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大曆) 41년 삼월 중순.
이레가 지나 있었다.
문서방(文書房)은 정청 동쪽 끝의 낮은 건물이었다.
위경(韋擎)은 약재 값을 적은 종이를 받으러 갔다.
받아 나오는데 안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위경."
서기 하나가 문설주 옆에 서 있었다.
위목(韋穆)이었다.
왼팔에만 토시를 끼고 있었다.
"잠깐 봐요."
위경은 걸음을 멈췄다.
방계가 서자를 부르는 말투가 아니었다.
낮추지도 올리지도 않는 소리였다.
"삼월 초이레자 기재요. 정청 마당 건."
"…예."
"그날 낭독 들었죠."
"들었어요."
"몇 줄이던가요."
위경은 대답하기 전에 반 박자를 썼다.
"두 줄이었어요."
위목이 안쪽으로 들어가 원부를 폈다.
손끝을 먼저 대고 장을 넘겼다.
"여기는 세 줄이에요."
위경은 원부를 보았다.
남헌의 낭독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서자는 고발인이 될 수 없다.
서자가 입은 손해는 손해로 적지 아니하고 사정으로 적는다.
그리고 한 줄이 더 있었다.
다만 대독인(代讀人)을 세워 그 사정을 판에 읽게 할 수 있으며 읽힌 사정은 손해로 고쳐 적는다.
셋째 줄 아래에는 먹 인장이 아니라 눌린 자국 둘이 있었다.
하나는 세 손가락의 깊이가 달랐고 다른 하나는 반듯한 사각이었다.
오래되어 푸른빛은 사라졌으나 종이 뒷면의 층은 남아 있었다.
"무맥인하고 봉함인이네요."
위목이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저는 눌림만 봤어요. 어느 인장인지는 몰라요."
"인장함과 대조하면 판이 정청이 아니라 봉검대에서 열리겠네요."
"그래서 장로님께 먼저 보여야 해요. 제가 꺼내 가면 계통이 끊기니까요."
방 안이 조용했다.
위경의 손끝이 종이에서 반 뼘 떨어진 자리에 멎었다.
"…이건 누가 적었어요."
"기재 담당이 셋인데, 그날은 늙은 서기예요. 형식을 옛것으로 외운 사람이라서요. 새 문면이 언제 정리됐는지 저는 모르고요."
"이런 게 여기 말고도 있어요?"
"찾아봐야죠. 지금 아는 건 이거 하나예요."
위목이 원부를 덮었다.
"낭독은 두 줄인데 기재는 세 줄이면 둘 중 하나는 틀린 거예요. 어느 쪽이 틀렸는지는 제가 정할 일이 아니고요. 그래서 정정을 청하려고요."
"…정정을요."
"기재가 어긋난 채로 남으면 대조가 안 돼요. 저는 그게 싫어요."
위경은 그 말을 두 번 들은 것처럼 받았다.
싫다는 말을 도덕이 아니라 직업으로 쓰는 사람이었다.
"청하면 판이 열려요?"
"열려요. 저는 청구할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 위경의 셈이 방향을 바꿨다.
방계는 고발인이 될 수 있었다.
서자는 될 수 없었다.
열여덟 해 동안 그가 부딪쳐 온 벽이 위목에게는 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위목은 자기가 무엇을 밟고 서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보였다.
"…내일 다시 와도 돼요?"
"오세요. 원부는 여기 있어요."
이튿날 낮에 위경은 문서방으로 갔다.
위목은 대조를 하고 있었다.
위경이 들어서자 붓을 놓고 손을 살폈다.
"생각해 봤는데요."
"예."
"그 판이 열리면 고쳐지는 건 기재만이 아니에요."
위목이 처음으로 시선을 들었다.
"무슨 뜻이에요."
"세 줄이 맞다고 판정되면, 셋째 줄이 살아나요. 대독인을 세워 사정을 읽게 하면 그건 손해로 적혀요."
"…그렇겠네요."
"그날 마당에서 사정으로 적힌 게 하나 있어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위목이 원부 쪽을 한 번 보았다가 위경을 보았다.
"당신 거요."
"예."
"그러니까 제가 청구하면, 결과적으로 당신 항목이 손해로 올라가는 거고요."
"예."
