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온 이름의 상여집
10

돌아온 네 번째

명 성화 12년 초겨울 열째 날 저녁부터 열두째 날 오전까지였다.

공동 봉함 원본·누락 목찰·운송 증인은 서로 다른 길로 귀명현에 도착했다.

고유생도 증언선에서 내려 관아 객방에 따로 머물렀다.

하경업은 육문조의 황실 물자 인계 요구로 귀명현 공개 심리에 출석했다.

소만의 왼 허리는 긴 수로 이동 뒤 다시 굳어 공개 심리에서 무거운 관을 직접 들지 못했다.

열두째 날 정오 전에 심리 기록과 물자 별건 보고를 각각 봉해야 했다.

현 관아 마당에는 세 관이 처음처럼 동쪽·남쪽·서쪽 칸에 놓였다.

봉표는 바뀌지 않았고 이름표도 떼지 않았다.

하경업은 포승을 차지 않았다.

아직 물자 인계와 지방 문서 변조를 다투는 출석자였다.

그의 왼쪽에는 고유생이 섰다.

가족석도 하가 쪽도 아닌 증언 자리였다.

현령이 높은 자리에 앉고 방유직은 아래 검토석에 섰다.

"같은 이름은 장례꾼들이 만든 우연이고 손실 목찰의 인은 도용됐습니다."

하경업은 세 가지를 나눠 말했다.

"물자 손실은 창고라면 생깁니다. 동명이인은 황책에도 있습니다. 귀로당이 이름을 빌려 온 전력까지 있고, 그 길을 만든 고유생이 여기 서 있습니다. 왜 내 인장만 죄가 됩니까?"

유직은 그 항변을 줄이지 않았다.

"하 상인은 동명이인 우연, 통상 물자 손실, 검수 인 도용과 고유생의 자발 공모를 주장했습니다. 넷을 각각 기록하십시오."

현령이 물었다.

"방 추관은 무엇을 판단하는가?"

"나는 범죄 범위와 인계 책임을 말합니다. 하경업의 신병과 판정은 현령의 명령과 부의 검토에 둡니다."

유직은 공동 봉함의 세 빛을 먼저 보였다.

귀로당 검은 옻랍, 부아 붉은 봉랍, 육문조 푸른 밀랍에는 깨진 자리가 없었다.

유직은 글자 없는 목패와 먹줄을 하경업 앞으로 밀었다.

"하 상인, 도용된 인과 통상 손실이 함께 참이라면 물건이 드나든 순서를 이 줄에 놓으십시오."

하경업은 먹줄을 검토석에서 손실표 자리까지 곧게 당겼다.

빈 목패에 `입고`, `검수`, `손실`을 써서 자기 앞에서부터 차례로 놓았다.

"입고한 물자가 검수를 거쳐 줄었을 뿐입니다. 장례꾼의 이름표는 이 줄 밖의 일이지요."

유직은 줄을 고치지 않았다.

하경업이 고른 순서와 세 글자를 아역에게 그대로 베끼게 했다.

유직이 고유생을 보았다.

"고유생, 이 줄의 어디까지가 스스로 고른 길이었습니까?"

고유생은 소만과 정묵을 보지 않았다.

증언석의 낮은 난간에 펴지지 않는 오른손을 올렸다.

"이름을 빌리는 길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죽었다고 적은 것도 제 선택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두 차수를 제 발로 날랐습니다."

하경업이 손바닥을 폈다.

"들으셨습니까. 내 창고는 그가 가져온 물건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 뒤도 들으십시오."

고유생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 뒤부터 보호 장부를 담보로 잡혔습니다. 걸음을 바꾸라는 표를 받고, 거부할 때마다 이름 하나가 수금 장부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계속 날랐습니다. 강요받았다는 말로 앞의 선택을 지우지 않겠습니다."

'돌아왔다고 앞의 선택이 사라지진 않아.'

정묵의 손이 무릎 아래에서 움직였다가 멎었다.

고유생은 그 손을 보았으나 가족석으로 가지 않았다.

소만은 무거운 관 대신 길이 한 자짜리 칼집을 들고 먹줄 옆에 섰다.

"방 추관은 봉한 시각만 읽으십시오. 관의 쓰임은 제가 옮기지요."

동쪽 관의 오래된 시신 곁에는 맞지 않게 최근인 손실표가 있었다.

남쪽의 젊은 시신은 상여 노동자의 손을 가졌으나 이름표에 적힌 먼 길을 걷지 않았다.

서쪽 관은 비었고 머리맡 이중 바닥에는 종이를 눌러 나른 자국만 남았다.

숙란이 동쪽 이름표의 풀을 만진 뒤 남쪽과 서쪽 표도 손끝으로 훑었다.

"관 칠은 저마다 다른 날 말랐습니다. 이름표 풀은 한날 굳었습니다. 죽은 이에게 붙인 이름이 아니라 떨어진 물건을 같은 차수로 끌어온 표입니다."

