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뒤 초여름 첫 새벽, 귀래객잔 북쪽 기둥의 새 철띠가 희미하게 빛났다.
이틀 동안 만복과 사공들은 북쪽 기둥에 철띠를 두르고 지붕에 물독을 올렸다.
무연은 철띠와 나무 사이에 종이를 밀었다.
세로 균열은 밤새 더 벌어지지 않았다.
"기둥은 버팁니다."
만복이 사다리 위에서 지붕 물독 마개를 확인했다.
"기둥만 버틴다고 집이 사나? 지붕은 마르고 현판 줄은 낡았다."
"마구간 짚은 치웠습니까?"
"소담이가 서쪽 빈 창고로 옮겼다. 부엌 불씨는 도현이가 물에 담갔고."
"종줄은요?"
"계산대 아래 있다. 네가 또 혼자 남으라고 하면 내가 먼저 묶어 둘 줄이다."
"그런 말씀을 드리려던 건 아닙니다."
"거짓말할 때 주문패부터 만지는 버릇, 칠 년이면 나도 안다. 손 내려."
무연은 계산대 위 주문패에서 손을 뗐다.
'혼자 남는 건 안 된다.'
"위험을 말씀드리고 고르게 하겠습니다."
"이제야 점소이답게 주문을 받는군. 대답까지 네가 정하지 마라."
소담은 이웃 국숫집에서 빌린 작은 솥을 부엌에 걸었다.
"이번 솥은 엎지 말아야 해요."
"독이 들면 엎으셔야 합니다."
"그 말은 맞는데 빌린 집 주인 앞에서는 하지 마세요."
국숫집 주인이 바깥에서 소리쳤다.
"다 들린다! 금 가면 만복 영감 장부에 두 배로 적어!"
만복이 여섯 수리패를 줄 세웠다.
"내 장부에 왜 남의 솥이 들어오나?"
"댁 점소이 싸움에 빌려주는 거니까."
"싸움 아니고 영업이다."
"그러면 오늘 국값은 내가 받지."
바람이 관도 쪽에서 분다.
송진 냄새.
'왔다.'
무연이 지붕을 올려다본다.
처마 여덟 곳에서 붉은 점이 함께 흔들린다.
"불입니다."
만복은 묻지 않는다.
계산대 아래 비상종 줄을 꺼내 문밖으로 달린다.
무연이 그의 팔을 잡는다.
"종을 울리면 객잔 편이 누구인지 모두 드러납니다."
'숨기면 또 탄다.'
"안 울리면 누가 불을 질렀는지도 안 드러난다."
"장부는 꺼내지 마십시오."
"사람부터 모으고 현행부터 남긴다. 연화 장부는 그다음이다."
만복이 줄을 당긴다.
댕—!
화재종이 수면을 밀며 퍼진다.
창고와 상점 문이 하나씩 열린다.
불화살 여덟 발이 새벽 하늘을 가른다.
'여덟 곳.'
첫째는 지붕 서쪽 끝.
둘째는 마구간 짚더미.
셋째는 수로문 밧줄.
넷째와 다섯째는 동쪽 부엌 처마.
여섯째는 북쪽 기둥 철띠.
송진 불꽃이 쇠를 따라 흐른다.
일곱째는 종줄 아래.
여덟째는 귀래 현판 오른쪽 쇠고리.
검은 현판이 한쪽으로 기운다.
`歸` 자 위로 불이 번진다.
맞은편 지붕에는 붉은 갑옷의 사내가 서 있다.
적규.
아래 골목마다 쇠뇌수 하나씩.
여덟 연노에는 송진 화살이 빽빽하다.
"여덟 문을 다 태워라. 물 든 손부터 쏴라!"
연노 시위가 톱니처럼 운다.
철컥.
철컥.
철컥.
물동이를 든 사람들이 그 소리에 멈춘다.
오늘 남으면 내일 자기 가게와 배가 표적이 된다.
무연은 그들 앞에 선다.
'선택을 먼저 준다.'
"쇠뇌는 여덟 방향입니다. 지붕 아래로 붙으면 화살이 내려오고 골목 가운데로 뛰면 낮은 연노선에 걸립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소금전 주인이 묻는다.
"떠나셔도 됩니다. 남쪽 돌다리를 건너면 사선 밖입니다. 남으실 분은 어느 길로 빠질지 먼저 고르십시오. 그다음에 물동이를 드십시오."
