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회차를 불러오는 중입니다.빌려 온 이름의 상여집 3화 – 곡소리 없는 상주 | Fictures
명 성화 12년 초겨울, 하룻밤 뒤 둘째 날 오전이었다.
유직과 백로가 덧칠 전 운송 증인의 장례 행렬을 동쪽 사당길에서 찾았다.
흰 상복 넷이 앞서고 검은 관이 뒤따랐다.
곡소리는 있었지만 향 냄새가 없었다.
소만은 돌담 그늘에서 행렬을 세었다.
앞의 둘은 왼쪽 어깨에 곡봉을 멨다.
가운데서 관끈을 잡은 사내는 상복을 입지 않았다.
그 사내의 손이 떨렸다.
곡꾼 넷 가운데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백로가 입술만 움직였다.
허리에는 짧은 칼을 차고 있었지만 손은 빈 채로 뒀다.
장례 인계를 받으러 온 사람은 칼보다 들끈을 먼저 보아야 했다.
곡봉을 쥔 오른손 검지 아래에는 붓 대신 밧줄을 당긴 굳은살이 있었다.
관끈 아래로 파고들어 운송 증인의 손목과 관 모서리를 한꺼번에 비틀었다.
사우귀로검은 넓은 마당에서 사람을 쫓는 검이 아니었다.
관의 네 모서리, 좁은 계단, 들끈이 돌아올 한 걸음 안에서 칼을 회수하는 법이었다.
소만은 첫 곡봉을 관 옆판에 닿기 전에 칼등으로 밀었다.
공격자의 팔이 뒤엉키자 관 발치에 한 칸이 생겼다.
둘 다 잡으려고 몸을 틀면 자기 허리가 가운데서 꺾였다.
그도 증인의 어깨를 당기고 있었지만 몽둥이보다 빨리 일으킬 수는 없었다.
왼발을 논둑 아래 박고 운송 증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뜨거운 줄 하나가 등뼈 옆에서 골반까지 찢어졌다.
백로는 이미 퇴로를 막으러 움직였고 유직은 증인의 어깨 아래에 있었다.
소만은 빈자리를 알리기만 하면 누군가 메울 것이라 여겼다.
돌담과 논둑이 만나는 가장 좁은 길을 자기 몸으로 닫았다.
가짜 곡꾼 하나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반대편 논으로 뛰었다.
백로가 칼을 겨누자 그는 곡봉을 오른손으로 바닥에 놓고 담을 짚었다.
증인의 목숨과 관의 뚜껑, 유직의 인계표가 자기 한 걸음 안에 있었다.
넓은 논으로 나가면 사우귀로검의 세 모서리는 모두 비었다.
달아나는 둘의 어깨가 다시 바뀌는 것을 세고 버려진 신발을 칼끝으로 자기 쪽에 끌었다.
남은 두 곡꾼은 관을 버리고 사당 뒤 숲으로 흩어졌다.
대신 신발 하나, 부러진 곡봉 하나, 관 네 모서리가 긁힌 높이, 그리고 살아 있는 증인이 남았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왼 허리 안쪽이 달군 못처럼 박혔다.
소만은 다시 숨을 들이켰다가 왼 허리를 짚었다.
먼저 신발을 삼지 위에 올리고 오른 뒤축 마모를 그렸다.
유직이 접어 봉했고 소만과 백로가 봉함 가장자리에 각자 손도장을 찍었다.
당장 그 감시자와 곡꾼들을 한 줄로 묶고 싶었다.
그러나 듣는 자와 칼을 쓰는 자가 같다는 증거는 없었다.
관을 귀로당으로 옮길 때 백로는 네 번째 들끈을 잡지 않았다.
아역 둘을 불러 네 번째 하중을 나누게 했다.
귀로당 작업마당에서 유직은 관의 긁힌 네 모서리를 같은 높이로 재지 않았다.
한 검객이 네 번 낸 흠이 아니라 네 사람이 다른 순간에 하중을 놓친 자국이었다.
종이도 먹도 달랐지만 두 글 모두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현에서 온 봉문에는 같은 이름을 쓴 두 가족 가운데 하나를 즉시 잡아들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백로는 네 번째 들끈 대신 문 앞을 막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