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뒤 늦봄 비 저녁, 젖은 모녀가 귀래객잔 문턱을 넘어왔다.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이의 두 발은 종아리 아래로 축 늘어졌다.
진흙 묻은 신발 끝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무연은 입술보다 물방울 간격을 먼저 보았다.
떨림은 일정했다.
'열보다 추위가 먼저야.'
"불 가까운 자리로 오십시오. 젖은 겉옷은 벗기셔야 합니다."
"돈이 많지 않습니다."
"약죽은 외상으로도 됩니다."
만복이 계산대에서 끼어들었다.
"외상은 내가 정한다. 오늘은 비가 갚는 날이니 돈 이야기는 그만하시오."
백도현이 아이의 손목을 짚었다.
그는 무연의 부은 오른엄지를 보면서도 먼저 아이의 젖은 소매를 걷었다.
"생강을 조금 넣고 죽은 미지근하게. 뜨거우면 기침이 더 난다."
"알겠습니다."
"자네 엄지는 죽보다 뜨겁고 왼손은 죽보다 차갑군. 아이 다음은 자네야."
"손님부터 보십시오."
"그래서 다음이라고 했네. 순서를 핑계로 도망치지 말게."
소담이 화로 옆에 마른 천을 폈다.
아이가 어머니 옷자락을 붙잡고 귓가에 무엇인가 속삭였다.
어머니 얼굴이 굳었다.
무연은 약죽 그릇을 아이 앞에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관도가 막혀 잠시 비만 피하려고—"
"어머니, 빨간 띠랑 파란 띠 아저씨가 또 왔어."
아이가 문발 아래를 가리켰다.
빗물 사이에는 멈춘 장화 두 켤레.
'둘이 따라왔군.'
"왜 쫓기는지는 나중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지금 나가시겠습니까, 안에 계시겠습니까?"
어머니는 아이를 더 세게 안았다.
'안에 남겠다고 골랐다.'
"밖으로 나가면 잡힙니다. 남편이 흑사회 창고에서 달아났습니다. 빚은 다 갚았는데도 아이를 데려가겠답니다."
만복이 주판 덮개를 밀어 어머니 앞에 놓았다.
밥상에서 돈 문서를 펼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빚을 갚았다는 표나 영수증은 있소?"
"남편이 받은 목패가 있습니다. 하지만 흑사회 사람들은 창고를 나간 날부터 이자가 새로 붙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대신 일하면 없애 주겠다고도 했고요."
"몇 살짜리 손에 창고 짐을 맡긴다는 거요?"
"짐이 아니라 사람을 묶어 두려는 겁니다. 남편이 검은 물이라고 부르는 항아리를 옮기지 않겠다고 한 뒤부터요."
도현이 아이 손목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어머니를 보았다.
"목패는 지금 꺼내지 마시오. 젖은 종이와 떨리는 아이보다 먼저 볼 증거는 없소. 오늘 밤 어디로 갈지는 아이 열이 내린 뒤 본인이 정하게 합시다."
아이가 약죽을 한 숟갈 삼켰다.
생강 김이 코끝에 맺힌 빗물을 밀어냈다.
"아저씨, 칼 든 사람이 오면 또 죽을 못 먹어요?"
무연은 숟가락을 아이 손에 똑바로 놓아 주었다.
'죽이 식기 전에 끝낸다.'
"제가 식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안에 계십시오. 부엌문까지 다섯 걸음입니다. 소담 씨가 신호하면 아이 손을 놓지 마세요."
"당신까지 다칩니다."
"여기는 밥을 먹는 자리입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문발이 가운데서 갈라졌다.
긴 우도(牛刀)가 빗물을 둘로 가르며 들어왔다.
칼날 뒤로 붉은 띠의 염대가 섰고 푸른 띠의 염소는 양손에 짧은 단도를 하나씩 들었다.
"점소이 양반, 남의 채무 재산을 숨겨 주면 그 빚도 떠안는 법이오."
"사람은 재산이 아닙니다."
"흑사회 장부에는 그렇지 않소. 모녀만 내주면 오늘은 칼집을 닫겠소. 청류 수법도 묻지 않고."
"빚을 갚은 사람에게 새 빚을 붙이고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장부입니까?"
"강에서 살아남는 숫자는 흑사회가 정하오. 종이에 뭐가 적혔든 창고를 등진 몸이 이자요."
