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panels · Automated checks complete

구월 열하루 아침, 전당포의 등잔은 낮인데도 켜져 있었다. 골목에 낙엽이 구르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주노정은 국주를 보고 일어섰다. 반쯤 일어서다 말고, 호칭을 고르느라 입이 반 박자 늦었다.
"여 표두. …아니, 국주라 해야 하나."
"편한 대로 부르게. 십일 년 만에 격식부터 차릴 사이는 아니지 않나."
살아남은 두 사람의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길게 하면 무너지는 인사라는 것을 둘 다 알았다. 늙은 회계는 뒷방에서 오동나무 궤를 내왔다. 유지에 싸인 장부 여섯 권과 날짜순으로 접힌 색인 쪽지들.
"읽어 주겠네. 눈으로 보는 것보다 — 귀로 듣는 게 나을 걸세. 내 글씨는 나밖에 못 읽어."
낭독은 날짜부터 시작되었다. 회계의 문법이었다.
"칠월 스무엿새. 삯 서 냥, 지급처 불명. 국주 어른이 그냥 주라 하셨네 — 노선을 묻고 다니는 행상들이 있다고, 누가 묻는지나 알아보라고. 알아낸 건 없었어."

"팔월 열이레. 목록 값 서른 냥, 수취 금정상행. 이건 지난번에 말했지."
"팔월 스무날. 금정상행이 거래 둘을 끊었네. 이유 없이, 위약금까지 물면서. 회계는 그런 걸 기억해. 손해 보면서 끊는 거래는 — 더 큰 셈이 뒤에 있는 거야."
"그리고 구월 보름. 참사 보름 뒤지. 원행의 남은 계약 열한 건을 한 손이 헐값에 쓸어 갔네. 이름은 다 달랐는데, 어음은 전부 한 전장 것이었어."
"…융흥전장입니까."
"그때는 이름이 달랐지. 한데 뿌리가 같아."
기입은 담담했고, 담담해서 무서웠다. 십일 년 전의 설계가 숫자의 결로 되살아났다. 습격은 하룻밤이었으나 설계는 두 달이었다. 죽이기 전에 묻고, 죽인 뒤에 쓸어 갔다.
"이거면 —"
운담이 입을 열었을 때, 주노정이 고개를 저었다.

"필사본은 반쪽이네. 원본 없는 기입은 — 상대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야. 회계 늙은이의 손버릇이라 하면 그만이고."
"반쪽이라도 넷이면."
여관영이 말했다. 접수 장부의 기입, 할증표의 사본, 편자의 각인, 그리고 이 기입들. 국주는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반쪽 넷에 산 증언 하나. 그리고 — 온쪽 하나가 필요하다. 상회 접수 장부의 열람. 그건 총회에서만 요구할 수 있어."
"총회에서 막히면요."
"막히면 반쪽 넷이 종잇조각이 되는 거지. 그러니 막히지 않게 세워야 한다. 순서대로, 조각마다 출처를 대면서."
주노정이 주판알을 하나 넘겼다.
"기입은 읽어 주겠네. 그 이상은 — 늙은이 몫이 아니야."
"읽어 주는 것이면 되네. 나머지는 산 사람들 몫이니."

그때 전당포 문에 종이 붙는 소리가 났다.
밖에 나가 보니 융흥전장의 서리 둘이 풀칠을 하고 있었다. 채권 보전이라 적힌 종이였다. 전당포의 오랜 어음 건을 걸어, 포내 물품 일체의 반출을 금하고 내일 아침 집행한다는 것. 봉인은 해 질 녘부터라 적혀 있었다.
"어음 건은 삼 년 전에 정산됐는데."
주노정이 종이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서리 하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의 있으시면 서면으로 내십시오. 심리는 — 보름 뒤에 열립니다."
"보름 뒤라. 편리한 달력이군."
서리들은 대꾸하지 않고 갔다. 서류는 급하고 심리는 느린 것 — 그것이 문서로 싸우는 자들의 문법이었다.
"검 하나 잡힌 걸로 전당포를 통째로 무네."

유마향이 종이를 읽고 이를 갈았다. 여관영은 종이를 두 번 읽지 않았다. 서류의 뜻은 서류 밖에 있었다. 궤. 저들은 궤를 알고 있었다.
"주 회계. 궤를 옮기세. 자네도 같이."
"어디로."
"성 밖. 갈림목 객잔 — 옛 원행 단골이던 집이야. 지금 주인이 그 아들이고."
국주는 마당의 저울 앞에서 하듯 조건을 세웠다.
"장부 궤 하나와 주인 한 사람. 해 지기 전, 갈림목 객잔. 값은 없다."
"값이 없으면 표행이 아니잖은가."
"값이 없어도 — 맡는 자가 있으면 표행이네. 거안이 맡지."
궤는 무겁지 않았다. 서른 근 남짓. 운담의 등에는 깃털 같은 무게였다. 유마향이 수레를 끌고 왔고, 주노정은 이런 호사는 평생 처음이라며 수레 위에 앉았다. 전당포 문에는 늙은이가 직접 쓴 '금일 휴업' 종이가 붙었다 — 봉인의 종이 바로 옆에, 반쯤 겹치게. 늙은 회계의 마지막 골계였다.

