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뒤 초여름 사흘째 낮, 그을린 귀래 현판은 홀 한가운데 수리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이틀 동안 나루 사람들은 그을린 현판을 수리대에 올리고 지붕 세 칸의 탄 기와를 내렸다.
`歸` 자의 절반은 먹빛보다 검었다.
소금배 닻줄은 새 쇠고리에 이미 묶였지만 만복은 현판을 달지 않았다.
화살 구멍과 그을음 위치를 장포두가 한 번 더 그려 간 뒤에야 나무를 덧댈 생각이었다.
소담이 작은 붓으로 구멍 둘레에 동그라미를 쳤다.
"일곱 개 맞죠?"
"네. 여덟째 화살은 가장자리를 깨고 나갔습니다."
"그 화살 말고요. 오라버니가 숨긴 것."
무연은 나무 가루를 쓸던 손을 멈췄다.
"어제 장포두 진술이 끝나면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끝났어요."
"봉함 사본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본이 오면 그다음에는 지붕 수리가 끝나야 한다고 하겠죠."
"순서를 정하려는 겁니다."
"내가 남을지 정하는 데 필요한 순서는 내가 정해요. 얼마나 위험한지, 왜 여기 숨었는지, 지금 떠날 생각인지. 이름은 마지막이어도 돼요."
만복이 계산대에서 헛기침했다.
"나는 다 들었다. 계속해."
도현도 약상자를 열어 붉은 맥진실을 꺼냈다.
"나는 손부터 듣겠네. 어제 피가 왜 나왔는지까지."
무연은 세 사람을 보았다.
답을 줄 범위를 또 자기 혼자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내가 범위를 정했다.'
"정오 진술 사본이 오면—"
"그 시각은 내가 가져가겠소."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어온다.
'시각을 빼앗겼다.'
그녀는 큰 키에 검은 협수의를 입고 있다.
왼광대에는 얕은 칼흔.
오른발은 반 치 뒤.
허리에는 장검 설망(雪網).
검은 뱀패 비늘은 적규보다 둘 많다.
회백색 검수 열둘이 문밖에 멈춘다.
누구도 칼을 뽑지 않는다.
여자가 말한다.
"흑사회 검대주 나설이오. 진무연, 청류문 마지막 전인. 맞소?"
소담의 붓끝에서 먹 한 방울이 떨어진다.
만복은 놀라지 않는다.
도현은 무연의 호흡을 본다.
무연은 문밖 퇴로와 열두 검수의 발을 센다.
모두 칼집에서 손을 뗀 채다.
민간인 길도 비어 있다.
'숨길 수 없다.'
"그 이름을 버린 적은 없습니다. 숨긴 적은 있습니다."
소담이 아주 천천히 그를 본다.
"진무연."
그의 본명을 시험하듯 한 번 부른다.
"네."
"청류문도 사실이에요?"
"마지막 전인입니다. 십이 년 전 살아남았습니다."
"지금 떠날 생각은요?"
무연은 대답하기 전에 나설을 본다.
소담이 말한다.
"저 사람 대답 말고 오라버니 대답이요."
'내 대답이다.'
"오늘은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 다음은 싸움 끝나고 듣겠어요. 나는 지금도 안 나가요."
나설의 회갈색 눈이 소담에게 옮겨 간다.
"연소담 낭자. 쟁반 두 번은 서쪽 피난, 빈 동이 높은 소리는 동쪽. 보고와 맞소."
"내 이름까지 읽었네요."
"전술 행위자 이름은 확인하오. 민간인이라 지우면 다음 보고가 틀리니까."
"그러면 보고 하나 더 적어요. 남을지는 내가 정한다고."
나설은 대답하지 않고 검대 부하를 돌아본다.
"진시 삼 각. 민간인 퇴로를 열고 서쪽 돌담 밖에서 대기하게. 내 명령 없이는 발검하지 말게."
"대주, 후속 시각은—"
"내가 맡는다. 열둘 모두 나가게."
검수들은 망설이다 물러난다.
포졸 둘은 길 건너에서 기록한다.
나설은 접은 종이 일곱 장을 현판 위에 펼친다.
'일곱 길을 모두 막았다.'
"첫째. 젖은 천으로 손목 힘을 감았소."
첫 보고 옆에 마른 수건을 놓는다.
"둘째. 마룻장 반동과 세 곤의 압력을 바꿨소."
그녀는 셋째 마룻장에 두꺼운 깔개를 편다.
"셋째. 접촉한 관절과 혈도를 역봉했소."
