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흰 봉투
최재하는 미래를 보지 못했다. 투수가 다음 공을 무서워하는 순간만 보았다.
사람들은 그 차이를 믿지 않았다. 포수 미트가 움직이기 전에 구종을 맞히고, 투수가 사인을 거절하기 전에 타임을 부르니 예지 능력이라 불렀다.
실제로 재하가 보는 것은 사소했다.
직구가 두려운 투수는 공의 솔기를 엄지로 한 번 더 문질렀다. 변화구가 빠질까 겁내는 투수는 숨을 들이쉰 뒤 내쉬지 않았다. 주자가 신경 쓰이면 오른발 뒤꿈치가 평소보다 반 뼘 열렸다.
그런 현재가 다음 공을 바꿨다.
"최재하 선수. 경기 뒤 사무실로 오세요."
운영팀 직원이 흰 봉투를 건넸다. 밀봉은 되어 있었지만 내용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시즌 종료까지 열한 경기, 2군 등록 포수 셋, 재하의 나이 스물아홉, 도루 저지율 14퍼센트.
"오늘 경기 뒤입니까?"
"네. 짐은 아직 빼지 마시고요."
경기에 나갈 사람에게 짐부터 빼라고 할 수는 없으니 붙인 말이었다.
재하는 봉투를 포수 장비함 맨 아래에 넣었다. 테이프로 감아 둔 왼손 검지가 욱신거렸다. 지난주 파울팁을 맞은 뒤 제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구단 병원은 타박상이라고 했다.
감독이 라인업을 붙였다.
`8번 포수 최재하.`
`선발 투수 강민석.`
열아홉 살 신인 민석은 오늘 직구 구속을 보러 온 1군 스카우트 앞에서 던졌다. 코치는 불펜에서 재하에게 한 가지만 말했다.
"직구 비율 70퍼센트. 구속 찍어야 해. 쓸데없이 피해 가지 마."
"타자가 직구만 노리면요?"
"맞더라도 자기 공 맞고 내려와야 평가를 받지."
민석은 아무 말 없이 공을 받았다. 엄지가 솔기를 두 번 문질렀다.
재하는 그가 직구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 2. 사인과 떨림
민석의 첫 직구는 시속 151킬로미터였다. 포수 미트 한가운데 꽂혔다.
스카우트석에서 펜이 움직였다.
둘째 직구는 150, 바깥쪽 볼. 셋째는 148, 가운데 높게 몰려 좌중간 2루타가 됐다.
재하는 마운드로 올라갔다.
"손가락 괜찮아?"
"네."
민석은 오른손 엄지를 등 뒤로 숨겼다. 손톱 옆 살이 찢어져 피가 묻어 있었다. 구속을 더 내려고 솔기를 지나치게 누르고 있었다.
"직구 말고 뭐가 제일 편해?"
"직구요."
"가장 편한 공을 물었지, 가장 잘 보여 줘야 하는 공을 안 물었어."
민석이 전광판을 보았다. 스카우트 둘이 앉아 있었다.
"체인지업입니다. 근데 오늘 빠져요."
"빠지는 걸 무서워해서 손에서 못 놓는 거야. 다음 타자 첫 공은 땅에 던진다고 생각하고 놔. 내가 막을게."
"코치님이 직구 비율 맞추라고 했습니다."
"첫 회에 직구 세 개 던졌으니 아직 비율 남아. 숫자는 내가 계산할게."
재하는 홈으로 돌아와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민석은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재하는 같은 사인을 다시 냈다.
민석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공은 정말 땅에 떨어졌다. 재하가 몸으로 막았다. 주자는 움직이지 못했다. 두 번째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존 아래에서 가라앉아 헛스윙을 끌어냈다.
경기는 2대 2로 9회까지 갔다.
재하는 네 번 출루를 허용했고 도루도 두 개 내줬다. 왼손 검지 때문에 2루 송구가 오른쪽으로 밀렸다. 상대 덕아웃은 그 사실을 세 번째 이닝부터 알고 있었다.
9회 말, 선두 타자가 볼넷으로 나갔다. 다음 타석 초구에 바로 뛰었다.
재하의 송구가 원바운드로 들어갔다. 세이프.
상대 주루 코치가 두 손을 크게 벌려 웃었다. 약점을 확인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희생번트와 고의사구 뒤, 1사 만루.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민석아, 직구로 간다. 네 공 믿어."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엄지가 솔기를 세 번 문질렀다.
