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네 장의 덱
유태오의 카드는 이기면 죽고, 지면 기억했다.
아카이브 컵 등록관이 첫 카드를 빛에 비췄다.
`길 잃은 정찰병.`
왼쪽 아래가 불에 타 있었고, 그림 속 병사는 지도의 바깥을 보고 있었다.
두 번째는 `금 간 방패`. 세 번째는 `주인 없는 왕좌`. 마지막은 아무 능력도 적히지 않은 `패잔병`이었다.
"네 장뿐입니까?"
등록관이 물었다.
"네."
"예선 loadout은 최대 다섯 장입니다. 한 슬롯을 비우면 경기 중 보충도 못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직접 공격 카드가 없고 회복도 없네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첫 상대 서화영이 금빛 카드 다섯 장을 부채처럼 펼쳤다. `태양 매`, `정오의 창`, `백열 사제`, `두 번째 일출`, `빛의 성벽`.
대회에서 가장 정석적인 태양 덱이었다. 공격, 관통, 회복, 부활, 방어가 한 장씩 있었다.
"전패왕 손자라더니 진짜 패배 카드만 가져왔네."
화영이 말했다.
태오의 조부 유원식은 공식 경기 103전 103패였다. 죽기 전 태오에게 낡은 카드 상자를 남기며 한마디만 했다.
`이 덱으로 이기지 마라. 이길 때까지는.`
앞뒤가 맞지 않는 유언이었다.
태오는 상자 안쪽에서 더 정확한 규칙을 찾았다.
`패배한 카드는 충돌의 원인을 한 줄 기억한다.`
`승리한 카드는 덱을 떠난다.`
`무승부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조부는 졌다. 카드를 잃지 않고 백 번 넘게 원인을 모았다. 하지만 왜 마지막까지 한 번도 이기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경기장은 세 개 전선으로 나뉘었다. 먼저 두 전선을 장악한 사람이 승리한다. 카드는 한 번 배치하면 충돌이 끝날 때까지 회수할 수 없다.
화영이 물었다.
"한 장 빌려 줄까? 무료로. 너무 불쌍해서."
"빌린 카드가 이기면 누구 덱에서 사라집니까?"
"뭐?"
"규칙부터 모르는 사람에게는 안 빌립니다."
태오는 네 장을 등록판에 올렸다.
빈 다섯 번째 슬롯이 검게 빛났다.
### 2. 지는 순서
첫 전선은 폐허 도시였다.
화영은 `태양 매`를 냈다. 날개 아래로 불씨를 떨어뜨리며 공중에서 지도를 밝혔다. 태오는 `길 잃은 정찰병`을 냈다.
관객석에서 야유가 나왔다. 정찰병의 전투력은 1, 태양 매는 5였다.
"포기한 거야?"
화영이 물었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찰병은 매를 공격하지 않고 골목을 달렸다. 불씨가 떨어지는 순서를 지도에 표시했다. 북쪽, 중앙, 북쪽, 남쪽. 네 번째 불씨가 정찰병을 태웠다.
첫 전선 패배.
카드가 태오 손으로 돌아왔다. 빈 능력란에 글자가 생겼다.
`기억: 태양 매의 열은 북-중-북-남 순으로 이동한다.`
두 번째 전선은 돌다리였다.
화영이 `정오의 창`을 냈다. 태오는 `금 간 방패`를 배치했다. 방패는 첫 찌르기를 막았지만 두 번째에 갈라졌다.
두 번째 전선 패배.
카드가 돌아왔다.
`기억: 정오의 창은 첫 충격의 열을 저장해 두 번째에 더한다.`
경기 점수 0대 2. 원래라면 끝이었다. 그러나 아카이브 컵 예선은 덱 특성을 기록하기 위해 패자에게 한 번의 재구성 라운드를 줬다. 이미 이긴 사람은 카드 하나를 봉인하고, 진 사람은 남은 카드로 단일 전선에서 재도전할 수 있었다.
재도전에서 이기면 1대 1로 수정되고 최종 충돌이 열린다.
화영은 `빛의 성벽`을 봉인했다.
"두 번 져서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엔 `두 번째 일출`로 태워 줄게. 한 번 죽여도 다시 살아나거든."
그 말은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다.
태오는 `주인 없는 왕좌`를 뒤집었다. 이 카드에는 공격력도 방어력도 없었다. 대신 패배한 아군 카드의 기억 하나를 비워진 슬롯으로 옮길 수 있었다.
빈 다섯 번째 슬롯이 처음으로 빛났다.
정찰병의 열 경로와 방패의 축적 열이 슬롯 안에서 겹쳤다.
