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panels · Automated checks complete

닷새 뒤, 공개 감정회는 초겨울 밤까지 이어졌다 — 그러나 아침의 시작은 서류 한 장이었다.
시연 조건서. 지안이 개회 전에 사무국에 접수한 문서는 반 장짜리였고, 문장은 세 개였다. 결 판독은 원본과 사광을 요구한다. 고해상 스캔에는 결이 재현되지 않는다. 본 시연이 스캔으로 진행되는 한, 결 항목의 판독 불능은 방법의 한계가 아니라 매체의 한계다.
"이걸 왜 미리 내요? 상대한테 패를 까는 건데."
"실패할 판이면, 실패의 이유를 먼저 기록에 박아 두는 거예요. 나중에 말하면 변명이고, 미리 쓰면 명제예요."
세라는 조건서를 두 번 읽고 접수 도장을 받아 왔다. 그녀의 가방에는 다른 원고도 들어 있었다 — 사흘 전에 써 두었다는, 사슬이 서지 않으면 읽지 않을 원고.
접수를 마치고 나오는 복도에서 세라가 물었다.
"시연 순서, 마지막으로 확인해요. 결 항목 완주, 실패 호명, 그다음 넉 장."
"네. 중간에 흔들면요?"
"의장이 시간으로 흔들 거예요. 그럼 저는 절차 발언으로 시간을 벌어요. 그리고 하나 — 결표는 정말 오늘 다 까는 거죠? 다시 못 담아요."
"까요. 세 장은 이미 읽힌 패예요. 읽힌 패로는 판을 못 뒤집어요. 안 읽힌 한 장이 있을 때 까야, 그 한 장이 사슬 전체를 살려요."
"소진이 아깝지 않아요?"
"아까워요. 그런데 아껴서 이기는 판이 아니에요, 오늘은."

대회의장은 프리뷰룸 두 배 넓이였다. 위탁자석, 기자석, 감정위원석, 그리고 참관석 — 그 끝에 차현석이 코트를 무릎에 개켜 놓고 앉아 있었다. 그는 개회부터 폐회까지 한 번도 발언하지 않았다.
청람당 측 대리 감정사는 마흔 안팎의 유창한 남자였다. 모두 발언 십오 분 — 그리고 지안은 삼 분 만에 알았다. 이 발언은 반박이 아니라 선반박이었다.
"위치의 유사성은 통계의 문제입니다. 낡음이 잘 생기는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재료의 동일성은 유통의 문제입니다. 같은 지업사 종이가 다른 공방 수백 곳에 갑니다. 위탁 중개인의 중복은 업계의 문제입니다. 유능한 중개인일수록 손이 많지요."
위치, 재료, 중개인. 지안의 발표 순서 그대로였다. 발표문은 아직 그녀의 가방 안에 있는데.
옆자리의 세라가 메모지를 밀어 왔다. 순서까지 알아요. 지안은 그 밑에 답을 적었다. 셋까지만. 넷은 몰라요.
세라의 볼펜이 잠깐 멈췄다가, 알겠다는 뜻으로 메모지를 접었다.
지안은 수첩 귀퉁이에 줄을 그었다. 셋. 대본은 세 장이다. 넷째 장 — 결표 — 를 그는 언급하지 않았다. 모르니까 반박도 못 하는 것이다. 읽힌 범위가 거기까지라는 뜻이었다. 반출된 파일에 결표는 없었다.
십 분 휴정이 선언되었다. 복도 자판기 앞에서 세라가 종이컵을 내밀었고, 지안의 휴대폰에 무근의 문자가 와 있었다.

장부는 증언대에 못 서도 종이는 선다. 재료 이력 서면, 사무국에 도착 확인했다.
"골목 어른들은 응원도 물목처럼 보내네요."
"그게 그 골목 서식이에요."
세라는 종이컵을 반쯤 비우고, 회의장 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참관석 끝에 그 사람 와 있어요. 알고 있죠."
"개회 때부터요. 코트를 무릎에 개켜 놨어요. 오래 앉아 있을 자세로."
"떨려요?"
"아뇨. 이상하게 — 채점받는 기분이에요. 저쪽이 채점자가 아닌데도요."

