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41년 오월 초순.
닷새가 지나 있었다.
새벽 종이 울린 것은 닷새째였다.
재판 종이 아니라 불을 알리는 짧은 타종이었다.
쨍, 쨍.
문서방 동쪽 창에서 검은 연기가 나왔다.
위경이 달려갔을 때 바깥채 장작을 나르던 위목(韋穆)이 문 안에 있었다.
강등된 사람에게 들어갈 자격은 없었으나, 안에 쓰러진 늙은 서기를 먼저 본 모양이었다.
"위목 씨. 나오세요."
"사람이 안쪽에 있어요."
천장 서까래 하나가 내려앉았다.
불붙은 종이가 바닥을 기어 정정 방을 넣어 둔 낮은 궤로 번졌다.
위경은 물통을 쏟았다.
불길은 낮아지지 않았고 젖은 바닥만 미끄러워졌다.
무공이 없다는 것은 저 서까래 하나를 옮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위성(韋晟)이 봉검대 쪽에서 달려왔다.
수련 중이었는지 검은 들지 않았고 오른손만 소매 밖에 나와 있었다.
"안에 몇이지?"
"둘입니다. 위목 씨와 늙은 서기요. 정정 방 궤는 동쪽 벽 아래입니다."
"사람부터 빼겠네."
위성이 청람경(靑藍勁)을 손바닥에 흘려 내려앉은 서까래의 결 전체를 받쳤다.
타는 나무가 푸르게 식으며 한 호흡 동안 멈췄다.
그가 위목을 끌어냈고 위목은 기침하면서도 늙은 서기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
"한 번 더 들어가면 궤를 꺼낼 수 있어요."
위경이 말했다.
"안 돼. 들보가 한 번밖에 안 버텨."
"형님 손도 한 번뿐입니다. 다시 쓰면 목이 잠깁니다."
위성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
위경이 청람경의 값을 안다는 것을 처음 확인한 얼굴이었다.
위경은 불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병기고 앞의 젖은 폐기포와 긴 봉검 갈고리를 가져왔다.
바닥에 엎드려 갈고리를 궤 손잡이에 걸었다.
얼굴 앞에서 열기가 밀렸고 젖은 천에서 김이 났다.
"당기게."
위성이 왼손으로 갈고리 자루를 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당겼다.
궤가 문턱에 걸렸다가 빠졌다.
정정 방 열몇 장 가운데 바깥 묶음 셋은 가장자리가 탔다.
안쪽 장들은 젖었으나 글씨가 남았다.
불붙은 종이 한 장이 위성의 소매에 닿았고 그가 손등으로 쳐 내는 순간 청람경의 푸른 식음 자국이 재와 섞였다.
사람 둘은 살았고 문서 전부는 살지 못했다.
불은 등잔이 쓰러져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누가 밀었는지는 적히지 않았다.
하씨는 원인을 정하기 전에 탄 장 수부터 세었다.
안채에서 사람이 온 것은 아침이었다.
종부가 부른다고 했다.
하씨(河氏)는 곳간 앞이 아니라 안채 마루에 앉아 있었다.
열쇠 꾸러미가 옆에 놓여 있었다.
앉으라는 말은 없었다.
"삼월 초이레 정정이 하나 있었죠."
"…예."
"사월 스무이레에 또 하나 있었고요."
"예."
"그 사이에 객사 물목에서 손실이 났어요."
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음이 아니었다.
하씨가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세 건이 다 한 사람 자리에서 나왔더라고요."
"…제가 청구한 것은 없습니다."
"알아요. 둘 다 다른 사람이 청구했죠. 위목이 하나, 위연 장로가 하나."
"예."
"근데 둘 다 그쪽이 서 있던 자리에서 났어요."
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화를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세는 소리였다.
"그건 제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하지 않았겠죠. 나도 그렇게 봐요."
하씨가 열쇠 꾸러미를 한 번 고쳐 잡았다.
"그런데 셈은 그렇게 안 돼요. 세 번이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자리예요."
위경은 그 말의 정확함을 알아들었다.
"하나만 물을게요."
"예."
"지난달에 서고 폐기 궤를 뒤졌다면서요."
방이 조용해졌다.
마루 밑에서 나무가 한 번 울었다.
"수리 장부를 찾았습니다."
"찾았죠. 그건 기재에 나와 있고요."
하씨가 그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거 말고 또 뭘 봤어요?"
위경은 대답하기 전에 한 호흡을 썼다.
그 호흡이 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한 지난 물목이 묶여 있었습니다."
"그건 다들 알아요."
"…예."
"그러니까 그거 말고요."
"…달리 본 것은 없습니다."
하씨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믿었다는 표시가 아니라 답을 받았다는 표시였다.
"알겠어요. 가 보세요."
위경이 마당으로 내려섰을 때 하씨가 뒤에서 한 마디를 더 했다.
"별항은 시월에 닫아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예."
곳간 앞에서 두칠(斗七)을 만난 것은 그날 낮이었다.
빗장에 새 못이 박혀 있었다.
"이거 들으셨어요?"
"뭘요."
"서가에서 사람이 또 왔대요. 이번엔 혼사 일이 아니고요."
두칠이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돈 얘기래요. 빌려준 걸 당긴다고요."
"…언제 들었어요."
"어제요. 저는 그냥 오가는 말 들은 거예요."
"그렇군요."
"근데요."
두칠이 못 하나를 손끝으로 만졌다.
"그 말에 그쪽 이름도 같이 나와요."
위경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요."
"서자가 장로 하나를 넘어뜨렸다고요. 그렇게들 말해요."
"…그건 아닙니다."
"저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렇게 돌아요."
두칠이 손을 털었다.
"바로잡으실 거예요?"