"자네 혼자 못 막나?"
무연은 불붙은 지붕과 수로문을 번갈아 본다.
"혼자 막을 수 없습니다. 저도 한 방위뿐입니다."
'한 방위뿐.'
잠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백도현이 약상자를 남쪽 돌다리 밖에 내려놓는다.
"나는 남쪽을 맡겠네. 빠질 길은 내 뒤 돌다리. 다친 사람은 거기로 보내시오."
국숫집 주인이 큰 물동이를 든다.
"나는 동쪽. 내 솥값 받기 전에는 못 간다."
사공 셋은 서쪽 수로를 고른다.
"우린 물에 빠지면 배로 나간다. 젖은 그물은 둘 있다."
소금전 주인은 북쪽 우물 손잡이를 잡는다.
"소금 자루는 불 먹으면 끝이야. 객잔만 돕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자기 퇴로를 말한다.
남은 사람은 스물셋.
떠난 사람을 누구도 부르지 않는다.
북서쪽 염색전 주인이 손을 든다.
"나는 물동이는 못 든다. 어깨가 굳었어. 젖은 천을 나르면 되나?"
"됩니다. 북서쪽 돌담 뒤에서 천만 이어 주십시오. 연노가 그쪽으로 돌면 바로 엎드리셔야 합니다."
"엎드리는 건 잘하지. 흑사회 지나갈 때마다 십 년을 했으니까. 오늘은 일어날 때도 내가 고르겠네."
젊은 짐꾼 하나가 묻는다.
"남쪽에 서면 불은 안 오나?"
도현이 답한다.
"불은 올 수 있네. 대신 다치면 내가 가장 가까이 있고 돌다리 너머가 사선 밖이야."
"그럼 남쪽. 어머니한테는 제가 고른 거라고 써 주세요. 끌려갔다고 하지 말고."
만복이 장부 한 장을 뜯는다.
"이름과 자리를 적겠다. 떠나고 싶으면 말 없이 줄을 놓고 돌다리로 가도 된다. 그걸 비겁하다고 쓸 놈은 내 객잔에 못 들어온다."
사공 하나가 웃는다.
"그럼 영감은 어디로 빠지는데?"
"계산대 밑. 돈 궤짝이 가장 단단하다."
"돈 들고 달아나려는 거 아냐?"
"불 꺼 주면 확인시켜 주마. 비어 있다."
무연은 여덟 방위에 사람 대신 역할을 놓는다.
북쪽은 우물, 북동은 소금전 물독.
동쪽은 국숫집 물동이, 남동은 도현의 피난선.
남쪽은 돌다리.
남서와 서쪽은 젖은 그물, 북서는 만복의 술독.
'각자 빠질 길이 있다.'
소담이 빈 놋동이 여덟 개를 계산대 앞에 놓는다.
"방위 부르면 안 들려요. 연기 나면 더 안 들려요."
"어떻게 알리시겠습니까?"
그녀가 가장 작은 동이를 국자로 친다.
땅.
"높은 소리는 동쪽. 낮은 소리는 서쪽. 두 번이면 북쪽, 세 번이면 남쪽. 사이 방향은 두 동이를 같이 쳐요."
'소담의 박자.'
"제가 박자를 따르겠습니다."
적규가 손을 내린다.
연노 여덟 자루가 쏜다.
화살은 한 발씩이 아니다.
쇠뇌마다 세 발이 시차를 두고 나온다.
첫 줄은 물동이.
둘째 줄은 손목.
셋째 줄은 퇴로.
진무연은 화살을 모두 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모두 칠 수 없다.'
"북동!"
소담이 두 동이를 함께 친다.
소금전 사람들이 돌담 뒤에서 물을 넘긴다.
첫 물이 송진 불꽃을 낮춘다.
"물 하나 더!"
"손잡이 깨졌다! 밑을 받쳐!"
"북쪽에서 새 동이 간다. 고개 숙여!"
"서쪽!"
낮은 동이가 운다.
사공들이 젖은 그물을 당긴다.
화살 셋이 그물코에 박힌다.
불꽃은 흰 김만 낸다.
"그물 왼쪽이 처진다!"
"내 닻줄에 걸어! 하나, 둘, 당겨!"
"남동!"
도현은 빈 피난선을 확인하고 젖은 포대를 민다.
