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8이 되기 직전, 보증실의 조명이 한 번 숨을 삼켰다. 초록빛이 노란빛으로 바뀌고, 노란빛이 붉은 선으로 갈라졌다. 벽면에 걸린 숫자는 태오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천천히 내려왔다. 입찰자 1089, 보증 잔량 부족. 추가 담보 제출까지 00:02:14. 숫자가 바뀔 때마다 바닥의 레일이 미세하게 떨렸다. 공용 경매실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팔고 있었다. 태오는 자기 손목의 임시 인장을 내려다봤다. 단말과 충돌하며 생긴 균열이 아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는 균열은 대개 쓸모가 있었지만, 쓸모가 생기기 전에 먼저 대가를 요구했다.
보증 담당원은 태오의 앞을 막은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추가 담보 없으면 출입권은 폐기됩니다. 카드 한 장이든, 대체 자산이든, 지금 내놓으세요." 그의 뒤에는 회수팀 감시원 둘이 서 있었다.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태오의 양옆과 등 뒤로 도망칠 수 있는 길을 모두 계산하는 눈이었다. 태오는 담당원의 손끝이 아니라 책상 위 서류함을 봤다. 결손 검증, 소각 보증, 폐기 샘플, 재사용 불가. 줄지어 놓인 문구 중에서 단 하나만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샘플은 원래 지게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샘플 카드가 뭡니까." 태오가 물었다.
담당원은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소각 검증용입니다. 진짜 담보가 들어오기 전에 먼저 태워서 반응을 봅니다. 손실이 과하면 폐기, 통과하면 임시 인정." 그는 한쪽 상자를 열어 회색빛 카드 한 장을 꺼냈다. 표면에는 아무 문양도 없었다. 없어서 더 위험해 보이는 카드였다. "보통은 여기서 카드가 죽고, 신청자는 살아납니다."
태오는 그 문장을 듣고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상자 속 샘플 카드의 가장자리를 바라봤다. 경매실은 물건을 평가하는 곳이지만, 태오에게는 카드의 패배를 재단하는 곳처럼 보였다. 패배한 카드만 기억을 얻는 덱이라면, 여기서 가장 값싼 기억은 누군가가 일부러 지는 것이다. 태오는 마지막 카드의 반쯤 탄 모서리를 엄지로 눌렀다. 카드 안쪽에서 얇은 열기가 다시 맥박쳤다. 아직 한 번은 더 버틸 수 있었다. 그 한 번이 끝나면, 정말로 끝일지도 몰랐다.
"그럼 검증을 제가 하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담당원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죠."
"내 카드와 샘플 카드, 둘 다 올리세요. 제가 이기면 소각 보증을 받고, 제가 지면 전부 가져가시죠." 태오는 손목의 인장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대신 규칙은 그대로 적용합니다. 진 쪽은 기억을 얻고, 이긴 쪽은 사라집니다. 원래 그게 여기 룰 아니었습니까."
담당원은 잠깐 태오를 보다가 회수팀을 돌아봤다. 명백한 함정이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정미연이 벽 가까이에서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태오에게 가까이 오지 않은 채 말했다. "한 번에 끝내요. 여기선 길게 버티는 쪽이 먼저 잡혀요."
태오는 카드들을 받았다. 샘플 카드는 차갑고 가벼웠다. 자신의 마지막 카드는 뜨겁고 무거웠다. 두 장을 검증대 위에 올리자 검은 원이 떠올랐다. 원은 두 카드의 열과 무게를 재고, 서로의 결핍을 읽어내듯 천천히 돌았다. 태오는 마지막 카드를 손가락으로 밀어 샘플 카드 쪽으로 기울였다. 일부러 먼저 밀어 넣은 것이다. 샘플이 반응하는 순간, 카드 표면에 흰 선이 생겼다. 검증대가 열을 빨아올리고 있었다. 태오의 카드가 먼저 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태오는 손목을 꺾었다. 검증대가 흡수한 열을 반대 방향으로 되돌렸다. 그의 카드가 배운 것은 단순한 열이 아니었다. 열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서 빠져나가는지, 상대의 균열이 어느 방향으로 벌어지는지, 패배의 경로가 어떻게 접히는지였다. 그는 아까 창고에서 봤던 냉각 밸브를 떠올렸다. 흐름은 막는 게 아니라 돌아오게 만들면 된다. 카드 안에 남아 있던 상처가 한 번 크게 열렸다가, 곧바로 샘플 카드의 중심부로 밀려들었다. 샘플 카드가 푸른빛으로 번쩍였다.