문제는 등이 아니라 다리였다.
성문 문턱에서였다. 디딤돌 하나 높이의 문턱. 운담의 왼 무릎이 접히지 않았다. 반 박자가 아니라 한 박자 반. 몸이 기우뚱했고, 궤가 어깨에서 미끄러지려는 것을 유마향이 옆에서 받쳤다.
"…돌부리가."
"돌부리 없어. 여기 돌부리 없다고."
유마향의 목소리가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폭발의 전조라는 것을, 운담은 알면서도 늦었다.
"그 다리 값 알고 쓰는 거야, 지금?"
골목이 쩌렁했다. 지나가던 상인 둘이 돌아보았다.
"골짜기에서 봤어. 벼랑에서도 봤어. 무릎이 늦게 펴지는 거, 손끝 주무르는 거, 밤마다 걸레 떨어뜨리는 거 — 다 봤어. 말 안 한 건 네가 말할 때까지 기다린 거야. 그런데 너는 죽을 때까지 말 안 할 거잖아!"
"누님."
"수레에 실어. 궤. 지금."
궤는 수레로 갔다. 운담은 빈 등으로 걸었다. 빈 등이 그렇게 무거운 것은 처음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궤와 사람이 객잔 뒷방에 앉았다. 객잔 주인은 원행 이야기에 군말 없이 뒷방을 내주었다.
"원행 표두께서 우리 아버지 외상을 삼 년 미뤄 주셨습니다. 방값은 그 이자 셈 치지요."
주노정은 궤 위에 손을 얹고 오래 앉아 있었다. 지켜 낸 것이 있는 늙은이의 등이었다. 떠나는 운담에게 그가 말했다.
"총회 날 아침에 오게. 기입은 읽어 주겠네. 그 이상은 — 늙은이 몫이 아니야."
"읽어 주시는 것이면 됩니다."

돌아오는 길, 유마향은 접골원 앞에서 수레를 세웠다.
"내려. 안 내리면 궤짝처럼 지고 들어간다."
범매고의 접골원은 뜸 냄새와 기름 냄새가 반반이었다. 늙은 의원은 운담의 걸음을 보고, 앉으라는 말도 하기 전에 혀를 찼다.
"짐꾼놈. 언제부터냐."
"…소금 표행 뒤부텁니다. 손끝이. 무릎은 협곡 뒤부터고."
"벗어. 눕고."
촉진은 오래 걸렸다. 발끝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 허리에서 어깨. 뼈를 짚는 손끝이 저울추처럼 정확하게 눌렀다 떼어졌다. 다 짚고 나서 범매고는 손을 씻으며 등을 보인 채 말했다.
"침골이다."
"침골… 이 무엇입니까."
"짐꾼병. 네 그릇은 됫박인데, 십 년 치 무게를 섬으로 부었어. 못 들어간 것이 뼈로 가라앉은 거다. 저림이 먼저 오고, 무릎이 늦어지고 — 그다음은 겨울 아침에 계단이 없어져."

"무거운 게 힘이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힘이 되지. 됫박에 드는 만큼은. 넘친 게 문제야 — 넘친 건 힘이 아니라 앙금이다. 앙금은 가라앉고, 가라앉을 데가 뼈밖에 없어."
"고칠 수 —"
"못 고친다. 늦출 뿐이지."
"늦추면, 얼마나."
"네 하기 나름이다. 됫박대로 살면 늙어 죽을 때까지 걷고 — 섬으로 살면 서른에 지팡이다."
방이 조용해졌다. 유마향이 문가에서 숨을 죽였다.
"부중결을 그렇게 쓴 놈은 네가 처음이 아니다."
범매고의 손이 수건 위에서 반 박자 멎었다. 멎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얘긴 됐고. 실측이나 하자."

