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첫 번째 자정
임세경은 첫 번째 자정에 사람이 죽는 시간을 보았고, 두 번째 자정에 그 시간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12시 05분, 노란 목도리 여자가 플랫폼 끝에서 쓰러졌다.
회색 코트 남자가 바로 뒤에 있었다. 그의 두 손이 여자의 어깨에 닿았고, 여자는 선로 쪽으로 넘어졌다.
세경은 비상 정지 버튼을 눌렀다. 막차는 플랫폼 80미터 앞에서 불꽃을 내며 멈췄다. 세경과 남자가 선로로 내려가 여자를 올렸지만 이미 맥박이 없었다.
회색 코트 남자는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내가 민 게 아닙니다. 잡으려 했어요."
12시 11분, 경찰이 도착했다.
12시 14분, 역 시계가 거꾸로 한 칸 움직였다.
12시 17분, 모든 불이 꺼졌다.
세경이 눈을 뜨자 다시 자정이었다.
노란 목도리 여자는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었고, 회색 코트 남자는 아직 계단 위였다. 비상 정지 버튼에는 세경의 손자국도 없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처음 자정에 적은 사고 메모만 남아 있었다.
`00:05 추락.`
`회색 코트 접촉.`
`00:17 초기화?`
세경은 휴대전화 사진을 열었다. 배경 화면에는 자신과 누군가가 바다에서 웃고 있었다. 상대가 가족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이름도 알았다.
임도현. 두 살 어린 동생.
그런데 얼굴이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
사진 속 눈과 코를 각각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이 동생이라는 느낌이 사라졌다.
첫 반복의 대가였다.
세경은 메모 아래에 썼다.
`지속 상태: 메모, 내 기억.`
`손실: 도현 얼굴의 익숙함.`
남은 시간 5분.
### 2. 밀지 않은 사람
두 번째 자정에는 회색 코트 남자를 막았다.
세경은 그가 계단을 내려오기 전에 역무실로 불렀다.
"가방 무작위 검사입니다. 잠시 협조해 주세요."
"막차 놓칩니다."
"2분이면 됩니다."
세경은 남자의 신분증을 받았다. 이름은 박우석, 응급의학과 전공의. 가방에는 청진기와 병원 출입증뿐이었다.
12시 05분, 플랫폼에서 비명이 들렸다.
노란 목도리 여자는 혼자 쓰러져 있었다. 선로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슴을 움켜쥔 채 숨을 쉬지 못했다.
우석이 역무실에서 뛰어나갔다. 그는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이 사람, 추락 때문에 죽은 게 아닙니다. 동공이 이상해요. 독극물 가능성 있습니다."
여자의 오른쪽 팔 안쪽에 작은 붉은 점이 있었다. 첫 자정에는 코트 소매와 추락 상처에 가려 보지 못한 자국이었다.
12시 17분, 시간이 다시 접혔다.
세 번째 자정에 세경은 고등학교 담임 얼굴을 잊었다. 이름과 있었던 일은 기억했지만 사진을 봐도 알아보지 못했다.
메모에는 두 번째 결과가 남았다.
`회색 코트 격리 -> 추락 없음, 사망 동일.`
`독침 추정. 접촉 시각 00:05 이전.`
세경은 변수를 하나만 더 바꾸기로 했다. 세 번째 반복에는 플랫폼을 폐쇄하고 노란 목도리 여자를 역무실로 데려왔다.
"시설 점검이라 잠시 기다려 주세요."
여자는 짜증을 냈지만 따랐다. 이름은 서혜진, 제약회사 회계팀 직원이었다.
"오늘 누가 몸에 닿았습니까?"
"사람 많은데 다 기억하나요? 열차에서 우산 든 여자가 부딪히긴 했어요."
"무슨 색 우산이었습니까?"
"빨강. 비도 안 오는데 펴고 있어서 이상했어요."
혜진은 12시 04분 32초에 말을 멈췄다. 팔 안쪽에 붉은 점이 부풀었다. 독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세경은 119와 우석을 미리 불렀지만 해독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혜진은 12시 08분에 심정지가 왔다.
12시 17분이 다시 왔다.
세경은 이번에 어머니의 얼굴을 잃었다.
기억 속 목소리와 손의 감촉은 남았지만, 어떤 얼굴로 웃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역무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번 더 반복하면 누구를 잃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메모에는 범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현재 단서가 있었다.