"멈춰." 담당원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샘플 카드가 검증대 위에서 반으로 접히더니, 이내 빛으로 풀어졌다. 승리한 패잔병은 규칙대로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는 얇은 흰색 인장 하나만 남았다. 검증대가 인장을 삼키고, 즉시 보증 승인 문구를 띄웠다. 임시 소각 보증 승인. 입찰자 1089, 추가 담보 충족. 담당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오는 자기 카드를 집어 들었다. 카드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가장자리 절반이 눈에 띄게 얇아져 있었다. 더 강한 열을 한 번만 받으면 갈라질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손끝으로 느끼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바닥에 땀이 아니라 재가 묻어 있었다.
보증실의 뒤편 문이 열렸다. 정미연이 태오를 따라오며 낮게 말했다. "무리한 짓을 했네요."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까." 태오가 되물었다.
정미연은 대답 대신 문 옆 단말을 가리켰다. 태오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실 접근 권한이 열리는 것을 봤다. 흰 인장 하나가 임시 보증으로 전환되자, 경매실 내부의 층도가 얇은 막처럼 펼쳐졌다. 그는 조부 카드 묶음이 있는 경로를 따라갔다. 묶음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대외 결제 전환, 재분류 대기, 공용 경매실 이관 보류. 그런데 그 아래에 새로운 줄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개인 검증실 7, 상속자 우선 확인. 태오는 그 줄을 읽고 잠시 멈췄다.
"개인 검증실?" 그가 물었다.
정미연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 경매 전에 한 번 더 거치는 방입니다. 소유권이 애매한 물건을 가족 단위나 계열 단위로 묶어서 확인해요. 누가 진짜 상속자인지 본다는 뜻이죠."
"그게 왜 조부 카드에 붙죠."
"붙은 게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원래부터 그쪽으로 빠질 예정이었어요. 수집가 0은 카드들을 팔기 전에 먼저 사람 쪽으로 묶습니다. 빚, 기록, 혈연, 전적. 무엇이든 상속명분으로 쓰죠."
태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부가 평생 잃은 카드들이 단순히 흩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의 상속 절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카드의 번호가 아니라 사람의 이름으로. 그는 기록실 맨 아래 줄을 더 내려봤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자기 이름이 있었다. 입찰자 1089 유태오. 상속자 후보. 확인 예정 21:10. 그는 숨을 들이켰다. 자기 이름이 조부 카드 묶음 옆에 붙어 있었다. 우연으로 보기엔 너무 정교했다.
"저게 왜 제 이름입니까." 그가 물었다.
정미연은 아주 짧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마도 당신이 이미 이겼기 때문이에요. 아니, 더 정확히는 당신의 전패 기록이 그쪽에 연결됐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서는 잃은 기록도 소유권으로 쳐요."
태오는 기록실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21:10. 개인 검증실 7. 상속자 인증전. 누가 먼저 들어오느냐에 따라 묶음은 한 사람의 것이 된다. 그 시간 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조부 카드 묶음은 다른 상속자의 것으로 확정된다. 그의 마지막 카드는 아직 손에 있었지만, 더 이상 단순한 카드가 아니었다. 지금부터는 이 카드로 한 번 더 이겨야 할지도 몰랐다. 문제는, 이기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사라진 뒤에 남는 건 언제나 더 큰 값이었다.
경매실 천장에 다시 숫자가 떠올랐다. 21:10까지 남은 시간. 태오는 화면을 끄지 못한 채 그 숫자를 바라봤다. 개인 검증실 7은 이미 열리고 있었다. 문 앞에는 낯선 이름 두 개가 더 올라와 있었다. 태오는 그중 하나를 읽자마자 입술을 굳혔다. 수집가 0. 그리고 유사 상속자. 누군가가 자기보다 먼저 조부 카드 묶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태오는 손에 쥔 검증 보증 인장을 세게 눌렀다. 흰색 칩이 손바닥에 더 깊게 파묻혔다. 지금부터는 카드의 값이 아니라, 누가 먼저 검증실 문을 여는지가 싸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