시연 차례가 왔다. 스크린에 산수도의 고해상 스캔이 떴다 — 결 없는 매끈한 빛. 지안은 조건서의 절차대로 사광 판독 항목을 하나씩 호출했고, 스캔은 하나씩 침묵했다. 그림자 산맥은 뜨지 않았다. 침투선의 깊이는 읽히지 않았다. 장내 어딘가에서 짧은 웃음이 났고, 기자석의 볼펜들이 움직였다.
"발표자, 판독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의장의 물음에 장내의 웃음이 조금 커졌다. 지안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다음 항목을 호출했다. 역면 침투선 — 스캔은 앞면뿐이었다. 판독 불능. 인주의 뜸 — 확대할수록 픽셀만 커졌다. 판독 불능.
지안은 마지막 항목까지 완주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
"조건서에 썼습니다. 결은 스캔에 없습니다. 방금 그 실패가 그 문장의 증명입니다."
볼펜들이 일제히 멈췄다.
"결 판독이 성립하려면 원본과 사광이 필요합니다 — 그건 이 시연의 실패가 아니라 이 규정의 측정 결과예요. 그리고 오늘 저는 결 없이도 성립하는 것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의장이 시간을 확인했다.
"발표자, 시연 항목은 종료된 것으로 정리합니다. 추가 입증 계획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서면 입증 넉 건, 전부 사전 제출 목록에 있습니다."
"진행하세요. 이십 분 드립니다."

남은 시간은 이십이 분이었다. 지안은 넉 장을 순서대로 걸었다.
"대조표, 절차서, 재료 이력, 결표. 넉 장이 한 사슬입니다."
대조표 — 두 그림의 '낡음 하나'가 검증 최약 지점만 고른 위치 논리, 감정위 회의록 첨부 문서. 절차서 — 위원의 손으로 재현된 사광·역면·인주, 보류 의결의 근거. 재료 이력 — 무근지업사의 물목 기록과 같은 발 자국, 증언 서면. 여기까지는 대리 감정사가 이미 반박한 세 장이었고, 지안은 반박 문장들을 하나씩 인용하며 각 장에 재반박을 붙였다. 통계라면 왜 두 점 모두 하나뿐인가. 유통이라면 왜 같은 배치인가. 업계라면 왜 같은 순서로 겹치는가.
그리고 넷째 장.
"문영옥 수리장은 사십 년간 제 손을 거친 그림에 표식을 남겼습니다. 결표 — 서명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범례는 일지 원본, 실물 대조는 이 소반 그림입니다."
실물 카메라가 소반 그림의 모서리를 확대했다. 손끝으로만 만져지던 인두 자국이 화면에서 잎맥처럼 떠올랐다. 범례의 셋째 기호와 나란히.
"두 위작의 위탁 서류는 문향재 수리 이력을 주장합니다. 결표를 확인했습니다 — 없습니다. 두 점 다요. 문향재를 거쳤다는 이력 자체가 위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
지안은 수법 목록의 마지막 줄을 읽었다.

"의도된 낡음은 정확히 하나 — 그것이 이 손의 서명입니다."
대리 감정사가 일어섰다. 목소리는 여전히 유창했지만, 문장이 처음으로 원고를 벗어나 있었다.
"사적인 표식 체계입니다. 검증된 바 없고, 고인의 유족과 제자가 관리하는 기록입니다. 이해관계자의 자료예요."
"범례의 잉크와 지면은 연대 측정이 가능합니다. 일지는 사십 년 치가 연속돼 있고요. 위조하려면 사십 년을 위조해야 합니다."
"그건 과학감정의 영역이지요."
"네. 그래서 저희가 지금 그걸 신청하는 겁니다."
그는 절차 문제로 한 걸음 더 가려 했고, 그 순간 의장이 처음으로 개입했다.
"증거 능력은 과학감정이 판단할 일입니다. 표결하지요."

"감정회는 두 점에 대한 과학감정 의뢰를 의결합니다."
지질 연대, 안료 성분, 인주 침투 단면. 기관의 언어로 번역될 사슬. 의결 직후 위탁자석에서 손이 하나 올라왔다 — 매화도의 소장가였다.
"과학감정 비용은 어느 쪽 부담입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진품으로 나오면, 오늘 이 소동의 책임은요?"
"비용은 회사가 선부담합니다. 책임은 —"
세라가 마이크를 당겼다.
"의뢰를 상정한 제 이름으로 집니다. 그러라고 이름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세라가 일어섰다. 가방에서 사흘 묵은 원고를 꺼내는 손이 조금도 떨리지 않아서, 지안은 그것이 배수진임을 알았다.
"한율옥션은 오늘부로 감정서의 서식이 아니라 재현의 절차를 컨디션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표준과의 결별 선언이었다. 기자석이 일제히 움직였고, 참관석 끝의 현석은 코트를 무릎에서 한 번 고쳐 개켰다 — 그것이 그의 유일한 동작이었다.

휴정 없이 폐회가 선언되었고, 로비에서 한 남자가 지안의 곁에 섰다. 감정회 내내 그림을 한 번도 보지 않던 남자였다. 그는 그림 대신 위탁자석과 참관석 사이의 시선들을 보고 있었다.
"사범단속반 강도윤입니다. 이 건 기록 일체, 임의제출로 요청드립니다."
"수사 중인 사건이 있다는 뜻인가요."
"진행 중인 내사가 있고, 오늘 기록에 오른 위탁 경로가 그 가장자리에 걸립니다. 이상은 서면으로 드리겠습니다. 협조는 전부 서면으로 남습니다 — 그쪽을 위해서도요."
"서면이면 협조합니다. 저는 서면이 편한 사람이에요."
"압니다. 조건서, 잘 읽었습니다."
명함을 받아 들며 지안은 한 가지를 물었다.

