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이 꺼진 뒤에도 빛은 남아 있었다. 태오는 예선 경기장이 비워진 복도 끝에서 그 잔광을 보았다. 이긴 사람은 환호 속으로 사라지고, 진 사람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런데 유태오에게 남은 것은 기록이 아니었다. 사라진 카드의 빈칸과, 그 빈칸을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선명한 감각뿐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남은 카드들을 세었다. 셋. 예선 직후의 전광판이 보여 준 숫자와 정확히 같았다. 그러나 숫자가 같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카드 한 장이 사라질 때마다 그의 덱은 얇아졌고, 얇아진 자리에는 다른 규칙이 스며들고 있었다. 패배한 카드는 기억을 얻고, 승리한 카드는 증발했다. 태오는 그 규칙을 이미 알았지만, 지금은 규칙의 끝이 보였다. 누군가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등록실 창구 너머에서 직원이 고개만 들었다. "본선 대기실은 위층입니다. 지금은 출입이 막혀 있습니다." 태오는 전광판의 숨겨진 줄을 가리켰다. 비공개 덱. 수집가 0. 방금 사라진 카드의 이동 좌표. 직원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흔들림은 인정이 아니라 경고였다. "그건 시스템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오류치고는 너무 정확하네요." 태오가 말했다. "제 카드가 어디로 갔는지, 제가 직접 보고 싶습니다."
직원은 대답 대신 얇은 방문표 하나를 내밀었다. 냉장 보관 동 점검을 위한 비공식 시범전. 표면에는 회수 담당자 승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태오는 그 문구를 오래 보았다. 시범전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사라진 카드의 흔적을 따라가려는 사람을 일부러 그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좋았다. 함정이라면, 함정의 입구에 길이 있다는 뜻이었다.
냉장 보관 동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경기장 바닥보다 훨씬 차가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갈라졌고, 벽면의 관측창 너머로는 얼음처럼 둔한 조명이 깜빡였다. 대기실 끝에서 한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에 열쇠 묶음이 달린 보관 기사, 아니 보관 관리인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그는 태오의 출전 배지를 훑어보고는 비웃었다. "예선 막 통과한 신참이 여기까지 왔나. 카드가 모자라서 열쇠라도 훔치러 왔어?" 태오는 대답 대신 손에 쥔 첫 카드를 펼쳤다. 길 잃은 정찰병. 그 카드의 그림자는 늘 뒤를 돌아보는 병사였다.
"저는 찾으러 왔습니다." 태오는 말했다. "잃어버린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요." 관리인은 콧웃음을 쳤다. "여기선 찾는 놈이 먼저 얼어붙는다." 신호등이 켜지자 차가운 바닥이 울렸다. 보관 동의 바닥은 격자식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격자마다 다른 온도가 숨어 있었다. 태오는 첫 발부터 알았다. 이 장소는 방이 아니라 장치였다. 카드가 지나간 자리마다 열을 빼앗고, 빼앗긴 열을 아래층 저장탱크로 보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손실을 축적하는 구조였다.
태오는 길 잃은 정찰병을 가장 앞에 세웠다. 남은 카드 두 장은 뒤로 물렸다. 관리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가장 중요한 걸 먼저 내놓네." "중요하니까 먼저 보내는 겁니다." 태오는 그렇게 답하고, 정찰병을 격자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카드가 바닥에 닿는 순간 차가운 사슬이 튀어 올랐다. 얼음 갈고리가 다리를 죄었다. 카드가 바닥에 묶이자, 카드 속 기억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태오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정찰병은 길을 잃었지만, 잃는 방식 자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 기억을 읽었다. 천장 덕트, 좌측 배관, 보관 탱크로 연결된 숨은 통풍구. 카드가 얼어붙는 순간 보이는 것은 시야가 아니라 구조였다. 태오는 바로 그걸 노렸다. 길 잃은 정찰병이 얼음에 잡아먹히는 동안, 그는 두 번째 카드로 사슬의 중심을 밀었다. 방패 카드가 충격을 받아 금이 갔지만 부서지지 않았다. 금이 간 자리에 열이 모였다. 상처 난 카드가 열을 품고, 그 열이 냉각 장치의 관절을 자극했다. 태오는 숨을 억눌렀다. 지금까지의 패배가 한 줄로 이어졌다. 적의 함정이 클수록, 역류시킬 열도 많았다.
