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41년 유월 초순.
이틀이 지나 있었다.
엎드려 있는 자세에도 익숙해지는 데가 있었다.
등이 아픈 것은 여전했으나 어느 각도가 덜 아픈지는 알게 되었다.
물그릇을 왼쪽에 놓으면 목을 덜 돌려도 되었다.
숙사 문이 열린 것은 사흗날 낮이었다.
"위경."
목소리를 먼저 알아들었다.
반년 만이 아니라 석 달 만이었는데도 오래된 소리처럼 들렸다.
위목(韋穆)이 문턱 안에 서 있었다.
왼팔에 토시가 없었다.
"…앉으세요."
"앉을게요."
위목이 앉았다.
앉는 자세가 예전과 달랐다.
무릎을 세우지 않고 편하게 앉았다.
"들었어요. 스무 대라고요."
"…예."
"많이 맞았네요."
"예."
"보여 주지는 마시고요. 저는 그런 거 잘 못 봐요."
위경은 웃으려다 등이 당겨서 그만두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바깥채 일 봐요. 장작 재고 물 나르고요."
"…"
"괜찮아요. 손은 안 아파요. 붓 쥐던 손이 장작 쥐면 처음엔 좀 어색한데, 며칠이면 돼요."
위경은 그 말을 받지 못했다.
사과하려고 입을 열었다.
열고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닫았다.
"하지 마세요."
위목이 먼저 말했다.
"뭘요."
"지금 하려던 거요."
"…"
"제가 청구했어요. 근거 맞았고요. 그때 제가 그랬잖아요. 당신 때문에 하는 거 아니라고요."
"기억합니다."
"그럼 됐어요."
위목이 무릎 위에 손을 놓았다.
손등에 먹 자국이 아직 있었으나 옅어져 있었다.
"근데 그거 알아요? 저는 그 판이 아직도 잘못됐다고 생각 안 해요. 어긋난 기재가 고쳐졌잖아요. 그건 맞은 거예요."
"값은 나셨고요."
"값은 났죠. 그건 별개예요."
"…별개가 아닌데요."
"저한테는 별개예요."
위목이 그렇게 말했다.
위경은 그 말이 위로가 아니라 사실 진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갚을 수 있었다.
원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갚을 자리가 없었다.
"볼일이 따로 있어요."
위목이 말했다.
"들을게요."
"소문 들었어요. 옛날 형식 기재 찾는다고요."
위경의 손이 멈췄다.
"…어디서요."
"바깥채도 사람 살아요. 말은 다 와요."
"…예."
"제가 원부는 이제 못 봐요. 그건 아시죠."
"압니다."
"근데 십 년 베꼈어요. 베낀 건 안 없어져요."
위목이 무릎 위의 손을 폈다.
"옛날 세 줄 형식이요. 그거 어디까지 남아 있는지 물으셨다면서요."
"…예."
"제가 본 건 다 삼십 년 전 거예요. 대력 십일 년에서 십이 년 사이요."
"몇 건이나 되는데요."
"기억나는 건 아홉이요. 더 있을 수도 있고요."
"아홉 건이 다 그 사이에 있어요?"
"예. 다 그 반년이에요."
위경은 그 숫자를 두 번 들었다.
"…반년이요."
"대력 십이 년 삼월부터 팔월까지요. 그 앞뒤로는 없어요."
"확실해요?"
"기재 형식은 안 잊어요. 다른 건 잊어도 그건 안 잊어요."
"왜요."
"손이 외워요. 획 순서가 다르거든요."
"…세 줄짜리는 어떻게 달라요?"
"끝에 한 줄이 더 붙으니까 아래 여백이 좁아요. 그래서 글자를 조금 눕혀 써요."
"눕혀 쓴 걸 보신 거예요?"
"예. 그거 보고 아, 이건 옛날 거구나 해요."
"…그럼 눕혀 쓴 장만 세면 되겠네요."
"세면 되죠. 볼 수 있으면요."
위목이 잠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 하나 더요. 그 반년에 정정 방이 유난히 많았어요."
"정정 방이요."
