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지나고도 공방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마지막 불꽃이 꺼진 화덕은 검은 입을 벌린 채 식어 갔고, 그 앞에 선 마루 벤의 손끝에는 아직도 뜨거운 재가 묻어 있었다. 문밖에서는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왕실 봉인초를 찍는 소리였다. 몰수 담당이 문설주에 붉은 인장을 세 번 눌렀고, 오르센은 그 옆에서 말없이 턱을 굳혔다. 마루는 공방 바닥에 남은 잿가루를 내려다보았다. 불꽃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사라진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방향이 남아 있었다. 동쪽. 아주 가늘고 길게, 왕궁 쪽을 찌르는 열의 잔향이었다. 그 끝에 첫 처형검이 있었다. 그 끝에 아버지의 이름이 있었다.
오르센이 낮게 말했다. “오늘은 버틸 수 없다. 봉인관이 들어오면 공방은 끝이야.” 마루는 대답 대신 화덕 옆에 놓인 납작한 쇠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쓰던 온도 바늘이 있었다. 금속의 떨림과 열의 흐름을 읽는 얇은 침. 지금은 쓸모가 없는 줄 알았던 도구였다. 마루는 바늘을 집어 들고, 손바닥에 닿는 차가움을 느꼈다. “끝난 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불이 없어도 열은 남습니다. 남은 열이 어디서 왔는지 보면 됩니다.” 오르센이 눈썹을 찌푸렸다. “왕궁으로 들어가겠다는 소리냐.”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실입니다. 검이 어디에 있는지 적힌 장부를 먼저 봐야 합니다.”
기록실은 왕궁 남문 옆의 낡은 별관 아래 있었다. 감찰이 몰려 있는 정문을 피하려면 서고 뒤편 좁은 석계단을 써야 했다. 오르센이 문지기에게 공방 수리용 철판 목록과 몰수 물품의 무게를 따지며 시간을 끄는 사이, 마루는 낮은 문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은 차가웠다. 돌벽이 손등의 열을 바로 앗아 갔다. 하지만 금속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놋쇠 손잡이에 대자, 오래된 장부와 철제 서가가 품고 있던 기억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새벽에 찍힌 도장, 급히 닦아낸 피의 자국, 그리고 누군가 일부러 긁어 낸 얇은 홈. 마루는 그 홈이 글자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글자를 덮기 위한 것임을 알아챘다. 지워진 부분 아래에는 더 오래된 숫자와 이름이 숨었다. 별철 납품 장부였다.
그는 가장 낮은 칸을 열었다. 서류뭉치 사이에서 은빛이 번뜩였다. 별철 표본이었다. 마루는 그것을 집어 들고 장부를 펼쳤다. 첫 처형검의 수령 일자는 십칠 년 전. 받는 곳은 무기고가 아니었다. 동궁 지하 봉인창고. 이름은 세 번이나 고쳐 쓴 흔적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왕실 집행부가 아닌, 익명 처리된 공방 관인이 찍혀 있었다. 이상했다. 왕실이 주문한 검이라면 왜 기록을 숨겼을까. 더 이상한 건 보조 서명이었다. 마루의 아버지가 평생 쓰던 별철 각인과 똑같은 별 세 개, 중심이 살짝 틀어진 납작한 홈. 그는 손끝으로 그 홈을 더듬었다. 잉크보다 얇은 금속의 눌림. 누군가 금속을 아는 손으로 장부를 수정했다. 그리고 그 손은 아버지의 각인을 흉내 냈다.
마루는 장부를 통째로 들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밖에서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오르센이 얼마나 버텨 줄지 몰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장부의 안쪽 접힌 보정지를 떼어 냈다. 그 종이에는 지워진 분류표가 남아 있었다. 처형검이 아니라 검증검. 문서 마지막에는 세 줄의 절차가 적혀 있었다. 왕실 인장. 처형 명부 원본. 별철의 열흔을 읽을 수 있는 장인의 확인. 마루는 숨을 멈췄다. 왕실은 처음부터 자신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이름을 덮고, 공방을 묶고, 불꽃의 목소리를 지운 것이다. 그의 손이 떨렸다. 떨림은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본 진실을 지킬 물리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마루는 아버지의 온도 바늘을 꺼냈다. 짧고 얇은 금속침은 여전히 미약한 열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 바늘 끝을 화강암 홈에 대고 천천히 돌렸다. 금속은 버티지 못했다. 가느다란 침이 더 가늘게 녹아 내리며 짧아졌고, 동시에 바늘의 표면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반짝였다. 마루는 그 변형을 멈추지 않았다. 온도 바늘은 이제 한 번만 쓸 수 있는 추적 바늘이 되었다. 하지만 대가는 즉각이었다. 바늘을 쥔 왼손 엄지와 검지 끝이 뜨겁게 타 올랐고, 감각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살이 아니라 기억이 먼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바늘을 보정지 위에 대었다. 숨겨진 글자가 서서히 떠올랐다. 동궁 서쪽이 아니라 동쪽. 지하 둘째 계단 아래. 세 번째 철문은 오직 조형장인의 잠금 구조로만 열린다. 그 문이 첫 처형검의 자리였다.
마루는 그 자리에서 무릎이 풀릴 뻔했다. 자신이 만든 자물쇠가 명부를 멈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검은 단순히 칼이 아니었다. 사람의 이름을 바꾸고, 기록을 지우고, 재판을 밀어 내는 왕실의 심장 같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은 왕궁 안에 묶여 있었다. 그것도 아버지의 각인을 흉내 낸 위조 장부 아래에. 마루는 추적 바늘을 접어 품에 넣었다. 장부 전체를 버려야 할지, 일부를 들고 나가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결국 그는 보정지와 마지막 페이지 한 장만을 빼내고 서랍을 닫았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르센이 간신히 시간을 벌어 준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더는 못 막아. 감찰이 넘어온다.” 마루는 손바닥의 화끈거림을 쥐어 참았다. “충분합니다.”
공방으로 돌아오자 봉인초는 이미 문양을 완성한 뒤였다. 붉은 왁스가 문틈에 굳어 있었고, 그 앞에 왕실 감찰관이 서 있었다. 그는 마루가 들고 온 보정지를 한 번 보고는, 놀랍도록 침착하게 또 다른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왕실 금장과 검은 밀랍, 그리고 새로 찍힌 별철 표식이 함께 있었다. “마루 벤,” 감찰관이 말했다. “네 이름으로 소환장이 내려왔다. 내일 새벽, 집행식 전에 동궁 봉인창고로 와라. 네가 아니면 세 번째 철문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마루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감찰관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불응하면 공방 잔여물은 압류되고, 오르센은 증거 은닉 공범으로 체포된다. 네가 숨긴 장부도 모두 왕실 소유가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봉투를 마루의 손에 억지로 쥐여 주며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 공방에 있던 첫 처형검의 수령 기록, 왕실은 이미 찾았다. 네 아버지 이름으로 들어간 그 검을 네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