"그러면 그 장부는 오늘 이 식탁에서 효력이 없습니다."
"점소이 한 명이 나루의 셈법을 바꾸겠다고?"
"아닙니다. 손님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만 칼을 치우라는 겁니다. 그것도 못 하겠다면 제가 치우겠습니다."
무연은 아이의 정수리와 칼날 사이 높이를 먼저 쟀다.
염대의 우도는 아이 머리 반 자 위.
염소의 오른 단도는 무릎 아래.
왼 단도는 부엌문 손잡이.
'위와 아래, 그리고 문.'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칼을 거두겠습니까?"
"팽 선생은 네 손가락에 졌지. 우리는 네 손가락이 닿기 전에 아이부터 벤다."
'처음부터 아이를 노린다.'
우도가 먼저 칼집을 벗어난다.
염대가 첫발을 오른쪽으로 벌린다.
긴 칼끝이 처마 빗물을 떨친다.
홍우개천도(紅雨開天刀)의 기수식.
머리 위를 크게 열어 고개를 숙인 뒤 허리를 가르는 도법이다.
염소는 형의 그림자 아래로 몸을 낮춘다.
쌍단도가 손목 한 번에 나란해진다.
청사쌍아도(靑蛇雙牙刀).
한 칼은 피한 발을 문다.
다른 칼은 다음 자리를 끊는다.
형의 칼은 시선을 올린다.
동생의 칼은 발을 묶는다.
둘 사이 반 걸음이 남는 한 위와 아래가 함께 닫힌다.
'두 칼이 한 호흡.'
만복이 모녀를 부엌 쪽으로 민다.
소담은 아이에게 붉은 머리끈을 쥐여 준다.
"이것만 보고 따라와. 칼은 보지 마."
염소가 하단을 쓴다.
단도 하나가 식탁 다리를 스친다.
그대로 부엌문 앞에 박힌다.
피난 폭은 사람 하나 너비.
무연은 문빗장을 본다.
길고 단단하다.
하지만 들면 아이의 길을 막는다.
탁자를 세워도 마찬가지.
'길을 막지 않을 물건.'
가장 가까운 통에서 대나무 젓가락 네 짝을 집는다.
부은 엄지는 쓰지 않는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두 짝씩 끼운다.
염소가 웃었다.
"밥상 예절을 가르치려나?"
"칼을 식탁에 올리지 말라는 예절입니다."
염대가 우도를 비스듬히 내리친다.
무연은 칼날을 막지 않는다.
젓가락 하나를 칼등 쪽으로 세운다.
염대가 손목을 틀어 날을 대나무에 맞춘다.
쩍.
첫 젓가락이 세로로 갈린다.
한쪽은 바닥.
다른 쪽은 무연의 손가락 사이.
'막으면 부러진다.'
부러진 대나무를 타고 높은 쇳소리가 손끝까지 온다.
우도의 칼등은 손잡이에서 두 뼘 떨어져 크게 떤다.
두꺼운 칼은 떨림을 놓치면 손아귀를 벌린다.
'칼등이 운다.'
염소의 두 단도가 좌우에서 번갈아 들어온다.
하나는 무연의 옆구리.
다른 하나는 모녀의 발목.
무연은 크게 피하지 않는다.
피하면 칼선이 손님에게 열린다.
첫 단도가 앞치마를 가른다.
천 한 겹이 손가락 길이만큼 벌어진다.
둘째 단도는 바닥을 긁어 불꽃을 낸다.
무연은 뒤꿈치를 반 치 든다.
발가락으로 천자락을 밟아 아이 쪽으로 날리지 않게 한다.
염대의 우도가 그 틈을 따라 내려온다.
칼등은 두껍고 칼날은 빗물처럼 얇다.
무연은 젓가락을 십자로 세우지 않는다.
그러면 대나무와 손가락이 함께 잘린다.
칼 옆에서 떨림이 돌아갈 길만 찾는다.
잘린 젓가락 반쪽을 단도 손잡이에 튕긴다.
대나무 끝이 고리에 맞는다.
칼끝이 아래로 기운다.
단도는 빈 식탁 밑에 꽂힌다.
"작은 재주군!"
염대가 우도 칼등을 비틀어 떨림점을 숨긴다.
염소는 단도 둘을 교차해 벌린다.
긴 칼은 뒤에서 밀고 짧은 칼은 앞에서 닫힌다.
무연의 오른손 감각이 둔하다.
