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41년 사월 초순.
이틀이 지나 있었다.
객사는 비어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옷 두 벌과 서궤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위경(韋擎)은 아침마다 그 앞을 지났고 지날 때마다 걸음이 반 박자 느려졌다.
사월 초이레 낮에 안채에서 사람이 왔다.
종부가 부른다고 했다.
하씨(河氏)는 곳간 앞에 서 있었다.
열쇠 꾸러미가 허리에 있었고 손이 거칠었다.
위경을 보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객사에 드나든 사람이 누구예요."
"저와 가노 하나입니다."
"이름."
"막손(莫孫)입니다."
하씨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셈이 끝났다는 표시였다.
"내일 아침에 객사 물목을 세요. 주인 없는 물건은 곳간으로 들어가요."
"…예."
"유족이 없죠."
"없습니다."
"그럼 곳간이에요. 연고가 나타나면 그때 내주고요."
위경은 다음 말을 반 박자 늦게 놓았다.
"물목은 무엇까지 셉니까."
"방에 있는 거 전부요."
"옷가지도요."
"옷가지도 물건이에요. 값이 있으면 세고 없으면 태워요."
"태우는 건 누가 정합니까."
"내가 정해요."
"…예."
"왜요. 태우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위경은 한 호흡을 썼다.
"없습니다."
"그럼 됐고요."
"들어올 때 적힌 것도 봅니까."
"보죠. 배정 기록이랑 맞춰 봐야 하니까요."
거기서 위경의 셈이 끊겼다.
끊긴 자리가 조용했다.
"…시각은 언제입니까."
"진시(辰時)예요. 늦지 마세요."
하씨가 열쇠 꾸러미를 한 번 고쳐 잡았다.
짤랑.
"그쪽이 반년 시중을 들었다면서요."
"들었습니다."
"수고했어요."
말에 온기가 없었다.
비아냥도 없었다.
셈이 끝난 자리에 붙는 말이었다.
위경은 물러났다.
밤이 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면 시각이 좁아진다.
정청 서고는 문서방 뒤쪽, 봉검대 병기고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안쪽 끝에 폐기 대기 궤가 셋 놓여 있었다.
기한이 지나 지우기로 정해진 문서를 담아 두는 자리였다.
해마다 한 번 비우고 태웠다.
지워지기로 정해진 것은 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없는 것으로 세어 둔 물건을 다시 세지 않는다.
위경은 그 셈을 확인하고 나서 객사로 갔다.
스물세 권은 무거웠다.
한 번에 옮길 수 없어 세 번에 나누어 옮겼다.
옷 속에 넣지 않았다.
품에 넣으면 걸음이 달라지고 걸음이 달라지면 봉검대 무인이 먼저 보았다.
병기고에서 쓰는 종이 상자를 가져왔다.
바닥에는 기한이 지난 검 수리 장부를 한 겹 깔고 판례집을 놓은 뒤, 위에는 폐기 문서를 얹었다.
봉검령은 무맥이 찍힌 종이를 따로 세라고 했다.
폐기 수리 장부를 나르는 상자는 오히려 명령에 맞는 물건이었다.
첫 번째 상자는 지나갔다.
두 번째에는 봉검대 수련생이 상자에 손을 얹었다.
청람경의 찬 기운이 쇠고리와 수리 장부의 낡은 무맥인을 훑었다.
판례집까지 닿기 전에 기운이 흩어졌다.
"폐기할 수리부입니까?"
"예. 기한이 지났어요."
"상자가 셋이나 됩니까?"
"한 상자에 몰면 바닥이 빠집니다."
수련생이 상자 옆의 푸른 손자국을 보았다.
"옛 무맥인이 찍힌 것도 태웁니까?"
"폐기 기재가 붙었으면 태워요."
"힘을 쓴 이름도 같이 없어지겠네요."
"기한이 지나면 이름보다 기한을 먼저 봐요."
"문서방은 참 편하군요. 검은 부러져도 쇳값이 남는데."
"소각 날은 알아요?"
"미리 안 알려 줍니다. 손댈 사람이 생긴다고요."
"그러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지금 옮겨요."
수련생은 웃지 않았다.
자기가 지키는 병기고와 옆 서고의 차이를 이제 본 얼굴이었다.
거짓은 아니었다.
