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소이 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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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웹툰 · 21컷

젖은 수건 한 장

늦봄 저녁의 강바람이 귀래객잔 문발을 밀었다.

문발이 펄럭였다.

강 냄새가 파 냄새와 섞였고 진무연은 국수 그릇을 쟁반에 올렸다.

국물은 끝까지 가득.

파 세 조각만 꼼짝없었다.

'이것만 내면 오늘도 끝인가?'

스물아홉 살인 그는 여기서 무연이라 불렸다.

성을 묻는 손님도 가끔 있었고 그럴 때는 국이 식는다고 했다.

고향을 물으면 면이 분다고 했고 일을 건네면 질문은 대개 끝났다.

연소담이 빈 주전자 둘을 들고 왔고 붉은 머리끈은 어깨에서 통통 튀었다.

"파가 세 조각인데요?"

"그렇네요."

"백 의원님 건 늘 두 조각이잖아요."

"한 조각이 따라왔나 봅니다."

소담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농담이 너무 늦게 와요."

달칵.

계산대에서 주판알이 튀었다.

소만복이 무연을 째려봤다.

"말할 틈 있으면 서쪽 상 치워라."

"곧 치우겠습니다."

"백 의원 외상도 오늘까지야."

"지난번에도 오늘까지였습니다."

"오늘이 아직 안 끝났잖아."

창가의 백도현이 침통을 밀자 다 해진 소매에서 약 냄새가 났다.

무연은 그 앞에 국수를 놓았다.

"사람 목숨은 외상도 달아 주면서 말이야."

"국수 한 그릇에는 참 야박하군."

만복이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은 또 오지만 국수는 안 돌아오니까."

쿵.

남쪽 탁자에서 사발이 넘어졌다.

술은 바닥까지 길게 흘렀고 우칠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깨는 크게 흔들렸지만 발은 바닥에 딱 붙어 있었다.

'발은 안 흔들리네.'

'취한 척이네.'

걷어붙인 팔에는 검은 뱀이 굵은 팔을 세 번 감고 있었다.

빈 술병은 둘뿐.

우칠의 두 눈은 멀쩡했다.

"이 집 술은 물이 반이야."

"이걸 팔고 돈도 받나?"

객잔이 조용해졌다.

만복이 주판에서 손을 떼자 그 손은 계산대 밑으로 내려갔다.

짤랑.

돈궤 열쇠가 작게 울렸다.

"입에 안 맞으면 술값은 안 받겠소."

"안주도 새로 내드리지."

우칠이 피식 웃었다.

"내가 술값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탁.

검은 손톱이 탁자를 때렸고 손톱 밑에는 먹이 끼어 있었다.

"석 달이야, 소가 놈아."

"길을 공짜로 쓴 지 석 달이라고."

만복의 턱이 굳었다.

"보호세라면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이제 말이 좀 통하네."

우칠이 손님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누구 덕에 배가 안 털리는지도 알겠지?"

젓가락 소리가 뚝 끊겼다.

무연은 우칠의 얼굴 대신 두 손을 먼저 봤다.

'오른손은 빈손.'

'왼손은 허리 뒤.'

문까지는 여섯 걸음.

우칠과 도현 사이에는 탁자 하나.

소담 뒤에는 뜨거운 차솥.

'아직 싸울 때는 아니야.'

무연은 쟁반부터 내려놨다.

"소담 씨, 차솥부터 옮겨요."

"갑자기요?"

"손님이 일어나실 것 같습니다."

우칠이 크게 웃었다.

"눈치는 빠른 점소이네."

"네가 주인 대신 낼래?"

"제 삯으로는 모자랍니다."

"돈만 모자란 건 아니지."

백도현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탁.

작은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술에는 물을 안 탔네."

"자네 혀가 마른 거야."

우칠의 눈썹이 꿈틀했다.

도현은 짠 육포 접시를 가리켰다.

"오기 전에 저걸 먹었겠지."

"거짓말하려면 입부터 씻게."

우칠의 웃음이 사라졌다.

"약쟁이는 손가락이 밥줄이라지?"

도현이 손을 탁자에 올렸다.

"그래서 자네처럼 막 휘두르지 않지."

드르륵.

의자가 거칠게 밀렸다.

우칠이 도현의 옷깃을 잡았다.

도현의 발꿈치가 바닥에서 떴다.

