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교 군량창의 담장은 낮았다. 그러나 밤을 머금은 짚내와 젖은 흙내가 그 낮은 담을 더 두껍게 만들었다. 성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과 안으로 들어오는 곡식이 한곳에서 갈렸고, 갈리는 자리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이름이 먼저 묶였다. 도윤은 수레 바퀴 자국이 깊게 팬 진창을 밟으며 입을 다물었다. 소하는 그 침묵이 아니라 바퀴 밑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울림을 들었다. 곡식 자루는 둔하게 울고, 빈 판목은 가볍게 떤다. 그러나 오늘 수레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 둘과 달랐다. 마치 말라붙은 혀가 나무를 핥는 소리 같았다. 그녀는 도윤의 소매를 당겼다.
"안에 판이 있습니다."
도윤이 눈을 좁혔다.
"명부 원판이겠지."
"아닙니다."
소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건 빈 판입니다. 이름을 넣으려고 비워 둔 게 아니라, 이름을 빼려고 비워 둔 판이에요."
북교 군량창의 뒷문이 열리자 바람 대신 먹 냄새가 새어 나왔다. 곡식 창고라기보다 서방에 가까운 냄새였다. 도윤이 그림자 사이로 먼저 몸을 틀었다. 그는 관복이 아닌 인부의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어깨의 습관은 숨길 수 없었다. 소하는 한 걸음 뒤에서 판목의 결을 읽었다. 눈을 먹은 배나무는 오래된 목판일수록 더 차분한데, 오늘 판목은 차분하지 않았다. 새로 깎은 자리와 오래된 자리의 압력이 서로 반대로 눌려 있었다. 거꾸로 새긴 이름이었다. 스승이 늘 금하던 방식. 살아 있는 사람을 없던 사람처럼 적거나, 없던 사람을 살아 있는 것처럼 적는 수법. 안쪽에서는 한 사내가 낮게 욕을 뱉었다.
"오늘은 스무 장만 더 맞춰 넣으면 된다. 새벽 첫 교대 전에 서성문으로 넘겨야 한다."
다른 목소리가 받았다.
"피난첩 쪽은?"
"같이 간다. 성안 사람은 성안에 묶고, 성밖 사람은 곡식과 함께 빼내면 된다. 누가 굶고 누가 나갈지, 판이 정해 주지."
소하는 손바닥에 묻은 붉은 인주를 쳐다보았다. 피가 아니었다면 덜 뜨거웠을 것이다. 그녀는 짧게 말했다.
"저들은 사람을 세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치우고 있어요."
도윤이 창고 문을 밀어 열려다 멈췄다. 안쪽에는 하급 인부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고, 곁에는 종이끈으로 묶인 가계 속지가 쌓여 있었다. 인부의 이름은 이미 여러 번 지워졌다가 다시 적힌 흔적이 있었다. 백지회 서리가 그의 어깨를 발로 눌렀다.
"이 수레 분량이 틀린 건 네 탓이다. 빈 판이 하나 부족한 것도 네 책임으로 돌리면 된다."
인부가 숨을 삼켰다.
"나는 판을 손댄 적이 없습니다."
"손댄 적이 없으면 네 이름이 더 잘 어울리지. 없던 사람 말이야."
도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려 했으나, 소하가 먼저 막았다.
"잠깐."
그녀는 창고 한복판에 놓인 대조틀을 보았다. 원판과 빈 판이 서로 맞물려 눌리는 구조였다. 판목의 윗면엔 군량창 출입 표식이, 아랫면엔 피난첩의 이름 칸이 맞물려 있었다. 소하는 왼손으로 가장 바깥의 빈 판을 집어 들었다. 오른손은 거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나무의 저항은 손끝보다 먼저 어깨에 닿았다. 그녀는 판을 귀에 대고 아주 짧게 두드렸다. 툭, 툭, 툭. 안쪽에 한 겹 더 있었다.
"겉판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속판에 이름을 뒤집어 새겨 놓았어요."
"무슨 소리요?"
