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온 이름의 상여집
5

위패 뒤의 길

명 성화 12년 초겨울, 하루 뒤 넷째 날 오전이었다.

소만의 왼 허리는 천천히 걸을 수 있으나 들기와 급회전에서 통증이 남았다.

유직의 하루 연행 지연은 정오에 끝나며 위조 비호 문책은 그대로 남았다.

안채 위패 앞에는 가족 넷이 섰다.

방유직은 문밖에 있었다.

정백로가 위패를 돌리려 하자 소만이 손을 덮었다.

"그건 열지 마."

"두 가족한테는 숨긴 이름도 책임져야 한다고 했잖아. 우리 것만 덮을 거야?"

"위패는 증거이기 전에 우리가 죽은 사람을 모신 자리야."

"내가 그 사람 빈자리에서 살았어. 내 자리이기도 해."

백로는 위패를 빼앗지 않았다.

손을 뗀 채 말했기 때문에 소만은 당주 권위로 밀어낼 구실을 잃었다.

정묵이 위패 옆에 앉았다.

"아버지 이름은 쓰지 마세요. 안에 든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만 봐요."

"열면 다시 죽은 사람으로만 모실 수는 없어."

"살아 있으면 왜 안 왔는지도 물어야 해요. 그래도 제가 모르는 채로 두지는 마세요."

진숙란이 위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끝은 닿기 한 치 전에 멈췄다.

"새 나무 냄새를 맡고도 말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아셨어요?"

"세 관이 오기 이틀 전이다. 뒤판 옻 아래에서 회양목 가루 냄새가 났다. 누가 넣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소만은 어머니까지 침묵했다는 데 화가 났다.

동시에 자기가 같은 침묵을 먼저 골랐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두께가 달라진 건 알았어. 열지는 않았어."

"왜?"

백로의 물음에 소만은 위패보다 바닥을 보았다.

"살아 있길 바라면 내가 속은 사람이 돼. 죽었다고 믿으면 내가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되고. 둘 중 하나를 고르기 싫었어."

정묵이 위패 아래 새 삼지를 폈다.

"그럼 지금은 물건만 골라요. 아버지는 나중에 묻고요."

백로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정묵 조건대로 해. 이름을 빼고 물건만 보자."

숙란도 손을 거뒀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소만의 손이었다.

"뒤판 이음 한 줄만 연다. 정묵이 정한 범위까지만."

유직은 문밖에서 개봉 시각만 적었다.

아역을 부르지도 않았다.

가족 위패를 열 권한이 자기에게 없다는 표시였다.

소만은 얇은 대칼을 뒤판의 밝은 칼집에 넣었다.

허리를 비틀지 않고 무릎을 옮겨 각도를 맞췄다.

이음이 손가락 너비만 열리자 새로 깎인 회양목 냄새가 났다.

숙란이 고개를 기울였다.

"지난 보름 안이다. 더 좁혀 말할 수는 없다."

틈 안에는 종이가 아니라 얇은 목찰이 있었다.

정묵이 삼지를 양손으로 잡고 소만은 목찰을 그 위로 밀었다.

한쪽 끝에 붉은 분진이 묻었고 가운데에는 하가 창고 검수 부호와 차수가 눌려 있었다.

백로가 숨을 삼켰다.

"남경에서 봤던 하가 짐표와 같은 꼬리야."

"같은 창고 표식인지는 유직이 가진 인계표와 대조해야 해. 붉은 가루 하나로 정하지 마."

목찰을 빼고 나자 뒤판 안쪽의 칼 흠이 보였다.

칼끝이 나무를 빠져나오기 직전 왼쪽으로 한 번 짧게 꺾였다.

고유생은 관 바닥 홈을 팔 때마다 칼을 그렇게 회수했다.

오른손 둘째 마디가 굳어 곧게 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만의 입에서 이름이 먼저 나올 뻔했다.

"이 흠은 그 사람 버릇이야."

숙란이 손톱으로 흠 옆을 만졌다.

"버릇을 본 자라면 흉내 낼 수 있다. 나무 냄새는 시기만 말하고 손은 말하지 않는다."

정묵이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산 거예요?"

소만은 목찰의 차수와 새 절삭과 칼 흠을 차례로 보았다.

셋은 같은 가능성을 가리켰다.

어느 하나도 사람의 얼굴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살았는지, 누가 흉내 냈는지는 아직 몰라."

"가능성은요?"

"살아서 이걸 넣었을 가능성이 생겼어. 아주 컸어. 하지만 어디 있는지, 왜 안 왔는지는 모른다."

백로가 웃음도 욕도 아닌 숨을 내뱉었다.

"살아 있으면 증인이야? 우리를 십 년 속인 놈이야?"

"둘 다일 수 있어."

소만은 그 말을 하며 위패를 다시 보았다.

죽은 남편에게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살아 있을 가능성이 생기자 미뤄 둔 분노가 애도보다 먼저 돌아왔다.

목찰 뒷면에는 칸 번호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오래된 먹으로, 다른 하나는 최근 먹으로 덧붙었다.

귀로당 장부의 같은 묶음 안에서도 시기가 갈리는 위치였다.

처마 끝에서 대나무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창호지 한가운데가 바늘처럼 오므라들었다.

가는 낚싯줄이 종이를 뚫고 들어와 삼지 위 목찰을 감았다.

줄 끝에는 미늘 둘이 달려 있었다.

목찰을 가져가되 손에 걸리면 살을 함께 뜯는 모양이었다.

"묵아, 뒤로. 백로는 창문."

말이 입에서 나온 뒤 소만은 멈췄다.

또 자리를 먼저 정했다.