재하는 그 말이 응원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믿으라는 말을 들을수록 민석은 직구를 놓지 못했다.
타석에는 오늘 직구만 두 번 안타로 만든 4번 타자가 섰다.
### 3. 9회 말
재하는 첫 사인으로 직구를 냈다.
민석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하는 타임을 불렀다.
"왜?"
주심이 물었다.
"렌즈에 흙이 들어갔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재하는 마스크를 벗고 천천히 닦았다. 그 사이 민석이 공에서 손을 떼게 했다.
코치가 덕아웃에서 직구 신호를 반복했다.
재하는 다시 앉았다. 이번에는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민석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재하는 미트를 바닥 가까이 댔다. 빠져도 된다는 위치였다.
민석이 던졌다.
타자는 직구 타이밍으로 방망이를 냈다. 공이 홈 앞에서 가라앉았다. 헛스윙.
1스트라이크.
두 번째는 바깥쪽 직구였다. 구속 147, 파울. 민석의 엄지가 다시 피로 젖었지만 호흡은 돌아왔다.
0볼 2스트라이크.
코치는 높은 직구를 지시했다. 재하는 민석을 보았다. 뒤꿈치가 닫혀 있었고, 숨은 길게 나왔다. 이제 그는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기다리는 직구를 던지는 쪽을 더 무서워했다.
재하는 다시 체인지업을 냈다.
민석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공은 낮게 떨어졌다. 타자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삼진.
하지만 공은 재하의 미트 아래를 맞고 옆으로 튀었다. 왼손 검지가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손 안에서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느낌이 났다.
3루 주자가 홈으로 뛰었다.
재하는 오른손으로 공을 주워 홈플레이트 앞으로 몸을 던졌다. 주자의 스파이크가 가슴 보호대를 긁었다. 재하는 공을 오른손에 쥔 채 왼팔 전체로 태그했다.
주심의 두 팔이 올라갔다.
"아웃!"
이닝 종료.
재하는 땅에 누운 채 전광판을 보았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 점수, 2대 2. 팀은 아직 지지 않았다.
연장 10회 초, 웨일스가 한 점을 냈다. 민석은 10회 말도 체인지업으로 마지막 타자를 잡았다.
경기가 끝난 뒤 민석이 재하를 끌어안았다.
"선배, 제 다음 공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알려 줬어."
"제가 언제요?"
"무서워할 때마다 엄지로 공을 괴롭히잖아. 다음에는 공 말고 나한테 말해."
### 4. 한 달
병원 엑스레이에는 왼손 검지 기저부의 가는 금이 보였다.
"미세 골절입니다. 최소 삼 주."
의사가 말했다.
재하는 흰 봉투를 들고 운영팀 사무실에 들어갔다. 직원은 봉투를 열지 말라고 했다.
"방출 결정이 한 달 유예됐습니다. 강민석 전담 포수로 테스트합니다."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송구는 줄이고 리드 중심으로 가죠. 오늘 경기 반응이 좋습니다. 기사도 났고."
재하는 책상 위 보고서를 보았다. `포수 최재하의 예지 리드`라는 제목이었다.
"예지가 아닙니다."
"홍보팀에는 그쪽이 쉽습니다."
한 달은 기회였다. 동시에 부러진 손가락으로 열한 경기를 버티라는 조건이었다.
재하는 계약서에 바로 서명하지 않았다.
"부상 상태를 공개 기록에 넣고, 경기마다 출전 여부를 의료진과 결정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주세요."
"그러면 구단이 굳이 유예할 이유가 없는데요."
"숨기고 뛰다가 완전히 망가지면 한 달 뒤에도 포수를 못 합니다. 오늘 민석에게 한 말을 저한테는 거꾸로 할 수 없습니다."
직원은 감독에게 전화했다. 십 분 뒤 조항이 추가됐다.
재하는 서명했다.
사무실을 나서다 복사기 위에 놓인 다음 상대 분석표를 보았다. 남부 타이탄스의 작전 회의 자료가 잘못 전송된 모양이었다.
첫 장에 재하의 오늘 경기 사진이 붙어 있었다.
`왼손 검지 테이핑. 2루 송구 평균 2.18초.`
`연속 도루로 포수 손을 흔들 것.`
그 아래에는 민석의 체인지업 사인 패턴까지 정리돼 있었다.
오늘 얻은 해답은 이미 다음 상대의 문제가 되어 있었다.
재하는 분석표를 접어 민석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부러지지 않은 세 손가락으로 새로운 사인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