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경을 막 지난 골목은 등불보다 습기가 먼저 길을 비췄다. 수레 바퀴가 젖은 돌을 긁는 소리는 가늘었지만, 소하는 그 소리 아래 숨은 더 낮은 울림을 놓치지 않았다. 목재가 덜 마른 판은 바퀴에 실려도 혼자 울지 않는다. 눌린 부분과 비어 있는 부분이 서로 다른 소리로 답한다. 그녀는 도윤의 소매를 가볍게 당겼다.
"한 겹 더 있습니다."
도윤은 수레 뒤를 막고 있던 사내를 흘끗 보았다. 청색 관복의 아래자락은 흙에 젖어 있었고, 허리춤에는 관청 표식보다 장사꾼의 끈이 더 단단히 묶여 있었다.
"명부 원판이겠지."
소하는 고개를 저었다.
"원판이라면 이렇게 떠들지 않습니다. 이건 안쪽을 가리는 바깥 상자예요.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인쇄장 문이 열렸다. 안뜰에는 낮은 등잔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그 빛은 종이 냄새와 섞여 묘하게 뜨거웠다. 종이는 늘 차갑게 느껴졌는데, 여기서는 달랐다. 새로 눌린 인영이 아직 마르지 않아 열을 품고 있었다. 소하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손끝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오른손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감각은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사람의 손처럼 떨어져 나가 있었다.
안쪽 탁자에는 피난첩이 쌓여 있었다. 겉은 관급 종이였고, 가장자리에는 붉은 봉함이 정갈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놓인 대조표는 비어 있었다. 이름이 아니라 칸만 적혀 있는 종이였다. 소하는 그 종이를 보자마자 숨을 삼켰다. 비어 있는 칸을 먼저 만든 뒤 이름을 나중에 끼워 넣는 방식. 그것은 이전의 위조보다 더 나빴다. 이전에는 적어도 누군가의 이름이 먼저 있었지만, 지금은 이름을 넣을 자리만 남기고 사람을 먼저 치워 버릴 수 있었다.
"들키면 안 됩니다."
누군가 낮게 말했다.
백지회 심부름꾼 하나가 탁자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잉크통을 나르다가 손등에 검은 얼룩을 묻힌 채로, 대조표의 빈 칸을 보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 옆의 인쇄장 서리는 그를 가리키며 말끝을 올렸다.
"이놈이 판을 잘못 뒤집었습니다. 오늘 새벽 조정문이 한 장 비었소."
소년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위에서 빈 칸이 온다고..."
"위?"
서리가 냉소했다.
"네가 위를 알기나 하느냐."
소하는 탁자 가까이 다가가며 낮게 말했다.
"그 빈 칸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서리가 돌아보았다.
"관이오. 아니면 관과 붙은 자들이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도윤이 한 발 내디뎠다.
"그럼 우리도 관이오. 잠시 빌렸지."
그는 수레 난간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목재가 울었다. 소하의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 수레 바닥 아래에 숨은 판이 있다. 그녀는 손가락 대신 손등으로 결을 쓸었다. 얇은 판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결이 포개져 있었다. 겉판은 출고표. 안판은 빈 이름판. 그 아래 더 얇은 종이 몇 겹이, 아직 말라 붙지 않은 먹과 함께 눌려 있었다.
"여기입니다."
소하가 말했다.
"원판보다 먼저 비워 두는 판. 이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있었던 자리를 먼저 지웁니다."
인쇄장 안에서 발소리가 빨라졌다. 안쪽에서 나온 사내 하나가 급히 다가오며 낮게 외쳤다.
"손 대지 마시오. 그건 오늘 새벽에 북교로 넘어갈 물건이오."
그의 허리에는 붉은 인장이 달려 있었다. 관청의 인장처럼 보였지만, 소하는 그 붉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관인보다 더 깊게 눌린 자국. 같은 글자를 여러 번 덮어 찍은 뒤 마지막 한 번만 살아남은 색. 누군가 바른 순서로 찍은 것이 아니었다.
"누가 보냈소?"
도윤이 물었다.
사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틈에 소하는 빈 이름판 아래의 접합선을 뜯어냈다. 오른손은 힘을 주지 못해 제대로 버티지 못했고, 대신 왼손과 이가 나간 쌍월각도의 남은 절반에 의지해야 했다. 나무가 얇게 갈라졌다. 그 안에서 작은 전송표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붉은 봉함 번호, 수레 번호, 그리고 옮기는 시각이 적혀 있었다.
도윤이 소년을 향해 말했다.
"네가 쓴 것이 아니면, 네 손에서 놓아라."
소년은 떨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저는 이름을 비우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빈 칸을 넣으면, 내일 굶는 사람 중 몇은 성 안에 남게 해 주겠다고..."
"거짓말이 아니오."
소하는 전송표를 읽으며 말했다.
"남기는 대신 다른 이름을 비웁니다. 성 안에 남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람의 기록일 수도 있지요."
그 순간 인쇄장 깊숙한 곳에서 목판을 눌러 찍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한 번. 다시 쿵. 눌림이 일정하지 않았다. 소하는 그 불균일함을 듣고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눌리는 소리는 판목의 중심이 비어 있다는 뜻이었다. 빈 이름판을 얹은 채 계속 찍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판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끈적한 먹과 마른 종이 가루 사이에서, 아직 찍히지 않은 이름 칸이 새끼손가락 마디만큼 남아 있었다. 그 칸을 채우면 명부가 완성되고, 비우면 사람 하나가 없어질 것이다.
