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스가 1루 쪽을 겨눈다는 건, 재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알고 있는 것과 막아 내는 것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1루 방향 강타는 단순히 타구가 아니었다. 공보다 먼저 달리는 발, 공보다 먼저 방향을 바꾸는 어깨, 그리고 포수가 한 번 늦게 움직이는 순간을 기다리는 계산이었다. 그 계산이 더 노골적으로 보인 건 3회 초 첫 타석에서였다.
타이탄스의 1번 타자는 배트를 길게 잡고 서 있다가, 민석의 첫 공이 바깥쪽으로 흐르자 눈만 먼저 1루로 던졌다. 타석 위에서 공을 보는 눈이 아니라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재하는 그 시선을 읽고는 사인을 한 번 바꿨다. 원래는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민석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가 곧장 접었다. 견제와 낮은 포심을 섞어 주자를 묶자는 뜻이었다.
민석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팔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재하는 그 굳음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주자 한 번만 더 묶자. 지금은 공보다 발이 먼저야."
공이 들어오는 순간, 1루 주자가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재하는 그 늦음을 놓치지 않고 마스크를 벗기듯 앞으로 나갔다. 타자는 큰 스윙으로 밀어 치려 했지만 타이밍이 어긋났고, 타구는 1루 선상으로 날카롭게 붙었다. 그 순간 재하는 무의식적으로 왼발을 먼저 내딛었다. 포수가 잡기 힘든 타구였다. 주워야 했다. 그는 몸을 낮추며 오른손을 뻗었고, 공은 미트보다 그의 팔꿈치에 가까운 곳으로 튀었다.
왼손이 문제였다. 반사적으로 공을 가두려던 순간 검지 끝이 미트 벽에 걸렸다. 이미 갈라진 뼈가 안쪽에서 한 번 더 비틀리는 느낌이 번졌다. 재하는 이를 악물고 공을 오른손에 넘겼다. 1루수 쪽으로 던져야 했다. 공을 쥐는 감각이 얇아졌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짧고 빠른 송구. 1루수가 베이스를 밟고, 타자의 발은 아직 흙 위에 뜬 상태였다.
"아웃!"
심판의 손이 올라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재하는 잠깐 숨을 멈췄다. 공 하나를 막았다는 안도보다, 손끝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했다. 살아 있는 동안 버텨야 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땀을 닦지 않고, 대신 붕대 끝을 더 세게 조였다. 손목 아래로 피가 아주 조금 배어 나왔다.
민석이 마운드에서 짧게 물었다. "괜찮아?"
"공이 들어오면 괜찮아." 재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다음 타자의 공포였다.
타이탄스는 곧바로 작전을 바꿨다. 이번에는 강한 타구를 기대하지 않았다. 느린 타구와 빠른 주자의 결합, 1루 쪽으로 한 걸음 더 밀어붙이는 런앤히트. 재하는 더그아웃 쪽 코치의 손짓을 읽고 먼저 웃었다. 작전은 화려해 보여도, 결국 두려움이 몸을 먼저 보내는 순간에만 살아남는다. 그는 민석에게 몸쪽 낮은 공을 요구했다.
"아래로 떨어뜨려. 배트를 먼저 꺾어야 해."
민석의 첫 변화구는 좋았다. 타자의 배트가 공 위를 지나가며 헛스윙 비슷한 찰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2루 주자가 그 찰나를 믿고 뛰었다. 재하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공이 빠지자마자 오른발로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다시 미트를 열어 보이며 주자의 눈을 박았다. 주자가 망설였다. 그 한 박자가 필요했다.
"들어와!" 재하가 소리쳤다.
민석은 재하가 말한 낮은 코스를 다시 던졌고, 이번엔 맞았다. 타구는 유격수 쪽으로 느리게 굴러갔다. 그러나 2루 주자는 이미 속도가 붙은 뒤였다. 재하는 마스크를 벗어 던지듯 앞으로 뛰었다. 타구를 가로막고 공을 집어 올리는 동작은 거의 넘어지듯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짧은 틈에 그는 2루 쪽을 본 뒤 1루를 봤다. 어디를 버릴지 고르는 눈이었다.