대나무 결은 보이지만 압력은 늦게 온다.
무연은 감각 대신 소리를 센다.
'손끝이 늦다.'
우도는 낮게 한 번.
단도는 높게 두 번.
세 쇳소리가 겹치면 칼손도 한 선에 놓인다.
'낮게 하나, 높게 둘.'
"소담 씨."
"부엌문 열렸어요. 둘 다 안쪽이에요."
"백 의원님, 문을 닫지 마십시오."
"자네가 나오기 전에는 안 닫네."
두 형제가 동시에 들어온다.
염대는 내려베기를 수평 참격으로 꺾는다.
염소는 두 칼을 한 호흡 늦춘다.
형의 우도가 빗나갈 자리까지 덮는다.
앞선 패배를 배운 칼.
한 번의 회피도 허용하지 않는 시차다.
하지만 두 사람도 서로의 쇳소리는 피하지 못한다.
우도의 낮은 울림이 먼저 온다.
단도 고리의 가는 소리가 뒤따른다.
무연은 눈보다 그 간격을 믿는다.
'소리로 찍는다.'
청류십결의 사결, 협저점성지(挾箸點星指).
별을 찍는다고 허공을 찌르는 수법은 아니다.
가는 매개로 병기의 떨림과 몸의 빈 점을 한 줄에 잇는 지법이다.
첫 점은 우도 칼등.
무연의 오른손 젓가락이 쇠의 떨림점에 닿는다.
막는 힘은 없다.
단도 충격이 우도로 넘어오는 순간만 반 치 빨리 두드린다.
팅!
우도가 옆으로 튀어 북쪽 기둥에 박힌다.
염대의 손바닥이 진동을 못 이겨 벌어진다.
둘째 점은 날아온 단도 손잡이.
왼손 젓가락이 고리를 아래에서 친다.
칼은 한 바퀴 돌아 빈 탁자 아래로 떨어진다.
셋째 점은 염대의 합곡혈.
남은 젓가락이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누른다.
다섯 손가락이 동시에 펴진다.
넷째 점은 염소의 견정혈.
앞으로 쏠린 어깨 주름을 젓가락이 수직으로 찍는다.
팔꿈치가 들린 채 어깨가 굳는다.
남은 칼이 손에서 미끄러진다.
염대와 염소의 무릎이 함께 젖은 마룻바닥을 친다.
긴 우도는 기둥.
남은 단도 둘은 빈 식탁 아래.
'칼 셋, 팔 둘.'
"혈도를 풀어라!"
"칼을 놓으시면 풀립니다. 이미 놓으셨군요."
"우리를 죽이지 않으면 다음 놈이 온다."
"죽이면 그다음 사람이 칼 대신 원한을 들고 옵니다."
백도현이 염대의 열린 손을 살폈다.
"뼈는 성하고 감각도 돌아올 걸세. 젓가락에 진 죄로 의원한테까지 화내지는 말게."
어머니가 부엌문에서 고개를 숙였다.
"우리 때문에……"
"손님께서는 죽을 식히십시오. 아이가 아직 두 숟갈밖에 못 먹었습니다."
만복은 칼 세 자루를 장작집게로 끌어 모녀와 반대편 창고에 잠갔다.
염소가 일어나다 허리의 작은 약주머니를 문턱에 긁었다.
젖은 천이 찢어지며 쓴 살구 냄새가 비 냄새 사이로 퍼졌다.
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약주머니, 어디서 났나?"
"상처에 바르는 약이다."
"상처약이면 그렇게 쓴 살구 냄새가 나지 않아."
염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의 굳은 어깨를 받쳐 문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칼을 되찾지 못했고 모녀에게 다시 손대지 못했다.
만복은 깨진 젓가락통을 들었다.
칼끝이 스쳐 옆구리가 길게 갈라져 있었다.
"넷째 패다. 이번에는 젓가락값도 받을 거다."
"누구에게 받으시겠습니까?"
"네 손 치료를 안 받는 값으로 너한테."
백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계산이군. 모녀의 약죽을 다 먹일 때까지 맥진을 받게. 그게 치료비다."
무연은 젓가락 끝을 오른손으로 집었다.
대나무가 차가운지 따뜻한지 느껴지지 않았다.
'온도가 없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도현에게 내밀었다.
처마 아래 사내가 그 냄새를 깊게 맡는다.
칼은 세지 않는다.
약주머니의 젖은 얼룩만 보고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