소담이 숨을 삼켰다.

만복은 계산대를 돌아 나왔다.

"손님은 놓으시오."

"보호세 이야기는 나하고 합시다."

"손님 앞에서 안 냈잖아."

"그럼 손님 앞에서 맞아야지."

우칠의 오른 주먹이 올라갔다.

도현의 얼굴은 바로 코앞.

'가만히 두면 의원이 맞아.'

'그것도 내가 고른 결과.'

무연은 탁자의 물수건을 집었다.

수건은 아직 미지근했다.

축축한 물기가 손바닥에 배었다.

'한 번만 더 묻자.'

그는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 손을 놓으십시오."

우칠이 무연을 내려다봤다.

"싫다면?"

"나가실 길은 열어 드립니다."

"뭘 믿고 까부는 거냐?"

"여기가 밥 먹는 자리라는 걸 믿습니다."

우칠이 도현을 놓았다.

하지만 물러나지는 않았다.

휙.

오른 주먹이 무연의 턱을 노렸다.

무연은 반걸음 옆으로 비켰다.

주먹이 앞치마 끈을 스친다.

반격은 없다.

젖은 수건만 우칠의 손등에 내려앉는다.

"내 손이라도 닦아 주게?"

"마지막으로 길을 드리는 겁니다."

"그 길은 네가 기어가라."

우칠이 수건을 움켜쥐고 잡아당긴다.

팽.

수건이 팽팽해진다.

'걸렸다.'

무연은 버티지 않는다.

힘이 오는 쪽으로 반걸음 파고든다.

오른발은 셋째 마룻장의 못을 피한다.

허리는 우칠의 팔과 나란해진다.

힘을 막으면 서로 부딪친다.

따라가면 힘의 길이 보인다.

무연의 손목이 안으로 반 바퀴 돈다.

수건 한쪽은 우칠의 엄지를 감는다.

다른 쪽은 두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축축한 천이 버들잎처럼 휜다.

그 끝은 손목 아래에서 좁아진다.

우칠이 더 세게 당긴다.

'이 정도면 돼.'

당기는 힘이 자기 엄지를 벌린다.

우칠의 손목이 바깥으로 꺾인다.

팔꿈치가 번쩍 들린다.

"이놈이!"

우칠은 수건을 놓지 않는다.

왼손이 허리 뒤로 들어간다.

쑥.

소나무 몽둥이가 뽑힌다.

길이는 한 자 반쯤.

우칠의 왼어깨가 먼저 돈다.

'왼손도 온다.'

몽둥이 끝은 무연을 향하지 않는다.

노리는 곳은 도현의 관자놀이.

'숨기려면 지금 놓아야 하나?'

'놓으면 도현이 맞아.'

몽둥이가 먼저 움직인다.

'끝내자.'

무연의 뒤꿈치가 바닥에 붙는다.

들린 팔꿈치 밑에 팔을 댄다.

수건 고리를 손목에서 팔꿈치로 밀어 올린다.

우칠의 오른팔과 왼어깨가 한 선에 걸린다.

청류십결 일결, 유엽전수(柳葉纏手).

버들잎은 바람과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방향만 바꾼다.

무연이 수건 끝을 탁 내린다.

큰 힘은 필요 없다.

우칠이 만든 힘이면 충분하다.

오른팔은 당기고 왼팔은 몽둥이를 휘두른다.

두 힘이 팔꿈치에서 만난다.

무연은 그 점을 탁자 쪽으로 옮긴다.

딱 한 뼘.

휙.

몽둥이가 도현의 머리 위를 가른다.

쾅.

몽둥이가 기둥을 때린다.

우칠의 왼손이 충격으로 튀어 오른다.

오른 손목은 수건을 따라 안으로 말린다.

들린 팔꿈치는 탁자보다 낮아진다.

털썩.

우칠의 오른 무릎이 마룻바닥을 찍는다.

데굴데굴.

몽둥이는 탁자 밑으로 굴러간다.

오른팔은 탁자 모서리에 딱 붙는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꼼짝 못 한다.

"놔!"

"팔 부러진다!"

"아직은 안 부러졌습니다."

"움직이면 그때 부러집니다."

우칠의 목에 핏줄이 섰다.

"나 흑사회 사람이야!"

"이 나루에서 장사 못 하게 해 주지!"

"장사는 주인어른이 하십니다."

