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실로 가는 복도는 탑의 안쪽 뼈를 긁어 만든 통로처럼 낮게 울렸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은 하얗다기보다 빛바랜 잉크빛에 가까웠고, 바닥에는 오래된 도장 자국이 층층이 눌어붙어 있었다. 이층짜리 철문 위에는 14층 기록실, 재인증 필요, 외부 서명 금지라는 문구가 붉은 점멸로 떠 있었지만, 라온은 그 문구가 경고인지 유혹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보관구 3에서 달려나온 지 아직 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숨은 이미 목구멍을 긁고 있었다. 뒤에서 유진이 조용히 물었다. "정말 들어가면 되나?" 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활시위를 건 손가락만 하얗게 굳어 있었다. 라온은 자신의 왼손 엄지를 내려다보았다. 인장 자리의 붉은 기운이 반쯤 사라진 채 맥박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 흔들림이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재인증 단말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 굶은 금속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원형 투입구 안쪽은 빛이 닿을 때마다 얇은 혀처럼 번뜩였고, 그 아래 회수 서명이 필요합니다, 관계 확인 실패 시 출입 불가, 대리 서명 적발 시 조작 기록 영구 저장이라는 글씨가 순서대로 흘렀다. 유진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네가 하면, 우리 다 같이 거기에 박제되는 거야."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반쯤은 됐어." 그 말에 유진이 눈을 치떴다. 라온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안에 남은 마지막 선택을 알고 있었다. 탑은 거짓을 먹고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거짓 하나를 내주고, 그 문 안에서 진짜를 찾아야 했다. 그는 단말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민서린은 내 누이가 아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단말의 금빛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 순간 라온의 머릿속에서 아주 오래된 장면 하나가 검게 타올랐다. 누군가가 비오는 골목에서 그의 손을 잡아끌며 웃던 얼굴, 따뜻한 국 냄새,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지워졌다. 그는 숨을 들이켜려 했지만, 입안에는 비어 있는 금속맛만 남았다. 도겸이 한 걸음 다가왔지만 라온은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이제는 못 기억해." 그는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안쪽은 서고이자 심문실이었고, 보관실이자 도장 공장이었다. 벽마다 얇은 서랍이 겹겹이 박혀 있었고, 각 서랍에는 살아 있던 기록과 죽은 기록이 서로의 등을 기대듯 눕혀 있었다. 중앙에는 원본 명부를 읽는 거대한 판독대가 있었고, 그 위에 방금 막 출력된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입장 명부. 민서린. 선입장. 확인 시각은 불과 몇 분 전이었다. 라온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 끝이 손에 닿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름 옆 서명란에는 분명히 그의 필체가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선, 그가 평생 숨겨 온 필압이었다. 유진이 뒤에서 숨을 삼켰다. "네가 썼어?" 라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이 없는데,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혹은 탑이 그의 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명부 아래를 더 내려다보았다. 이관 경로 15층. 대상 상태 생존. 이동 우선순위 상향. 이관 사유 미기재. 그리고 가장 아래, 재인증 담당자: 민라온. 라온은 그 이름을 읽는 순간, 자신이 누군가를 살리려 했는지 숨기려 했는지조차 잊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판독대 옆에는 조작 기록 통합철이 걸려 있었다. 라온이 얇은 철판을 잡아당기자, 내부에서 툭 하고 묶인 페이지 뭉치가 떨어졌다. 사망 대장 원본. 그 원본은 이미 그가 13층에서 바친 것과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젖은 종이, 오래된 피, 그리고 너무 늦게 깨달은 후회. 페이지들은 민서린의 죽음이 아니라 민서린의 부재를 여러 번 증명하고 있었다. 사망 확인. 가족 관계 없음. 보관 대상 전환 가능. 그 가운데 한 줄이 눈을 찔렀다. 이관 승인자: 민라온. 그는 손을 떨며 페이지를 넘겼다. 첫 번째 서명은 낯익었지만 두 번째 확인란은 비어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아주 작게, 이미 검게 마른 인영이 찍혀 있었다. 죽은 누이의 이름이었다. 민서린. 이름 아래에는 보관 번복 요청이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 옆에 붉은 경고가 붙어 있었다. 재확인 불가 시 15층 자동 이관. 유진이 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살아 있는데 죽은 걸로 묶여 있네." 도겸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 그걸 푸는 건 네 서명뿐이라는 뜻이지."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동료들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 차가워져 있었다. 조작한 기록이 드러난 뒤의 차가움은 분노보다 무거웠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표정은, 사람을 미워하는 표정보다 오래 남는다는 걸 그는 그제야 알았다.
라온은 판독대 앞에 서서 자신의 인장을 꺼냈다. 반쯤 타들어간 인장 테두리는 이미 붉은 살점처럼 뒤틀려 있었고, 손잡이를 잡은 손끝까지 뜨겁게 저렸다. 단말은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재인증을 위해서는 원본 서명과 동일한 권한이 필요합니다. 조작 기록이 존재합니다. 추가 거짓을 바치면 승인 가능. 그는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또 하나의 거짓. 그 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었다. 그는 아까 지워진 기억의 자리 위로, 남아 있는 가장 위험한 문장을 얹었다. "민서린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민서린은 이관 대상도 아니다. 민서린은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말이 끝나자 금빛 입이 다시 벌어졌다. 이번에는 빛이 아니라 먹이를 삼키는 소리 같은 저음이 울렸다. 동시에 라온의 엄지에서 뚝 하고 열이 떨어졌다. 인장이 절반 더 타들어 갔다. 붉은 기운은 피부 아래로 스며들어 핏줄처럼 번졌고, 그는 무릎이 꺾이는 것을 간신히 버텼다. 유진이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라온은 얼굴을 찡그린 채 웃지도 못했다. "해야 해." 그 대답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가 인장을 판독대 위에 눌러 찍자, 판독대가 짧게 울고는 서류 뭉치를 토해냈다. 14층 기록실의 임시 정지 허가. 민서린 이관 19분 정지. 보관 번호 유지. 이동 경로 봉인. 문서의 가장 아래에는 라온의 붉게 갈라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정지가 걸리는 순간, 서고 전체의 서랍들이 동시에 떨었다. 종이들이 바람 없이 뒤집히고, 금속 레일이 쇳소리를 냈다. 어딘가에서 경비 종이 울렸고, 기록실 천장에 달린 붉은 등이 하나씩 꺼졌다 켜졌다. 라온은 판독대 위의 정본을 움켜쥔 채 겨우 일어섰다. 도겸이 문쪽을 살피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누가 오든 시간이 아까워." 유진은 입술을 깨물고도 결국 물었다. "민서린은 어디로 가는 거야?" 라온은 정본에 찍힌 경로를 읽었다. 15층 심사 대기실. 중앙 검증실. 그리고 그 아래,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문구가 있었다. 정지 해제 조건: 이관자 원서명 회수. 그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이관자 원서명. 누구의 서명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서린. 살아 있는 그녀의 원서명. 기록실은 그녀를 아직 물건처럼 취급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의 흔적이 없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더욱 잔인한 건, 시간까지 함께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회수 기한 8분 10초. 라온은 종이를 내려다본 채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명확했다. 민서린이 있는 15층 쪽으로 올라가, 그녀의 손으로 직접 적힌 서명을 가져와야 한다. 그 전에 정지는 풀린다. 그 전에 누군가가 기록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