'또 내가 먼저 정했어.'

정묵은 이미 목찰 양옆의 삼지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저는 이걸 받을게요. 어머니는 줄이 어디로 빠지는지 봐요."

백로는 창으로 가지 않았다.

문빗장 곁의 관못 통을 걷어찼다.

검은 못 세 개가 마루를 굴렀다.

"난 줄을 잡을게. 창밖 놈은 잡지 않아. 목찰부터 남긴다."

숙란이 지팡이로 방바닥을 더듬었다.

"나는 불을 끈다. 밖에서 안을 보게 두지 마라."

그녀가 등잔 심지를 눌렀다.

밝은 방이 한 호흡 만에 어두워졌다.

줄을 당기던 손이 목표를 잃었는지 창호지가 길게 찢어졌다.

서걱.

소만은 대답했다.

"받아. 나는 처마 밑을 본다."

정묵이 삼지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미늘은 목찰 대신 종이 가장자리를 물었다.

백로가 관못 하나를 집어 줄 밑에 세우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눌렀다.

묵정금나수의 손목 걸기를 사람 대신 줄에 쓴 동작이었다.

관못 머리가 백로의 손바닥을 찢었다.

피가 줄을 타고 한 마디 번졌지만 그는 왼손으로 정묵의 삼지를 받쳤다.

추격을 버리고 목찰을 남긴 값이 어느 손을 못 쓰게 됐는지까지 선명했다.

창밖에서 힘이 한 번 크게 걸렸다.

백로가 맞당기지 않고 손을 놓았다.

줄은 관못 머리에 감긴 채 밖으로 빠져나가다가 미늘 하나를 남겼다.

"왜 놔!"

소만이 소리쳤다.

"잡겠다고 버티면 묵이 손까지 창으로 끌려가. 남길 건 미늘이면 돼."

소만은 대꾸하지 못했다.

자기라면 끝까지 당겼을 것이다.

목찰과 아이가 같은 줄에 걸렸다는 것을 보고도 둘 다 지키려다 허리를 다시 다쳤을 것이다.

'내가 놓아야 저들이 잡는다.'

그녀는 문을 열고 처마 밑으로 나갔다.

담을 넘는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첫 두 걸음은 왼발을 길게 내디뎠으나 담 아래 떨어질 때 오른 뒤축이 한 번 끌렸다.

역명보를 썼다고 적을 수 있는 정도였다.

누구인지 적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마당에는 타다 만 심지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기름먹인 직물을 얇게 찢어 꼰 것이었다.

숙란이 코에 가까이 대자 곧 얼굴을 찌푸렸다.

"관 기름이 아니다. 쇠 녹을 막는 창고 기름이다. 붉은 흙을 섞었어."

정묵은 목찰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물었다.

"저걸 찾으러 온 거면 아버지가 넣은 걸 아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죠?"

"그래. 그리고 우리가 오늘 열었다는 것도 안다는 뜻이야."

"그럼 아버지를 찾는 것보다 먼저 뭘 해야 해요?"

소만은 예전처럼 답을 정해 주지 않았다.

"네가 받은 목찰을 어디에 둘지 네가 말해."

정묵은 방유직이 선 문턱을 보았다.

"이름은 안 쓰고 칸 둘만 보여 줄래요. 원본은 제가 볼 수 있는 데 봉해요."

"그렇게 하자."

백로가 바닥의 미늘을 뒤집었다.

끝에 붉은 가루가 끼어 있었고 미늘 목에는 하가 창고 목패와 같은 세모 홈이 났다.

같은 창고에서 나온 쇠일 수는 있었다.

누가 던졌는지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유직이 문밖에서 물었다.

"정오 전에는 이 목찰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적어야 합니다. 가족이 공개할 범위를 정했습니까?"

정묵이 먼저 대답했다.

"아버지 이름은 쓰지 마세요. 남경 창고하고 장부 칸만 써요."

"그 범위 밖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물건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네. 제가 옆에 있을 때만요."

유직은 방 안으로 들어와 목찰에 손대지 않고 부호를 인계표와 대조했다.

꼬리 모양, 차수 배열, 붉은 방청 분진이 하가 창고의 최근 검수표와 맞았다.

"이 세 가지면 최근 하가 창고 계통이라는 기능은 기록할 수 있습니다. 삽입자 이름은 쓸 수 없습니다."

"사람 이름은 쓰지 않겠습니다. 최근 삽입된 남경 운송 목찰과 두 장부 칸만 적겠습니다."

위패는 죽은 이를 모시는 나무이면서 남경 하가 창고로 물건과 기록을 돌리는 현재 운송 표식이었다.

백로는 위패를 다시 세우지 않았다.

삼지 위에 눕힌 채 정묵에게 물었다.

"네가 다시 세울래?"

"아직은요. 살아 있으면 왜 안 왔는지 듣고 세울래요."

소만은 아이에게 기다리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살아 있다면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야. 우리를 지킨 증인이면서 우리를 버린 사람이야."

숙란은 당주 자리에서 하던 말투를 내려놓았다.

"내가 냄새를 숨긴 책임은 네가 대신 지지 마라. 다음 결정에는 내 표를 먼저 세지 않겠다."

유직은 사람 이름을 비운 채 목찰 기능과 두 장부 칸만 봉함지에 썼다.

그때 대문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정묵의 제보원에게서 온 종이는 이름 없이 장부 칸 두 개만 적고 있었다.

남경에서 온 쪽지에는 하가 창고 장부를 오늘 밤 태운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죽은 사람의 위패를 열어 살아 있을 길을 찾았다.

이제 그 길에 적힌 살아 있는 이름부터 불길에서 빼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