위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반만 말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판을 연 사람한테 월권이 붙어요. 서기가 판을 여는 건 소임 밖이니까요."
"…벌이요."
"강등이나 삯이에요. 둘 다일 수도 있고요."
위목이 붓집을 손끝으로 한 번 건드렸다.
"당신은 왜 말해 줘요. 안 말하면 저는 모르고 청구할 텐데요."
"값을 모르는 사람한테 값을 물리면, 그건 제가 무는 게 아니라 훔치는 거라서요."
위목이 붓집에서 손을 뗐다.
"이상한 사람이네요."
"…예."
"보통은 안 말하죠. 말하면 안 해 줄 텐데요."
"안 해 주셔도 돼요."
"그건 또 이상하고요."
위목이 원부를 조금 밀어 놓았다.
"하나 물을게요. 그 셋째 줄, 어디서 알았어요."
위경은 반 박자를 썼다.
"…들었어요."
"누구한테요."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위목이 웃지 않고 말했다.
비꼬는 소리도 아니었다.
"근데 저는 그거 안 궁금해요. 원부에 세 줄이 있으니까 세 줄이 있는 거예요. 당신이 어디서 들었든 원부가 바뀌진 않아요."
"…그렇네요."
"그러니까 당신이 뭘 숨기든 제 청구랑은 상관없어요. 그게 편하죠?"
위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편했다.
편하다는 것이 불편했다.
"강등되면요."
"예."
"문서방에서 나가면 원부는 못 봐요."
위목이 처음으로 손을 멈췄다.
"…그건 생각 안 했네요."
"지금 생각하세요."
방 안이 조용했다.
위목이 책상 위의 토시를 한 번 보았다.
"봐도 안 고칠 거면 보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
"고칠 수 있을 때 고치는 게 서기예요. 못 고치게 되면 그때는 서기가 아니고요."
위목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이 원부 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왔다.
"근거는 맞죠?"
"맞아요."
"기재가 어긋난 것도 사실이고요."
"사실이에요."
"그럼 청구할게요."
위경이 뭔가 말하려 했다.
위목이 먼저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당신 때문에 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어긋난 기재가 싫은 거예요."
"…압니다."
"알면 됐어요."
남헌(南憲)은 원부를 문서함에 넣고 직접 봉검대로 옮겼다.
위목도 위경도 종이에 손대지 않았다.
인장함의 오래된 둘째 인과 눌림 높이가 맞았다.
운용자의 이름은 바랜 봉검부에 남지 않았지만 셋째 줄이 무공 손상의 대독 판에서 쓰였다는 계통은 섰다.
판은 사흘 뒤에 열렸다.
봉검대의 청석이 물로 씻겼다.
입구의 쇠고리 열둘에는 방청 무인들의 검이 삼끈으로 묶였다.
위경은 단 아래, 담과 청석 사이 한 뼘 되는 자리에 섰다.
열여덟 해 동안 그 자리에서 남의 판을 보았고 오늘도 자격은 위목의 것이었다.
남헌의 문서함 옆에는 무맥인 함이 놓였다.
읽는 손과 힘을 증명하는 손이 나란히 있으면서 서로의 물건에는 닿지 않았다.
공의회가 살아 있던 때의 형식이었다.
위목이 청구인석에 섰다.
토시를 벗고 있었다.
"청구인은 문서방 서기 위목이며 삼월 초이레자 기재의 정정을 청합니다."
남헌(南憲)이 문서함을 열었다.
"청구인의 자격부터 확인합니다."
"방계이며 성인이므로 제7조의 제한 대상이 아닙니다."
"자격 인정합니다. 청구 내용을 말하십시오."
"그날 낭독된 제7조는 두 줄인데 기재된 제7조는 세 줄이어서 둘이 어긋납니다."
상석에서 다른 장로가 몸을 앞으로 냈다.
"기재가 틀렸으면 기재를 고치면 될 일이오."
"어느 쪽이 틀렸는지를 먼저 정해 주십시오. 그것이 정해지지 않으면 저는 고칠 방향을 모릅니다."
남헌이 문서함 위에 손을 얹었다.
위경은 그 손을 보았다.
옥가락지가 한 번 돌았다.
"벽의 문면은 위가에서 정리한 문면입니다."
남헌이 그렇게 말했다.
