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성화 12년 초겨울 여덟째 날 아침부터 아홉째 날 새벽까지였다.
폐선창 바닥에 고유생식 세 번 매듭과 하경업의 교환 쪽지가 놓였다.
소만은 매듭을 풀지 않았다.
한 번 풀면 손끝이 남편의 버릇을 진실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명단을 지키면 그 사람이 살아 기다리는 새벽을 놓칠 수 있어."
정묵의 손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
소만은 아들에게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묻지 않았다.
"묵아. 원하는 것과 주지 않을 것을 따로 말해."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데려오고 싶어요. 왜 안 왔는지도 직접 듣고 싶어요."
정묵은 매듭보다 소만을 보았다.
"살아서 오면 좋겠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 이름을 주지 말아 주세요."
백로가 문빗장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난 그자를 용서하지 않았어. 살아 돌아오지 말라는 뜻도 아니야."
"넘기지 않을 건?"
"그자를 살리겠다고 다른 집을 하경업 손에 돌려주는 것."
숙란은 지팡이 끝으로 자기 발 앞을 한 번 찍었다.
"처음 죽은 이름을 빌려 준 세대는 나다. 내 이름 하나를 내놓고 끝내고 싶었다."
소만이 입을 열려 하자 숙란이 손을 들었다.
"그것도 내가 다른 사람 몫을 대신 정하는 짓이다. 나는 그 애가 살아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도 남의 이름으로 값을 치르지는 않는다."
세 사람의 말은 고유생을 포기한다는 표가 아니었다.
보호 명단을 거래하지 않는다는 서로 다른 세 거절이었다.
"매듭이 진짜여도 지금 살아 있는지는 몰라."
소만은 자기 몫을 말했다.
"고유생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사지 않는다. 보호 장부는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 있길 바라지만 이름은 넘길 수 없어.'
"어머니, 그럼 아버지를 포기한다고 쓰지는 마세요."
"안 써. 오늘 고른 건 다른 이름을 팔지 않는다는 것뿐이야."
"그 문장은 제가 인계문에 그대로 남기겠습니다."
유직은 교환 쪽지 옆에 세 봉함 번호표를 그린 사본을 놓았다.
"전면 거부하면 상대가 아는 것을 확인할 기회도 사라집니다."
정묵이 귀로당에서 목찰을 넣어 두던 빈 장부 상자를 가리켰다.
"이 상자에 빈 종이를 넣어요. 번호표 사본은 보이게 두고 이름은 하나도 안 쓰면 돼요."
"상대가 상자만 가져가면?"
"그 사람이 세 봉함 번호를 아는지 알게 돼요. 모르면 그냥 빈 상자예요."
유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본 봉함은 열지 않습니다. 번호표와 무명 사본으로 먼저 맞춥니다."
"상대가 번호를 틀리면?"
"내부 장부를 모르는 손입니다. 목찰을 받아도 그 사실부터 적습니다."
상자 안에는 이름도 장부도 없었다.
빈 종이와 세 봉함 번호표를 베낀 조각뿐이었다.
육문조는 교환터 지도를 보았다.
폐 석회 부두는 수로와 육로가 갈리고 창고 회수선이 닿는 곳이었다.
"나는 목찰을 지키고 물자 회수선만 막습니다. 가족의 교환은 명령하지 않습니다."
백로가 부두 뒤 좁은 담길을 골랐다.
"나는 오른 뒤축을 본다. 육 총기는 물가를 봐. 잡는 것보다 뭘 두고 가는지 먼저."
해가 기울기 전에 빈 상자는 부두의 깨진 저울판 아래 놓였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 돌바닥은 젖어 있었다.
창고에서 버린 기름과 강물이 섞여 쇠비린내가 났다.
동쪽 하늘이 희어지기 전에 교환터를 비워야 했다.
자정이 지난 뒤 상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부두에 나타났다.
