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층 계단은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냄새가 났다. 오래된 종이와 젖은 쇠, 그리고 사람 몸에서 빠져나온 열기가 한데 섞여 있었다. 라온이 마지막 발을 디디자 뒤쪽에서 도겸의 활시위가 가늘게 울렸다.
"설명부터 해요."
그 말은 협박보다도 차가웠다. 다섯 사람에게 나뉜 입장권은 손바닥만 했지만, 신뢰는 이미 그 종이보다 얇아져 있었다. 라온은 허리춤의 기록철을 만졌다. 원본은 없다. 금빛 입이 삼킨 것은 조작된 사망 대장의 원본이었고, 탑은 그 거짓을 받아들였다. 그 대가는 여기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눈은 그를 기록관이 아니라 조작자로 읽고 있었다.
"사망 대장만 숨긴 게 아니죠?" 도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누구 이름을 더 덮었습니까."
라온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입안에서 먼저 마른 것은 변명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민서린의 얼굴이 떠오르려다, 마치 잉크가 종이에서 스며나가듯 가장자리부터 흐려졌다. 그는 그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탑이 뭔가를 훔쳐 가고 있었다.
앞쪽 문은 열려 있었다. 문 안은 방이 아니라 접수대였다. 사람 하나 없는 데스크 위에 검은 구리판이 놓여 있고, 그 위로 얇은 종이가 스르르 자라났다. 라온이 다가서자 종이에는 이미 글자가 찍혀 있었다.
민서린. 선입장. 민라온. 동반 보류.
유진이 숨을 삼켰다. "죽었다며요."
"죽었다고 처리됐지."
라온이 그렇게 말하자, 문틀 위의 불빛이 한 번 깜빡였다. 마치 그 대답이 절반의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절반의 거짓이라서 반응하는 것처럼. 구리판의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벌어지더니 좁은 틈으로 혀 같은 금속 막대가 나왔다. 끝에는 펜도 칼도 아닌, 붉게 젖은 집게가 달려 있었다.
무기 대신 내민 것이 아니라는 듯, 차분한 기계음이 방 안에 울렸다.
"입장 명부는 이름을 받지 않는다. 관계를 받는다. 먼저 들어간 사람을 지우고 싶다면, 그 사람과 당신의 연결을 끊어라."
도겸이 라온을 똑바로 보았다. "당신이 뭘 숨겼는지 이제 알겠군요."
라온은 명부의 잉크 결을 살폈다. 평범한 먹이 아니었다. 사망 대장에 묻어 있던 탑의 금빛 잔류가 고스란히 섞여 있었다. 기록이 아니라 소모품, 더 정확히는 먹이였다. 누군가의 관계를 씹어 삼키는 장치. 13층의 금빛 입이 먹었던 건 거짓의 원본이었지만, 14층의 명부는 그 거짓에 매달린 관계까지 다시 분리해 삼키고 있었다.
"지금 열리지 않는 이유는..." 라온이 낮게 말했다. "내가 아직 누이를 누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군."
그 말에 도겸의 손이 떨렸다. 화살촉이 천장을 향해 비틀렸다. "그걸 왜 지금 알지?"
라온은 대답 대신 종이 가장자리를 잡았다. 명부 아래쪽에는 작게 붉은 글씨가 덧찍혀 있었다. 보관구 3. 상태, 호흡 가능. 회수 조건, 관계 무효화 1회. 그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피가 식는 걸 느꼈다. 민서린은 죽은 게 아니었다. 적어도 탑의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죽음으로 처리된 기록과 아직 숨 쉬는 상태가 같은 칸에 겹쳐 있었다.
"살아 있습니다." 라온이 말했다.
유진이 한숨처럼 웃었다. 믿지 않겠다는 웃음이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요?"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확인하러 온 겁니다."
그리고 그는 한 번만 더 명부를 읽었다. 민서린, 선입장. 민라온, 동반 보류. 동반 보류라는 말이 이상했다. 보호도, 구금도 아니었다. 탑이 관계를 붙잡은 채 두 사람을 분리 보관하는 방식이었다. 이 문을 열려면 관계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관계를 끊는 순간, 그를 끌어당기던 마지막 진실도 함께 잘릴 것이다.
도겸이 낮게 말했다. "아까 말한 조작 기록. 그게 전부냐고 묻는 겁니다."
라온은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고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말했다.
"민서린은 내 누이가 아닙니다."
문장이 떨어지자마자 구리판이 크게 울렸다. 금속성 진동이 발바닥부터 올라와 턱을 흔들었다. 명부의 종이가 한 장 더 자라나더니, 방금 전과 같은 글자를 다른 문장으로 다시 찍었다. 관계 무효화 완료.
그 순간 라온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민서린의 웃음소리의 높이가 사라졌다. 푸른 머리끈을 묶어 주던 손의 감촉은 남았는데, 그 손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가장자리가 흐려졌다. 이름은 기억났다. 얼굴은 절반만 남았다. 남은 절반은 종이처럼 하얘져서, 아무리 붙잡아도 잡히지 않았다.
유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문을 열었습니다."
라온의 대답이 끝나자 구리판 아래 칸이 열리며 얇은 카드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카드에는 입장권이 아니라 보관표가 찍혀 있었다. 민서린. 보관구 3. 호흡 안정. 이동 금지. 그리고 그 아래, 더 작은 글씨.
회수 서명: 민라온.
도겸이 그 글자를 보고 손을 내렸다. "서명 없이는 못 뺀다는 뜻이군."
라온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 종이가 아니라 차가운 피부 같았다. 손끝에 남은 잉크가 검게 번졌다. 기록관의 인장이 서서히 식고 있었다. 그가 지금 막 바친 거짓은 가족 관계가 아니었다. 가족을 증명할 권리였다. 그 권리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빈칸만 남았다. 빈칸은 탑이 가장 좋아하는 그릇이었다.
문이 더 크게 열리며 안쪽 복도가 드러났다. 복도는 길지 않았지만, 양옆으로 번호 없는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끝에서 희미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라온은 그 소리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가 멈췄다. 바닥에 새로 찍힌 문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기록관 서명 대기. 19시 10분까지 미제출 시, 보관구 3은 영구 봉인.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도겸이 화살을 다시 걸었다. "당신이 서명하면, 당신은 기록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라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보관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민서린의 이름을 다시 읽자, 방금 전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기억이 덜어져 나간 자리에서 생긴 공백이, 그 이름을 더 크게 울렸다. 그는 문 안으로 몸을 돌렸다. 서명할지, 포기할지, 혹은 또 다른 거짓을 바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19시 10분 전까지 민서린의 이름은 보관구 3에 묶여 있고, 그 봉인을 풀 손은 그의 서명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