열흘 전에 마당의 빈 자리에서 위경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그는 사견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사견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물음에 같은 답을 한다.
"정리한 문면이라면, 정리 이전의 문면이 있습니다."
위목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을 놓는 소리였다.
"기재는 정리 이전의 문면을 따랐으므로 틀린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이며, 오래된 기재를 새 문면에 맞춰 고치려면 정리 이전의 문면이 언제 어떤 절차로 정리되었는지가 기재에 남아야 합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그 절차가 기재에 없으면 정리는 완결되지 않은 것이고 완결되지 않은 정리로는 옛 기재를 지우지 못합니다. 제39조입니다."
다른 장로가 뭐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남헌이 문서함에서 손을 뗐다.
"제39조가 맞습니다."
"그러면 그날의 세 줄은 유효합니까."
"유효합니다."
"셋째 줄에 따라 청합니다. 삼월 초이레 마당에서 사정으로 적힌 항목에 대독인을 세워 그 사정을 판에 읽게 하고 읽힌 사정을 손해로 고쳐 적기를 청합니다."
"대독인은 누구입니까."
"제가 읽겠습니다."
남헌이 잠시 문면을 보았다.
"읽으십시오."
위목이 원부를 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삼월 초이레. 정청 마당. 위가 서자 위경이 당사자석에 권해졌다가 제7조의 낭독으로 물러섰다. 방청 가노 열아홉이 그 낭독을 들었다. 위경은 그날 자리를 얻지 못하였고, 이름이 마당에서 불린 뒤 문면으로 되돌려졌다."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상입니다."
"기재하십시오."
서기가 붓을 들었다.
위경은 그 붓을 보았다.
획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마당 끝까지 왔다.
사정, 두 글자에 줄이 그어졌다.
그 옆에 손해, 두 글자가 적혔다.
열여덟 해 만이었다.
위경은 기쁘지 않았다.
기쁨이 올 자리에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손해라는 두 글자는 그가 잃은 것을 하나도 되돌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만 종이 위에 앉았다.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이 열여덟 해 동안 없던 것이었다.
"판을 닫기 전에."
다른 장로가 말했다.
"청구인은 서기요. 서기가 판을 여는 것이 소임 안이오?"
남헌이 문서함을 다시 열었다.
"소임 밖입니다."
"그러면 어찌 되오."
"제14조에 따라 소임 밖의 판을 연 자는 소임에서 내려갑니다."
위경이 앞으로 반걸음 나갔다.
"장로님."
마당의 눈이 그쪽으로 왔다.
"그 청구의 이익이 제게 왔으니 벌의 몫을 나눠 지겠습니다."
"당사자가 아닙니다."
"이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익을 받은 사람은 벌을 나누지 않고 판을 연 사람이 집니다. 그리고—"
남헌이 문면을 짚었다.
"서자는 이 판의 당사자가 아니니 제7조입니다."
위경은 물러섰다.
반걸음이었다.
위목이 문서방 서기에서 내려갔다.
반년치 삯이 깎였다.
원부뿐 아니라 봉검 기록과 무맥인 대조표에도 다시 손댈 수 없게 되었다.
기재는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위목은 항의하지 않았다.
붓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제 이름은 어느 항목으로 적힙니까."
"제14조 위반입니다."
"월권으로만 적힙니까, 아니면 청구가 인용된 것도 같이 적힙니까."
남헌이 잠시 문면을 보았다.
"인용된 사실은 별항으로 적힙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위목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당이 비었다.
위경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담과 멍석 사이 한 뼘 되는 자리였다.
오늘 그의 장부에서 항목 하나가 지워졌다.
지워진 자리에 다른 항목이 하나 적혔다.
위목은 어떤 값을 무는지 들었지만 손이 기억하던 기록까지 잃는다는 것은 둘 다 세지 못했다.
이번 것에는 위경의 이름이 없었다.
위목(韋穆).
삼월 스무날.
강등과 반년 삯.
이익은 내게 오고 값은 저 사람에게 갔다.
위경은 그 줄을 안쪽 장부의 맨 앞으로 옮겨 적었다.
사각.
갚아야 할 것이 앞에 오는 것이 표국의 방식이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문서방을 지났다.
안에서 위목이 짐을 옮기고 있었다.
왼팔의 토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위경은 들어가지 않았다.
'의심만 들고 들어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