무연이 포대 끝으로 낮은 화살을 누른다.
"남동 비었습니다!"
"비어 있어야 좋은 자리도 있네. 다친 사람 보내지 마시오!"
물은 돈다.
하지만 동쪽 줄이 한 박자 느리다.
'동쪽이 빈다.'
적규가 그 틈을 본다.
"삼번부터 육번, 동쪽 한 점!"
쇠뇌수 넷이 국숫집 쪽으로 돈다.
열두 발이 같은 골목을 메운다.
국숫집 주인이 물동이를 지키려 한 걸음 나온다.
소담이 소리친다.
"동쪽 비워요! 솥값보다 목숨이 먼저예요!"
"솥 엎은 네가 할 말이냐!"
"그래서 아는 거예요!"
국숫집 주인은 물동이를 놓고 돌담 뒤로 몸을 던진다.
화살이 나무 손잡이를 뚫는다.
동쪽 물길이 끊긴다.
적규가 웃는다.
"사람 하나 빠지면 끝나는 진이다. 물 든 놈부터 쏘랬지!"
그가 두 번째 손짓을 낮게 내린다.
이번 화살선은 지붕이 아니다.
피난 군중의 가슴 높이.
귀래 현판의 오른쪽 쇠고리가 끊어진다.
현판이 한쪽 고리에 매달려 흔들린다.
불붙은 `歸` 자가 사람들 위로 기운다.
무연은 왼쪽 고리까지 손날로 끊는다.
현판이 떨어진다.
'이름보다 사람.'
그는 현판을 어깨로 받아 피난선 앞에 세운다.
낮은 화살 일곱 발이 나무에 박힌다.
충격마다 갈비가 운다.
여덟째는 도현의 소매 앞에서 멎는다.
"이름을 방패로 쓰는군!"
적규가 비웃는다.
"현판은 다시 달 수 있습니다."
무연이 답한다.
"사람은 못 답니다."
소담이 빈 동쪽 놋동이를 높이 든다.
그녀는 물 없는 동이를 국자로 친다.
땅—!
길고 높은 소리가 연노음 위로 솟는다.
물을 달라는 신호가 아니다.
일곱 방위에 빈자리를 보라는 신호.
'빈자리를 본다.'
사공들이 서쪽 밧줄을 동쪽으로 넘긴다.
소금전 사람들은 북쪽 물로 밧줄을 적신다.
만복은 술독 물을 현판 뒤로 쏟는다.
도현은 사람들을 돌다리 밖으로 빼고 빈 포대를 건다.
누구도 자리를 버리지 않는다.
자리를 바꾼다.
청류십결의 칠결, 팔방회란진(八方回瀾陣).
사람의 내력을 빼앗는 진법은 아니다.
각자 고른 무게와 당김을 한 흐름으로 잇는 진.
명령을 놓쳐도 빠질 길을 알아야 한다.
한 방위가 비면 다른 방위가 빈자리를 봐야 한다.
진형은 사람을 밀지 않는다.
물과 그물의 힘은 이미 걸려 있다.
그 힘이 빈 동이 소리를 따라 동쪽으로 모인다.
'힘은 이미 걸려 있다.'
첫 회란.
북쪽 두레박이 내려가며 밧줄을 당긴다.
서쪽 그물의 화살 아홉 발이 동쪽으로 돈다.
둘째 회란.
남서쪽 사공들이 밧줄을 푼다.
그물이 투석구처럼 펴진다.
젖은 화살들이 적규 앞 송진통으로 날아간다.
적화대가 몸을 낮춘다.
적규는 쌍화도(雙火刀)를 뽑아 화살을 친다.
칼등의 송진이 불꽃을 일으킨다.
"화룡개벽참(火龍開闢斬)!"
두 칼이 젖은 화살 넷을 자른다.
하지만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쪽 화살이 송진통 셋에 박힌다.
셋째 회란.
동쪽의 빈 물동이들이 경사로를 구른다.
통들이 송진통과 부딪힌다.
송진이 바닥에 쏟아진다.
북쪽 물이 그 위를 덮는다.
불은 꺼지고 송진은 쇠뇌수의 장화를 붙잡는다.
적규가 젖은 밧줄을 베러 달려온다.
무연은 현판 뒤에서 한 걸음 나온다.
그가 잡은 것은 칼이 아닌 젖은 그물 끝.
적규의 첫 칼이 그물을 가른다.