"그런 카드로 내 냉각을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관리인이 손을 뻗자 하얀 서리가 태오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태오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버티는 게 아닙니다. 되돌리는 겁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카드로 덫의 배출구를 찔렀다. 열 잔류가 아니라 열 순환. 빼앗긴 열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시 회수로 흘러들게 만드는 식이었다. 보관 동의 장치는 과열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태오의 덱은 과열을 통해 기억을 고정했다. 덫이 열을 먹는 속도보다 태오가 잃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리고 그 빠름이, 반격의 형태가 되었다.
사슬 하나가 끊어졌다. 이어 두 번째가 터졌다. 정찰병 카드가 바닥에서 떨리더니, 마지막으로 길을 찾는 것처럼 덕트 방향으로 반짝였다. 그 빛은 짧고 얇았다. 하지만 태오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승리 조건임을 알았다. 그는 방패를 들어 남은 얼음 파편을 튕겨 내고, 얼음이 비워 둔 자리로 역열을 흘려보냈다. 바닥의 격자들이 동시에 붉어졌다. 관리인이 한 걸음 물러섰다. "네 카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군." "원래 길을 찾는 건 미친 쪽이 빠릅니다."
마지막 충돌은 간단했다. 정찰병 카드가 적의 눈을 속이는 척 한 번 꺾였고, 그 꺾임이 보관 동 전체의 기류를 바꿨다. 관리인의 방어선이 반 박자 늦어졌다. 태오는 그 틈에 방패를 밀어 넣었다. 얼음 벽이 깨지고, 안쪽 배관에서 따뜻한 증기가 쏟아졌다. 관리인은 겨우 팔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장치가 스스로를 식히지 못하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태오의 남은 힘은 적었지만, 잃은 카드가 남긴 기억은 마지막까지 제 몫을 했다. 정찰병이 발견한 길을 따라 태오의 공격이 파고들었다. 관리인이 무릎을 꿇었다.
승패가 갈린 뒤, 길 잃은 정찰병은 카드 가장자리부터 하얗게 부서졌다. 태오가 손을 뻗기도 전에 카드 전체가 얇은 증기처럼 풀려났다. 승리한 카드가 사라지는 규칙. 이번에는 너무 또렷했다. 태오는 짧게 욕을 삼켰다. 그러나 손해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바닥 한가운데에서 금속 인장이 올라왔다. 냉장 보관 동 출입용 임시 접근권. 카드 한 장을 잃어야만 열리는 문이었다. 태오는 그 인장을 주워 손바닥에 쥐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박히자, 사라진 정찰병의 기억 일부가 손목에 화인처럼 남았다.
보관 동의 안쪽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는 카드 서고가 아니라 더 깊은 냉장실이 있었다. 투명한 슬롯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고, 태오는 그 이름들을 읽다가 호흡을 멈췄다. 불을 기억한 패잔병. 눈먼 장군. 빈 성의 문지기. 마지막 후퇴. 조부의 장부에서 분실로만 남아 있던 카드들이었다. 기록상 사라진 카드가 아니라, 보관 번호가 붙은 카드였다. 그 위에 같은 줄로 새로운 이름이 떠 있었다. 수집가 0. 태오는 그 이름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건 단순한 도난이 아니었다. 패배의 계통을 모아 덱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끝에서 이기는 자를 따로 두는 일이었다.
그때 벽면 단말이 붉게 깜빡였다. 태오의 출전표가 자동으로 갱신되었다. 내일 오전 9시. 회수 담당관 정미연과의 강제 시범전. 조건은 단순했다. 승리 시 비공개 덱 열람권. 패배 시 잔존 카드 한 장의 소유권 이전. 태오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정찰 카드를 잃은 손목이 아직 시렸다. 두 장 남은 카드가 주머니 안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길은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이미 다음 전투로 이어져 있었다. 태오는 인장을 주머니에 넣고, 냉장실 안쪽에 걸린 수집가 0의 목록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훑었다. 내일이면 저 목록 중 하나가 아니라, 저 목록을 만든 손을 부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