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실의 공기가 먼저 식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닫힌 쪽이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모를 만큼 병원은 조용했다.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412호의 전송음도 끊겼다. 남은 건 경보등의 붉은 점멸과, 수빈의 장갑 끝에 스며든 차가운 냄새뿐이었다.
수빈은 봉투를 열어 허위 종료 서명 원본을 다시 펼쳤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오래된 보존 처리 흔적이 남아 있었고, 오른쪽 아래에 찍힌 장비 식별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412호가 말한 냉각권한의 일부.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서명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었다. 병원 지하의 보안 잠금, 환자 이송 권한, 폐기 명령이 모두 하나의 묶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이 종이에 손을 대면, 아래층의 생명유지 장치까지 손을 댈 수 있었다.
수빈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오른손은 이미 손끝 감각이 둔했고, 왼팔은 화상 부위가 옷감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그래도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기록실 벽면의 분전반 덮개를 발로 밀어 열고, 낡은 배선도를 대충 훑었다. 상층 보안이 봉쇄를 내릴 때 끊은 것은 주 통로 전원이었지, 비상 회로까지는 아니었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쪽보다 기록을 숨기는 쪽을 먼저 생각했고, 그 버릇은 전기 흐름에도 남아 있었다.
"412호, 들리면 대답해."
잡음이 한 번 스쳤다. 그리고 짧게, 너무 짧게 목소리가 붙었다.
"원본은 열쇠의 절반. 나머지는 지워진 방."
수빈은 고개를 들었다. 지워진 방. 그는 기록실 뒤편의 환기 도면을 떠올렸다. 폐기 예정 표시가 덧칠된 구역 중 하나가 이상하게도 실제 벽체와 맞지 않았다. 설비 점검 때 자주 보던 위장 패턴이었다. 겉으로는 막아 놓고, 실은 그 뒤에 사람과 장비를 숨기는 방식. 그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가장 가까운 차단 릴레이를 찾아 배선을 다시 물렸다.
불꽃은 없었다. 대신 낮은 굉음과 함께 기록실 안의 일부 조명이 꺼졌다. 수빈은 바로 다음 회로를 건드리지 않고, 꺼진 조명 아래 그림자만 확인했다. 벽 한쪽이 미세하게 울퉁불퉁했다. 철거된 듯 보이지만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패널이었다. 그는 공구를 팔꿈치에 고정하고, 왼손으로 패널 가장자리를 눌렀다. 패널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안쪽에는 먼지 쌓인 점검구와, 그 뒤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 끝에 오래된 환기 팬이 멈춰 서 있었다. 팬이 꺼지자 안쪽 냉기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수빈은 잠시 멈췄다. 이 정도 냉기는 저장고용이 아니다.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온도였다. 그는 서명 원본을 주머니에 넣고, 통로 벽을 더듬어 수동 해동 프로토콜이 적힌 작은 패널을 찾았다. 지워진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강제로 여는 게 아니었다. 먼저 문이 살아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했다.
수빈은 보존함 번호를 입력했다. 이어서 원본 서명 아래 찍힌 인계 코드를 덧붙였다. 병원은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는 대개 관대했다. 상층 관리 계정이 직접 막지 않는 한, 오래된 장비는 옛 권한을 따라 움직였다. 패널이 짧게 빛나더니, 아래층으로 향하는 회로가 열렸다. 문이 아니라 전력이 먼저 풀렸다. 그 순간 경보가 다시 울렸다.
상층 보안 음성이 천장 전체에 퍼졌다. "무단 수정자 감지. 하층 접근 금지. 즉시 대기하십시오."
수빈은 웃지 않았다. 대기하라는 말은 누군가가 이미 지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통로 안으로 들어가며 오른손 대신 어깨로 문을 밀었다. 계단은 두 층 아래로 이어졌고, 마지막 칸에는 손바닥만 한 유리창이 달린 철문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희미한 초록색 파형이 보였다. 살아 있는 신호였다.