"조문 고칠 때 붙이는 거요. 보통 한 해에 두어 장인데, 그 반년에만 열몇 장이에요."
"…열몇 장."
"세어 본 적은 없고요. 베끼면서 손이 아팠던 게 기억나요. 그 반년만 유난했어요."
위경은 천천히 숨을 쉬었다.
숨을 쉬는 것도 등에 걸렸다.
"그거 어디 남아 있어요?"
"모르죠. 저는 못 보니까요."
"기재로는요."
"기억뿐이에요. 그건 증거가 안 되고요."
위목이 그 말을 스스로 했다.
서기였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왔어요."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됐고요."
위목이 일어섰다.
"몸이나 낫게 하세요. 걷지도 못하면서 뭘 하시겠어요."
문이 닫혔다.
위경은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반년이었다.
한 해에 두어 장 붙던 정정 방이 반년에 열몇 장 붙었다면, 그것은 일이 많았던 반년이 아니라 한 번의 작업이었다.
조문을 손보기로 정하고 손보고 방을 붙이고 끝낸 반년.
한 번의 작업에는 결재가 필요했다.
가법의 조문을 고치려면 결재가 있어야 한다.
위경은 그 절차를 벽에서 읽은 적이 없었다.
벽에는 조문만 있고 조문을 고치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정정 방이 붙었다면 누군가 붙이라고 했다는 뜻이었다.
대력 십이 년.
지금이 사십일 년이니 스물아홉 해 전이었다.
그때 위가에서 조문 결재를 낼 수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을 셌다.
장로회는 그때도 넷이었다.
그러나 장로 넷이 각각 결재를 내면 방의 형식이 넷으로 갈린다.
열몇 장이 같은 형식이었다면 손이 하나였다.
가주.
대력 십이 년의 가주는 위한중(韋漢仲)이었다.
그해에 스물아홉이었다.
위가를 문서의 가문으로 세운 것이 그 무렵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문서의 가문으로 세운다는 말을 위경은 열여덟 해 동안 칭찬으로 들었다.
셈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멈추려고 했다.
멈추는 법을 몰랐다.
세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 일이 그를 살렸다.
이번에는 그 일이 그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조율(曺律)이 이 집에 있었다.
삼십 년 전 공의회(公議會)가 무너졌다.
마지막 형명가가 세가에서 세가로 옮겨 다니다 위가 객사에 들었다.
언제 들었는지 위경은 몰랐다.
반년 시중을 들면서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왜 거기 있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장로회는 잊었다.
가주는 옛 인연이라고만 했다고 들었다.
옛 인연.
공의회가 무너진 해와 위가의 조문이 정리된 반년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위경은 셌다.
공의회 소각 의결은 대력 삼십오 년이었다.
조문 정리는 십이 년이었다.
스물세 해 차이였다.
겹치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에 잠시 안도했다.
안도하고 나서 자기가 안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겹치지 않는다는 것은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조율이 위가에 든 것은 공의회가 무너진 뒤였다.
조문이 정리된 것은 그보다 스물세 해 전이었다.
먼저 조문을 정리한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판례를 지고 도망친 사람이 그 집에 들었다.
들여 놓은 쪽이 누구인지는 이미 들었다.
위경은 눈을 감았다.
증거가 없었다.
위목의 기억은 기재가 아니었다.
아홉 건이라는 숫자도 열몇 장이라는 셈도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정정 방의 원본이 남아 있다면 어디 있는지 그는 몰랐고 알아도 지금은 걷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서 결론을 내면 그것은 오답이 된다.
그는 오답을 세운 적이 있었다.
열넷에 화병을 깬 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덟 해 동안 위연(韋衍) 장로 하나만 미워했다.
값을 낸 곳이 서가(徐家)라는 것은 여덟 해 뒤에 알았다.
한 사람을 세우면 그 뒤가 안 보인다.
나흘째 저녁에 그는 엎드린 채로 붓을 잡았다.
장부의 마지막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항목이 아니었다.
대력 십이 년 삼월에서 팔월.
정정 방 열몇 장.
결재는 하나.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하나.
그 아래에 물음을 적었다.
