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갈 때 세경은 먼저 얼굴을 보지 않았다. 얼굴은 이미 몇 번이나 그녀를 배신했으니까. 대신 바깥 복도에서 들려온 숨소리를 듣고, 그 사이에 한 번 섞인 작은 발 구르는 버릇을 붙잡았다.
'도윤아.'
문밖에서 아주 짧게, 그 이름에만 반응하는 숨이 멎었다. 세경은 그 한 번의 멈춤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도 그랬다. 임도윤은 놀라면 무릎이 아니라 발끝부터 굳었다. 그녀가 지켜본 것은 얼굴이 아니라 그런 자잘한 버릇들이었다. 그는 문에 바짝 붙은 채 낮게 말했다.
'누나, 나야. 열어.'
그 뒤에서 더 낮고 마른 목소리가 겹쳤다. '열면 안 됩니다. 지금 열면 둘 다 끝나.'
회색 코트 남자였다. 세경은 종이에 찍힌 문장을 다시 보았다. 0시 5분, 대상: 임세경. 보호자: 임도윤. 이 문장은 더 이상 협박이 아니었다. 누가 누구를 미끼로 세웠는지, 누가 보호자의 자리를 훔쳐 썼는지 보여 주는 안내문이었다. 세경은 우석에게 시선을 던졌다.
'문, 딱 삼십 초만 버텨.'
우석은 부상한 왼팔을 더 세게 감고 문틈을 어깨로 눌렀다. '삼십 초는 무리다. 하지만 해보지.'
세경은 서류함을 열어 1205-3 배치표와 오래된 보호자 등록대장을 겹쳐 놓았다. 종이의 구겨진 결 사이로 같은 필체가 반복되어 있었다. 수동 발송, 승인자 교체, 비상 해제, 삭제. 누군가가 같은 손으로 여러 번 써넣고 지웠다. 그리고 가장 아래쪽, 프린터 잉크가 얇게 번진 자리에서 이름 하나가 드러났다. 강현우.
'너였네.' 세경이 중얼거리자 문밖의 남자가 미세하게 숨을 삼켰다. '야간 신호 외주. 역무실 출입권. 자동 잠금 전환 기록. 전부 네 손이었어.'
회색 코트 남자, 강현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짧은 정적이 오히려 대답 같았다. 이어서 그가 웃었다. 딱히 즐거워서가 아니라 들킨 사람의 얄팍한 소리였다. '네가 얼굴을 못 알아보니까 오래 걸리겠지 싶었는데, 기록부터 볼 줄은 몰랐군.'
'난 얼굴보다 순서를 먼저 본다.' 세경이 말했다. '네가 죽이려던 건 사람이 아니라 증언이야.'
문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우석의 신음이 낮게 새었다. 세경은 옆에 놓인 프린터 출력물을 집어 들고 동생을 향해 말했다. '도윤아, 손바닥 보여. 오른손으로 세 번, 왼손으로 한 번. 예전처럼.'
문틈 사이로 손이 들어왔다. 오래된 흉터가 하나 있었다. 손등이 아니라 손목 안쪽, 어릴 때 자전거에 긁혀 남은 자국이었다. 세경은 그 자국을 보자마자 이름보다 먼저 습관이 떠올랐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다 넘어질 때마다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던 버릇. 얼굴은 여전히 안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도윤이다.' 세경이 짧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녀는 임도윤에게 문 바로 앞의 스캐너에 손바닥을 대게 했다. 보호자 등록대장의 마지막 빈칸이 빛을 받으며 떨렸다. 회색 코트 남자가 급히 외쳤다. '그건 네 승인을 열어 주는 게 아니야. 네가 들어오게 하는 거지!'
세경은 대답하지 않고 1205-3 슬롯에 키를 밀어 넣었다.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프린터가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종이가 아니라 얇은 접수지 한 장이 뽑혀 나왔다. 상단에 비상 접수 번호가 찍히고, 그 아래에 자동 백업 회로가 열리는 시간과 위치가 적혔다. 그녀는 숫자를 읽으며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다.
'우석, 지금.'
우석이 문을 밀어젖히는 순간, 복도 쪽에서 강현우의 몸이 비틀거리며 안쪽으로 쏠렸다. 그는 들어오려 했고, 그 틈에 문은 오히려 그를 삼켜 버렸다. 세경은 프린터 옆의 금속 카트를 발로 밀어 그의 허벅지를 걸었다. 우석이 남은 힘을 짜내어 문을 닫아 주자 강현우의 팔이 틈에 끼었다. 독침이 달린 작은 주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롭게 굴렀다.
'놓으라고!' 강현우가 소리쳤다.
세경은 그 얼굴을 끝내 정확히 보지 못했다. 회색 코트, 젖은 머리카락, 벌어진 입, 그 정도만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의 기록을 알고 있었고, 그가 무엇을 위해 사람을 반복에 묶어 두었는지도 알았다. 강현우는 비상 릴레이를 되돌리는 방법을 손에 쥔 채, 같은 열일곱 분을 계속 열어 두며 증언이 쌓이기 전에 사람을 지우려 했다. 한 번이면 실패하고, 두 번이면 조급해지고, 네 번이면 상대가 스스로 얼굴을 놓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네가 이 역을 몇 번이나 멈췄는지, 이제 증거로 남겨.' 세경이 말했다.
그녀는 접수지를 우석에게 건네고, 동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윤아, 네가 끝까지 버텨. 밖으로 나가면 바로 뛰지 말고 오른쪽 벽을 따라가. 사람들한테 이름을 크게 말해. 네가 누군지 잊지 않게.'
임도윤은 문틈으로 드러난 그녀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누나.'
그 한 마디가 세경의 머릿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얼굴의 윤곽을 밀어냈다. 어린 시절 역 앞에서 빗속을 뛰던 동생의 입가, 환하게 올라가던 눈썹,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희미해졌다. 대신 남은 것은 목소리와 손의 방향, 문을 닫기 전 살짝 치켜들던 어깨였다. 그녀는 그 상실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안쪽 릴레이 박스를 잡고 힘껏 당겼다.
짧은 금속 파열음이 났다. 형광등이 한 번 어두워졌다가 다시 켜졌다. 전광판의 시계가 0시 17분을 지나 계속 흘렀다. 멈추지 않았다. 되감기지 않았다. 17분의 막이 다시 내려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순간, 세경은 숨을 들이마셨다. 역은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지저분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발소리가 돌아다녔지만, 더는 같은 순간에 갇힌 느낌이 아니었다.
바깥 복도에서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강현우는 우석의 팔에 눌린 채 이를 갈았다. '네가 이겨도 너는 못 돌아온다. 얼굴을 잃었잖아.'
세경은 짧게 웃었다. '얼굴만으로 사람을 보던 건 너였지.'
그녀는 경찰 접수지에 마지막으로 서명한 뒤, 자신 앞에 선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얼굴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손끝은 확실했다. '도윤아, 고개 들어. 이제는 달리지 않아도 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 밖의 발소리들이 역무실 앞에 몰려들었다. 세경은 더 이상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려 애쓰지 않았다. 대신 새벽까지 이어질 기록을 위해, 동생의 목소리와 습관을 적어 둘 빈 장부를 꺼냈다. 첫 줄에는 이름을 썼다. 임도윤. 그 옆에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오른손으로 세 번, 왼손으로 한 번. 숨을 고를 때 어깨가 먼저 오른다.
얼굴은 비어 있었지만, 사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