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 냉온 저장실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다. 철문 겉면은 성에에 덮여 있었고, 오래전 붙여 둔 경고 스티커는 반쯤 뜯겨 나가 있었다. 그러나 단말기 화면에는 아직 미세한 전류가 남아 있었다. 숨이 붙은 기계만이 만들 수 있는, 아주 얇은 맥박이었다.
그는 왼손으로 손목을 받치고, 오른손 끝으로 판넬의 먼지를 훑었다. 손가락 끝이 얼어붙은 것처럼 둔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관절이 다시 비틀릴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전원 경로, 냉각 루프, 비상 해제 순서를 머릿속에서 먼저 그렸다. 눈앞의 문은 하나였지만, 그 뒤에는 서로 다른 온도를 요구하는 장치들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단말기 옆 작은 디스플레이가 켜지며 짧은 문장을 흘렸다. `대상 3명. 차단 03:14.` 숫자는 차갑고 명확했다. 수빈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사람을 셋이나 한 구역에 묶어 둘 이유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었다. 숨기거나, 미루거나, 기록을 비틀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 문 너머에서 미약한 충격음이 두 번 울렸다. 누군가 안쪽에서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떨어지는 냉매가 배관을 때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수빈은 귀를 기울였다. 이어서 파형이 하나 더 떠올랐다. 두 개는 불규칙하지만 살아 있었고, 하나는 거의 꺼지기 직전이었다. 가장 약한 파형이 있는 쪽이 문 왼편 하단이었다.
“거기, 사람 있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녹슨 스피커에서 삐걱거리는 잡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낮은 음색이 한 마디를 뱉었다.
“우회하면 된다.”
412호였다. 이미 철거된 번호가 벽 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수빈은 이를 악물었다. “우회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왜 세 명입니까.”
“살아 있기 때문.”
그 짧은 답 뒤로 잡음이 끊겼다. 수빈은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문 아래의 배수 슬롯에 손전등을 비췄다. 안쪽에는 응급 냉각실과 별개로 작은 서비스실이 붙어 있었다. 도면에는 없던 공간이었다. 아마 기록을 정리할 때 지워졌거나, 애초에 설명할 수 없는 용도로 숨겨 둔 방이었다.
그는 비상 해제 패널의 커버를 뜯었다. 이미 오른손의 정밀 감각은 엉망이었지만, 이런 일은 손끝의 예민함보다 판단이 중요했다. 전원선을 잘못 끊으면 세 사람의 냉각이 동시에 무너진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장 약한 생체 신호가 먼저 사라진다. 수빈은 자기 진단계를 꺼내 배터리 잔량을 확인했다. 남은 전력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이걸 여기서 태워야 했다.
“서윤 선생님, 들립니까.”
문 밖 복도 끝에서 무전이 잡혔다. “수빈 씨, 지금 어디예요? 봉쇄가 더 내려왔어요.”
“안쪽입니다. 여기 세 명 있습니다. 하나는 아주 위험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형사의 거친 숨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당신 말대로면 증거실보다 먼저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는 거군요.”
“지금 사람을 안 살리면 증거도 없습니다.”
수빈은 대답을 끝내자마자 진단계의 외부 프로브를 떼어 배선 단자에 연결했다. 화면에 냉각수 흐름과 실내 온도, 압력 수치가 한꺼번에 솟았다가 내려앉았다. 공유 회로였다. 세 개의 포드가 한 라인을 나눠 쓰고 있었고, 가장 약한 포드가 나머지 둘의 냉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균형을 무너뜨린 형태였다. 오래 버티게 하려면, 혹은 오래 못 버티게 하려면 딱 맞는 연결이었다.
수빈은 순간 선택을 했다. 표준 절차라면 전체 회로를 멈추고 재가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전부 얼어붙거나 전부 녹는다. 그는 보조 제어판을 뜯어내 안쪽의 온도 조절 릴레이를 분리했다. 손목이 비명을 질렀다. 관절이 돌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금속이 살 속을 비집는 느낌이었다. 그는 숨을 삼키며 릴레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낡은 의료용 히터의 저항선을 냉각 루프와 직렬로 걸었다. 절반은 따뜻하게, 절반은 차갑게. 한쪽을 살리기 위해 다른 쪽을 죽이지 않는 선을 억지로 만들기 위한 편법이었다.
