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이 봉인초를 떼어 내는 소리가 공방의 조용한 뼈를 긁었다. 붉은 왁스가 문틈에서 마지막으로 식는 동안, 마루는 소환장을 두 손으로 받지 않고 끝까지 바라만 보았다. 왕실 금장과 검은 밀랍, 그 사이에 눌린 별철 표식은 마치 공방을 빼앗기기 전에 미리 목줄을 조여 두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오르센이 문 옆에서 숨을 삼켰다. "가지 마." 그가 낮게 말했다. "저쪽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네 손부터 묶일 거야." 마루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 불꽃이 꺼진 화덕은 아직도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완성할 검을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을 놓는다고 해서 불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소환장을 접어 감찰관 앞에 내밀지 않고, 대신 오르센 쪽으로 돌렸다. "공방 안에 남은 장부 조각과 온도 기록은 태우지 말고 숨겨.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여기서 본 걸 밖으로 빼." 오르센이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마루가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잡히면, 나는 진짜로 아무것도 못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서 더 무거웠다.
감찰관은 그 짧은 침묵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협조적이군." 그는 마루의 손목에 은색 끈을 걸지 않았다. 대신 도망칠 생각을 못 하게 하듯 공방의 문턱에 왕실 표식을 세 겹 덧눌렀다. 그 표식이 굳는 소리와 함께 금속 냄새가 한 번 더 번졌다. 밖으로 나서자 새벽의 공기는 차갑고 젖어 있었다. 왕궁 쪽 하늘은 아직 어둡지만, 동쪽 가장자리만 희미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마루는 그 빛을 보면서 자신이 결심한 쪽을 확인했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보겠다는 결심이었다. 숨겨진 것은 열을 남기고, 열은 흔적을 남긴다. 자신이 끝내 만들지 못한 칼보다, 이미 만들어져 숨겨진 칼을 먼저 봐야 했다.
동궁 아래로 내려가는 석계단은 생각보다 깊었다. 위로는 기와와 금박, 아래로는 축축한 돌과 오래된 철의 냄새가 깔렸다. 감찰관은 앞장서지 않고 뒤에서 마루의 걸음을 재촉했다. 계단 끝의 문은 세 겹이었다. 첫째는 왕실 인장, 둘째는 명부 확인구, 셋째는 장인의 열응답 홈. 마루는 손끝으로 그 홈을 짚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모양이 너무 익숙했다. 그가 공방에서 수없이 만들었던 자물쇠와 같은 구조였다. 다만 더 잔인했다. 사람의 이름을 가두는 대신, 사람의 동의를 베껴 내는 구조였다. 그는 왼손을 들어 철문의 차가운 표면에 댔다. 왼손 엄지와 검지 끝은 이미 이전의 추적에서 감각을 많이 잃은 뒤였지만, 아직 남아 있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는 그 남은 떨림을 문면의 얇은 홈에 따라 흘려 보냈다. 바늘처럼 가느다란 열의 길이 손바닥 아래에서 반응했다. 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마루는 알았다. 안쪽은 잠금이 아니라 기억으로 봉인되어 있다.
그는 품에서 추적 바늘을 꺼냈다. 아버지가 쓰던 온도 바늘을 억지로 줄여 만든 한 번뿐인 도구였다. 바늘의 끝을 문 옆의 홈에 대자 얇은 쇳소리가 났다. 마루는 입술을 깨물고, 바늘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금속이 버티다 못해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뜨거운 통증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그동안 가장 정밀하게 남아 있던 촉감이 한 번에 타 들어갔다. 그는 억눌린 숨을 삼켰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열이 흐름을 읽는 동안, 철문은 마침내 안쪽으로 한 치 밀렸다. 마루의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공기가 새어나왔다. 그는 그제야 바늘을 뽑아 들었다. 끝은 벌겋게 휘었고, 그의 손가락은 감각을 잃은 채 멀어져 있었다. 이제 그는 얇은 철판을 더듬어도 미세한 결을 읽기 어렵게 됐다. 대장장이의 손이 조금 죽었다. 대신 진실은 열렸다.
문 안쪽은 창고가 아니라 기록실에 가까웠다. 벽면에는 검을 세워 두는 받침이 아니라, 얇은 금속판을 끼우는 틀이 줄지어 있었다. 가운데 홀더에는 첫 처형검이 눕혀져 있었다. 마루는 한 걸음도 더 들어가지 못한 채 검을 바라보았다. 검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별철의 몸체는 검은색에 가까웠고, 칼날은 빛을 먹은 물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가까이 있을수록 칼이 아니라 문서처럼 보였다. 검집이 아니라 궤짝처럼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받침 옆의 철판을 빼냈다. 그 안에는 수령 기록이 층층이 새겨져 있었다. 십칠 년 전, 첫 납품. 동궁 지하 봉인창고. 재확인. 이관. 재봉인. 이름이 바뀌고 날짜가 덧씌워지는 동안, 마지막 줄에 적힌 서명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마루의 아버지 마르 벤의 각인과 같은 별 세 개, 가운데가 약간 틀어진 홈. 하지만 가까이 보니 그 홈 아래에 더 얇은 음각이 겹쳐 있었다. 처음 찍힌 것은 아버지의 각인이 아니었다. 왕실이 아버지의 손을 흉내 내기 위해 다듬은 위조였다.
