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통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위로 뚫린 상처 같았다. 철제 계단은 발을 디딜 때마다 얇게 떨렸고, 벽 안쪽에서는 물 대신 기록이 흐르는 듯한 마찰음이 났다. 라온은 앞서 걷다가 잠시 멈춰 섰다. 손바닥 안쪽으로는 아직도 재인증 때 남은 열이 남아 있었고, 인장 자리는 타다 남은 숯처럼 욱신거렸다. 뒤에서 유진이 낮게 말했다. 「정말 15층까지 올라가면 돌아올 수는 있나」 라온은 대답 대신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검은 철망 사이로 흘러내리는 등불은 희미했지만, 그 희미함이 오히려 사람의 숨을 더 또렷하게 드러냈다. 지금 멈추면 민서린의 서명은 다른 손에 닿을 것이고, 그 손은 그녀를 살릴 수도, 완전히 묶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돌아오는 게 아니라 데려오는 거야」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15층 접수구는 문이라기보다 판결기였다. 반원형 창구 뒤에 앉은 직원은 얼굴이 없고, 대신 목 아래로 길게 뻗은 금속 혀가 서류를 핥고 있었다. 창구 위 전광판에는 원서명 채취실, 본인 확인 필수, 대리 수령 시 역추적이라는 문구가 번갈아 떠올랐다. 도겸이 주변을 훑으며 물었다. 「저걸 어떻게 통과하지」 라온은 손에 쥔 14층 정본을 들어 올렸다. 방금까지 그의 유일한 방패였던 종이였다. 19분 정지. 보관 번호. 이동 경로. 민서린을 묶고 있던 모든 사실이 이 종이에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종이를 금빛 입구로 밀어 넣었다. 접수구가 아주 천천히 벌어졌다. 마치 오래 굶은 짐승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먹이를 삼키는 것처럼. 종이가 들어가자 안쪽에서 낮고 젖은 소리가 났다. 탁, 하고 이름 하나가 씹히는 소리였다. 라온은 순간 등골이 식는 것을 느꼈다. 그 정본은 민서린의 위치를 가리키는 유일한 기록이자, 자신이 14층에서 어떤 식으로든 버틴 증거였다. 그것이 사라지면 그는 동료들에게 설명할 문장마저 잃게 된다.
전광판이 바뀌었다. 승인. 미기록 보조자 한 명. 조작 기록 연동자 한 명. 조작 기록 연동자라는 문구는 라온의 심장을 얇게 긁었다. 유진이 이를 악물었다. 「네 이름을 거기까지 붙여 놓는구나」 접수구의 금속 혀가 다시 움직이며 얇은 카드 한 장을 토해냈다. 15-3 보관 접근권. 채취 허가 7분. 그리고 카드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신청자: 민라온. 판독 불가. 라온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자신의 성이 먼저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은 종이에 적힌 것이라고 믿어 왔는데, 탑은 그 믿음까지도 뜯어먹고 있었다. 도겸이 낮게 욕설을 뱉었다. 「이제 네가 네 이름으로도 못 버티겠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버티는 데 이름은 필요 없어」 그 말은 강한 척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가 잃은 것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가는 동작뿐이었다.
15-3 보관구 안은 냉기와 약품 냄새가 뒤섞인 좁은 방이었다. 천장에는 얇은 튜브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었고, 한가운데 투명한 칸막이 안에 민서린이 앉아 있었다. 손목에는 하얀 띠가 감겨 있었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그 띠 위로 은은한 붉은 잉크가 맺혀 있었다. 살아 있는 글씨 같았다. 라온은 발걸음을 멈춘 채 그녀를 보았다. 얼굴은 전에 기억하던 것보다 야위었지만 눈빛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늦게 온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민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왔네」 그 한마디는 칼날처럼 얇았고, 동시에 너무 익숙해서 숨이 막혔다. 라온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기억은 지워졌는데 몸은 그녀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네 서명, 아직 남아 있어」 민서린은 손목을 들어 보였다. 하얀 띠 아래로 막 마른 필압이 번져 있었다. 「남아야 문이 열리니까. 그런데 누가 가져가면 나도 같이 끌려가」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라온은 그 말의 뜻을 그제야 이해했다. 원서명은 확인용 종이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에서 뜯어낸 일부분이었다.
그는 칸막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유진이 뒤에서 외쳤다. 「라온, 서두르지 마. 저건 함정일 수 있어」 하지만 라온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민서린의 손목을 향해 손을 뻗은 그는 잠시 멈췄다. 그 멈춤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잃을지 계산했다. 그녀를 다시 잃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잃어도 되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는 낮게 말했다. 「내 이름을 가져가도 돼. 대신 너는 남아 있어」 민서린의 눈이 아주 가늘게 흔들렸다. 「그 말, 너답지 않다」 「지금의 나는 기억하는 놈이 아니니까」 라온은 손바닥으로 하얀 띠의 가장자리를 눌렀다. 감촉은 놀랄 만큼 뜨거웠다. 뜨거운 잉크가 피부를 적시자, 둔탁한 진동과 함께 작은 채집음이 울렸다. 원서명이 표면으로 떠오르며 얇은 필름처럼 분리됐다. 동시에 라온의 손등에 있던 기록관 인장이 더욱 검게 타들어 갔다. 문구가 칸막이 옆에 출력됐다. 채집 완료. 민서린 원서명 확보. 이관 위치 15-3.
민서린은 숨을 크게 들이켰고, 라온은 그제야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창문처럼 얇은 칸막이 너머에서 그녀가 속삭였다. 「나를 꺼내려면 더 늦으면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방 안의 경보등이 붉게 바뀌었다. 천장 튜브 끝에서 금속성 목소리가 울렸다. 원서명 회수 확인. 대상 민서린 재검증 절차 개시. 동행 서명 미제출 시 손목 분리 이송. 라온은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바깥 복도 끝에서 흰 장갑을 낀 인력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도겸이 활시위를 당기며 문 앞을 막았고, 유진은 전광판을 가리켰다. 남은 시간 2분 40초. 라온은 채집된 원서명을 쥔 채 민서린을 돌아봤다. 그녀의 손목 띠 위에는 이제 막 비어 버린 자리만 남아 있었다. 15층은 그녀의 이름을 되찾은 대신, 곧바로 그녀의 몸을 가져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라온의 손안에 든 원서명은 이미 다음 명령을 부르고 있었다. 검증실로 동행할 서명을 내놓으라는, 차갑고 분명한 요구가 복도 전체를 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