나설은 무연의 팔보다 한 자 먼 곳에 선다.
"넷째. 젓가락으로 병기 진동을 읽었소. 다섯째. 김과 날숨으로 독로를 돌렸소. 여섯째. 빗자루와 기둥으로 쇄겸을 감았소. 일곱째. 여러 사람이 물과 그물을 당겼소."
소담과 만복은 홀 물건을 밖으로 옮긴다.
젓가락통, 물주전자, 빗자루, 행주가 사라진다.
열린 창호에는 김도 연기도 없다.
손님도 없다.
가운데 남은 건 무거운 현판 수리대뿐.
'남은 건 몸뿐.'
나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천도, 젖은 마루도, 대나무도, 솥김도, 긴 자루도, 여덟 사람이 당길 줄도 없소. 진 소협의 왼갈비가 한 호흡마다 늦는다는 보고도 있소."
"정확한 보고입니다."
"항복하고 장부 위치를 말하시오. 내 검대는 민간인을 베지 않소. 당신도 살려 데려가겠소."
"그 뒤에는요?"
나설의 엄지가 설망 엄지받침을 한 번 누른다.
"내가 책임지오."
"그 대답을 믿을 수 없다는 걸 본인도 아시는군요."
나설의 엄지가 다시 누른다.
두 번째.
'거짓말.'
소담이 쟁반을 든다.
나설의 시선이 쟁반에 한 번 머문다.
무연은 아무것도 들지 않는다.
일곱 결을 못 써서가 아니다.
나설은 결과와 거리를 모두 안다.
같은 답을 되풀이하면 기다린 검망으로 들어간다.
'같은 답은 검망으로 간다.'
나설이 오른발을 반 치 더 뒤로 뺀다.
유수망검(流水網劍)의 칠성쇄로(七星鎖路).
설망은 아직 검집 안.
하지만 나설의 일곱 발이 보이지 않는 검선을 그린다.
오른쪽은 갈비가 검끝에 닿는다.
왼쪽은 수리대가 발목을 막는다.
뒤는 열린 대로.
'움직이면 걸린다.'
"움직이지 않는군."
"대주께서도 뽑지 않으셨습니다."
"소담 낭자의 두 번째 소리를 기다리는 거요. 당신은 그 소리 뒤에 움직였소."
소담이 쟁반을 한 번 친다.
땅.
나설의 엄지가 세 번째로 엄지받침을 누른다.
거짓말할 때 세 번 누르는 손.
후속 시각도 책임도 거짓.
나설은 두 번째 소리를 기다린다.
소담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두 번째는 안 쳐요. 이번에는 내가 정했어요."
빈 소리.
'두 번째가 없다.'
나설은 즉시 기다림을 버린다.
검집째 앞으로 찌른다.
설망의 쇠끝이 왼쪽 견정혈과 갈비를 겨눈다.
설망격맥식(雪網擊脈式).
보고에 없던 수정.
나설은 한 호흡도 낭비하지 않는다.
무연은 물러서지 않는다.
검집보다 나설의 오른어깨 주름이 먼저 펴진다.
견갑이 안으로 모인다.
팔꿈치가 반 치 내려간다.
마지막에 엄지가 엄지받침을 민다.
'검보다 먼저 움직인다.'
견갑의 힘이 팔꿈치를 지나 엄지받침으로 내려온다.
그 첫 마디.
청류십결의 팔결, 무영절류검(無影截流劍).
그림자 없는 칼을 휘두르는 검법은 아니다.
검을 쓰겠다고 몸이 고른 첫 힘길을 자르는 절류식.
무연의 오른손날이 나설 어깨 앞 주름에 닿는다.
첫 절류.
'어깨.'
견갑의 힘이 팔꿈치로 못 가고 어깨 위로 솟는다.
검집 찌르기가 반 치 낮아져 갈비 앞을 스친다.
나설은 왼손으로 검집 끝을 잡는다.
쌍수 밀기로 바꾼다.
빙하침월식(氷河沈月式).
검집으로 가슴을 꿰뚫는 수정.
둘째 절류.
'팔꿈치.'
무연의 손날이 오른팔꿈치 안쪽을 받친다.
두 손의 힘 중 오른팔 절반만 위로 빈다.
검집이 비스듬히 들린다.
나설이 엄지로 설망을 뽑는다.
은빛 칼날이 한 치 나온다.
셋째 절류.
'엄지.'
무연은 칼날을 잡지 않는다.
나설의 손등에 자기 손등을 겹친다.