왼쪽 어깨로 빈 지게를 진 척했으나 오른 뒤축이 돌을 끌었다.
그는 상자 뚜껑을 열지 않았다.
바깥에 붙인 세 봉함 번호를 보고 두 번째 번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내부 번호를 아는 손이었다.
사내는 품에서 반쪽 목찰을 꺼내 상자 위에 놓았다.
목찰에는 손실 칸 표시와 차수 구멍 하나가 남아 있었다.
백로의 손이 칼자루에 닿았다.
소만이 손바닥을 폈다.
잡지 말라는 신호였다.
사내가 빈 상자를 드는 순간 무게가 예상보다 가벼워 한쪽 어깨가 솟았다.
속았음을 깨달은 몸이었다.
그는 상자를 던지고 수로가 아니라 담길로 뛰었다.
쿵.
짐 어깨를 두 번 바꾸고도 오른 뒤축은 같은 깊이로 끌렸다.
백로가 뒤를 따랐다.
육문조의 부하 둘은 물가에서 다른 회수자의 배를 막았다.
담길 모퉁이에서 쇠구슬 셋이 낮게 날아왔다.
백로는 회수자를 쫓는 대신 몸을 틀어 목찰 쪽 퇴로를 막았다.
사내는 달아났다.
대신 지게 끈과 신발 한 짝이 남았다.
백로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같은 역명보 계통이야. 잡지는 못했어. 목찰은 남았지?"
"남았다. 그게 네 역할이었어."
소만은 목찰을 맨손으로 들지 않았다.
유직이 종이 받침을 대고 정묵이 무명 사본을 펼쳤다.
절단면은 삼중 목패의 손실 칸에서 빠진 자리와 톱니처럼 맞았다.
원본 봉함은 열지 않고 입회 때 그려 둔 절단선 사본으로 먼저 확인했다.
차수 구멍은 사람·물자 칸과 같은 높이였다.
인계 획 끝은 귀로당 최근 수금 서명처럼 위로 꺾였다.
목찰 아래에는 하가 창고의 정식 검수 인이 반쯤 찍혀 있었다.
유직이 가진 창고 영업 인계 사본의 하경업 검수 인과 테두리 깨짐이 같았다.
단일 인장은 모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단면, 차수 구멍, 인계 획, 검수 인이 서로 다른 기존 사본과 함께 맞았다.
정묵이 젖은 지게 끈을 풀었다.
세 번 매듭의 마지막 고리는 안쪽으로 뒤집혀 있었다.
고유생이 강요받은 인계에서만 쓰기로 한 역매듭이었다.
"아버지가 묶은 거예요?"
"버릇을 아는 사람이 흉내 냈을 수도 있어."
소만은 매듭 눌림을 손톱으로 따라갔다.
역매듭은 쪽지의 바깥 매듭과 달랐다.
목찰을 처음 묶었을 때 생긴 오래된 눌림이었다.
"고유생이 직접 했거나 그가 가르친 손이 한 거야. 강요 신호가 이 목찰에 오래 붙어 있었어."
"하경업 인은 어느 사본과 맞아요?"
"창고가 사건 전 제출한 영업 인계 사본입니다. 오늘 가져온 인이 아닙니다."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니지?"
"최근 어느 때 이 계정에 닿았다는 뜻까지야. 지금은 몰라."
정묵이 지게 끈의 젖은 속심을 벌렸다.
매듭 아래에서 손가락 두 마디 너비의 얇은 종이가 나왔다.
겉에서 새로 끼운 쪽지가 아니었다.
오래 눌린 삼실 자국이 종이 양면에 박혀 있었다.
거기에는 세 줄만 적혀 있었다.
`보호 장부 없이 출석한다.`
`내가 만든 길과 내가 나른 차수를 따로 읽는다.`
`가족 자리는 청하지 않는다.`
아래에는 고유생(高有生)의 이름과 오른손 둘째 마디를 완전히 펴지 못한 반쪽 수결이 있었다.