위에 놓인 것과 아래에 놓인 것은 모두 그 말에 들어갔다.
가운데만 들어가지 않았다.
수련생이 손을 뗐다.
상자 옆면에 푸른 손자국이 남았다.
세 번째 걸음에서 상자 바닥이 벌어졌다.
종이 모서리 하나가 아래로 미끄러졌다.
위경이 무릎으로 받으려는 순간 물동이를 들고 지나던 막손(莫孫)이 상자 밑을 떠받쳤다.
물이 반쯤 쏟아져 두 사람의 신발을 적셨다.
"무거운 걸 왜 혼자 들어요."
"놓지 마세요."
위경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막손은 상자 안을 보지 않았다.
벌어진 밑을 손바닥으로 막은 채 서고 문턱까지 같이 걸었다.
오른손등의 데인 자국에 푸른 상자 손자국이 묻었다.
"여기 두면 돼요?"
"예. 그리고 지금 일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잊어 달라고 하면 기억해야 할 일이 된다.
"물이 쏟아졌다고만 하세요."
"그건 사실이잖아요."
막손이 손등에 남은 푸른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자국은요?"
"물을 더 받아 씻으세요. 문서방 사람에게는 보이지 말고요."
막손은 젖은 바닥을 가리키고 돌아갔다.
폐기 대기 궤의 뚜껑을 열었을 때 안쪽 문서의 결이 보였다.
기한이 지난 물목들, 수결이 지워진 계약서, 이름이 다 바랜 명부.
위가가 지우기로 정해 놓은 것들이었다.
그 사이에 공의회(公議會)가 지우기로 정한 것을 넣었다.
위경은 뚜껑을 닫았다.
닫고 나서 손을 궤 위에 얹은 채 잠시 있었다.
객사로 돌아와 서궤를 닫아 두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이튿날 진시에 하씨가 왔다.
가노 둘이 따라왔고 하나는 붓과 종이를 들었다.
물목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홑옷 한 벌. 도포 한 벌."
붓이 움직였다.
"수정 조각 하나. 붓 두 자루."
"…예."
"서궤 하나."
하씨가 서궤 앞에 섰다.
뚜껑을 열었다.
안이 비어 있었다.
하씨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뚜껑을 손끝으로 짚은 채 잠시 있었다.
그 잠시가 길었다.
"배정 기록 가져와요."
가노가 뛰어 나갔다가 돌아왔다.
하씨가 종이를 받아 한 줄을 짚었다.
"들어올 때 서궤 하나. 안에 서책 다수."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다수라고만 적혔네요. 수는 안 적혔고요."
"…예."
"그래도 다수는 다수예요. 지금은 영이고요."
"다수가 몇인지는 정할 수 없습니다."
"정할 필요 없어요. 하나라도 있었으면 없어진 거니까."
하씨가 서궤 안쪽을 손끝으로 훑었다.
"먼지가 고르지 않네요."
"…예."
"오래 놓여 있던 자국이 있어요. 무거운 게 얹혀 있었고요."
"…"
"언제 비었는지는 몰라도, 비운 사람은 있는 거죠."
하씨가 종이를 접었다.
"객사에 드나든 사람이 둘이라고 했죠."
위경은 대답하기 전에 한 호흡을 썼다.
그 호흡 동안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었다.
그 말을 하면 스물세 권은 오늘 안에 곳간으로 들어가고 곳간에 들어간 문서는 제31조로 처리된다.
처리되면 조건도 끝난다.
"…둘입니다."
"막손 불러요."
막손(莫孫)은 마당 끝에서 뛰어왔다.
열아홉이었고 키가 작았다.
오면서 손을 옷에 문질렀다.
"객사 청소 네가 했지."
"예. 제가 했습니다."
"언제부터."
"어르신 돌아가신 다음 날부텁니다. 아침마다 쓸었습니다."
"서궤 열어 봤어?"
"안 열었습니다."
"안을 본 적은."
"없습니다. 뚜껑이 닫혀 있어서 그냥 쓸고 나왔습니다."
하씨가 종이를 폈다.
"서책이 없어졌어."
막손의 손이 멈췄다.
"…무슨 서책입니까."
"그건 네가 알 일이 아니고. 없어졌다는 게 중요하지."
"저는 안 가져갔습니다."