첫째 절류에서 솟은 어깨 힘을 검집으로 되민다.
딱.
설망이 검집 안으로 돌아간다.
검집 표면에 대각선 균열이 달린다.
'검은 나오지 않았다.'
나설의 오른어깨가 들린 채 굳는다.
엄지는 칼코등 위에 붙는다.
팔꿈치는 펴지지 않는다.
나설의 오른쪽 무릎이 바닥에 닿는다.
설망은 한 치 열린 채 멎는다.
오른어깨는 올라간 자세 그대로.
그녀가 왼손으로 검을 뽑으려 한다.
무연이 한 걸음 물러난다.
"왼손으로 뽑으시면 어깨 관절이 빠집니다. 이미 패하셨습니다."
"내 목을 베지 않을 거라는 보고도 맞군."
"대주께서는 민간인을 베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주를 벨 이유도 없습니다."
"나를 놓아주면 다음 명령이 온다."
"이미 왔습니다."
무연은 문밖 지붕을 본다.
송진이 아니다.
불붙은 봉랍 냄새.
'봉랍.'
서쪽 돌담 위로 검은 화살 셋이 솟는다.
객잔이 아닌 검수들의 퇴각선과 나설을 겨눈다.
"전원 엎드리게!"
나설이 처음으로 시각 대신 부하 이름을 부른다.
'처음으로 사람을 부른다.'
"여진, 강후, 모전! 서쪽 담 아래로!"
무연은 수리대 위 현판을 민다.
만복과 소담이 반대편을 든다.
세 사람은 현판을 문 앞에 세운다.
검은 화살 셋이 현판에 박힌다.
봉랍이 터지며 검은 먹종이가 흩어진다.
화살은 소각 명령과 흔적을 태우는 신호탄.
골목의 소각수 넷이 기름병을 들려 한다.
나설의 검대 열둘이 칼을 뽑는다.
"대주 명령은?"
나설은 굳은 오른어깨를 왼손으로 받친다.
"민간인 피난. 소각수 생포. 한 명도 죽이지 말게. 저 문서를 먼저 밟아 끄게."
검수들은 두 명씩 갈라진다.
셋은 피난로를 연다.
아홉은 소각수의 손목과 무릎을 검등으로 친다.
무연은 첫 기름병의 목을 수리대에 눌러 잡는다.
소각수들은 반 각도 버티지 못한다.
넷 모두 칼을 잃는다.
손목은 자기 허리끈에 묶인다.
나설은 불에 그을린 후속 소각 명령패를 소담 앞에 내려놓았다.
"실패하면 진무연과 장부뿐 아니라 나와 검대 열둘도 소각하라는 명령이오. 나는 부하에게 후속 시각만 말했고 표적은 말하지 않았소."
소담이 명령패를 집지 않았다.
"왜 이제 말해요?"
"내가 성공하면 실행되지 않을 명령이라 생각했소."
"성공하면 다른 사람들이 죽었겠죠."
"그렇소."
나설은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 우리 편은 아니에요. 치료받고, 부하 퇴로를 쓰고, 아는 명령을 순서대로 말해요. 그다음 어디 설지는 당신이 고르세요."
나설이 소담을 보았다.
"연 낭자의 한 번 신호도 보고에 남기겠소."
"흑사회 보고에는 쓰지 마요. 장포두 앞에서 직접 말해요."
도현이 나설 오른어깨에 붉은 맥진실을 감았다.
"팔은 오늘 안에 풀리겠지만 힘을 쓰면 빠지오. 붕대를 매겠소."
"먼저 진 소협을 보시오. 손끝 색이 돌아오지 않소."
무연은 오른손날로 쟁반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금속의 떨림이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울리지 않는다.'
소담이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
"진무연 오라버니."
처음으로 본명을 붙여 불렀다.
"네."
"오늘 다음에도 떠날지 내가 물을 거예요. 대답을 또 시각 뒤로 미루면 내 쟁반은 한 번도 안 울려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남아요. 이름을 몰라서 남은 게 아니니까."
'이름을 알아도 남았다.'
만복은 여덟째 수리패에 `설망 검집, 현판 수리대`를 새겼다.
고치지 않을 물건에는 작은 점을 찍었다.
장포두가 볼 때까지 균열과 칼흔을 그대로 남긴다는 표식이었다.
도현이 소각 명령패의 녹은 봉랍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봉랍 안쪽에는 작은 글씨가 남았다.
`회수 담당 한백교.`
`청우침 삼종 준비.`
'한백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