`붉은 우산. 열차 안. 00:02 이전.`
### 3. 네 번째 실험
네 번째 자정, 세경은 막차를 역에 들이지 않았다.
관제에 선로 장애를 보고해 열차를 전 역에서 3분 대기시켰다. 플랫폼 문을 잠그고 우석에게 먼저 말했다.
"곧 독침 사건이 납니다. 피해자는 노란 목도리, 용의자는 붉은 우산입니다. 믿지 않아도 좋으니 12시 02분 열차 안에서 두 사람을 분리해 주세요."
우석이 세경을 보았다.
"어떻게 압니까?"
"세 번 틀렸습니다. 이번에는 틀린 이유를 압니다."
열차가 12시 03분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기 전 세경은 승강장 카메라를 확대했다. 두 번째 칸에 노란 목도리 혜진이 서 있었다. 세 사람 뒤에 붉은 우산을 세로로 든 여자가 있었다.
문이 열렸다.
세경은 혜진 이름을 불렀다.
"서혜진 씨, 팔을 확인하세요!"
혜진이 놀라 소매를 걷었다. 아직 붉은 점은 없었다.
붉은 우산 여자가 반대편 문으로 움직였다. 우석이 길을 막았다.
"잠시만요. 우산 접어 주십시오."
"왜요?"
여자는 손잡이 아래 버튼을 눌렀다. 우산 끝에서 가는 바늘이 튀어나왔다.
세경은 청소용 밀대를 밀어 바늘을 쳤다. 독침이 광고판에 박혔다. 우석이 여자의 손목을 잡았고, 세경은 비상 셔터를 내려 퇴로를 막았다.
여자는 저항하다가 갑자기 웃었다.
"또 처음부터 하면 돼."
세경의 몸이 굳었다.
"당신도 기억합니까?"
"아니. 하지만 네 얼굴이 네 번 죽은 사람 얼굴이거든."
그녀는 혀 아래 독약을 깨물려 했다. 우석이 턱을 잡고 막았다. 범인은 살아서 체포돼야 반복의 원인과 공범을 물을 수 있었다.
경찰이 우산과 독침을 압수했다. 혜진은 독에 노출되지 않았다. 회사 내부 비자금 장부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려다 표적이 됐다고 진술했다.
12시 16분.
세경은 역 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마지막 한 바퀴를 돌았다.
### 4. 지나간 분침
12시 17분이 됐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초침이 18분으로 넘어갔다.
세경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네 번의 혜진 죽음과 세 번의 초기화가 모두 자기 안에 남아 있었다. 잃은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이 붉은 우산 여자를 데려갔다. 혜진은 우석과 함께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았다.
막차 승객들이 빠져나간 뒤 한 남자가 개찰구에서 세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나."
목소리를 듣자 동생 도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의 것이었다.
세경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도현의 웃음이 사라졌다.
"왜 그래?"
"미안해. 네 이름은 알아. 우리가 어릴 때 살던 집도, 네가 땅콩 알레르기 있는 것도 기억해. 그런데 얼굴이…… 연결이 안 돼."
도현은 농담인지 기다리다가 세경의 표정을 보고 멈췄다.
"무슨 일이 있었어?"
"네 번의 자정. 나중에 전부 설명할게. 지금은 사진을 새로 찍자. 오늘부터 다시 외우게."
도현은 울음을 참으며 세경 옆에 섰다. 두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었을 때 회색 코트의 박우석이 계단에서 돌아왔다.
"역무원님."
"환자와 같이 간 것 아니었습니까?"
"구급차에 넘기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걸 돌려드리려고."
우석은 첫 번째 반복에서 세경이 잃어버린 볼펜을 내밀었다. 시간은 초기화됐는데 그 물건도 남아 있었다.
"어떻게 가지고 있죠?"
우석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번째에는 사람을 살렸습니다. 다섯 번째에는 누가 시간을 죽이러 옵니다."
"당신도 기억했군요."
"전부는 아닙니다. 매번 한 사람 얼굴이 아니라 제 이름 한 글자씩 잃었습니다."
그가 신분증을 보여 줬다. `박우석`의 세 글자 중 가운데 글자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역 시계가 12시 19분을 가리켰다.
처음 보는 시간이었지만, 반복은 끝이 아니라 더 큰 시계의 안쪽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