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노골적이었다. 숨는 통로보다 오히려 밝았고, 밝았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천장은 높았고, 기둥마다 금속 패널이 붙어 있었다. 패널에는 카드 번호 대신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태오는 그 이름들이 전부 거래 가능한 표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걸음을 늦췄다. 회수팀 감시원 둘이 멀찍이 서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그를 직접 겨누지 않았다. 대신 그의 뒤와 옆, 그리고 그가 도망칠 수 있는 모든 방향을 재고 있었다.
정미연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왔다. 검은 회수복의 옷깃은 단정했고, 손끝의 봉인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태오가 숨을 고르는 동안 말없이 홀을 한 번 훑어보더니 낮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숨으면 늦어요. 공개 창구로 들어가야 합니다."
"왜요." 태오가 물었다. "내 얼굴이 찍히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이미 찍혔어요. 다만 어느 명부에 들어가느냐가 남았죠. 비공개 덱은 숨기고, 공용 경매실은 팔아요. 당신 조부 카드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보려면, 당신도 판 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태오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맞는 말이었다. 숨어서 얻을 수 있는 건 많아 보여도, 지금 필요한 건 표식이었다. 번호였다. 그는 왼손에 쥔 마지막 카드를 천천히 펼쳤다. 상처 입은 공격 카드. 끝부분은 이미 한번 뒤틀려 있었고, 중앙의 문양은 얇게 갈라져 있었다. 이 카드는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대신 한 번 더 져야 했다.
등록 창구는 유리와 금속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안쪽에 앉은 담당자는 얼굴을 가린 채 서류를 넘기고 있었는데, 손목에 달린 얇은 판정기가 사람보다 먼저 움직였다. "입장 목적." 짧은 질문이 떨어졌다.
"입찰." 태오가 답했다.
담당자의 시선이 그의 손을 향했다. "담보는."
태오는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걸로 됩니다."
"카드는 자산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기록을 담보로 쓰려면, 먼저 기록이 당신에게 붙어 있어야 하죠."
태오는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카드를 스캐너 위에 눌렀다. 카드가 단말에 닿는 순간, 얇은 파열음이 터졌다. 카드의 표면이 한 번 크게 떨리더니, 판정기 쪽으로 빛이 빨려 들어갔다. 태오는 그 충격을 놓치지 않고 읽었다. 카드가 스스로 버티는 대신 단말의 규칙을 외우는 순간이었다. 패배한 카드만 기억을 얻는 덱의 방식이, 이런 식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그는 처음 보았다.
카드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타들어 갔다. 그 대신 스캐너 아래에서 작은 금속 인장이 올라왔다. 임시 입찰 인장. 담당자는 새로 생성된 기록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찰자 1089. 공용 경매실 준비 구역 접근 허가. 단, 보증금 부족 시 17:58에 출입권 회수."
태오는 인장을 집어 들었다. 뜨거웠다. 손끝이 저릴 정도였다. 그는 창구를 지나 준비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거대한 레일과 냉각관, 투명한 보관 상자로 채워져 있었다. 상자마다 카드가 한 장씩 들어 있었고, 카드 위에는 번호와 출처, 재분류 예정 시각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중 몇몇은 낡은 문양을 품고 있었는데, 태오는 한눈에 알아봤다. 조부가 잃은 카드들과 같은 계열이었다. 단순한 보관품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소유권을 다음 단계로 넘기기 위한 담보였다.
정미연이 멀찍이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아주 조금만 기울인 뒤 말했다. "보셨죠. 카드가 물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는 입찰 권한으로 바뀝니다."
태오는 투명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 있는 카드들 사이에서 익숙한 불꽃 문양이 번뜩였다. 조부의 카드였다. 아니, 정확히는 조부가 평생 잃었다는 카드의 일부가 묶음 번호 아래에 들어가 있었다. 상자 안의 라벨에는 수집가 0. 대외 결제 전환. 재분류 후 공용 경매실 이관. 짧은 문장이 세 개나 겹쳐 있었다. 태오는 그중 하나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전환이란 게 뭡니까."
"번호를 지우는 절차예요." 정미연이 말했다. "남은 가치를 입찰 토큰으로 바꾸죠. 그래서 공개로 넘어가면 추적이 더 어려워집니다."
태오는 숨을 삼켰다. 조부의 카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쓰이기 쉬운 형태로 재가공되고 있었다. 그는 상자들을 보며 잠깐 생각했다. 이 모든 걸 막으려면 숨을 곳이 아니라 멈춤이 필요했다. 그는 레일 옆 냉각 밸브를 향해 걸어가 손잡이를 비틀었다. 경보가 울리지 않을 정도의 폭으로만. 그러자 운송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몇 초, 혹은 몇 분. 그 사이 재분류 목록이 다시 떠올랐다.
태오는 조부 카드의 이동 시각과 묶음 번호를 머릿속에 박아 넣었다. 카드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움직이는지, 무엇과 함께 묶여 있는지. 더는 막연하지 않았다. 수집가 0이 카드들을 어떻게 담보화하는지도 읽혔다. 그는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마지막 카드의 가장자리가 더 얇아져 있었다. 스캐너와 부딪힌 대가였다. 이제 그 카드로 다시 한 번 버텨야 했다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 천장 패널이 짧게 점멸했다. 공용 경매실 시스템이 새 공지를 띄웠다. 입찰자 1089, 보증금 부족. 17:58 이전 추가 담보 제출 필요. 미제출 시 출입권 폐기.
태오는 공지문을 읽고 나서야 자신이 어디까지 들어와 버렸는지 깨달았다. 조부의 카드를 살피는 동안, 자신의 이름도 이미 거래 가능한 항목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인장을 바라보았다. 입찰자는 되었지만, 아직 참여자는 아니었다. 17:58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카드 한 장 더, 혹은 다른 담보. 무엇을 내놓지 못하면 그는 여기서 끝이고, 조부의 카드는 레일 위로 올라간다.
정미연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선택입니다. 숨을 거면 지금 나가고, 막을 거면 값부터 치르세요."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경매실 내부의 레일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투명 상자 안의 불꽃 문양이 레일 진동에 맞춰 떨렸다. 17:58. 그 시각이 오기 전에, 그는 남은 카드의 값을 다시 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