귀로당 가족만 아는 버릇으로 끝내지 않도록 육문조의 상류 초소 압인이 옆에 찍혀 있었다.
압인 시각은 전날 해질녘이었다.
"살아 있었네요."
정묵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소만은 아이를 안지 않았다.
기뻐하라고도 울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전날 해질녘에는. 지금 여기 오는지는 이 종이만으로 몰라."
육문조가 초소 압인의 깨진 왼 테두리를 자기 통행첩과 맞췄다.
"내 부하가 찍은 인은 아닙니다. 상류 수문 초소의 인은 맞습니다. 고유생은 하경업의 출석선과 함께 귀명현으로 내려오겠다고 했소."
백로가 물었다.
"잡혀 오는 거요?"
"자기 발로 배에 올랐습니다. 다만 어느 증언부터 할지는 말하지 않았소."
숙란은 종이를 만지지 않았다.
"살아 오는 것과 우리 편으로 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정묵이 세 번째 줄을 다시 읽었다.
"가족 자리는 청하지 않는대요."
소만은 그 문장을 대신 해석하지 않았다.
수결 종이를 누락 목찰과 다른 봉투에 넣었다.
남편의 말이 증거의 빈칸을 모두 채우게 두지 않았다.
육문조는 하경업 검수 인과 황색 물자 차수를 자기 사본에 옮겼다.
민간 이름 칸은 만들지 않았다.
유직은 증거 순서를 읽었다.
귀로당 최근 수금 획, 창고 삼중 목패, 누락 손실 목찰, 하경업 검수 인, 고유생식 강요 역매듭.
어느 하나도 혼자 전부를 말하지 않았다.
누락 목찰은 사람·물자·손실의 세 칸을 하경업 검수 인과 한 차수로 묶었다.
해가 솟았고 교환터에는 고유생도 두 번째 쪽지도 오지 않았다.
정묵은 아버지를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백로는 용서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숙란은 선택이 옳았다고 자기 권위로 덮지 않았다.
가족은 누구도 그 선택을 용서나 포기의 이름으로 대신 적지 않았다.
유직은 귀명현으로 보낼 인계문에 하경업의 죄를 확정하지 않았다.
공개 심리에서 다툴 다섯 연결과 경쟁 가설을 적었다.
육문조는 명령 범위의 물자 증거로 하경업에게 출석·인계 요구를 보냈다.
지방 살인 판결이 아니라 공동 봉함 물자와 군호 기록의 공개 대조였다.
공동 봉함 원본, 누락 목찰, 무명 사본, 운송 증인은 서로 다른 배와 길로 귀명현을 향했다.
마지막 배가 부두를 떠나기 전, 안개 속에서 수척한 사내 하나가 금의위 초소병과 함께 걸어왔다.
오른 뒤축을 아꼈고 오른손 둘째 마디는 끝까지 펴지지 않았다.
소만은 얼굴보다 손을 먼저 알아봤다.
'기쁜데, 화가 난다.'
상복 소매에는 하가 창고의 붉은 분진과 마른 기름 자국이 겹쳐 붙어 있었다.
백로가 그 소매를 가리켰다.
"그 가루, 어느 문을 나왔어?"
"동쪽 검수방이다. 어젯밤까지 거기 묶여 있었다."
고유생은 가족 쪽으로 오지 않았다.
증언을 나르는 배의 빈 들끈 앞에 섰다.
"그 자리는 누가 정했어요?"
정묵이 물었다.
고유생의 손이 들끈에서 떨어졌다.
"내가 잘못 짚었다."
그는 가족에게 한 걸음 가까워지지 않고 증언석 배에 올랐다.
"내 이름은 내가 읽겠다. 너희 자리는 묻고 나서도 늦다."
다음에 열릴 것은 장부가 아니라 귀명현 공개 심리의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