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반쯤 내려온 통로는 금속이 비명을 삼키는 소리로 가득했다. 물과 먼지와 확성기 잔향이 한데 섞여,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 안쪽이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은채는 무무의 몸을 앞세운 채 뒤로 물러나지 못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뒤는 봉쇄되고, 앞은 저주파였다. 회수팀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무무의 비늘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더 날카롭게 떨렸다.
"뛰어." 은채가 짧게 말했다. "내가 길을 만들게."
무무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 안쪽이 아직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은 얼마 전처럼 무너지는 떨림이 아니었다. 방향을 기다리는 떨림이었다. 은채는 그 표정을 보고 잠깐 숨을 멈췄다. 이 아이는 소리에 겁을 먹는 게 아니라,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소리에 겁을 먹는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계속 소리로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무무는 이미 배웠다. 공포를 키우는 쪽이 아니라, 공포를 줄이는 쪽으로 가면 된다는 걸.
은채는 북쪽 수문 아래에 반쯤 잠긴 점검문을 발견했다. 오래된 유지구역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표면은 녹슬었고 손잡이는 잠겨 있었지만, 안쪽에서 희미한 공기 흐름이 느껴졌다. 물과 먼지가 아니라, 오래된 펌프실 특유의 축축한 냄새가 났다. 거긴 소리가 죽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녀는 무무를 향해 손짓했다.
"여기로. 확성기 있는 데 말고, 소리 없는 데."
무무는 망설였다. 뒤에서 또 한 번 저주파가 깔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군의 장치가 흉내 낸 것이 분명했지만, 아주 멀리 있는 무엇의 그림자를 닮아 있었다. 무무의 몸이 한 번 굳었다. 등 쪽 비늘이 불쑥 올라오며 목덜미까지 덮었다. 은채는 그 반응을 보자마자 이를 악물었다.
"미끼야. 진짜 아니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속지 마. 네가 싫어하는 소리로 끌어당기는 거야."
회수팀장이 철문 앞에서 손을 들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작은 발신기가 얹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울림이 다시 한 번 퍼졌다. 이번엔 훨씬 정교했다. 무무의 귀가 접혔고,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은채는 그 순간 더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는 점검문 옆의 비상 밸브로 달려가 마지막 관리자 칩을 꽂았다. 접근 승인음이 울릴 것 같던 자리에는 얕은 정전기만 튀었다. 칩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미 그녀는 공식 경로에서 밀려난 사람이었다.
그래도 은채는 손으로 밸브를 끝까지 돌렸다. 철제 핸들이 팔 안쪽 근육을 찢는 듯했고, 손바닥이 미끄러지며 거친 날에 긁혔다. 그 순간 왼쪽 귀에 꽂아 두었던 보호 삽입구가 바깥 충격에 부서졌다. 얇은 파편이 귓바퀴를 스치고, 곧바로 차가운 울림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세상 소리가 한 겹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은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뒤를 막아야 했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무무는 다시 소리로 몰릴 것이다.
밸브가 끝까지 돌아가자 오래된 관 속에서 물이 한 번 숨을 삼킨 뒤, 거센 역류음과 함께 복도 전체로 쏟아졌다. 물은 시끄러웠고, 그 소음은 군의 발소리와 금속 마찰음을 삼켜 버렸다. 동시에 유지구역의 낮은 흡음판이 깨어나며 벽을 따라 푸른 불빛을 뿜었다. 통로는 순식간에 소리가 뒤엉킨 구역이 되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무무가 한 발 먼저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는 앞이 아닌 옆으로 달렸다. 은채가 연 점검문 쪽이었다.
"그래, 거기다." 은채는 숨을 삼키며 말했다.
무무는 좁은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물방울이 쏟아지고, 천장 배관이 진동하며 낮은 울음을 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대신 은채가 넘어지지 않도록 등 쪽 비늘을 옆으로 벌려 그녀의 머리와 어깨 위를 덮었다. 파편이 떨어져도 그 비늘에 맞고 미끄러졌다. 은채는 그 장면을 보며 잠깐 멈췄다. 자기 자신을 숨기려는 비늘이 아니었다. 뒤의 사람을 가리기 위한 비늘이었다.
"좋아." 은채가 낮게 말했다. "그렇게 해. 그게 맞아."
무무는 그 말에 반응하듯 더 크게 비늘을 펼쳤다. 비늘 표면의 떨림이 물소리와 겹치면서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띠를 만들었다. 은채는 그제야 무무의 방패가 단순히 맞는 것을 막는 장비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너무 큰 소리를 잘라 내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공포를 피하려고 몸을 닫는 게 아니라, 공포를 지우는 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회수팀이 점검문 앞에서 멈췄다. 발소리가 물벽 너머에서 끊겼고, 금속 장갑이 문틀을 두드리는 소리만 잔잔하게 남았다. 곧 팀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반응 확인. 유인 효율 상승. 증폭기 연결해."
뒤쪽 통로에서 낮고 둔탁한 소음이 새어 나왔다. 군이 미리 준비한 장치를 꺼낸 것이다. 저주파가 한 번 더 깔렸다. 이번에는 더 정확했고, 더 낮았고, 더 멀리서 왔다. 무무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이번엔 겁먹은 반응이 아니었다. 몸 어딘가가 그 소리를 기억해 내는 반응이었다. 등비늘이 한꺼번에 서며 물기를 튕겼다. 은채는 무무의 목 뒤를 붙잡고 숨을 골랐다.
"안 따라가도 돼." 그녀가 말했다. "네가 먼저 정해."
무무는 잠깐 흔들렸다. 그러다 점검문 아래로 밀려온 금속 파편 하나를 발로 밀어내더니, 은채 쪽으로 몸을 더 바짝 붙였다. 그의 선택은 분명했다. 소리의 방향을 보되, 몸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몸은 은채를 덮는 쪽에 고정되었다. 그 순간 비늘이 한 번 더 넓어졌다. 표면의 잔떨림이 달라졌고, 물방울이 닿는 소리까지 얇게 눌려 버렸다. 방패는 닫힌 껍질이 아니라, 움직이는 흡음막처럼 보였다.
은채는 그 광경을 보며 마음 한쪽이 무너지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여기까지 오느라 잃은 것들은 분명했다. 권한도, 공식 통로도, 돌아갈 이름도 사라졌다. 하지만 무무는 또 한 번 선택했다. 명령이 아니라 보호를. 도망이 아니라 막아 줌을. 그 사실 하나가 그녀를 서 있게 했다.
그때였다. 유지구역 바닥 쪽의 오래된 관로가 묵직하게 울렸다. 단순한 반향이 아니었다. 북쪽 저편에서 온 저주파가 수면 아래까지 스며든 듯, 물결이 아주 느리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무무의 등비늘이 그 방향으로 일제히 솟았다. 이번엔 두려움보다 더 강한 반응이었다. 알아봄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은채는 그 떨림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정말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회수팀장의 목소리가 아주 빠르게 바뀌었다. "고정값 확보. 개체가 모체 신호에 동조한다. 생포 우선으로 전환."
군의 장비가 다시 켜졌다. 벽 너머로 작은 쇠음이 겹쳐 올라오고, 무무의 비늘 떨림은 그 신호에 한 번 더 밀렸다. 은채는 무무를 끌어안듯 감싸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밀려오는 유인 신호를 받아도, 무무가 군 쪽이 아니라 자신 쪽을 택하게 만드는 것. 그녀는 잠깐 숨을 멈췄다가 낮게 말했다.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 대신, 아무 소리나 따라가지 마. 내가 너랑 같이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