안쪽 방에는 장부가 더 있었다. 소하가 문틈으로 보자, 백지회 쪽 사내가 인쇄장 서리에게 새 종이를 밀어 주고 있었다. 종이 위에는 피난첩 번호가 아니라 부역 이송표가 적혀 있었다. 한쪽에는 노파, 다른 한쪽에는 아이, 그리고 마지막 칸에는 아직 아무 이름도 없었다. 소하는 그 공백을 보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름을 찍기 전에 이미 짐승처럼 분류해 두는 방식. 기록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먼저 무거워질 수 있었다.
"도윤,"
그녀가 낮게 불렀다.
"문을 막아 주세요."
"그럴 생각이었소."
그는 문턱에 서서 막대기를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인쇄장 서리 둘이 뛰어들어 오자, 도윤은 첫째의 손목을 꺾고 둘째의 어깨를 밀쳐 냈다. 소하는 그 틈에 탁자 위 전송표를 뒤집었다. 자신도 모르게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붉은 먹이 마른 손끝에 번졌다. 그녀는 전송 시각을 지우고, 대신 북교 쪽으로 향하는 다른 창고 번호를 적어 넣었다. 이러면 지금 당장은 수레가 여기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명령은 한 번 더 확인되어야 하니까.
그 순간 사내 하나가 소하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아주 잠깐 커졌다.
"무흔각문..."
그 한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바꿨다. 소하는 자신이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부러진 쌍월각도를 집어 들고, 빈 이름판 한 장을 찍는 틀 아래로 밀어 넣었다. 판이 걸렸다. 찍는 틀이 한쪽으로 비틀리며 먹이 튀었다. 검은 점이 그녀의 뺨과 손등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도윤이 틀을 걷어차자, 나무 다리 하나가 부러지며 인쇄기가 멈췄다.
"잡아라!"
누군가 외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멈춘 틀 아래서 아까 책임을 뒤집어쓰려던 소년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소하가 뒤집어 써 넣은 전송표를 손에 들고 있었고, 그 종이에는 빈 칸이 아니라 잘못된 목적지가 적혀 있었다. 소하는 소년을 향해 짧게 말했다.
"그걸 들고 나가요. 네가 쓴 게 아니라면 네 목소리로 읽지 마시오. 보여 주기만 하세요."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틈을 열어 주자 그는 잉크 자국을 남기며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가 남긴 발자국이 마치 이름처럼 길게 이어졌다.
소하는 안쪽 탁자에서 빈 이름판 한 장과 전송표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찢어졌다. 따뜻한 것이 흘렀지만, 그녀는 통증을 세지 않았다. 세는 순간 늦어진다. 대신 전송표 끝의 붉은 인장을 보았다. 오경 전에 북교 군량창. 수레 여섯. 빈 이름판 스무 장. 원판은 분리 보관. 그 아래 덧찍힌 작은 글씨가 있었다. 관문 통과 시, 대조소 재확인.
"도윤."
그녀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북교입니다. 새벽까지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닙니다."
그는 문을 등진 채 고개만 돌렸다.
"얼마나 남았소?"
"오경까지. 이건 동교에서 끝나지 않아요."
도윤의 눈빛이 짧게 굳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쇄장 안을 훑었다. 백지회 사내는 이미 뒤로 물러서 있었고, 인쇄장 서리 하나가 붙잡혀 바닥에 꿇려 있었다. 아까 소하의 얼굴을 알아본 그가 아니라, 다른 하급 서리였다. 윗선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먼저 하나를 바쳐 둔 것이다. 소하는 그 장면을 보고 짧게 숨을 삼켰다. 누군가를 살리면 누군가는 바닥에 남는다. 문서의 구조가 늘 그렇듯 사람의 구조도 그렇게 되었다.
그녀는 붙잡힌 서리를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아닙니다."
붙잡은 자가 씹어 뱉듯 대답했다.
"아닐 리가. 지금은 누가 되었든 한 사람만 있으면 돼."
도윤이 그 말을 듣고 한 걸음 나아가자, 바깥에서 종이 울렸다. 인쇄장 바깥 대문 쪽으로 더 많은 발소리가 몰려왔다. 새벽 순검이 아니라, 누군가 이곳에 이미 다음 지시를 내린 발자국이었다. 소하는 전송표를 접어 품에 넣었다. 품 안에서 종이가 단단해졌다. 빈 칸이 아니라, 비워질 예정인 이름들이 손끝에 닿는 듯했다.
"가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도윤은 문을 밀어 열며 짧게 답했다.
"그럼 북교에서 다시 막지."
그 말은 약속이 아니라 구조였다. 지금 막지 못한 것은 다른 문 앞에서 막아야 한다는 뜻. 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만 뒤돌아보았다. 인쇄장 안의 촉촉한 빛 아래, 아직 마르지 않은 빈 이름판 스무 장이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새 붉은 인장이 눌려 있었고, 오경 전 북교 군량창이라는 글자가 또렷했다. 문서가 다음 장소를 정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미 그 뒤를 따라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하는 그 붉은 글자를 바라보며 손바닥의 피를 천천히 쥐었다. 북교. 오경. 빈 이름판 스무 장. 그 셋이 다음 숨을 결정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