하경업이 물었다.

"그 이름을 누가 붙였습니까?"

"붙인 손은 모르지요. 그 이름으로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만 보지요."

소만은 서쪽 관의 이중 바닥에 칼집을 넣었다.

처음 무게를 쟀던 자리 그대로였다.

머리맡만 내려앉으며 압지판이 드러났다.

소만은 압지판을 먹줄의 `입고`보다 앞에 놓았다.

동쪽 손실표는 `손실` 뒤로, 남쪽 이름표는 줄 끝의 빈 사람 자리에 세웠다.

"빈 관은 장부를 먼저 들였습니다. 오래된 시신의 이름은 나중 손실을 만들었고, 젊은 시신에게 붙은 이름은 사라진 운송자와 군호 자리를 메웠습니다."

하경업이 놓은 곧은 순서는 꺾였다.

문서가 입고보다 먼저 들어왔고 손실은 검수 뒤에 생겼으며 사람은 물자가 사라진 뒤 같은 차수에 채워졌다.

유직이 공동 봉함을 열었다.

삼중 목패의 사람·물자·손실 칸에는 같은 높이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잘려 나갔던 손실 목찰을 옆에 대자 절단면이 맞았다.

그 아래 하경업의 검수 인은 사건 전 현에 낸 영업 사본과 깨진 테두리까지 겹쳤다.

유직은 하경업이 쓴 `검수` 목패를 들어 사건 전 사본 옆에 놓았다.

"도용됐다면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바뀌었습니까?"

하경업이 말했다.

"고유생이 차수표를 나를 때 내 인을 훔쳐 찍었을 수 있습니다."

고유생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인함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차수표를 나른 뒤에는 발목 표만 받았습니다."

소만이 지게 끈 속에서 나온 강요 역매듭과 상류 초소 수결을 먹줄 위에 놓았다.

매듭의 바깥 고리는 새것이었으나 안쪽 눌림은 목찰의 붉은 가루 아래까지 먹어 있었다.

"어제 꾸민 매듭이면 가루 위에 눕지요. 이 눌림은 목찰이 창고를 나올 때부터 있었지요."

유직은 가짜 곡꾼, 창고 검수자, 교환 회수자의 신발 그림을 포갰다.

쉬었다 다시 출발할 때마다 끌린 오른 뒤축이 한 자리에 겹쳤다.

"하가 운송표가 사람마다 다른 어깨와 보폭을 나눠도, 오래 쓴 뒤 짧아진 오른 발목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고유생의 매듭은 그 훈련표가 붙은 차수를 가리킵니다."

육문조가 황색 능화 테두리의 물자 칸을 가리켰다.

"내 명령으로 확인할 것은 이 칸과 군호 변조까지입니다. 민간 이름은 받지 않았습니다. 잘린 상위 수신자 칸은 별건으로 올립니다."

하경업이 현령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들은 서로 한집이고 한패입니다. 봉함을 나눴다는 말로 짜 맞춘 것이 달라집니까?"

노인의 딸이 오래된 장부 봉함을 들었고 젊은 아내가 최근 번호표 조각을 들었다.

현 아역은 처음 받은 인계표를, 육문조의 부하는 남경에서 찾은 누락 목찰을 들었다.

고유생의 말이 없어도 물건은 서로 다른 손에 남아 있었다.

고유생의 자복만으로도 그 물건의 시기가 바뀌지 않았다.

그때 방청 줄 맨 뒤에서 마른 판자가 부러졌다.

우지끈.

탕감표를 가져왔던 하가 서기가 사람들 어깨 아래로 가는 줄을 던졌다.

미늘은 누락 목찰 봉투를 물고 마당 화로 쪽으로 당겼다.

아역 둘이 그를 잡으러 뛰자 오른 뒤축을 끄는 사내 셋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일어나 길을 막았다.

소만은 예전처럼 자리를 지시하지 않았다.

"무엇을 받을래?"

백로가 줄 앞으로 들어갔다.

"나는 미늘을 받는다. 사람은 안 쫓아."

정묵이 목찰 봉투 아래 두 손을 댔다.

"저는 봉투를 받아요. 놓으실 때 말해 주세요."

숙란은 지팡이로 화로 다리를 걸었다.

"나는 불을 놓는다. 방 추관, 받겠소?"

"받겠습니다."

유직이 화로를 뒤로 끌었다.

고유생이 가족의 빈 모서리로 한 걸음 나왔다가 멈췄다.

"나는 증언 자리를 받았습니다. 저 자리는 묻지 않고 받지 않겠습니다."

소만은 왼 허리를 굽히지 않고 칼집으로 줄을 바닥에 눌렀다.

"나는 줄의 힘만 놓는다. 백로."

"받는다."

소만이 칼집을 비키자 백로가 망치 자루로 미늘 목을 걸었다.

줄을 당기던 서기가 몸을 젖히는 순간 오른 뒤축이 돌 틈에 걸렸다.

