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벽면의 흰 페인트가 피처럼 번졌다. 센터는 북쪽 감시 카메라 열두 대를 한꺼번에 잃은 뒤 자동 차단으로 넘어갔고,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원인 불명. 외부 간섭. 재난 가능성. 하지만 은채는 그 말들 사이로 무무가 내는 떨림을 들었다. 아니, 들었다기보다 피부로 느꼈다. 새로 돋은 방패 비늘이 바닥의 진동을 따라 미세하게 열리고 있었다. 무무는 구석에서 네 귀를 접은 채 꼬리를 배 밑으로 감고 있었다. 겁에 질린 모양새였지만, 도망치려는 기색은 없었다. 북쪽을 향한 채 버티고 있었다.
"무무. 지금도 무서워?"
은채가 무릎을 굽혀 앉자, 무무는 대답 대신 비늘 하나를 떨어뜨렸다. 검은 비늘은 바닥에 닿자 낮은 울림을 냈다. 11초 간격. 은채는 자동 기록기를 꺼내 주파수를 다시 대조했다. 냉각기 진동이 아니라는 결론은 어제 이미 나왔다. 오늘은 더 분명했다. 외곽에서 날아오는 저주파는 끊기지 않았다. 긴 신호, 짧은 신호, 다시 긴 신호. 공격의 패턴이 아니라 호출의 반복이었다.
"이건 부수는 소리 아니야. 부르는 소리야."
문 옆에 서 있던 남기준이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밤새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기록상 멸종 개체의 잔향일 수도 있어. 하지만 반향이 이렇게 안정적인 건 이상해."
은채는 기록기를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안정적이면 더 위험한 거예요?"
남기준은 대답 대신 태블릿을 돌렸다. 파형 위에 오래된 사건 번호가 떠 있었다. 7년 전 토벌 자료였다. 도시 포식종 모체 M-01. 멸종 판정. 폭발성 섬광. 잔존 없음. 그런데 파형 아래쪽에는 최근 30분 동안 누적된 새 표식이 겹쳐 있었다. 동일 주파수. 동일 변조. 생체 신호 추정치 상승.
무무가 태블릿 화면을 보더니 몸을 웅크렸다. 은채가 놀라 손을 내밀자, 무무는 귀를 더 세게 접었다. 공포가 아니라 경계였다. 그 반응을 은채는 이제 안다. 무언가가 가까워질 때, 무무는 이빨보다 먼저 소리를 두려워했다.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 엘리베이터의 고음, 사람의 큰 목소리. 그것들이 모두 과거의 고통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북쪽 복도 끝에서 군화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은채도 귀를 찌르는 압박을 느꼈다. 네 명이 아니라 여덟 명. 문이 열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자물쇠에 권한 코드를 넣었고, 센터의 재난 차단이 외부 승인으로 덮였다. 들어온 사람들은 평가관이 아니라 군사 부서였다. 앞장선 소령은 은채의 이름을 보자마자 공문을 들이밀었다.
"조은채 보호사. 현재 개체 무무는 생존 보호형으로 재분류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규 판정은 소유권 이전을 막지 않습니다. 재난 대응 자산으로 회수하겠습니다."
은채는 공문을 받지 않았다. "생존 보호형이면 더더욱 회수하면 안 되죠."
"보호와 통제는 다르지 않습니다."
소령의 시선이 무무에게 꽂혔다. "저 비늘이 증거입니다. 방패형 진화. 외부 충격 흡수. 도시 방어에 최적화된 무기죠."
무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공격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은채 뒤로 반 바퀴 물러섰다. 그 작은 움직임이 은채의 결정을 정했다. 무무는 군인을 향해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은채가 지켜줘야 했다. 아니, 함께 선택해야 했다.
남기준이 옆에서 아주 작게 말했다. "기록을 남겨요. 지금 회수되면, 저 신호는 다시 묻힐 수 있어."
은채는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평가 원본 로그. 공격 등급 S. 소음 공포 반응. 방패 비늘 발현. 그리고 군사 이관 협의 여부. 손끝이 떨렸다. 이 기록만 있으면 무무는 자산이 된다. 지우면 구조가 된다. 대신 자신은 정식 핸들러가 아니라 무단 은닉자가 된다. 그녀는 한숨을 삼켰다.
"남기준 씨. 이 기록, 증거로 못 남겨요."
"뭐?"
"남기면 얘는 오늘 밤에 끌려가요."
은채는 관리자 권한을 열어 원본 로그를 덮어썼다. 평가 수치를 생존 보호 중심으로 재정렬하고, 공격 판정의 핵심 파형을 분리 저장하지 않은 채 삭제했다. 손가락이 마지막 확인 버튼 위에서 멈췄다. 한 번 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눌렀다. 저장 불가. 복구 불가. 화면에는 즉시 권한 박탈 경고가 떠올랐다. 그녀의 이름 옆에 빨간 글씨가 번졌다. 비인가 변경. 보호사 자격 임시 정지. 현장 지원 불가.
