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타이탄스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한 점 차였고, 두 아웃이었고, 주자는 이미 3루를 돌 준비를 마친 얼굴이었다. 재하는 사인을 내리기 전에 타자의 눈부터 봤다. 그 눈은 공이 아니라 홈을 향하고 있었다. 배트를 쥔 손목은 너무 단단했고, 왼발은 너무 가벼웠다. 가벼운 발은 늘 한 박자 먼저 움직일 준비가 된 발이었다.
마운드에 선 민석은 숨을 짧게 들이쉬고 있었다. 오늘 그 숨은 공보다 먼저 보였다. 재하는 그걸 안다. 투수는 자기 공이 무서운 게 아니다. 그 공이 포수에게 끝까지 갈지, 포수가 끝내 그 공을 잡아 줄지, 그 사이의 반 박자를 제일 무서워한다. 특히 오늘처럼 포수가 다친 손을 숨기지 않는 날에는 더 그렇다. 민석은 자꾸 재하의 왼손 쪽으로 시선을 흘렸다. 그 시선이 흔들릴수록 공은 가운데로 붙고, 가운데로 붙을수록 타자는 배트를 짧게 쥐었다.
재하가 마스크를 살짝 들어 올렸다. "네가 무서워하는 공 던져." 민석이 눈을 크게 떴다. "높게 가면 번트 못 대잖아." "맞아." 재하는 짧게 말했다. "걔네는 낮은 공만 기다린다. 넌 오늘 낮은 공으로 못 이겨. 높은 공으로 겁부터 꺾어." 민석은 한순간 망설였지만, 그 망설임이 오히려 답이었다. 그는 자기 공이 아니라 자기 두려움을 믿고 있었고, 재하는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었다. 다친 손을 보호하려는 마음이었다. 포수가 무너지면 투수도 무너진다는 착각. 재하는 그 착각을 깨야 했다.
타이탄스 벤치가 손짓했다. 번트다. 아니, 번트인 척한 뒤 런앤히트다. 주자는 이미 앞발에 체중을 실었다. 재하는 타석의 자세에서 그걸 읽었다. 배트가 짧아진 순간이 아니라, 어깨가 먼저 열리는 순간이 진짜 신호였다. 그는 민석에게 다시 손가락 하나를 폈다가 바로 접어 보였다. 높게. 아주 높게. 민석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건 공포의 틈이었다. 재하는 그 틈을 덮어 주기보다, 밀어 넣었다. "던져." 민석이 팔을 올렸다.
공은 생각보다 높게 떴다. 타자는 낮은 번트에 맞춰 짧게 들어오던 상체를 끝까지 접지 못했다. 배트 끝이 공의 아래를 살짝 건드렸지만, 제대로 죽지 않았다. 공은 포수 앞 흙 위로 얕게 튀어 올랐다. 그 순간 3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타자는 자기 손으로 작전이 어그러졌다는 걸 바로 느꼈고, 주자는 그보다 더 빨리 멈칫했다. 재하는 그 망설임을 봤다. 주자는 포수가 다친 손을 보호하려고 발을 피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타이탄스는 늘 그렇게 사람을 계산했다. 그러나 재하는 손을 지키는 대신, 홈을 닫는 쪽을 택했다.
그는 마스크를 떨어뜨리고 흙 위로 뛰었다. 왼손 미트에 닿는 순간 찢어진 붕대가 다시 벌어졌다. 공이 한 번 튀었고, 재하는 오른손으로 그것을 눌러 담았다. 다시 두 발. 반 박자 빠르게 이어진 3루 주자의 발소리. 재하는 공을 잡은 오른손을 몸 안쪽으로 숨기며 홈으로 돌아섰다. 여기서 던지면 늦는다. 왼손은 이미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던지지 않았다. 몸을 던졌다.
주자의 발이 홈을 향해 미끄러지는 순간, 재하는 왼쪽 무릎을 먼저 떨어뜨려 판을 막고, 오른손으로 공을 눌러 태그를 찍었다. 충돌은 짧았지만 거칠었다. 주자의 어깨가 가슴을 세게 밀었고, 그 반동이 왼손 검지 끝으로 그대로 돌아왔다. 검지는 미트 안에서 한 번 더 비틀렸고, 붕대 사이로 따뜻한 것이 번졌다. 재하는 이를 꽉 물었다. 소리를 지를 여유는 없었다. 통증은 이미 손끝에서 팔까지 올라와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심판의 팔이 올라갔다.
"아웃!"
마운드 쪽에서 민석이 주저앉을 듯 고개를 숙였다가, 곧장 재하 쪽으로 달려왔다. 더그아웃도 그제야 터졌다. 재하는 주저앉지 않으려 무릎에 힘을 주었지만 손끝이 먼저 말썽을 부렸다. 공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아직 잡고 있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민석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 지금 손 괜찮아?" 재하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괜찮을 리가 있냐." "그런데 왜 들어갔어." 재하는 고개를 들어 민석을 봤다. "네가 흔들리면 내가 잡아야지." 민석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내가 아니라, 네가 내 공을 믿게 만들었어." 재하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심판이 마지막 아웃을 선언하자 경기장은 한 번 늦게 폭발했다. 타이탄스 벤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장 빠른 작전, 가장 짧은 진입, 가장 얕은 번트가 모두 홈 앞에서 꺾였다. 재하는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숨을 골랐다. 왼손은 다시 붓고 있었다. 피는 붕대 아래에서 진하게 스며 나왔고, 감각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무섭지 않았다. 손이 부러졌다는 사실보다, 그 손을 핑계로 아무것도 못 할 뻔했다는 사실이 더 무거웠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트레이너가 말없이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검지 끝은 이미 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재하는 이를 악물었다. 감독이 옆에 서서 한참 그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이제는 네 손이 아니라 네 판단을 믿는다." 재하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판단도 오래 못 갑니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오래 가게 만들어야지." 민석은 뒤에서 물통을 들고 서 있다가, 재하가 고개를 돌리자 바로 말했다. "내일도 네 사인 받을 거야." 재하는 그 말에 잠깐 눈을 감았다. 방출 직전이던 사람이 다시 전담을 받는 건 기적이 아니었다. 단지 오늘 밤, 한 공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테이프가 다시 감긴 왼손을 바라봤다. 아직 경기는 끝난 채였고, 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활실의 차가운 불빛과 물리치료사의 단단한 손이 기다릴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다음 상대가 무엇을 준비하든, 재하는 더 이상 손을 숨겨야만 하는 포수가 아니었다. 그는 손의 약점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두려움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충분히 한 번은, 홈을 닫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