뒤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백지회의 다른 사내였다. 그가 손에 쥔 인장은 개봉부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으나, 눌린 방식이 달랐다. 글자의 획이 한 박자 늦게 따라붙는 인영이었다. 소하는 그 차이를 보자마자 위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았다.
"이 판으로 피난첩을 다시 찍으면, 사람은 살 수 있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서리가 비웃었다.
"살아 나가려면 이름을 바꿔야지. 군량 운반자로 넣으면 성문은 열리고, 운이 좋으면 기록은 남지 않는다."
"기록이 남지 않으면 살아도 죽은 겁니다."
소하는 판목을 다시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안쪽에서 서류를 태우려는 냄새가 번졌다. 증거를 없애려는 신호였다. 도윤이 한 번에 몸을 날려 서리의 팔을 꺾었고, 사내는 비명 대신 이를 갈았다. 다른 운반책이 장부를 움켜쥐고 뒤로 빠졌다. 소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왼손으로 대조틀의 쇠못을 당기고, 오른손으로는 부러진 쌍월각도의 끝을 눌러 숨은 칸을 열었다. 금속이 나무를 파고들며 울렸고, 그 울음이 그녀의 왼손바닥을 다시 찢었다. 따뜻한 것이 솟구쳤다. 붉은 인주와 피가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숨은 칸은 열렸다. 안에는 남쪽 제삼창고 출고표의 이어지는 줄과, 그 줄에 맞춰 적힌 가계 속지 묶음이 있었다. 소하는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낮은 글씨로 한 가족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이름 위에 이미 지워진 자국이 세 번이나 덧칠되어 있었다.
"이 아이는 살려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도윤이 장부를 거칠게 빼앗는 서리를 발로 걷어차고 물었다.
"왜 그리 단정하오?"
소하는 속지를 들고 대답했다.
"이 글씨는 바깥에서 쓴 게 아닙니다.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바꾸며 쓴 겁니다. 이런 자국은 한 번 숨기면 끝이 아니에요. 다음 판에도 그대로 남아요."
그녀는 그 가족의 이름과 함께 묶인 운반자 명부를 찢지 않았다. 대신 이름이 뒤집힌 표식을 칼끝으로 긁어 냈다. 기록을 다 없애면 사람도 같이 사라진다. 그녀는 이미 그 값을 배웠다. 그러자 인부 하나가 울음을 삼켰다. 백지회 서리에게 떠밀려 끌려가던 그가 소하의 손짓에 잠시 멈췄다.
"나를?"
"당신은 인장이 아닙니다."
소하가 짧게 말했다.
"끝까지 남아 주십시오. 당신이 봤다는 사실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인부는 비로소 자기 무게로 서기 시작했다. 도윤은 그를 끌어당겨 벽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바깥에서 종이 울렸다. 새벽 교대가 아니라, 이미 누군가 다음 명령을 내렸다는 신호였다. 소하는 전송표 마지막 장을 펼쳤다. 붉은 관인이 새로 찍혀 있었다. 오경이 아니라 묘시 초, 빈 이름판 스무 장과 대조표를 서성문 외검문소로 넘기라는 지시였다. 그 아래에는 개봉부 정식 재인영이 붙어 있었다. 북교에서 들킨 것을 다른 문으로 넘기려는 셈이었다. 소하는 피와 먹이 섞인 손가락으로 그 관인을 한 번 눌러 보았다.
"도윤."
"말하시오."
"서성문으로 갑니다. 저 판들이 거기 가면, 오늘 밤 살아남은 이름까지 다시 묶입니다."
도윤은 창고 안을 한 번 훑었다. 불이 붙기 전에 장부를 챙겨야 하고, 불이 붙으면 사람부터 빼야 하는 자리였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여기서는 두 사람만 살리고 가는군."
소하는 찢어진 왼손을 꽉 쥐었다. 아프다고 느끼는 순간 더 늦는다. 창고 안의 바람이 달라졌다. 누군가 이미 밖에서 수레를 돌리고 있었다. 서성문 외검문소. 새벽 첫 교대. 빈 이름판 스무 장. 그 셋이 북교의 밤을 다음 문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