역명보로 바꾼 보폭은 급히 멈추는 발까지 속이지 못했다.

정묵이 외쳤다.

"봉투 놓을게요."

"받는다."

노인의 딸과 젊은 아내가 양쪽에서 봉투를 받아 삼지 위에 놓았다.

네 사람의 손이 닿았으나 한 사람이 두 물건을 쥐지 않았다.

하가 서기는 포승에 묶였다.

목찰은 타지 않았고 고유생은 가족의 네 번째 자리에 서지 않았다.

현령이 하경업을 보았다.

"오늘 판정은 지방 살인죄의 끝이 아니다. 그러나 물자 원본, 강제 수금, 문서 변조 증거와 증인을 없앨 수 없게 부로 인계한다. 하가 창고는 봉한다."

빈 이름은 문서를 나르고 죽은 이름은 물자 손실을 만들고 빼앗긴 이름은 사람과 군호의 빈칸을 메웠다.

하경업이 곧게 놓은 운송줄은 자기 검수 인에서 꺾였고 그 줄 위 물건들은 서로 다른 손에 들려 그를 따라갔다.

귀로당의 오래된 이름 차용 장부도 별도 검토 봉함에 들어갔다.

소만이 입회서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 장부에 내 이름과 어머니 이름도 있습니다. 살리려 했다는 말로 덮지 않겠습니다. 대신 다시는 한 이름을 한 손이 빌려주고 거두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소만이 새 장부를 폈다.

표제에는 사우인계첩(四隅引繼帖)이라 썼다.

현 아역이 먹 묻힌 실로 방금 사람들이 섰던 자리를 종이 위에 옮겼다.

관 곁에는 소만이 시신 상태를 썼다.

누락 목찰을 올린 삼지 곁에는 백로와 피해 가족이 봉함 수결을 남겼다.

증언 난간 쪽에는 유직이 말한 시각만 적었고 판정 문장은 비워 두었다.

정묵은 가족 들끈이 놓였던 가장자리에서 살아 있는 이름 주인의 수결이나 거절만 받았다.

소만은 종이를 고유생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제 빈칸을 억지로 메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두 모서리를 쥐지 않습니다. 놓는다고 쓴 손이 있으면 받는 손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받지 않으면 남의 이름으로 메우지 않고 여기서 멈춥니다."

현령이 물었다.

"말하지 못하는 시신은 어떻게 하나?"

"이름을 비워 둡니다. 누가 비웠고 언제 다시 물을지만 적습니다. 다른 죽은 사람 이름으로 채우지 않습니다."

빠른 구제는 어려워졌다.

필요한 손이 모이는 동안 관이 상할 수도 있었다.

귀로당은 예전처럼 한밤에 이름 하나를 얹어 사람을 숨길 수 없었다.

소만은 그 비용도 장 아래에 썼다.

현령은 사우인계첩을 법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귀로당의 제한 보존·증언 인계 작업에 쓰는 입회 규칙으로 허용했다.

옛 이름 차용 장례는 부 검토가 끝날 때까지 금했다.

고유생이 새 장부 앞으로 왔다.

정묵이 붓을 건네지 않고 물었다.

"어디에 쓰실 건가요?"

"내 이름 곁에만 쓰겠다. 가족 자리는 없구나."

"없어요."

고유생은 자기 이름과 출석 시각에 수결했다.

남편, 아버지, 귀로당 사람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그가 품에서 오래 접힌 인계표를 꺼냈다.

보호 명단을 몸에 두지 않았다는 줄 아래 상위 수신자 칸이 칼로 잘려 있었다.

"이 칸 위의 사람을 따라 남경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경업도 명령통으로만 받았습니다."

육문조가 잘린 자리를 별건 봉함에 넣었다.

지역망은 닫혔고 주문한 손은 남았다.

포승을 찬 하경업이 마당을 나갔다.

그 뒤로 하가 서기와 오른 뒤축을 끌던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줄에 묶였다.

역명보로 바꿨던 어깨는 포승 아래에서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묵이 고유생 앞에 섰다.

"고유생 씨."

고유생의 눈이 한 번 감겼다가 열렸다.

"그래."

"위패는 아직 눕혀 둘게요. 집으로 갈지는 저녁에 다시 물을게요."

"그때 대답하마."

백로가 상복 끈을 풀었다.

"용서는 묻지도 않았어. 도망칠 길부터 닫고 와."

"알았다."

숙란은 지팡이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네가 죽었다고 믿은 세월은 네가 살아 돌아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압니다."

마지막으로 소만이 말했다.

"나는 네 자리를 정하지 않겠다."

고유생도 돌아오겠다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귀로당으로 돌아온 뒤 정묵은 위패를 세우지 않았다.

대신 사우인계첩을 작업마당에 펼쳤다.

마당에서 옮겨 온 모서리마다 서로 다른 손의 먹이 말랐다.

네 번째 들끈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