문 안쪽에서 아주 작은 금속음이 들렸다. 이어서 약한 신음이 났다. 수빈은 손전등을 비추며 서비스실 옆의 관측창을 확인했다. 얼음이 낀 유리 뒤로 세 개의 인체 윤곽이 보였다. 하나는 목에 연결된 튜브가 흔들리고 있었고, 하나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가장 안쪽의 포드는 표면 성에가 두껍게 끼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가장 약했던 파형이 갑자기 상승했다. 심박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붙었다. 수빈은 망설이지 않고 비상 해제 레버를 반 바퀴 돌렸다. 전원이 한 번 크게 꺾이며 실내 온도가 1도 올랐다. 겨우 1도였지만, 그 1도 때문에 화면의 경보가 적색에서 주황색으로 내려갔다.
관측창 너머에서 한 사람이 눈을 떴다. 젊은 남자였다. 입술은 창백했고, 목소리는 가늘었다. “...서명... 누가... 했어요.”
수빈은 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뭐라고요?”
남자는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더듬다 말처럼 떨어진 이름표 조각을 보여 주었다. 이름은 이미 지워져 있었지만, 끝부분에 남은 인쇄 자국이 희미했다. 그 아래에는 검은 펜으로 덧칠된 짧은 코드가 있었다. 수빈은 그 코드를 보는 순간 잠깐 멈췄다. 그것은 병원 내부 결산용 종료 서명과 같은 자리였다. 누군가 죽었다고 처리할 때 붙이는 방식과 동일했다.
“이 방... 끝냈다고...” 남자가 힘겹게 말했다. “근데... 안 끝났어요.”
그 말과 동시에 수빈의 진단계 화면이 깜빡였다. 잔여 배터리가 바닥났다. 동시에 손목 안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 그는 버티기 위해 왼손으로 패널을 눌렀지만, 이미 늦었다. 보조 제어판의 마지막 릴레이가 타들어 가며 작은 불꽃을 뿜었다. 방 안은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짧은 암전 사이에 포드 하나의 경보가 멈췄다. 완전히 멈춘 게 아니라, 위험한 수준에서 안정선으로 내려간 것이다.
“서윤 선생님.” 수빈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지금 들어올 수 있습니다. 서비스 통로 열렸어요.”
문 바깥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안쪽 포드 옆의 얇은 서비스 패널이 마침내 벌어지며 사람 하나가 지나갈 틈을 만들었다. 서윤이 먼저 몸을 밀어 넣었다. 그의 눈이 안쪽 세 사람과 수빈의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당신, 피가 얼었어요.”
“나중에요.” 수빈은 남은 한 손으로 포드의 온도계를 가리켰다. “이 둘은 의료진이 바로 붙어야 합니다. 저쪽은 아직 기록이 없습니다. 이름표를 먼저 찍으세요.”
형사가 뒤따라 들어오며 포드 옆 바닥을 살폈다. “기록이 없다고요?”
남자 환자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한 단어를 흘렸다. “기록실.”
그 순간 천장 스피커가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412호의 목소리가 훨씬 가까웠다. “원본은 기록실에 있다. 자동 해동이 시작되기 전에 가져와라. 파쇄가 먼저면 셋 다 이름을 잃는다.”
수빈은 얼어붙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감각이 반쯤 죽어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파형은 분명히 살아남았다. 방은 더 이상 무덤이 아니었다. 대신 다음 문이 열렸다. 기록실, 종료 서명, 그리고 곧 시작될 파쇄 시한. 그는 무너진 진단계를 발로 밀어내며 천천히 일어섰다. 손목은 아팠고, 손끝은 둔했지만, 지금은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살린 사람들은 더 이상 숫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이름이 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