그는 2루 주자를 끊었다. 직접 송구하지 않고, 유격수에게 흘리듯 넘겨 포스 아웃을 만들었다. 이어 1루로 돌아가는 공이 넘어갔을 때, 주자의 발은 이미 한 뼘 뒤에 있었다. 병살. 더그아웃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민석이 마운드에서 내려오며 짧게 입을 열었다. "네가 먼저 나가니까 숨이 붙는다."
재하는 웃었지만 얼굴은 금세 굳었다. 왼손 안쪽에서 묵직한 열이 번졌다. 아까보다 더 심했다. 그는 공을 던진 뒤에야 검지 끝이 완전히 굽어져 있다는 걸 느꼈다. 붕대 아래가 끈적였다. 피였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통증은 뒤늦게 올라와 관자놀이를 찔렀다.
7회에는 더 큰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탄스는 번트를 버린 척하면서 1루 주자를 더 앞에 내세웠다. 타자가 강하게 밀어 치면 재하의 늦은 송구를 보고 한 베이스 더 간다는 계산이었다. 재하는 그 계산을 뚫어야 했다. 그는 미트 안쪽으로 손을 말아 넣고, 일부러 바깥쪽 사인을 먼저 보였다가 몸쪽 낮은 공으로 바꿨다. 타자는 배트를 짧게 움켜쥔 채 의심했다. 그 의심이 바로 재하가 원하는 것이었다.
공은 몸쪽 아래로 깔렸고, 타구는 3루 쪽으로 죽었다. 3루수는 한 박자 늦게 들어오고 있었지만 재하는 이미 앞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공을 잡은 뒤 바로 던지지 않았다. 한 번 더 잡았다. 1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는 걸 보기 위해서였다. 주자는 출발했다. 그제야 재하는 송구했다. 느렸다. 분명 느렸다. 하지만 1루수의 발이 베이스를 찍는 소리가 주자의 발보다 먼저 들렸다. 아웃.
그 아웃 뒤에 타이탄스 벤치가 조용해졌다. 조용함은 포기보다 위험했다. 재하는 그 침묵 속에서 더그아웃 쪽 벤치 코치가 스탠드 아래의 종이를 접는 걸 봤다. 그는 글자를 읽지 않아도 됐다. 손끝과 시선이 모이는 위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1루 방향 강타를 포기했다. 대신 재하의 송구 순간을 끊어 버릴 더 빠른 작전을 꺼낼 얼굴이었다.
8회 초, 타이탄스의 작전표가 다시 펼쳐졌을 때 재하는 처음으로 그 종이의 첫 줄을 읽었다. 번트도, 강타도 아니었다. 짧은 타구와 도루, 그리고 재하가 미트를 여는 바로 그 순간을 노리는 더 빠른 시작. 그는 붕대로 감긴 왼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겁은 나지 않았다. 겁이 나는 건 상대였다. 상대는 그의 손이 아니라, 손이 늦어질 때 생기는 빈틈을 믿고 있었다.
재하는 마스크 끈을 다시 조이며 낮게 말했다. "오고 있네."
민석이 물었다. "뭐가?"
"내 손이 아니라, 그쪽이 먼저 흔들리는 공." 그리고 재하는 1루 쪽으로 한 번 더 시선을 보냈다. 타이탄스가 꺼내 든 다음 종이에는, 아예 더 짧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재하의 느린 송구를 건너뛰기 위해, 포수 앞이 아니라 1루 주루선 위에서 공을 끊어 버리겠다는 표시였다. 그 순간, 더그아웃 맨 앞줄의 코치가 손가락으로 베이스 라인을 길게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하는 그 동작을 읽고 입술을 굳게 닫았다. 타이탄스는 이제 공이 아니라, 그의 손이 움직이기 전에 달아나는 그림자를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