베인 그물코가 두 칼 사이를 감는다.
둘째 칼을 뽑는 힘이 첫 손목을 누른다.
무연은 그 당김을 여덟 방위로 보내지 않는다.
'더 얹으면 누군가 놓친다.'
그는 자기 왼쪽 갈비로 마지막 한 힘만 받는다.
'한 힘만 내가 받는다.'
숨이 목에서 걸린다.
그는 반 걸음 돌아 두 칼을 젖은 그물 아래로 누른다.
적규의 무릎이 송진에 빠진다.
사공들이 그의 팔꿈치와 허리를 묶는다.
쇠뇌수들은 서로 넘어진다.
소금전 사람들이 빈 자루로 화살통을 덮는다.
적규와 적화대 여덟 명이 차례로 쓰러진다.
쇠뇌는 모두 젖은 그물 아래.
불붙은 화살은 더 없다.
"진 풀어! 정식으로 붙자!"
적규가 외친다.
무연은 그의 쌍화도를 발끝으로 멀리 민다.
"불을 끄는 싸움이었습니다. 이미 끝났습니다."
나루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장포두가 줄을 당겼다.
포졸 넷이 돌다리를 건너왔으나 무기를 먼저 들지 않았다.
장포두는 불붙은 지붕, 화살 박힌 현판, 송진통, 묶인 적화대를 차례로 보았다.
"누가 먼저 쐈소?"
스물셋의 손이 적규를 가리켰다.
"누가 불을 껐소?"
이번에는 손들이 서로를 가리켰다.
장포두는 적규의 검은 명령패와 쇠뇌 여덟 자루를 사람들 앞에서 하나씩 봉했다.
"진술할 분은 이름을 남기시오. 강호 싸움이 아니라 방화 현행으로 적겠소."
소금전 주인과 사공들, 국숫집 주인이 차례로 이름을 썼다.
만복은 객잔 주인으로 썼다.
소담은 붉은 머리끈을 다시 묶고 자기 이름 석 자를 눌러 적었다.
붓이 무연 앞에 왔다.
'지금의 이름.'
"성명은?"
장포두가 물었다.
무연은 먹 묻은 붓끝을 보았다.
만복도 소담도 대신 답하지 않았다.
"귀래객잔 점소이입니다."
"본명 말이오."
"오늘 제가 선택해 밝힐 수 있는 이름은 그것뿐입니다. 화살과 불을 본 일은 그대로 쓰겠습니다."
장포두는 잠시 그를 보다가 기록지에 빈칸을 남겼다.
그 옆에 `귀래객잔 점소이, 화공 방어 참여`라고 적었다.
만복은 떨어진 현판을 뒤집었다.
`歸` 자 반쪽이 검게 탔고 화살 구멍 일곱 개가 뚫렸다.
"일곱째 패다. 현판 하나, 지붕 세 칸."
국숫집 주인이 말했다.
"기와 스무 장은 내가 낼게. 솥값에서 빼."
소금전 주인은 젖은 굵은 밧줄을 내려놓았다.
"현판 줄은 이걸 써. 소금배 닻줄이라 안 끊어진다."
사공들은 그을린 서까래를 살폈다.
"내일 새벽에 목재 가져오지. 우리 배를 묶어 둔 집인데 지붕값은 내야지."
만복은 수리패 뒤에 사람과 물건을 하나씩 더 새겼다.
처음으로 손실보다 들어온 것이 더 길었다.
도현이 무연에게 흰 천을 내밀었다.
"기침하게. 참지 말고."
무연이 몸을 돌려 한 번 기침했다.
흰 천 한가운데에 실처럼 가는 붉은 줄이 남았다.
'또 늦게 온다.'
"피예요."
소담이 말했다.
"아주 조금입니다."
"적다고 없는 건 아니에요."
"불은 모두 껐습니다."
"불 얘기 말고 오라버니 얘기예요."
"지금도 객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빠져나갈 줄 알았어요. 이번에는 안 놓쳐요."
"이건 기록에서 빼 주십시오."
"내 진료 기록은 자네가 고르는 장부가 아니네."
소담이 옆에서 천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빈 놋동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장포두가 적규의 명령패를 뒤집었다.
물에 번진 먹 아래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명령패 뒷면 마지막 줄에는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검대주 나설, 칠식 대조 뒤 직접 확인.`
'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