마루의 숨이 짧아졌다. 그는 검집 아래쪽을 더듬어 두 번째 판을 찾았다. 판은 바닥에 얇게 숨겨져 있었다. 거기에는 검의 용도가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이름 목록이 줄줄이 새겨져 있었다. 삭제, 보류, 유예, 집행. 사람을 베는 순서가 아니라 사람을 옮기는 순서였다. 이름 중 몇 개는 이미 지워졌고, 그 위에 새로운 이름이 다시 얹혀 있었다. 그는 한참을 읽다가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오르센. 새벽 집행 명부 예비 이관. 마루의 등줄기를 차가운 손이 훑고 지나갔다. 검은 단지 목숨을 베는 것이 아니었다. 기록을 바꾸고, 재판을 밀어 내고, 필요하면 증인을 먼저 없애는 왕실의 장부였다. 그 장부의 핵심이 바로 이 검이었다. 그리고 그 장부는 아버지의 이름을 도장처럼 베껴 쓰고 있었다.
"이제 봤나." 감찰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마루가 돌아서자, 뒤로 닫혀 있던 문 앞에 두 명의 병사가 서 있었고, 그 사이에는 손목이 묶인 오르센이 있었다. 머리카락엔 비가 묻어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아주 조금 번져 있었다. 마루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감찰관이 먼저 말했다. "너희 공방에서 너를 찾아간 건 협상이라 부를 수 있지. 그러나 그가 시장 앞에서 이관문서를 훔쳐 보던 건 달라. 증거 은닉과 왕실 기록 접근,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르센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넌 애초에 내가 잡히길 기다렸지." 감찰관은 대답 대신 마루 쪽으로 얇은 철판 하나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새로 파낸 서명이 있었다. 왕실 집행부의 확인 각인, 그리고 그 아래 빈칸 하나. "이 칸에 네 손으로 확인을 찍어. 그러면 오르센은 풀어 준다. 대신 검의 최종 확인 장인으로 네 이름이 올라간다." 마루는 철판을 보았다. 그건 구원이 아니라 발목이었다. 그러나 거절하면 오르센은 새벽 집행명부로 올라간다. 감찰관이 덧붙였다. "다른 길은 없다. 해가 뜨기 전에 결정해라."
마루는 오르센을 바라보았다. 오르센은 고개를 아주 작게 저었다.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마루는 무언가를 지키려면 먼저 손에서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배워 왔다. 그렇다고 지금 놓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검의 받침 쪽으로 손을 뻗었다. 검을 빼낼 수도, 철판을 부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선택이든 누군가의 이름이 잘려 나갈 터였다. 마루는 끝내 검의 칼날이 아니라, 옆면의 얇은 이름판을 집어 들어 불빛 쪽으로 돌렸다. 거기에서 아버지의 각인이 한 번 더 드러났다. 위조는 완벽하지 않았다. 가장자리의 열처리 자국이 살짝 다르게 남아 있었다. 그 차이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마루는 그 이름판을 허리춤에 숨기며 말했다. "내가 찍지 않으면, 너희는 오르센을 먼저 죽이겠지." 감찰관이 미소도 없이 대답했다. "죽인다고 하지 않았다. 새벽 전에 이름을 올린다고 했지." 그 말이 더 나빴다. 마루는 감찰관을 똑바로 보았다. "좋다. 네가 원하는 확인은 안 찍겠다. 대신 내가 본 이걸 들고 나가겠다." 그는 이름판을 감찰관 눈앞에 들어 올렸다. 순간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고, 감찰관은 짧게 손을 들었다.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철문은 닫혔지만, 이번에는 마루가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왕실이 숨긴 진실이 안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때 상층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인데, 누군가가 서둘러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감찰관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는 돌아서며 낮게 말했다. "늦었다. 집행대가 왔다." 병사들이 오르센을 더 세게 끌어당겼다. 오르센이 마루를 향해 한 번만 고개를 돌렸다. 마루는 그 짧은 눈빛에서 도망칠 곳이 아니라 선택할 시간이 사라지고 있음을 읽었다. 감찰관은 문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못 박듯 덧붙였다. "해 뜨기 전까지 네가 확인 각인을 찍지 않으면, 오르센의 이름이 먼저 불린다. 그 다음은 네 공방이다." 마루는 허리춤에 숨긴 얇은 이름판의 차가움을 느꼈다. 손끝은 이미 둔해져 있었지만, 그 둔함 너머로 더 무거운 열이 올라왔다. 그는 그 열을 따라 한 발 내디뎠다. 철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출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