"드나든 사람이 둘이야."
"저는 아침에 쓸고 나왔습니다. 아침에 쓸고 나왔습니다."
같은 문장이 두 번 나왔다.
위경은 그것이 방어가 아니라 방어할 언어가 없는 사람의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두칠(斗七)에게서 이미 들은 소리였다.
"글은 읽어?"
"…못 읽습니다."
"못 읽는 애가 서책을 왜 가져가."
하씨가 그렇게 말했다.
위경은 그 말에 잠시 기대를 걸었다.
"팔면 돈이 되니까 가져가지."
다른 가노가 말했다.
하씨가 그쪽을 보지 않고 손을 조금 들었다.
말이 끊겼다.
"막손아."
"예."
"마지막으로 물을게. 네가 안 가져갔으면 누가 가져갔어."
막손이 고개를 들었다.
마당에 사람이 다섯 있었고 그중 하나가 위경이었다.
막손의 눈이 위경 쪽으로 오다가 멈췄다.
상자를 함께 받쳤던 손이 옷자락 안에서 한 번 쥐어졌다.
그는 위경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멈춘 자리에서 눈을 내렸다.
"…모릅니다."
그는 이름을 대지 않았다.
남을 지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른다는 걸로 적어요."
붓이 움직였다.
"물건이 없어졌고 드나든 사람 중 하나는 못 읽고 하나는 서자예요. 서자는 이 집 물건을 가져갈 이유가 없고요. 남는 건 하나죠."
하씨의 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셈을 읽는 소리였다.
위경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마디였다.
제가 옮겼습니다, 다섯 자였다.
다섯 자면 막손은 오늘 저녁밥을 먹고 내일 아침에도 객사를 쓸었을 것이다.
그는 그 다섯 자의 값을 셌다.
세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보면서도 셈을 멈추지 않았다.
"매 열 대. 객사 출입 금지. 곳간 근처에도 오지 말고요."
하씨가 그렇게 정했다.
관아로 넘기지 않았고 내쫓지도 않았다.
손실의 크기에 맞춘 처분이었다.
막손은 항의하지 않았다.
옷을 벗고 마당에 엎드렸다.
열을 세는 소리가 마당에 났다.
위경은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안 본 것이 되고 안 본 것은 적히지 않는다.
여덟째에서 막손이 소리를 냈다.
짧았다.
열째까지 다 맞고 일어섰을 때 다리가 한 번 꺾였다가 섰다.
"들어가."
막손이 옷을 챙겨 들고 절을 했다.
절을 하고 나가면서 위경 앞을 지났다.
지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도 들지 않았다.
마당이 비었다.
하씨가 종이를 접어 가노에게 넘겼다.
"곳간 물목에 손실로 올려요. 서책 다수, 소재 불명."
"예."
"연고 없는 손님 물건이니까 별항으로 두고요."
"별항은 뒤에 어떻게 됩니까."
"한 해 지나면 닫아요."
"닫으면요."
"없던 걸로 되죠. 손실도 물건도요."
"…예."
"왜요. 찾아올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하씨가 위경 쪽을 한 번 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그쪽은 오늘부터 객사 일 안 해도 돼요."
"…예."
"수고했어요."
두 번째 듣는 말이었다.
이틀 전과 같은 온도였다.
저녁에 위경은 정청 서고 앞을 지났다.
폐기 대기 궤 셋은 그대로였다.
해마다 한 번 비우고 태운다고 했다.
언제인지는 묻지 않았다.
묻는 것 자체가 기록이 된다.
숙사로 돌아와 안쪽 장부를 폈다.
위목(韋穆)의 줄이 맨 앞에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막손(莫孫).
대력 41년 사월 초여드레.
매 열 대와 객사 출입 금지.
내가 옮겼고 저 사람은 떨어지는 상자를 받았고 맞은 것도 저 사람이었다.
적고 나서 위경은 그 두 줄을 나란히 보았다.
위목은 값을 알고 판에 섰다.
막손은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에 엎드렸다.
같은 장부에 적혀 있었지만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그는 그 차이를 표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표시하지 않으면 언젠가 같은 줄로 읽힐 것이었다.
막손의 줄 앞에 점을 하나 찍었다.
찾아낸 구분은 점 하나뿐이었다.
점 하나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섞어 적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