 명반 먹 냄새가 올라오네요. 젖은 돌벽에 밴 오래된 먹. 그 장부, 아직 있군요."

홀의 소리가 멎었다.

무연은 만복을 보았다.

만복은 지하 창고 열쇠를 허리에서 풀어 손안에 감췄다.

'또 장부다.'

"무슨 장부입니까?"

"지금은 사람들 숨부터 돌려라."

"이번에도 나중입니까?"

"해 지기 전에는 말하마."

무연은 더 묻지 않았다.

처음으로 만복이 시간을 정해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해 지기 전.'

다섯째 수리패에는 `국 열여덟 그릇, 큰 솥 하나, 점심 장사`가 새겨졌다.

만복은 끝에 작은 글씨를 더 팠다.

`소담의 삯에서는 빼지 않음.`

소담이 패를 빼앗아 읽었다.

"당연한 걸 왜 새겨요?"

"내가 잊을까 봐."

무연은 도현의 손에 이끌려 웃옷을 걷었다.

갈비 아래에는 먹빛 반점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번져 있었다.

"이제 손 문제가 아니네."

"손님들은 어떻습니까?"

"모두 살아서 자네 걱정을 할 만큼 성가셔질 걸세. 자네도 그 성가신 사람 중 하나고."

빈 솥에서는 더는 김이 나지 않았다.

만복은 웃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 안에서 지하 창고 열쇠가 살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