실측은 저울과 모래 가마니로 했다. 지고, 걷고, 내려놓고. 의원은 걸음의 좌우를 보고 숫자를 적었다.
"이백 근. 당분간 그 위로는 지지 마라."
"당분간이 얼마입니까."
"내가 됐다 할 때까지. 그리고 — 한 번만 더 그 짐을 지면, 겨울에는 지팡이다. 스물네 가마 같은 짓 말이다."
진단 기록이 접혔다. 운담은 그것을 받아 품에 넣었다. 이름을 알면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이름은 이름의 무게가 따로 있었다.
접골원을 나설 때 범매고가 등 뒤에서 말했다.
"멜대는 두고 다니지 그러냐. 그것도 무게다."
"이건 무게가 아니라 — 버릇입니다."
"버릇이 제일 무거운 법이다, 짐꾼놈아."
마당에 돌아왔을 때, 유마향이 먼저 말했다. 운담이 입을 떼기도 전이었다. 침골. 이백 근. 겨울의 지팡이. 여관영은 끝까지 듣고, 운담을 한 번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슨 셈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국주는 운담을 마루로 불렀다.
"이백 근이라 했지."
"예."
"마지막 표행의 짐은 궤가 서른 근, 깃대가 두 근이다. 어른은 수레에 모시고 — 네 몫은 백 근이 안 된다. 셈이 서느냐."
"섭니다."
"셈이 서면 됐다. 셈 밖의 일이 생기면 — 그때는 짐보다 몸이다. 이건 국주의 명이 아니라…"
여관영은 뒷말을 접었다. 접은 말이 무엇인지는 마루의 등잔만 알았다.
보름이 지나갔다.
잔짐이 셋 — 이백 근을 넘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유마향이 저울 앞에서 일일이 셌다 — 소금 반 가마가 산으로 올라갔고, 갈현의 외상은 이자 없이 정산되었다. 산에서 내려온 답은 셈 빠른 놈들이라는 한마디였다고 한다. 마방 골목에는 금정이 말을 걷어 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총회 날 성안에 빌릴 말이 없게 하려는 수라고, 골목은 읽었다. 총회가 이틀 앞으로 왔을 때, 합병 제안서의 시한이 도래했다.
"회신은 어찌하시게요."
유마향의 물음에 여관영은 장부 서랍을 열지도 않았다.

"회신은 없다. 그게 회신이다."
그믐날 저녁, 국주는 운담을 창고로 불렀다.
창고 안쪽, 십일 년 동안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던 자리. 여관영의 손이 그 앞에서 처음으로 느렸다. 기름먹인 천이 벗겨지자, 두 동강 난 깃대가 나왔다. 꺾인 단면에 도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깃폭의 遠行 두 글자 중 行 자가 절반쯤 타 있었다.
"그 밤에 내가 들고 나온 게 이거 하나다."
여관영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같아서, 더 무거웠다.
"내일 아침, 객잔에서 궤와 어른을 모셔 온다. 총회가 정오에 열리니 — 그 전에 대청에 앉혀야 해. 길은 이십 리. 마지막 표행이다."
"길에 무엇이 설지는 — 가 봐야 알고요. 그래도, 제가 모셔 옵니다. 궤도, 어른도."
"짐은 나눈다. 궤는 수레, 어른도 수레. 네 등에는 —"
국주가 깃대를 들어 운담에게 내밀었다.
"이건 네 아버지 것이다. 짐이 아니라 기다. 들 수 있겠느냐."
깃대는 이백 근이 아니었다. 두 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받는 손이 떨렸다. 이백 근보다 무거운 두 근이 세상에 있었다.

"들겠습니다."
"수선은 해 두었다. 잇댄 자리는 — 보이게 두라 했다. 꺾인 걸 감추면 꺾인 채로 끝나는 거고, 잇댄 걸 보이면 이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
운담은 깃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유마향이 마구간 앞에서 그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일 끌 수레의 바퀴에, 그날 밤 세 번째 기름을 먹였다.
그날 밤 운담은 멜대 옆에 깃대를 눕혀 놓고 잠들지 못했다. 자정 무렵, 객잔에 다녀온 이웃 심부름꾼이 마당에 뛰어들었다. 숨이 턱에 걸려 있었다.
"객잔서 전갈입니다. 길목에 — 성문 밖 이십 리 길목에 금정 총표두가 서 있답니다. 저녁부터. 수하도 없이, 혼자."
혼자라는 말이 제일 무거웠다. 수하가 없다는 것은 목격자를 두지 않겠다는 뜻이거나 — 목격자가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유마향이 젓던 여물 바가지를 내려놓았다.
"길을 돌면."
"돌면 정오를 놓칩니다. 이십 리 길목은 — 지나가야 하는 목입니다."
마당의 등불이 흔들렸다. 운담은 깃대를 보았다. 잇댄 자리가 등잔빛에 도드라졌다.
내일 아침, 그 길을 지나야 했다.
운담은 마당으로 나가 저울 옆에 섰다. 추를 들어 저울대에 걸고, 내리고, 다시 걸었다. 셈이 서지 않는 밤에 셈을 세우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백 근이 안 되는 짐. 이십 리의 길. 정오의 시한. 그리고 길목의 한 사람. 마지막 항은 저울에 걸리지 않았다. 추가 저울대에 부딪는 소리만 밤 마당에 낮게, 오래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