조율은 왜 이 집에 있었는가.
두 줄을 적고 나서 이름은 적지 않았다.
적을 수 있었다.
셈은 끝나 있었다.
적지 않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었다.
적으면 그날부터 그 이름을 향해서만 세게 된다.
그렇게 세면 그 뒤가 안 보인다.
붓을 놓았다.
닷새째에 그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걸을 수 있었다.
심의는 이레 뒤였다.
그날 낮에 위경은 봉검대로 갔다.
걸음마다 등에 열이 올랐지만 다리는 꺾이지 않았다.
위성(韋晟)이 문서방 화재 뒤 서고 입구를 봉하고 있었다.
"정정 방 원본을 보게 해 주십시오. 대력 십이 년 삼월부터 팔월까지입니다."
"자네가 꺼내면 반출이 되고, 위목이 찾으면 강등된 서기의 월권이 되네."
"그래서 형님이 봉함해 주셔야 합니다."
위성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이름을 찾으려는 건가."
"이름을 지우거나 적은 손을 찾으려는 겁니다. 같으면 그때 이름을 적겠습니다."
"다르다면?"
"적지 않습니다."
위성은 잠시 봉검패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몰래 꺼내지는 못하게 하겠네. 남 장로님과 내가 보는 데서 한 자루 향만 찾게. 못 찾으면 서고는 심의 뒤까지 다시 봉한다."
막는 말이었고 동시에 판을 세우는 말이었다.
위목은 서고 밖에 섰다.
문턱을 넘을 자격이 없었다.
남헌(南憲)이 탄 장 묶음을 하나씩 문턱까지 가져오면, 위목이 손을 허공에 움직여 예전 획 순서를 짚었다.
"세 줄짜리는 아래 여백이 좁아요. 마지막 획에서 손목이 눕습니다."
위경은 그 말대로 종이를 빛에 비췄다.
곧게 선 글씨는 넘겼고 마지막 줄이 왼쪽으로 누운 것만 남겼다.
향이 절반 탔을 때 일곱 장이었다.
셋째가 남았을 때 열한 장이었다.
마지막 재를 떨구기 직전, 불에 그슬린 장 둘이 같은 묶음 안쪽에서 나왔다.
열세 장이었다.
모두 대력 십이 년 삼월에서 팔월 사이였다.
모두 같은 손으로 눕혀 썼고 같은 무맥인이 뒷면에 눌렸다.
그중 한 장의 표제는 제7조 정리였다.
서자는 고발인이 될 수 없다.
서자가 입은 손해는 손해로 적지 아니하고 사정으로 적는다.
셋째 줄 삭제.
대독은 위가 재판의 소임이 아님.
남헌이 인장함의 첫째 인을 꺼냈다.
한쪽 모서리가 닳아 세 번째 홈이 반 치 얕은 인장이었다.
정정 방의 눌림과 포갰다.
맞았다.
"첫째 인은 가주 인입니다."
남헌이 말했다.
위성의 오른손이 소매 안에서 쥐어졌다.
그가 자기 손으로 봉검패를 들어 열세 장의 새 봉함에 청람경을 흘렸다.
아버지의 옛 인장을 아들의 인장이 증거로 묶었다.
"이제 자네 소지가 아니네. 장로회 봉함이야."
"예."
"이걸 내일 아버지를 치는 데 쓸 건가."
위경은 열세 장을 보았다.
이름 하나를 먼저 세우면 그 뒤가 안 보였다.
"제7조를 고친 사실까지만 쓰겠습니다. 병상의 사람을 벌해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왜지."
"그 판은 아직 없습니다."
위성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열세 장을 자기 쪽이 아니라 남헌의 문서함 쪽으로 밀었다.
사각.
"그럼 내일은 같은 증거로 다투겠군."
"같은 증거를 다른 자리에서 읽습니다."
서고 문이 다시 봉해졌다.
위경은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벽을 짚었다.
상처가 다시 젖었으나 이름은 찾은 뒤였다.
심의는 이제 엿새 뒤였다.
'엿새면, 이름을 앞세우지 않을 준비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