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반의 발소리는 복도 바닥에 흰 줄을 긋듯 다가왔다. 흰 장갑, 흰 마스크, 흰 철제 상자. 그들이 서 있는 곳마다 경보등의 붉은 빛이 묻혀 갔다. 선두에 선 자가 손바닥을 펼치자, 창구와 보관구 사이의 공기막에 문구가 떠올랐다. 동행 서명 미제출 시 손목 분리 이송. 민서린의 이름이 그 아래에서 한 번 더 반짝였다. 이름이 아니라 처리 대상처럼.
라온은 손안의 원서명을 내려다봤다. 뜨거웠다. 살아 있는 손에서 떼어 낸 종이였으니 당연했다. 그 열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까지 번졌다. 그는 그제야 이해했다. 15층은 민서린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증명용 부품으로 잘라 내고, 서명만 남겨 다시 탑의 서류에 꿰매려 하고 있었다.
도겸이 문 앞을 막은 채 이를 갈았다. "지금 버티면 돼?" 라온은 고개를 저었다. "버티는 걸로는 안 돼." 유진이 복도 반대편 전광판을 가리켰다. 이미 검증반 숫자가 늘고 있었다. 다섯 명, 아홉 명. 그 중 두 명은 기록을 태우는 봉인을 들고 있었다. 진짜 싸움이 시작되면 민서린의 손목은 먼저 잘릴 것이다.
라온은 원서명 가장자리를 문질렀다. 뜯겨 나온 필압 속에 민서린의 체온과 함께, 자신이 버려 온 문장들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의 서명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묶고, 살아 있는 사람의 기록으로 죽은 사람을 묻는 구조. 탑은 언제나 그 둘을 바꿔 먹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엮으면 되었다. 그는 낮게 말했다. "검증반이 먹는 건 사람 아니야. 기록이야."
도겸이 눈을 크게 떴다. "뭐?" "저들은 민서린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민서린을 죽었다고 만든 문서를 회수하러 온 거야. 그 문서만 뒤집으면 손목을 떼어 낼 이유가 없어져." 유진이 숨을 삼켰다. "그걸 어떻게 뒤집어." 라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은 이미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공적 연결고리를 탑에 다시 넘겨 버리는 것. 그러면 민서린은 서류상 죽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대신 라온은 기록관으로서의 마지막 문을 닫게 된다.
그는 검증반을 향해 한 발 나섰다. "민서린은 회수 대상이 아닙니다. 기록 오염의 증거입니다." 선두 인력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얼굴 없는 금속 마스크 아래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작 연동자 민라온. 발언 권한 없음." 라온은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권한이 없다는 말은 익숙했다. 그가 가진 건 권한이 아니라 결심뿐이었다.
그는 손목 안쪽의 기록관 인장을 눌렀다. 아직도 뜨거운 자국 위로 옅은 금빛 문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문양을 원서명 위에 겹쳤다. 종이가 떨렸다. 민서린의 필적과 라온의 기록관 서명이 서로를 갉아먹으며 하나의 판결문으로 붙었다. 공적 관계 정본. 가족 관계 정본. 조작 기록 연동자 확인서. 그가 14층에서, 15층에서, 수없이 바쳐 온 거짓과 진실이 한 장의 허위 증서처럼 겹쳐졌다.
"금빛 입." 라온이 말했다. 접수구가 뒤에서 천천히 열렸다. 지금까지 문을 삼키던 그 입이었다. 그는 민서린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망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거 먹어." 뒤에서 민서린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라온, 그건 네 마지막이야." "아니." 그는 종이를 들고 금빛 입 앞에 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지키는 거야."
종이가 들어가자 금빛 입이 다시 한 번 벌어졌다. 이번에는 탐욕스러운 짐승의 입이 아니라, 오래 닫힌 금고가 열리는 소리였다. 안쪽에서 탁, 하고 무언가가 끊어졌다. 라온의 손등 인장이 먼저 희미해졌다. 이어서 시야 한쪽에 떠 있던 문자가 찢겼다. 기록관 서명 확인. 가족 관계 접근. 정본 열람. 모든 것이 지워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그는 무릎이 꺾이는 것을 참았다.
전광판이 바뀌었다. 오류. 회수 대상 판정 재검토. 증거물 전환. 손목 분리 이송 정지. 선두 검증관이 몸을 멈췄다. 뒤따르던 둘이 봉인을 내렸다. 법보다 먼저 움직이던 절차가, 자신이 믿고 있던 문장과 충돌한 것이다. 금빛 입 안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탑이 방금 삼킨 것들을 씹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 끝에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민서린, 생존 확인. 15층 보관구 3호 해제.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민서린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하얀 띠가 힘없이 풀렸다. 흰 천이 아니라 서류 묶음처럼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처음으로 보관구 벽에 기대지 않고 두 발로 섰다.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라온은 그 장면을 보고서야 숨을 들이켰다. 살았다. 서류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도겸이 문을 밀어 검증반을 밀쳐 냈다. 유진이 바닥에 흩어진 봉인 조각을 발로 차며 복도 끝을 확인했다. 더 이상 추격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검증반은 명령을 잃은 사람처럼 멈춰 서 있었다. 금빛 입은 마지막으로 라온에게 얇은 영수증 같은 종이를 토해냈다. 임시 통행권. 기록 오염 정리 대상. 열람 권한 박탈. 그리고 이름이 찍히는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라온, 판독 불가. 그는 그 공백을 한참 바라보았다. 너무 오래 지키려 해서 오히려 끝까지 남겨 둔 것이 사라진 자리였다.
민서린이 그에게 다가왔다. 손목은 풀렸지만 자국은 남아 있었다. 라온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이제 그는 기록관이 아니었다. 명분도, 인장도, 가족 정본도 없었다. 민서린이 먼저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살아 있는 차가움이었다. "네가 나를 꺼냈네." 그녀가 말했다. 라온은 목이 메어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하나로 충분했다.
그들은 15층 복도를 함께 걸어나왔다. 검증반은 더 이상 막지 않았다. 탑은 때때로 사람보다 문서를 먼저 믿었고, 오늘은 그 문서가 스스로 무너졌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라온의 이름은 여러 번 화면에서 지워졌다. 기록관 호출도 사라졌다. 그러나 민서린의 발걸음은 옆에서 분명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무게였다. 그는 그 무게를 잃지 않으려고 속도를 늦췄다.
출구 앞 임시 명부가 한 번 번쩍였다. 민서린의 이름 아래에 아주 잠깐, 16층 예비 이관 대상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더니 곧 다른 글자에 밀려 사라졌다. 라온은 그걸 봤다. 굳이 붙잡지 않았다. 오늘은 붙잡을 이름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민서린이 자기 옆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기록 냄새가 조금 빠진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민서린이 낮게 말했다. "이제는 도망치는 쪽 말고, 올라가는 쪽이네." 라온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번엔 네가 먼저 살아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