"저는 그릇을 나릅니다."

"죽여 버릴 거야!"

"너부터 여기 있는 놈들까지 전부!"

무연의 검지가 반 치 움직였다.

곡지혈이 수건 아래에서 눌렸다.

"컥."

우칠의 욕이 숨과 함께 막혔다.

"말은 남겨 두겠습니다."

"나중에 그대로 증언하십시오."

도현이 구겨진 옷깃을 펴며 우칠의 손가락 색을 살폈다.

"뼈는 멀쩡하네."

"피도 아직 잘 도는군."

"딱 겁먹을 만큼만 눌렀어."

"의원님은 국수부터 드십시오."

"다 불었습니다."

"내 국수보다 자네 손이 먼저야."

무연이 수건을 천천히 풀자 우칠은 오른팔을 감싸 쥐었다.

그는 문밖으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무연은 뒤쫓지 않았다.

넘어진 의자부터 세웠다.

몽둥이는 발끝으로 문밖에 밀어 놨다.

도현이 무연의 왼손을 잡자 새끼손가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건 오늘 생긴 냉기가 아니야."

"물수건을 오래 잡았습니다."

도현이 젖은 수건을 들었다.

"젖은 건 오른손이었네."

'역시 그냥 넘기지는 않네.'

무연은 대답 대신 탁자를 닦았고 모서리에는 얕은 흠집이 생겨 있었다.

사각사각.

만복이 나무패에 먹을 칠하고 첫 번째 패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탁자 모서리라고 적혔다.

"수건으로 끝냈으면 수건만 망쳐야지."

"왜 멀쩡한 탁자까지 잡았어?"

"제 삯에서 빼시겠습니까?"

"빼 주면 또 떠날 핑계로 쓰겠지."

만복이 나무패를 탁 걸었다.

"내일도 해 뜨기 전에 나와."

"탁자 모서리는 네가 갈아."

무연은 잠깐 말이 없었다.

'안 내쫓는 건가?'

"알겠습니다."

툭.

소담이 주전자로 무연의 팔을 건드렸다.

"저 사람 안 취했죠?"

"예."

"오라버니도 평범한 점소이는 아니죠?"

무연은 흩어진 주문패를 모았다.

작은 것부터 차례로 맞췄다.

"서쪽 상부터 치워야 합니다."

"또 피하네요."

"오늘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만복이 했던 말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구석의 늙은 사공이 일어났다.

그는 동전 세 닢을 포개 놨다.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둘뿐.

그 손이 문밖을 가리켰다.

"내가 다 봤네."

"저자가 먼저 의원 멱살을 잡았어."

"몽둥이도 저자가 먼저 뽑았지."

"관아에서 물으면 그대로 말하겠네."

만복이 동전 하나를 돌려줬다.

"국값은 두 닢이오."

"증언값까지 받을 생각은 없소."

사공이 동전을 다시 밀었다.

"이건 탁자값일세."

"다음에 서서 먹기는 싫거든."

옆자리 손님도 사발을 주워 왔다.

다행히 사발은 깨지지 않았다.

가장자리에서 술이 똑똑 떨어졌다.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칠은 멀쩡한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취객 행패라고 적지는 마십시오."

만복은 두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고 외상 장부의 빈 면을 펼쳤다.

그는 시각과 앉았던 자리만 적었다.

무연의 손이 주문패 위에서 멈췄다.

'도망치지 않는 사람도 있네.'

그들은 지켜 준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자리를 남겼다.

"주인어른, 이름도 적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적으면 흑사회가 먼저 찾아가."

"관아가 오면 그때 고르게 할 거다."

소담이 쟁반을 두 번 두드렸다.

탁, 탁.

무연은 그 뜻을 묻지 않았다.

그때, 문밖 골목.

우칠만 있는 게 아니다.

처마 밑 사내가 바닥의 검은 뱀패를 줍는다.

'한 명 더 있었나?'

사내는 객잔 안을 빠르게 훑는다.

먼저 탁자 흠집을 본다.

다음은 젖은 수건.

마지막은 셋째 마룻장.

'발까지 봤어.'

사내는 우칠을 부축하지 않는다.

검은 패만 소매에 넣는다.

그는 먼저 골목을 빠져나간다.

골목 끝에서 검은 패가 번쩍인다.

뱀 아래에는 손톱 셋.

찰칵.

검은 패가 뒤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