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panels · Automated checks complete

사흘 뒤, 초겨울로 넘어가는 저녁에 명주가 공방에 왔다. 반찬가게 마감 냄새 — 참기름과 행주 삶은 물 — 를 데리고 와서, 탁자에 서류 봉투를 놓고, 도장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실사가 모레다. 니 도장 여기, 여기. 두 군데."
지안은 준비한 문장을 꺼냈다. 사흘 밤 연습한 문장들이었다.
"엄마. 이 일지들, 감정가로도 값이 나가요. 사십 년 수리 기록은 사료예요. 박물관 수장 가치가 있고, 공방째 팔면 그 값이 다 묻혀요."
"가치 얘기는 매수자가 더 잘하더라. 니는 다른 걸 갖고 왔어야지."
명주는 봉투에서 매수 의향서를 꺼내 나란히 놓았다.
"이 사람들은 평당으로 치고, 권리금으로 치고, 골목 재개발 프리미엄으로 쳐. 니 사료 가치보다 숫자가 커. 자, 도장."

숫자로는 이길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지안은 인주갑을 열지 않았다. 대신,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소리 내어 조립해 본 적 없는 문장들의 순서를 머릿속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위작. 요구. 떠남. 순서가 무너지면 변명이 되고, 변명은 명주가 세상에서 제일 잘 읽는 언어였다.
"엄마. 다섯 해 전에 내가 왜 나갔는지, 한 번도 안 물었죠."
"물어서 뭐 하게. 나간 년이 나간 거지."
"할머니 수리 맡은 그림에서 위작을 찾았어요. 내가요. 결이 울어서, 뒤집어 보고, 확인했어요. 할머니한테 가져갔더니 — 덮으라고 하셨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문장으로만 남긴다고."
명주의 손이 의향서 위에서 멈췄다.
"나는 그게 안 됐어요. 위작인 걸 알면서 표구를 마저 하는 게. 그렇다고 스승 말을 어기는 것도 안 됐고. 그래서 나갔어요. 배신한 게 아니라 — 둘 다 못 해서 나갔어요."

"…그 얘길 왜 인제 하냐."
"약속이었으니까요."
"약속 좋아하네. 나는 다섯 해를 니가 어머니 버리고 나간 줄 알고 살았다. 장례식에서 니가 관 옆에 안 서길래, 그럴 자격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반찬가게에서 니 얘기 나오면 내가 먼저 말 돌렸어. 딸년이 아니라 내가 창피해서."
"알아요."
"아는 년이 — 아는 년이 다섯 해를."
명주는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끝내지 못한 자리에서 화가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지안에게서, 죽은 사람에게로.

"어머니도 참. 애한테 그런 걸 덮으라고 하고. 그게 덮어질 일이야?"
"할머니한텐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 이유를 지금 찾는 중이고요."
"할머니하고 한 약속이었으니까. 근데 지금 그 위작 만든 손이 아직 일해요. 경매에 두 점 올라왔다 내려갔어요. 할머니 일지가 그 손을 잡을 유일한 기록이고요. 그래서 약속을 깨요. 지금, 엄마 앞에서."
명주는 오래 말이 없었다. 참기름 냄새 나는 손으로 의향서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었다.
"엄마는 삼십 년을 이층에서 봤다. 니 할머니가 밤에 뭘 하는지. 다리미도 아니고 인두를, 다 끝난 그림 모서리에 대고 있는 거. 물어보면 — 마무리다, 그러고 말아."
"그거예요, 엄마. 그 인두가."
"반닫이는 아직이다. 그건 어머니 거야. 대신 다락은 열어 주마."

다락은 초겨울 저녁의 찬 공기를 먼저 내놓았다. 명주가 궤 위에 개켜져 있던 어머니의 앞치마를 들어 올려, 먼지를 털지 않고 그대로 한 번 더 개켰다. 그 손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지안은 궤를 열었다.
일지가 전부 거기 있었다. 마흔 권 남짓, 해 순서로 노끈에 묶여서. 그리고 맨 밑에 서류철 하나 — 겉장에 영옥의 글씨로 '공방 기록'이라고만 적힌.
서류철의 셋째 장이 파문 기록이었다. 날짜는 삼십 년 전 가을. 문장은 세 줄이었다.
수제자 ○○○, 재료 절도. 금일부로 파문. 공방 출입을 금한다.
이름 자리는 먹으로 지워져 있었다. 지안은 사진을 찍고, 세 줄을 두 번 읽었다. 절도. 파문. 출입 금지. 그리고 — 그게 전부였다. 고발 기록이 없었다. 회수 청구가 없었다. 다음 장은 아예 다른 해의 재료 장부였다.
일지는 해 순서로 마흔한 권이었다. 지안은 노끈을 풀지 않은 채 권수만 세고, 첫 권과 마지막 권만 뽑았다. 실사 목록에 오르기 전에 전권의 사진 대장을 만들어야 했다.
"이걸 다 니 할머니가 썼단 말이지."
"수리 한 건에 한 항목씩요. 재료, 상태, 처치, 날짜. 사십 년치예요."

