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굴착기의 붐대가 병원 정문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밤새 젖어 있던 콘크리트 냄새 위로 디젤 매연이 얇게 깔렸다. 경찰 테이프는 바람에 부딪혀 떨렸고, 구급차 문은 닫힌 채였다. 수빈은 라이트에 반쯤 눈이 멀어 있는 상태로, 손등에 묻은 분진을 닦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307호의 생존자를 실어 보낸 들것 자리가 아직 입구에 남아 있었다.
형사 한 명이 그의 앞에 선 서류판을 흔들었다. "오수빈 기사님. 무단 진입 이유 다시 말씀하시죠. 그리고 과거 종료 서명, 그것도 같이요."
수빈은 굴착기 쪽을 한번 보고 다시 형사를 봤다. 지금 여기서 변명하면 끝이었다. 그래도 눈앞의 철거가 먼저였다. "조사에는 답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끊으면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412호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철거된 장비 번호로 온 역신호예요. 장난이 아닙니다."
형사의 눈썹이 올라갔다. 옆에 있던 철거 반장이 코웃음을 쳤다. "건물은 오늘 끝납니다. 유령 장비 타령할 시간 없어요."
그때 수빈의 검사 단말이 다시 울렸다. 화면에는 분명히 폐기 목록에서 삭제된 장비 번호가 떠 있었다. `SEORIM-H4-VENT-0412.` 그 아래로 짧은 문장 하나가 이어졌다. `두 명 더.`
수빈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체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문장은 환자 호출 문법이었다. 조작된 장난이라면 체크섬이 맞을 수 없고, 진짜 장비라면 바깥에 있는 누구도 이런 문장을 넣을 권한이 없었다. 그는 화면을 형사에게 내밀었다. "지금 이건 누가 보낸 게 아니라, 남아 있던 회선이 자기 정체를 드러낸 겁니다. 412호는 철거된 게 아니라 끊긴 척 묻힌 거예요."
구급대 옆에 있던 서윤 의사가 앞으로 나왔다. 307호 생존자를 이송했던 의사였다. "형사님, 최소한 배선실은 봐야 합니다. 저온 환자면 전원을 급하게 자르면 바로 위험해집니다."
철거 반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계를 봤다. "십오 분. 그 뒤엔 절단 들어갑니다."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십오 분이면 숨을 곳을 찾는 데도 모자랐다. 그래도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는 장갑을 끼우고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형사와 서윤 의사가 뒤를 따랐다. 계단 벽에는 화재 흔적 위로 새 페인트가 덮여 있었지만, 코너마다 실리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래된 병원은 폐쇄되어도 숨은 선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다. 수빈은 발광봉을 켜고 배선실 문 앞에 멈췄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잠금장치는 새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한 번 열고 다시 봉인한 흔적이었다.
안쪽의 공기는 차가웠다. 수빈은 커버를 열어 메인 퓨즈와 보조 전원선을 훑었다. 전원은 죽은 게 아니었다. 죽은 척하고 있었다. 바닥 쪽 오래된 통신선이 벽 뒤로 사라졌고, 그 끝에는 철거 도면에 없는 작은 중계기가 매달려 있었다. 병원 내부 호출, 모니터 알람, 간호사 호출, 그리고 412호에서만 써야 할 환자 연동 코드가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중계기 겉면에 붙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손에 닿은 열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여기 있습니다." 수빈이 말했다. "412호 신호는 이미 철거된 장비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철거된 건 겉껍데기고, 안쪽에서 307호 전원 루프를 먹고 있었어요. 누가 일부러 남겨뒀습니다."
형사가 장갑 낀 손으로 벽을 톡 쳤다. "그럼 누가요?"
"그건 지금 가 봐야 압니다."
수빈은 벽 옆 보관함에서 오래된 배선도 한 장을 꺼냈다. 도면 한쪽이 접혀 있었고, 그 아래에 손글씨로 쓰인 메모가 남아 있었다. `냉각실 B-2, 점검 후 봉인.` 글씨는 화재 당시의 관리자의 필체와 같았다. 그는 몇 년 전 종료 서명 판에 찍혔던 그 손과 같은 꺾임을 알아봤다. 자기가 잘못 믿고 도장을 찍었던 그 손이었다. 입 안이 마르기 시작했다.
벽을 따라 세 걸음 옮기자 잘못 맞춰진 타일 한 줄이 보였다. 수빈은 철제 드라이버로 가장자리를 눌렀고, 안쪽에서 단단한 금속 울림이 났다. 그는 한 번 더 눌러 타일 틈을 벌렸다. 벽 뒤에는 환기구가 아니라 좁은 냉각실로 이어지는 비상 통로가 있었다. 그 안에 하얀 커버를 덮은 포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포드 측면에는 이름 대신 환자 관리용 번호만 붙어 있었다. 하나는 종이 라벨이 젖어 번졌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급히 떼어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서윤 의사가 욕을 삼켰다. "이건 일반 보관이 아니에요. 저온 수면 포드입니다."
수빈은 맥박 센서를 포드 옆 단자에 연결했다. 첫 번째 포드에서는 너무 느린 파형이 잡혔다. 두 번째는 한동안 무반응이었다. 그는 손목이 떨리는 걸 억눌렀다. 살아 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고, 다른 하나는 선이 끊겼거나 배터리가 바닥난 상태였다. 병원이 숨겨 둔 건 장비가 아니라 사람 두 명이었다. "두 명 더"라는 문장은 비명이 아니라 호출이었다.
"전원이 11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수빈이 말했다. "밖에서 절단 들어가면 냉각도, 로그도 다 날아갑니다. 지금 살려야 해요."
그는 자기 공구가방을 열었다. 예비 릴레이는 하나뿐이었다. 원래라면 철거 현장에서는 건드리지 않는 고급형이었다. 이걸 태우면 다음 현장까지 버틸 예비가 사라진다. 그는 잠깐 멈췄다가, 진단계에서 빼낸 마지막 코일과 함께 릴레이를 분해했다. 형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납땜 인두를 켜고 있었다. 조그만 불꽃이 튀며 먼지가 타는 냄새가 났다. 수빈은 냉각실의 보조 라인을 직접 이어 붙였다. 손끝이 뜨거워졌다. 이 작업은 규정 위반이고, 현장 보존도 망칠 수 있었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릴레이가 붙는 순간, 포드 안쪽에서 미세한 진동이 올라왔다. 첫 번째 포드의 센서가 점차 규칙을 찾았고, 두 번째 포드에서는 끊어졌던 파형이 한 번, 두 번, 아주 가늘게 되살아났다. 수빈은 숨을 내쉬지 못한 채 화면을 보았다. 임시 전압이 올라가자 냉각실의 경고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서윤 의사가 바로 뛰어들어 포드 잠금핀을 확인했고, 형사는 더 이상 코웃음을 치지 못했다. 눈앞의 기록은 거짓말을 못했다.
그때 수빈은 자신의 단말에 뜬 메시지를 봤다. 412호 번호가 다시 한 번 깜빡이더니, 이번에는 위치와 시간이 함께 출력됐다. `두 명 더. 지하 1층 냉각실 B-2. 차단까지 09:12.` 그 밑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종료 확인자 오수빈이 오기 전에 닫지 마.`
형사가 서류판을 덮었다. 이제 질문이 끝난 게 아니었다. 시작된 것이다. 수빈은 태워 먹은 릴레이의 열기를 손바닥으로 느끼며, 냉각실 너머 더 아래로 이어지는 철문을 올려다봤다. 412호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 두 명이 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