문을 연 순간 냉기가 얼굴을 때렸다. 안에는 침상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이름표가 반쯤 떨어진 채 호흡 튜브에 연결돼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심박이 약하지만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숫자로만 남아 있던 두 명 더가 거기 있었다. 수빈은 먼저 침상 옆 모니터를 확인했다. 체온, 산소포화도, 맥박. 모두 극저온 회복 단계였다.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니었다. 아직 기회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지금부터는 못 숨깁니다."
그 말을 누구에게 한 건지 수빈 자신도 몰랐다. 환자에게인지, 병원에게인지, 아니면 화면 속으로 아직도 도망치는 누군가에게인지. 그는 두 침상의 로그 포트를 연결하고, 기록실에서 챙겨 온 원본 서명과 바이탈 데이터를 하나로 묶었다. 외부 구조대 호출선은 이미 끊겨 있었지만, 비상 전송선은 남아 있었다. 병원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숨겨 둔 마지막 선이었다.
전송을 올리자마자 상층 관리 계정이 개입했다. 삭제 명령이 번쩍이며 내려왔고, 로그의 절반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수빈은 손목을 돌려 접촉이 느슨해진 커넥터를 다시 눌렀다. 오른손 끝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는 손 대신 팔 전체를 써서 끝까지 눌렀다. 그러자 원본 서명에 남아 있던 냉각권한 식별값이 한 번 더 반응했다. 삭제 명령과 권한 충돌이 일어나며 병원 내부 분기망이 잠깐 멈췄다.
그 짧은 정지에 수빈은 비상 해동문을 수동 개방으로 고정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바깥 복도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였다. 누군가가 뛰어오며 이름을 불렀고, 의료진이 침상 옆으로 달려왔다. 수빈은 그제야 한 걸음 물러섰다. 발바닥이 떨렸다. 손끝은 거의 감각이 없었다.
"둘 다 살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의사가 확인기에 눈을 붙이고 짧게 대답했다. "맞아요. 아직 놓치지 않았어요."
그 말에 수빈은 등을 벽에 기대지 않았다. 대신 열린 문 옆으로 비켜 섰다. 의료진이 침상을 밖으로 옮기는 동안, 그는 마지막으로 원본 서명과 로그 묶음을 구조대 리더의 태블릿에 직접 넘겼다. 이번에는 병원 내부망이 아니라 외부 인계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그래야 누가 무엇을 지웠는지 다시는 바꿀 수 없었다.
상층 보안의 경고는 계속 울렸지만, 늦었다. 허위 종료 서명은 원본과 불일치가 확인됐고, 두 명 더의 처분 기록은 살아 있는 바이탈 로그와 충돌했다. 병원은 더 이상 조용히 둘 수 없었다. 누군가는 기록을 바꿨고, 누군가는 사람을 얼렸고, 누군가는 그 위에 서명을 했다. 이제 그 서명이 바깥에 있었다.
구조대가 마지막 침상을 밀어 나가자, 수빈은 폐병원 안에 홀로 남은 듯한 기분을 잠깐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경보 옆의 작은 상태창에 외부 인계 완료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두 명 더가 살아서 나갔고, 기록도 함께 나갔다. 상층이 만든 말은 더 이상 병원 안에서만 통하지 않았다.
수빈은 화상 난 팔을 내려다봤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이제 그건 증거보다 작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통로 끝을 바라봤다. 그 너머 지하 깊은 전력계통에서 아주 작은 유지등 하나가 아직도 켜져 있었다. 정말 작은 빛이었다. 누군가가 남겼다기보다, 남아 버린 것에 가까운 빛.
수빈은 그 불빛을 잠깐 바라보다가,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살아 나온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 내보내는 일이 먼저였다. 그는 구조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기록은 넘겼습니다. 남은 건 조사하셔도 됩니다."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그의 손목 상태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수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 밖으로 새어 나가는 새벽 냄새가 어딘가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무너진 병원 어딘가에 아직도 수리가 필요한 회선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이 조용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