"정말 지울 겁니까?"
남기준이 물었고, 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얘가 기록보다 먼저예요."
그 순간 무무가 은채의 팔을 앞발로 살짝 밀었다. 도망치라는 뜻이 아니었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무무는 북쪽 외벽 쪽이 아니라, 바닥 아래 유지보수 점검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평소엔 사람도 잘 쓰지 않는 방음 폐구간이 있었다. 은채는 그 방향을 보며 숨을 삼켰다. 저주파를 들으면 괴로워하면서도, 무무는 그 소리를 피해 숨을 곳을 알고 있었다. 본능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저쪽엔 방음 터널이 있어요."
남기준이 말했다. "그쪽으로 나가면 감시망 바깥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회수팀 시야는 피할 수 있어."
은채는 잠시 군인을 봤다. 소령은 이미 부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회수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버티면 무무는 우리 안에서 끌려갈 것이다. 선택은 하나였다. 은채는 점검구 덮개를 발로 밀어냈다.
"무무, 나 믿어."
무무는 망설였다. 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때 또 한 번 북쪽 저주파가 내려왔다. 무무의 등에서 새로 돋은 방패 비늘이 한꺼번에 반응했다. 비늘의 겹이 열리며 진동을 삼켰고, 주변의 금속 울림이 가라앉았다. 천장 경보가 짧게 터졌지만, 무무는 처음으로 그 소리에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은채 쪽으로 몸을 붙이며 방패처럼 바깥쪽에 비늘을 세웠다. 그 자세는 공격이 아니었다.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길을 열기 위한 자세였다.
두 사람은 유지보수 통로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좁은 공간 안에서 벽이 흔들렸고, 뒤따라온 회수팀이 상부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무무의 비늘은 그 소리를 잘라냈다. 둔탁한 진동만 남기고 높은 음을 먹어버렸다. 은채는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계속 무무를 살폈다. 괜찮아. 아직 괜찮아. 무무는 숨을 몰아쉬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공포를 견디는 방식이 달라진 것뿐이었다. 도망 대신 보호. 도망 대신 함께.
통로 끝에 작은 관측실이 나왔을 때, 남기준이 바깥에서 잡아준 임시 지도 하나를 은채에게 건넸다. 북쪽 외곽의 폐수로와 오래된 방벽 아래에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직전까지도 불안정하던 저주파가 그 지점에서 갑자기 또렷해졌다. 무무가 그 지도를 보자, 몸을 떨며 비늘을 맞부딪쳤다. 이번에는 두 번 길고 한 번 짧았다. 대답이었다. 기다려. 살아 있다. 이런 뜻 같았다.
은채는 지도 위의 빨간 점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멸종 판정이었던 모체가 살아 있다면, 이건 구조가 아니라 포획이 될 것이다. 군은 그 사실을 이미 알아챈 듯했다. 그녀의 손목 단말이 그때 울렸다. 중앙 군사부서의 공식 명령이었다. 무무를 즉시 이관하라. 불응 시 긴급 압류 조치. 그리고 그 아래, 더 작은 첨언이 붙어 있었다. 북쪽 외곽 저주파원 추적 완료. 6시간 내 현장 확보 예정.
무무는 화면을 보지 못했지만, 은채의 손이 굳는 건 알아챘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비늘 하나를 은채 손등에 눌렀다. 차갑고 단단했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마치 땅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같은 비늘 떨림이 돌아왔다. 이번엔 짧지 않았다. 길고 낮고 계속되는 응답이었다.
은채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가야 해. 하지만 지금은 끌려가면 안 돼."
관측실 문 밖에서 군화 소리가 멈췄다. 누군가가 확성기를 켰다. "조은채. 무무 개체를 인도하십시오. 6시간 후 이관 절차가 강제 집행됩니다."
무무의 비늘이 다시 한 번 울렸다. 북쪽에서 오는 소리와 같은 박자였다.
은채는 무무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관측실 문을 잠갔다. 바깥에서는 이미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 단말에는 새 공문이 도착했다. 무무의 이관 명령서, 수령자 군사부서, 집행 시각 오늘 23:40. 그리고 첨부 파일 하나. M-01 모체 저주파 실시간 추적 로그.
로그의 마지막 줄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관측 대상 생존 가능성 높음. 유인 가능. 회수 우선.
은채는 단말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살아 있다면 더더욱 누구도 함부로 가져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은 정해졌다. 6시간. 무무의 어미가 부르고, 군이 가져가려 하고, 센터는 그녀를 버리려 한다. 은채는 문 너머의 발소리를 들으며 다음 선택을 준비했다. 이번엔 숨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북쪽 폐수로까지, 아니면 군의 손이 먼저 닿기 전에, 무무와 함께 저 소리의 끝까지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