### 3. 상처의 조합
재구성 전선은 검은 평원이었다.
화영이 예고대로 `두 번째 일출`을 냈다. 작은 태양 두 개가 번갈아 떠오르는 카드였다. 첫 태양을 파괴하면 두 번째가 첫 공격을 기억해 더 강하게 돌아왔다.
태오는 `패잔병`을 냈다.
능력 없음, 공격력 1, 방어력 1.
"또 버리게?"
화영이 손을 들자 첫 태양이 내려왔다.
태오는 빈 슬롯에 저장한 두 기억을 패잔병 위에 겹쳤다. 왕좌 카드가 검게 타며 임시 능력을 만들었다.
`패배 계승: 이미 패배한 카드 둘의 원인을 한 번 사용한다.`
패잔병은 정찰병이 기억한 북-중-북-남 경로를 따라 태양의 중심을 피했다. 첫 태양의 열이 남쪽으로 빠지는 순간 금 간 방패의 기억을 사용해 열을 자기 부러진 검에 저장했다.
패잔병이 첫 태양을 베었다.
`두 번째 일출`이 발동했다. 더 큰 태양이 떠올랐다. 첫 공격의 열을 기억해 그대로 되돌려야 했다.
하지만 첫 공격의 열은 패잔병의 검 안에 있었다. 두 번째 태양은 기억할 열을 찾지 못해 빈 빛만 뿜었다.
패잔병이 저장한 열을 역으로 돌려줬다.
태양이 안쪽에서 갈라졌다.
재구성 승리.
점수 1대 1.
최종 충돌에서는 양측이 이미 사용한 카드 하나를 선택해 대표로 세워야 했다. 화영은 `태양 매`, 태오는 상처 입은 `패잔병`을 골랐다.
이번에는 모든 관객이 경로를 알고 있었다. 화영도 패잔병이 북-중-북-남을 따라 피할 것을 알았다.
"남쪽 순서를 바꾸면 끝이야."
화영은 태양 매의 불씨를 북-중-남-북으로 바꿨다.
패잔병은 첫 경로를 따르지 않았다. 정찰병의 카드는 특정 순서만 적지 않았다. 그 순서가 `태양 매의 꼬리 방향`에 따라 바뀐다는 작은 화살표를 상처 가장자리에 새로 남겨 두었다.
태오는 그 화살표를 경기 직전 발견했다.
패잔병이 바뀐 남쪽 불씨를 피하고 매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 금 간 검이 매의 날개를 꿰뚫었다.
최종 충돌 승리.
아카이브 컵 예선 통과.
### 4. 승리의 소유자
관객이 환호하는 동안 패잔병 카드 가장자리가 하얗게 변했다.
태오는 즉시 카드를 잡았지만 그림이 손가락 사이에서 지워졌다.
`승리한 카드는 덱을 떠난다.`
카드는 재가 되지 않았다. 빛의 가루로 변해 경기장 천장 어딘가로 올라갔다.
태오의 덱에는 세 장만 남았다. 정찰병, 금 간 방패, 주인 없는 왕좌. 예선은 통과했지만 다음 경기 최소 등록 수는 네 장이었다.
화영이 자기 카드를 정리하며 다가왔다.
"처음부터 두 번 질 생각이었어?"
"질 수밖에 없는 loadout을 골랐습니다. 패배 원인이 필요한 조합이었으니까요."
"그럼 마지막 승리로 제일 좋은 카드를 잃을 것도?"
"알았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한 번 이겨?"
태오는 조부의 유언을 떠올렸다. 이 덱으로 이기지 마라. 이길 때까지는.
"어디로 가는지 보려고요."
그는 사라진 카드의 이동 기록을 대회 단말에서 열었다. 소유권 이전 대상은 표시되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화면이 한 번 깜박이며 비공개 덱 하나를 보여 줬다.
`수집가 0.`
카드 목록 맨 아래에 방금 사라진 `불을 기억한 패잔병`이 등록됐다.
그 위에는 낯익은 카드들이 줄지어 있었다.
조부 유원식이 103번의 패배 사이에서 단 세 번 비공식 승리를 거두고 잃었다는 카드들. 가족 장부에는 분실로만 적힌 `눈먼 장군`, `빈 성의 문지기`, `마지막 후퇴`.
화면 아래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승리는 수집가에게 간다.`
`네 번째 카드를 돌려받고 싶다면 본선에서 한 번 더 이겨라.`
태오는 남은 세 카드를 보았다.
다음에는 어떤 카드가 이길지 고르는 일이, 어떤 카드를 빼앗길지 고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