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이 문지기와 말을 주고받는 동안 소하는 손끝으로 문설주를 짚고 있었다. 낮은 기둥은 성곽처럼 단단해 보였지만, 손가락 아래에는 얼마 전까지 다른 종이가 기대어 있던 얇은 눌림이 남아 있었다. 곡물 창고는 종이를 오래 숨기지 못한다. 습기와 먼지가 결을 벌리고, 반복된 출납은 자국을 남긴다. 소하는 눈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북쪽 판각실에서 익히던 감각이 이곳에서도 살아 있었다. 한 번 눌린 자리, 두 번 덧댄 자리, 풀칠을 다시 한 자리. 누군가 이 건물에서 문서와 물건의 순서를 바꾸고 있었다.
'군량 출고는 이미 끝났다오.'
문지기가 다시 말했다.
'그럼 우리는 군량이 아니라 장부를 보러 왔소.'
도윤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창고 안에서 답답한 침묵이 흘렀고, 그 틈을 타 장도검이 나왔다. 그는 다른 서리들보다 옷이 더 깨끗했지만, 손끝은 더럽게 물들어 있었다. 붉은 인주가 손톱 밑에 박혀 있었고 엄지 마디에는 오래 굳은 먹자국이 검은 점처럼 남아 있었다.
'이곳은 군량창이오. 심문은 본청에서 하시오.'
장도검이 말했다.
도윤이 검사패를 꺼내 들었다.
'본청 명령도 있다. 남쪽 제삼창고의 출고부를 대조하라 적혀 있소.'
장도검의 눈이 한순간 흔들렸다. 소하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작은 먹통을 내려놓고 장부를 받아들었다. 책등은 두꺼웠으나 안쪽이 비정상적으로 유연했다. 그녀는 책등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표면 아래에 얇은 종이가 한 겹 더 있었다. 겉으로는 한 권, 실제로는 두 권이었다.
'이 책은 두 벌입니다.'
소하가 말했다.
서리 하나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말이 되지 않소.'
'말이 안 되는 쪽은 장부가 아니라 그 장부를 믿게 만드는 손이오.'
소하가 책등의 실밥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실이 지나치게 단단했다. 여러 번 열고 닫으며 다시 꿰맨 흔적이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왔다. 오른손 약지가 저렸고, 그 저림은 손목으로 퍼져 들어갔다. 점획청경을 쓰기엔 몸이 이미 지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장부를 놓치면 이름들은 다시 창고 속으로 사라진다.
그녀는 결국 오른손을 펼쳐 장부의 가장자리 위에 얹었다. 손가락 끝으로 두드렸다. 아주 작게, 그러나 일정하게. 탁, 탁, 탁. 표면의 울림이 곧 아래층의 숨은 접합선으로 되돌아왔다. 종이와 풀과 나무가 서로 다른 음을 냈다. 소하는 한 장을 살짝 들추었다. 찢기지 않은 접착층이 얇게 떠오르며 안쪽 종이를 드러냈다.
'여기 있군.'
도윤이 몸을 숙였다. 속장부에는 군량 숫자가 아니라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이와 손버릇, 짐 나르는 방식, 피난첩 발급 여부까지 덧붙어 있었다. 성안에서 배급을 받는 자와 밖으로 나가야 할 자를 한 줄로 엮어 놓은 기록이었다. 이름 옆에는 모두 같은 붉은 봉함 번호가 찍혀 있었다.
'이건 군량 장부가 아니오.'
도윤이 이를 갈며 말했다.
장도검은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바닥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을 본 사환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하나는 장부를 빼앗으려 앞으로 뛰고, 다른 하나는 등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기름 냄새가 퍼졌다.
'태워라!'
장도검이 짧게 내뱉었다.
도윤이 먼저 달려들어 등잔을 걷어찼다. 기름이 바닥에 흩어지며 불씨를 죽였다. 동시에 소하는 왼발로 사환의 발목을 걸었다. 몸을 비틀며 넘어지는 순간, 그녀의 오른손이 속장부의 접합선을 잡았다. 감각은 이미 반쯤 사라진 뒤였다. 손끝이 종이를 느끼는지 나무를 느끼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녀는 더 세게 잡아당겼다. 찢어지는 소리가 방 안을 갈랐다.
안쪽에는 더 좁은 명부가 있었다. 거기엔 피난첩 번호와 출고 예정처가 함께 적혀 있었다. 소하가 숨을 고르고 글자를 읽었다.
'동교 인쇄장. 삼경 이전 이송.'
도윤이 장도검의 팔을 뒤로 꺾으며 물었다.
'누가 시켰소?'
장도검은 비웃듯 입을 비틀었다.
'시킨 사람은 없소. 다들 살려고 했을 뿐이오. 종이는 사람보다 먼저 돌아가고, 인장은 명령보다 오래 버티지.'
소하는 바닥에 떨어진 속장부를 더 펼쳤다. 마지막 줄에는 붉은 봉함이 찍힌 수레 번호가 있었다. 수레 한 대가 아니라 셋. 그리고 그 옆에, 아직 찍히지 않은 빈 칸이 있었다. 그녀는 그 칸을 손끝으로 쓸었다. 여기에 올 이름들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채로 사라질 사람들.
'백지회가 인쇄장을 씁니다.'
소하가 낮게 말했다.
'여기서 이름을 빼내면, 거기서 다시 찍어 넣을 수 있으니까.'
도윤은 장도검을 넘겨받아 서리들에게 묶게 했다. 그가 소하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오른손은 이미 힘을 잃고 있었다. 손가락은 펴지지 않았고 손바닥에는 붉은 인주와 찢긴 종이의 풀칠이 섞여 번져 있었다. 그는 한 박자 늦게 물었다.
'손은.'
'버티게는 됐습니다.'
소하가 답했다.
'하지만 오래는 못 갑니다.'
도윤은 찢긴 속장부의 붉은 봉함 번호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럼 오래 걸릴 일은 아니겠군.'
'삼경 전에 수레가 나갑니다.'
소하가 창고 문 바깥의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명부 원판이 함께 갑니다. 오늘 여기서 못 끊으면, 이름 칸은 동교에서 다시 찍힙니다.'
그 말이 끝나자 문밖에서 종이 울렸다. 아직 밤이 깊었는데도, 인쇄장으로 향하는 첫 수레가 이미 마차 바퀴를 준비하는 소리였다. 장부를 묶어 둔 붉은 끈이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소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찢긴 손가락을 천천히 쥐었다.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피가 아니라 뜨거운 먹이 손안에서 도는 듯했다. 삼경 전, 동교 인쇄장. 그 한 줄이 새겨진 순간부터 창고의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도윤이 낮게 말했다.
'그 수레를 놓치면, 이번엔 이름이 아니라 인장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