"난 여태 그게 가계부인 줄 알았다. 밤마다 쓰길래."
"가계부 맞아요, 어떤 의미로는. 빚 안 지려고 쓴 거니까."
결표는 일지가 가르쳐 주었다. 결표 범례는 일지 첫 권 뒤표지 안쪽에 있었다. 만년필로 그린 기호표 — 잎맥처럼 가는 선 여섯 가지, 각각 수리 부위와 해를 뜻하는 조합 규칙. 지안은 공방에 남아 있던 수리 소품 — 영옥이 생전에 고쳐 둔 소반 그림 — 의 모서리를 사광에 대 보았다. 손끝으로만 만져지는 인두 자국이, 범례의 셋째 기호와 정확히 겹쳤다.
"엄마. 아까 그 인두요. 몇 시쯤이었어요, 주로."
"자정 넘어서. 그림 다 마르고 나서야 했지. 낮에는 절대 안 했다."
"하나는 범례, 둘은 실물, 셋은 기억이에요."
지안은 소리 내어 호명했다. 일지의 기호표가 규칙을 주고, 소반 그림의 인두 자국이 실물을 주고, 명주의 자정이 문맥을 준다 — 영옥은 제 손을 거친 그림마다 책임의 표식을 남겼다. 서명이 아니라 책임. 감정서를 쓸 수 없는 수리장이가 사십 년 동안 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감정서.
궤 바닥에서 마지막 것이 나왔다. 사진 일곱 장. 병풍 폭을 한 장씩 찍은 흑백 — 뒷면에 연필로 一부터 七까지. 여덟 폭 병풍이라고 일지가 부르는 물건의, 일곱 장.

"八은 없어요?"
"그게 다다. 나도 그 병풍은 실물을 못 봤어."
"일지엔 여덟 폭이라고 되어 있어요. 미완 항목 — 할머니가 사십 년 동안 열어 둔 유일한 항목이요."
"찍다 말았나. 필름이 모자랐나."
"아뇨. 뒷면 보세요. 연필 번호가 一부터 七까지 이어져요. 八을 안 찍은 게 아니라 — 八만 따로 뒀거나, 따로 갔거나예요."
명주는 사진 일곱 장을 부채처럼 펴 들고 오래 보았다.
"이 산수,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운계예요, 엄마. 경매에서 내려온 그 산수도하고 같은 화가."

골목에 차 서는 소리가 났을 때, 명주는 보리차를 끓이러 내려간 참이었다. 문을 두드린 남자는 육십 대 후반, 코트 어깨가 젖지 않을 만큼만 눈이 붙어 있었고, 명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청람당 감정실 차현석.
"늦은 조문입니다. 문 선생님 생전에 몇 번 뵈었습니다. 실사가 있다고 들어서 — 유품 정리에 감정 자문이 필요하시면 돕고 싶어서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자문은 필요 없어요. 정리는 가족이 합니다."
"물론입니다. 다만 — 요즘 시장이 시끄럽지요. 한율 쪽 보류 건은 저희도 참담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유품 정리는 기록이 좋아야 해요. 어느 쪽으로 정리되든, 출처 서류가 완벽해야 나중에 말이 없습니다."
"기록이라면 저희도 남기고 있어요."
"절차서를 쓰신 분답습니다."
절차서. 공개 문서이긴 했다 — 감정위를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러니 그 단어를 아는 것 자체는 아무 증거도 아니었다. 아무 증거도 아니라는 것까지 계산된 단어 선택이었다.
"그러시겠지요. 서 선생 — 이라고 불러도 될지. 요즘 업계에 성함이 돕니다. 서명은 없는데 성함만요. 신기한 일이지요."