"내사 대상이 위작 유통이면 — 그림을 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늘 한 번도 안 보시던데."
도윤은 처음으로 웃음 비슷한 것을 보였다.
"그림은 안 도망갑니다. 도망가는 건 사람하고 돈이에요. 저는 그쪽을 봅니다. 그림 보는 눈은 — 오늘부로 빌릴 데가 생긴 것 같고요."
"서면으로요."
"서면으로요."
회의장을 빠져나올 때, 참관석 쪽에서 현석과 시선이 한 번 마주쳤다. 그는 목례를 했다. 정확히 십오 도, 조문 때와 같은 각도. 지안도 같은 각도로 돌려주었다. 두 독자의 첫 대국이 그렇게 끝났고, 서로가 서로의 패를 봤다는 사실만이 판 위에 남았다.
공방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 전이었다. 무근의 문자가 와 있었다 — 장부는 증언대에 못 서도 종이는 선다. 수고했다, 는 말은 없었지만 그게 그 말이었다.

지안은 감정회 준비 중에 표시해 둔 일지 항목을 폈다. 삼십 년 전, 병풍의 해의 권. 미완 항목 — 운계 8폭 병풍 — 의 앞뒤 몇 장을 감정회 전에 훑다가, 여백에 작게 눌린 두 줄을 봤었다. 그때는 시간이 없어 표시만 해 뒀던 줄이었다.
백열등 아래에서 두 줄은 이렇게 읽혔다.
낡음이 하나뿐인 수리 의뢰가 들어왔다. 손이 같다.
날짜는 병풍 수리가 시작된 그해 겨울. 파문 기록과 같은 해였다.
지안은 여백의 두 줄을 사진으로 찍고, 앞뒤 열 장을 더 넘겼다. 병풍 항목의 본문은 재료와 치수의 건조한 나열이었다 — 여덟 폭, 지본수묵, 폭당 치수, 배접지 소요량. 그리고 항목의 끝에 마감 문장이 없었다. 다른 모든 항목이 가진 문장 — 수리 완료, 인도 일자 — 이 이 항목에만 없었다. 사십 년 일지의 유일한 미완.
수첩에 지안은 시간 순서를 다시 세웠다. 그해 겨울, 낡음 하나의 수리 의뢰 — 손이 같다. 같은 해 가을, 파문 — 절도, 고발 없음. 그해 겨울부터, 검증 목록 — 확인할 것 열두 가지. 그리고 병풍 항목, 영원히 열린 채.
순서가 말이 되려면 하나의 이야기밖에 없었다. 영옥은 그해에 이미 알았다. 재료를 훔쳐 간 손이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고발 대신 준비를 택했다 — 목록을 만들고, 표식을 만들고, 증거가 다 찰 때까지 항목을 열어 두는 준비를.

지안은 오래 앉아 있었다. 수법의 선례는 오늘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삼십 년 전, 병풍의 해에 — 영옥은 이미 '낡음 하나'의 그림을 받아 들고, 손이 같다고 적었다. 누구의 손과 같다는 것인지는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해에 그 공방에서 그 문장을 읽을 사람은 영옥 자신뿐이었으니까.
미완 항목은 사십 년 일지에서 유일하게 닫히지 않은 항목이다. 기록이 아니라 — 어쩌면 고발의 준비였다. 확인할 것 열두 가지를 다 채우면 닫으려던.
자정이 넘어 명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찬가게 마감을 늦게 한 모양이었다.
"기사 봤다. 가게 손님이 보여 주더라. 니 이름은 없고 한율 팀장 이름만 있더라만."
"그게 맞아요, 지금은."
"어머니 표식 얘기가 났다며. 그 인두."
"났어요. 기록에도 올랐고요."

전화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어머니가 밤에 그거 하실 때, 나는 청승이라고 생각했다. 다 끝난 그림에 뭘 또 대고 있나. 근데 그게 사십 년 감정서였다니 — 사람 일 모른다."
"엄마. 그 청승이 오늘 판을 뒤집었어요."
"…반닫이 말이다."
명주가 말을 골랐다.
"과학감정인지 뭔지 결과 나오면, 그때 같이 열자. 어머니 일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열어야, 나도 감당이 될 것 같다."
"네. 그때 같이요."
창밖은 초겨울 밤이었고, 반닫이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과학감정의 시계와 수사의 시계가 도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들리는 것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