위경은 그 물음을 오래 들고 있었다.
바로잡으려면 자기가 그 일에 관련되었음을 먼저 말해야 했다.
관련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소문은 사실이 된다.
아니라고 말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아니요."
"그러시구나."
두칠은 더 묻지 않았다.
못을 하나 더 박았다.
"조심하세요. 이름 나오는 건 좋은 게 아니에요."
"압니다."
위성(韋晟)의 전갈이 온 것은 저녁이었다.
처소는 넓었고 등이 밝았다.
위성은 서서 맞았다.
앉으라고 하기 전에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래 못 봤네. 요새 바쁜가."
"바쁘지 않습니다."
"앉게."
위경은 앉았다.
위성이 마주 앉았고 검을 쥔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어릴 때 배운 예의였다.
"자네 이야기가 좀 도네."
"…예."
"내가 그거 다 믿는 사람은 아니야. 다만 이름이 도는 건 자네한테 좋을 게 없지."
"예."
"그래서 생각을 좀 했네."
위성이 웃었다.
웃음이 먼저 오는 얼굴이었다.
"문서방 자리가 하나 비었어. 위목이 나간 자리."
위성이 그을린 오른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손끝은 아직 푸르게 식어 있었다.
"오늘 탄 장을 다시 베껴야 해. 아침에 궤를 꺼낸 사람이라면 형식을 놓치지 않겠지."
방이 조용해졌다.
"자네가 문서를 잘 본다는 건 나도 알아. 거기 앉으면 이름도 정리되고, 사람들이 함부로 말 못 해. 내가 붙여 줄 수 있네."
"…"
"어떤가."
위경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셈을 하고 있었다.
문서방 자리는 위경이 열여덟 해 동안 가져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자리가 생기면 원부를 볼 수 있고 원부를 보면 옛 형식 기재를 찾을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조건이 있습니까."
위성이 웃음을 조금 줄였다.
"조건이랄 것도 없고."
"말씀해 주십시오."
"…정정 같은 거, 당분간만 좀 쉬게. 집이 지금 시끄러워."
거기 있었다.
"당분간이 얼마입니까."
"글쎄. 서가 일이 정리될 때까지지."
"정리는 누가 합니까."
"어머니가 하시겠지."
위경은 무릎 위에 손을 놓았다.
자리를 받으면 원부를 볼 수 있었다.
원부를 보면 항목이 늘었다.
그러나 자리를 받는 조건이 항목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볼 수 있으나 쓸 수 없는 자리였다.
여덟 해 전에 마당에서 맞은 아이의 이름이 종이 위에서 아니라고 적히기까지 여덟 해가 걸렸다.
당분간이라는 말에는 셈이 없었다.
"못 받겠습니다."
위성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왜."
"당분간이라는 말에 기한이 없어서입니다."
"기한을 정해 주면 받겠나."
"기한이 정해지면 그건 조건입니다. 조건이 붙은 자리는 자리가 아니라 값입니다."
위성이 잠시 말을 찾았다.
찾는 동안 웃음이 사라졌고 사라진 자리에 다른 것이 오지 않았다.
"자네."
"예."
"나는 자네를 해치려는 게 아니야."
"압니다."
"아는데 왜 안 받나."
"해치려는 것이 아닌 것과 값이 아닌 것은 다릅니다."
위성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위경은 일어섰다.
절을 하고 돌아섰다.
문턱을 넘기 전에 뒤에서 소리가 났다.
"위경아."
발이 멈췄다.
열여덟 해 동안 이 집에서 그 이름이 그렇게 불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죽은 뒤로는 없었다.
돌아섰다.
위성이 앉은 채로 그를 보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 주게."
말이 짧았다.
위성이 짧게 말하는 것을 위경은 처음 들었다.
"…"
"자네가 뭘 세고 있는지 나는 몰라. 알 수가 없어.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하니까."
"…"
"그러니까 자네가 말해 주게. 고칠 수 있는 건 고치겠네."
위경은 열여덟 해치 항목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말해야 하는지 셈했다.
세다가 그만두었다.
셈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항목을 읽으면 위성은 그것을 하나씩 고치려 들 것이고 고쳐진 항목은 청산된 항목과 다르다.
값을 치르지 않고 지워지는 항목은 장부에서 가장 나쁜 종류였다.
"삼월 초이레에 형님이 저를 당사자석에 부르셨습니다."
"…그건 내가 자리를 권한 거잖나."
"예."
"그게 잘못인가."
"잘못이 아닙니다."
위경은 거기서 한 박자를 놓았다.
"다만 그날 제7조가 마당에서 읽혔습니다. 가노 열아홉이 들었습니다. 형님은 그걸 모르셨습니다."
위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그걸 알고 있었고 형님은 모르셨습니다. 그 차이가 여덟 해쯤 쌓이면 셈이 됩니다."
"…"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위경은 절을 하고 나왔다.
숙사로 돌아와 장부를 폈다.
위목(韋穆), 막손(莫孫), 위소란(韋素蘭).
세 줄이 있었고 하나에만 점이 있었다.
그 아래에 두 줄을 더 적었다.
대력 41년 오월 초닷새.
종부가 세 건을 한 자리로 묶었다.
나는 변수가 되었다.
대력 41년 오월 초닷새.
형님이 자리를 주며 기한 없는 당분간을 붙였다.
호의였고 값이었다.
적고 나서 두 줄을 보았다.
이번 것들은 뒷자리가 아니었다.
남이 문 값이 아니라 그가 진 것이었다.
오랜만이었다.
붓을 놓고 나서야 그는 오늘 자기 이름이 불렸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이름이 불리면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되면 셀 수 있게 된다.
세어지는 쪽이 되었다.
'이제 남의 값만 셀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