문장마다 흠이 없었다. 트집 잡을 수 있는 단어가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전체가 이상했다. 현석은 공방 안을 둘러보지 않았다. 둘러보지 않는 방식이 너무 정확해서 — 시선이 갈 곳을 미리 다 아는 사람의 절제 같았다.
"겨울에 정리하시는 게 좋습니다."
돌아서기 전에 그가 말했다.
"이 집 다락이 여름엔 찜통이지요. 종이 두기엔 겨울이 낫습니다. 선생님은 늘 겨울에 정리하셨어요."
"차 한잔 안 하시고요."
내려오던 명주가 주전자를 든 채 물었고, 현석은 코트 단추를 채우며 완벽한 사양의 예를 갖췄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따님이 어머님 손을 닮으셨네요. 상 차리는 손 말고 — 물건 만지는 손이요."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골목으로 사라진 뒤에도 지안은 명함을 들고 서 있었다. 다락. 이 집 다락의 여름. 겨울 정리의 습관. 조문 몇 번의 손님이 아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집에서 여름을 나 본 손, 겨울마다 종이를 옮겨 본 손의 지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문장을 회수하지 않았다. 실수라면 주워 담았을 것이다. 신호라면 — 나는 안다, 네가 아는 것을 안다 — 라는 뜻이었다.

보리차를 올리고 내려온 명주가 명함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청람당? 어머니 장례엔 안 왔던 데다."
"엄마. 삼십 년 전에, 그 수제자 — 얼굴 기억나요?"
"가물가물하다. 젊었고, 손이 좋았고, 어느 날부터 안 왔지. 근데 이상한 건 그거보다 — 그 뒤로 한동안 니 할머니가 밤에 일지를 태울 듯이 들여다봤다는 거야. 태우진 않고. 들여다만 보고."
그날 밤 지안은 공방에 혼자 남아 파문 기록을 다시 폈다. 세 줄. 절도, 파문, 출입 금지. 그리고 수첩에 어긋남을 적어 나갔다.
절도라면 — 고발이 없다. 회수 청구가 없다. 재료 장부에 결손 기록도 없다. 파문이라면 — 업계 통보가 없다; 있었다면 그 수제자는 감정계에 발을 못 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 순서: 파문 그해 겨울부터, 일지에 검증 목록이 시작된다. 확인할 것 열두 가지. 도둑을 내보낸 사람이 아니라, 도둑이 무엇을 배워 갔는지 아는 사람의 목록.

영옥은 절도를 고발하지 않았다. 파문을 통보하지 않았다. 대신 목록을 만들고, 결표를 만들고, 문장을 남겼다. 낡음을 하나만 남기는 손을 조심해라.
절반만 고발한 것이다. 기록에는 절도를, 세상에는 아무것도. 그러면 나머지 절반은 — 절도당한 재료로 무엇이 만들어졌는지를, 영옥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벽시계가 두 시를 쳤다. 지안은 스승의 목소리를 기억 속에서 재생해 보았다. 덮어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문장으로만 남긴다. 다섯 해 전에는 그것이 두려움으로 들렸다. 지금 다시 들으니 다른 것이었다 — 증거 없이 고발하면 고발이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확인할 것 열두 가지를 다 채울 때까지 참는 사람의 목소리. 스승은 덮은 게 아니라 재고 있었다. 다만 혼자 쟀고, 재는 동안 시간이 먼저 끝났다.
지안은 만년필을 내려놓고, 잠긴 반닫이를 오래 보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잠긴 곳. 명주가 아직이라고 한 곳. 여덟째 폭 사진이 없는 이유와 절반의 고발이 만나는 곳이 있다면, 아마 저 안일 것이었다.
자정 무렵 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잠긴 넷째 단계는 잠긴 채 두는 것이 규칙이었다. 대신 방문 얘기만 했다.
"청람당 차현석이 공방에 왔었어요."

"차현석이 직접요? 그 사람 요즘 현장 안 다녀요. 감정실에서 도장만 찍지."
"조문이라고 했어요. 실사 자문 제안하고요."
"…기사님. 그 사람이 움직였다는 건 이 건이 감정실 책상을 벗어났다는 뜻이에요. 조심해요. 그리고 하나 더 — 내부 파일 열람 기록, 확인했어요. 판독 경위 파일, 감정위 소집 전에 외부 반출이 한 건 있어요. 요청자 란은 위원회 준비 자료로만 찍혀 있고요."
"누구 손을 거쳤는지는 안 나오고요."
"안 나와요. 나오게 되어 있지 않은 서식이에요. 그런 서식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쓴 거죠."
무근에게서는 문자가 와 있었다. 공급선 세 집 중 삼십 년 전 문향재에 종이를 대던 그 집 — 지금은 폐업했고, 재고를 넘겨받은 데가 청람당 관련 지업사라는 골목 소문. 소문은 소문으로만 적어 둔다, 라고 무근다운 단서가 붙어 있었다.
공개 감정회 소집 공문은 다음 날 아침에 왔다. 청람당 측 참관 요청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