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실 문은 완전히 열린 것이 아니었다. 반쯤 풀린 잠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얇게 새어 나왔고, 그 틈에 눌린 먼지 냄새와 오래된 전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세경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 먼저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형광등은 두세 개가 나가 있었고, 남은 불빛도 깜빡이며 바닥의 검은 케이블과 낡은 콘솔을 번갈아 비췄다. 프린터는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도 쉼 없이 움직였고, 그 소리가 마치 누군가가 안쪽에서 조용히 종이를 찢는 소리처럼 들렸다.
"둘 다 밖에 서 있어. 동생은 문 옆, 우석 씨는 계단 쪽." 세경이 짧게 말했다. "안에서 누가 나오면 얼굴 말고 목소리부터 들어요."
동생이 한 걸음 다가왔다가 멈췄다. "누나, 같이 가야지."
세경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보려고 하면 흐려질까 봐 무서웠다. 대신 목소리만 붙잡았다. "여기서 네가 제일 빨라. 나는 안에서 시스템을 본다. 네가 들으면 된다."
우석이 문 옆 손잡이를 짚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 해제는 하나만 꺼도 안 끝납니다. 릴레이가 세 갈래예요. 신호실, 지하 분기, 플랫폼 0." 그는 낮게 말을 이었다. "누가 이걸 짠 사람은 역 구조를 아는 쪽입니다."
세경은 그 말 끝에서 멈췄다. 아는 쪽. 그 말은 범인이 바깥에서 침입한 게 아니라, 이미 안에 살고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콘솔 옆에 놓인 출력물을 집어 들었다. 가장 위에는 방금 전에 본 예약 문장이 있었다. 0시 5분, 플랫폼 0, 대상: 임세경. 그 아래에는 짧은 코드가 붙어 있었다. S-4. 기억정정. 세경은 잉크가 반쯤 번진 글자를 한 번, 두 번 더 읽었다. 정정은 취소가 아니라 수정이었다. 죽이는 대신, 알아보는 법을 바꾸는 기술처럼 보였다.
"이건 밖에서 보내는 게 아니야." 세경이 말했다. "발송 기록이 이 안에서 찍혀."
그녀는 프린터 옆 유지보수 서랍을 열었다. 안쪽에는 작업자용 열쇠와 낡은 태그 카드가 하나 들어 있었다. 카드에는 이름이 지워진 흔적이 있었지만 번호는 남아 있었다. 14-2. 신호실 야간 정비. 세경은 곧장 콘솔 뒤 로그 화면을 켰다. 화면은 한 번 깜빡이더니 최근 접근 기록을 띄웠다. 23시 17분, 23시 41분, 23시 58분. 같은 계정, 같은 카드, 같은 경로. 세 번 모두 신호실과 지하 분기, 그리고 플랫폼 0을 오가며 문이 열렸다 닫혔다.
"네 번 반복했다는 말, 그냥 감으로 아는 게 아니었네." 동생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세경은 씁쓸하게 웃었다. "감이라기엔 너무 정확해."
우석이 프린터에 나온 종이를 한 장 집어 들었다. 그가 종이를 읽는 눈빛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이건 시간표가 아니라 동선표입니다. 어떤 사람을 여기로 부르고, 어디서 놓치고, 어떤 순서로 기억을 비우는지 적어 놓은 거예요."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내가 이 시간을 알고 있던 건, 내가 기억해서가 아니라 봤기 때문입니다."
"뭘 봤는데요?"
"같은 문장이 네 번 같은 자리에 찍히는 걸요."
그가 더 말하기도 전에, 신호실 천장 쪽에서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세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동생이 문 쪽에서 숨을 삼켰고, 우석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천장의 점검구가 아주 천천히 밀리더니, 손가락 두 개가 먼저 내려왔다. 그 다음은 회색 작업복 소매였다. 세경은 그 손이 프린터 종이를 들고 있던 손과 같다는 걸 직감했다.
"뒤로!" 그녀가 외쳤다.
정비 인원은 바닥에 발을 디디자마자 콘솔 쪽으로 몸을 던졌다.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다. 손에는 짧은 전기충격기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세경은 망설이지 않았다. 동생에게는 문을 닫으라고 소리치고, 우석에게는 오른쪽 장비함을 치라고 말했다. 우석이 기민하게 장비함을 발로 밀자, 좁은 통로가 잠시 막혔다. 세경은 그 틈으로 정비 인원의 팔을 잡아채며 바닥의 전원 리셋 레버를 내렸다. 실내 조명이 한 번 크게 깜빡였고, 프린터가 비명을 지르듯 멈췄다.
정비 인원이 욕설을 내뱉었다. "놓으라고!"
세경은 그의 손목을 비틀어 전기충격기를 떨어뜨렸다. 그 순간 상대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빼내려 했고, 우석이 그 팔꿈치를 쳐서 막았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날아든 발길질이 우석의 어깨를 맞혔다. 그는 짧게 신음을 삼키며 벽에 부딪혔다. 세경은 머리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녀는 정비 인원의 무릎 뒤를 걷어차 바닥에 눕히고, 동생에게 외쳤다. "끈!"
동생이 문 옆에서 케이블 타이를 던졌다. 세경은 그것을 받아 정비 인원의 손목을 감았다. 그는 몸부림쳤지만 이미 늦었다. 마스크가 내려가며 얼굴 일부가 드러났다. 콧등에 화상 자국이 있고, 눈 밑에는 오래된 수면 부족의 그늘이 짙었다. 세경은 그 얼굴을 분명히 보고도 오래 붙들지 못했다. 윤곽이 몇 초 만에 흐려졌고, 남은 건 떨리는 목소리뿐이었다.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했어."
"누가 시켰지?"
"회색 코트."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가 여기 들어오면, 네가 먼저 문을 열 거라고 했어."
세경은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잠금 화면에는 예약 목록이 떠 있었다. 가장 위의 예약은 이미 보았던 그 문장이었지만, 그 아래에 새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되고 있었다. 0시 5분, 플랫폼 0, 대상: 임도윤. 동생의 이름이었다. 세경의 손끝이 순간 굳었다.
"이건 뭐야?"
정비 인원은 비릿하게 웃었다. "네가 안 나오면, 다음은 네 옆사람이지. 시스템이 그걸 제일 빨리 배워."
우석이 벽을 짚고 일어났다. 어깨를 맞은 자리가 벌겋게 부어 있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웃었다. "자정 직전 자동 해제는 그대로입니다. 방금 막은 건 일부예요."
세경은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대상: 임도윤. 그 글자를 읽는 순간, 동생의 얼굴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방금 전 들은 목소리와 숨소리, 문 옆에서 몸을 움츠리던 기척만 선명했다. 그녀는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얼굴을 잃는 일은 이미 겪었지만, 이름을 잃기 전에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프린터가 다시 저절로 움직였다. 방금 막 멈춘 줄 알았던 롤이 한 장을 더 밀어냈다. 세경이 종이를 잡아채자, 잉크가 덜 마른 새 문장이 손바닥에 묻었다. 0시 5분, 플랫폼 0, 대상: 임도윤. 그리고 그 아래에 작은 줄이 하나 더 있었다. 보호자 동반 시, 문은 두 배로 열린다.
세경은 종이를 움켜쥔 채 고개를 들었다. 신호실 바깥, 플랫폼 쪽에서 기차 경고음이 짧게 울렸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 혼자 뛰는 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