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실 안쪽은 생각보다 좁았다. 문을 닫는 순간 바깥의 소음이 얇게 눌렸고, 형광등 하나가 반쯤 죽은 채 깜빡였다. 세경은 손에 쥔 명찰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1205-3. 숫자만 보면 흔한 보조번호 같았지만, 회색 코트 남자가 남기고 간 물건치고는 너무 의도적이었다. 우석이 문을 등지고 서서 숨을 골랐다. 어깨에 감아 둔 천이 피를 빨아들여 더 무거워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라고 한 거네." 우석이 낮게 말했다.
세경은 대답하지 않고 서류함 위를 훑었다. 오래된 보호자 등록대장, 출력이 멈춘 프린터, 모니터 아래로 끼워진 열쇠 하나. 종이 가장자리에 눌린 먼지가 새로 이동한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조금 전까지 이 방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세경은 열쇠를 집어 들고 말했다. "도망간 게 아니라 기다린 거야."
프린터가 갑자기 한 번 떨렸다. 아무 종이도 물리지 않은 채 바퀴가 헛돌았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낮고 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색 코트 남자였다.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 방의 다른 층을 점유한 사람처럼 들렸다.
"네가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런데 늦었어." 그가 말했다. "여긴 역무실이 아니라 기록실이야. 네가 잃는 얼굴을 종이에 옮겨 적는 곳이지."
세경은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메모지 묶음 아래, 접힌 배치표가 있었다. 플랫폼 0, 신호실, 안내방송실, 그리고 지금 있는 역무실 안쪽까지 화살표가 이어져 있었다. 그 끝에 붉은 잉크로 동그라미 친 숫자 하나. 1205-3. 그녀는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어딘가가 바늘처럼 찔렸다. 익숙한데 떠오르지 않는 불쾌한 감각. 이름이 아니라 순서. 얼굴이 아니라 배치.
우석이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 번. 멈춤. 다시 두 번. 일정한 리듬이었다. 세경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등록대장을 펼쳤다. 오래된 장부에는 보호자 이름과 시간대, 임시 대리 서명이 줄줄이 적혀 있었고, 그중 몇 칸은 검은 잉크로 지워져 있었다. 지워진 자리에 손가락을 대자 차가운 잉크 냄새가 났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지금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얼굴은 이미 비어 있었다. 동생의 목소리를 붙잡고 버티는 중이었다. 그런데 장부를 읽으려면,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선명한 인상을 더 태워야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 하나를 잡으려 했다. 아버지였다. 어딘가에서 늘 정면을 향하고 있던 얼굴. 웃는지 찡그리는지조차 흐릿한, 그러나 분명히 가족이던 얼굴. 세경은 그 이미지를 손으로 움켜쥐듯 누르며 장부의 숫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을 떴을 때 아버지의 얼굴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숫자가 보였다. 0시 5분. 대상 입력 순서. 보호자란 항목은 이름이 아니라 권한으로 넘어가 있었고, 역무실 안쪽은 수동 재인증이 필요한 최종 구간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세경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이 방에서 예약 발송을 바꾸려면,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계를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관계를 가장 약한 인물부터 끼워 맞춘다.
"왜 내 이름이 다시 찍혔는지 알겠어." 세경이 스피커 쪽을 향해 말했다. "네가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야. 내가 이 방을 열게 만들고 있었던 거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틈을 타 우석이 문틈을 어깨로 눌렀다. 밖에서 미세하게 쇳소리가 났다. 뭔가 문고리에 걸린 채 움직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세경아, 빨리 봐. 이 문 오래 못 버틴다."
세경은 배치표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수기 메모가 빽빽했다. 0시 5분 예약 발송, 수동 승인, 1205-3 승인자, 보호자 미등록 시 대상 자동 상향. 그 아래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내근 교대자가 보는 쪽이 아니라, 지워진 쪽을 먼저 확인할 것. 그녀는 손가락으로 문장 밑을 쓸었다. 지워진 쪽에는 얇게 눌린 인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을 따라 읽자,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배치명이 드러났다. 1205-3은 사람 번호가 아니었다. 역무실 뒤편의 수동 발송 슬롯, 그리고 자동 잠금 전환 스위치였다.
세경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바닥 아래에서 짧은 진동이 왔다. 프린터가 다시 움직인 것이다. 이번에는 종이가 걸리지도 않았는데, 안쪽에서 한 장이 밀려 나왔다. 우석이 문을 붙든 채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사이 세경이 종이를 집어 들었다. 첫 줄은 익숙했다. 0시 5분. 둘째 줄도 익숙했다. 대상: 임세경. 그런데 셋째 줄에서 손끝이 굳었다.
보호자: 임도윤.
세경은 그 이름을 읽고도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대신 목소리가 떠올랐다. 문 옆에서, 겁을 먹은 척하면서도 끝을 삼키지 못하던 습관. 사람을 부를 때 유난히 끝을 올리던 억양. 그녀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아는 순간, 잃어버린 얼굴이 단숨에 더 멀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보호자로 찍힌 이름이 동생이라면, 시스템은 이제 동생을 문 안으로 불러들이려 한다. 아니, 이미 불러들였을지도 몰랐다.
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아무 소리도 아닌 듯 들렸다. 그 다음, 문 바깥에서 누군가 아주 낮게 숨을 들이쉬었다. 회색 코트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더 젊고 익숙한 목소리가 문틈 너머에서 흘렀다.
"누나."
세경은 종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우석이 문을 버티며 돌아보려 했지만 못 했다. 역무실 문은 안쪽에서 잠긴 채였고, 프린터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장이 넘어갈 때마다 0시 5분까지 남은 시간이 더 선명해졌다. 세경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밀어 넣고, 배치표와 열쇠를 한 번에 움켜쥐었다. 이제 문을 여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이 방이 누구를 데려가려는지, 그리고 어떤 이름이 먼저 닿아야 잠금이 풀리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문고리가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