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이 되자 개인 검증실 7의 문이 안쪽으로 접혔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짧았지만, 그 안에서 흘러나온 공기는 오래 잠겨 있던 상자 냄새가 났다. 종이와 금속, 오래된 전류 냄새. 태오는 첫 발을 디디는 순간, 바닥의 검은 유리가 자기 얼굴을 얇게 비추는 것을 봤다. 그 위로 두 개의 이름이 떠 있었다. 유태오. 수집가 0. 그리고 그 아래, 묶음 번호만 남은 한 줄. 상속 대기.
수집가 0은 이미 안쪽에 서 있었다. 검은 가면은 절반만 벗겨져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이 더 위협적이었다. 그는 태오를 보자 아주 작게 웃었다.
"끝내 들어왔군."
태오는 대답하지 않고 조부의 카드 묶음을 봤다. 유리막 속에 묶인 카드들은 낱장으로 흩어지지 않은 채 단정하게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단정함이야말로 이상했다. 카드마다 다른 손때와 다른 손상 흔적이 있었다. 한 장은 모서리가 찢겨 있었고, 한 장은 그림이 그을려 있었다. 한 장은 앞면 전체가 열에 울어 있었다. 모두 누군가에게 한 번씩 졌고, 그 패배를 통해 살아남은 카드처럼 보였다.
"네가 가져간 건가." 태오가 물었다.
수집가 0은 고개를 저었다. "가져간 게 아니다. 남겨둔 거다. 네 할아버지는 패배를 카드에 저장했지. 나는 그 저장소를 접수했을 뿐이야. 이 방은 승자를 주지 않는다. 남은 기록만 준다."
그 순간 천장 격자가 밝아지며 규칙이 떠올랐다. 상속자 인증전. 대표 카드 제출. 승리한 카드 자동 소거. 태오는 그 문장을 읽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이기는 순간 사라진다는 규칙은 이미 익숙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사라지느냐였다.
수집가 0가 자기 판독대를 가리켰다. "내 카드가 이기면 묶음은 내 것이다. 네 이름은 후보에서 지워진다. 조부 카드도, 네 이름도 더는 남지 않아."
"반대로요?" 태오가 되물었다.
"네 카드가 이기면 네가 사라진다."
"그럼 공평하네요."
태오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절반이 더 타들어 간 카드였다. 모서리는 이미 들떠 있었고, 표면에는 이전 전투의 열이 아직 굳어 있었다. 더 강하게 쓰면 부러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 카드를 한 번 쓰다듬고는 판독대 위에 올려놓았다. 손끝에서 종이 같은 진동이 전해졌다. 마지막 숨이 느껴졌다.
검증실이 즉시 붉어졌다. "대표 카드 확인. 상속자 후보 동시 승인. 대결을 시작합니다."
수집가 0의 카드가 떠올랐다. 흠집 하나 없는 흰빛의 정사각형. 너무 완전해서 오히려 비어 보였다. 태오는 그 카드가 이미 여러 번 이긴 카드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방에서 그런 카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승리를 쌓은 카드보다, 패배를 쌓은 카드가 더 무거웠다.
태오는 숨을 고르며 자신의 카드 뒤에 숨어 있던 기억들을 불러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카드들이었다. 상처 입은 카드 세 장. 하나는 열을 되돌리는 기억, 하나는 균열을 벌리는 기억, 하나는 충격을 저장하는 기억. 그 카드들은 이미 몇 번이고 부서질 뻔했고, 그때마다 태오는 버리지 못했다. 버릴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버려야 더 강해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셋을 한 번에 묶는다." 태오가 낮게 말했다.
카드의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열렸다. 세 기억이 겹치며 얇은 층을 만들었다. 첫 기억이 공격을 받아 안쪽으로 휘었고, 두 번째 기억이 그 휘어짐을 틈으로 벌렸다. 마지막 기억이 그 틈에 열을 채워 넣었다. 완벽한 방어가 아니었다. 완벽한 반격도 아니었다. 대신 상대가 찔러 넣은 힘을 되돌려 주는 방식이었다.
수집가 0의 카드가 먼저 움직였다. 흰빛이 칼처럼 날아와 태오의 마지막 카드를 찔렀다. 카드는 갈라졌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더 쓰면 정말 부러진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버티는 힘이 아니었다. 사라질 정도로 끝까지 가는 힘이었다.
"지금이다."
태오가 카드를 눌렀다. 상처 입은 세 기억이 동시에 터졌다. 첫 번째 기억이 찌른 힘을 잡았다. 두 번째 기억이 그 힘을 벌려 되돌렸다. 세 번째 기억이 역류한 열을 증폭시켰다. 검은 유리 바닥 아래로 뜨거운 실금이 번졌다. 수집가 0의 카드 표면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금은 순식간에 번졌고, 완성형이던 흰빛은 자신의 완전함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찢어졌다.
수집가 0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말도 안 돼."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카드는 이미 반 이상 무너져 있었고,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밀어 넣고 끝내는 일. 그는 조부의 카드 묶음 쪽으로 손을 뻗었다. 카드들의 패배 기록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오래 묶인 패배가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 공명은 태오의 손목을 타고 올라와 카드의 끝을 밀었다.
"너희는 진 적이 있어." 태오가 말했다. "그걸로 충분해."
카드가 마지막 한 번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사라졌다.
승리한 패잔병은 규칙대로 사라진다. 검증실 한가운데에 떠 있던 판독대가 잠시 멈췄다가, 갑자기 하단 패널을 열었다. 검은 화면 위로 줄이 쏟아졌다. 조부의 카드 묶음. 평생 잃은 카드. 압류된 카드. 봉인된 카드. 수집가 0이 빼돌린 카드. 그리고 그 위에, 태오의 이름이 최초 계승 인장으로 찍혔다. 화면 전체가 한 번 떨리더니, 전광판이 조용히 말했다. 이관 승인. 비공개 덱 등록.
조부의 카드 묶음을 감싸던 유리막이 천천히 풀렸다. 카드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대신 태오 쪽으로 조금씩 기울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방향을 기다려 온 것처럼. 태오는 그제야 조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카드의 구석에 남아 있던 희미한 메모,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였을 기록. 이기는 법은 배우지 마라. 잃는 법을 남겨라.
수집가 0은 가만히 서 있었다. 더는 웃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흰 가루가 조금씩 떨어졌다. 자기 카드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잔해였다. 그는 태오를 보며 입을 열었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오는 그 침묵까지도 이해했다. 이 방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건 승자가 아니라 기록이었으니까.
전광판 끝에는 아직 열리지 않은 카드 한 장이 따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름 없는 카드. 바깥쪽 번호도, 주인도, 소거 기록도 없는 표식. 태오는 그 카드가 지금 당장 손에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오늘 필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오늘 필요한 건 잃은 것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일이었다.
그는 계승 인장이 찍힌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손바닥에 남은 뜨거운 흔적을 쥐었다. 사라진 카드의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그 빈자리는 이상하게도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무엇을 잃어야 할지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태오는 조부의 카드 묶음을 품에 가까이 당겼다. 비공개 덱은 이제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딘가 멀리서, 아직 열리지 않은 한 장이 아주 작게 반응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